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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랜더 홀씨 Aug 15. 2022

휴식이 필요했던
어느 5월의 늦은 기록

2022년 5월 브랜드데이

매월 마지막 주 목요일 오후, 피플의 디자이너들은 회사를 떠나 부산 시내에서 경험할 수 있는 브랜드를 찾아 떠나는 디자인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디자인은 디자이너의 경험과 관점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분야인만큼 잠시 컴퓨터 앞을 떠나 여러 브랜드를 실제로 경험하며 서로 다른 관점을 나누어보는 과정은 앞으로 우리가 만날 다양한 디자인 작업에 입체감을 더해줄 것입니다.


2022년 5월의 브랜드데이는 바쁜 일상 속에 휴식이 필요한 피플 디자이너들을 위해 라비님이 준비한 시간입니다. 예술을 통해 몸과 마음을 치유한 이번 브랜드데이, 즐겁게 읽어주세요. 




어느덧 두세달이 지나버린 브랜드데이. 사진들에 담겨있는 기억을 끄집어내 그날의 기록을 남겨본다. 지금도 물론 정신없이 바쁜 일상이긴하지만 그때는 정말 이러다 단명하는 거 아니냐? 할 정도로 생활패턴이 엉망진창이었다. 원래 이번 브랜드데이는 달님의 차례라며 멀찌감치 미뤄두고 있었는데, 막상 브랜드데이 날짜가 다가올 수록 직감했다. ‘아.. 내가 해야하나보다.. 해야..겠네…나네..’

그렇게 준비라곤 1도 하고 있지 않다가 갑자기 코스를 짜야된다고 생각하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나는 다른 디자이너들처럼 맛집과 핫플을 세이브해놓지 않으니 말이다. 


이전엔 뭘했지? 예전 브랜드데이 때는
보는 것 위주로 돌았다면 이번엔 체험을 해보는 건 어떨까?

그럼 우리가 요즘 몸이 많이 지쳐있는 상태니까 힐링을 해보자!




그렇게 짜여진 5월 브랜드데이의 테마는 힐링데이.


첫번째 코스는 건강을 위한 든든한 한 끼 [한다솥]

제대로 밥을 챙겨 먹는 것도 귀찮고 바뀐 식습관으로 간단하게 때우는 끼니가 일상이 되버린 요즘. 그래서인지 요즘은 피곤이 많이 쌓이거나 힘들 때면 맛있는 밥을 든든히 먹어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더군다나 지난 브랜드데이들이 어쩐지 모두 양식이었기에 이번엔 따뜻한 한식으로 정해보았다. 


광안리에 위치한 한다솥은 건물의 외관만 봐서는 솥밥이 전혀 연상되지 않는 모양새였다. 일본의 라멘집 같기도 하면서 와인바인 듯하기도 하고. 내부도 한국스러움에 일본스러움이 오묘하게 섞여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었다. 실제로 요즘 핫한 솥밥집들 대부분이 일식베이스(가다랑어 육수)로 밥을 짓고 스테이크 솥밥의 경우엔 리소토를 만드는 방식으로 밥을 짓는다. 이날 방문한 한다솥도 많은 사람들이 한식당이라고는 하지만 가장 인기있고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 계절솥밥 역시 버터와 간장을 비벼먹는 솥밥이었다. 오픈주방의 위쪽으론 옛날 큰집에 가면 볼 수 있던 자개장 문이 달려 있었는데 이 가게의 정체성(?)을 표현하듯 모양새로 커다랗게 ‘밥심'이라고 적혀있었다.



4명 모두 다른 메뉴를 시켰는데 생선이 취향이 아닌 나는 미리 찾아둔 정보대로 더덕제육볶음과 계절솥밥을 시켜보기로 했다. 버터를 반스푼 넣고 양념장과 비벼낸 밥과 양념된 더덕구이 한점! 의외로 고기보단 더덕이 더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집에서 밥을 해먹어도 해먹지 않아도 집에 즉석밥 몇 개씩은 비상용으로 구비해두고 있는게 요즘 사람들인데 일반 쌀밥뿐만 아니라 검은콩밥, 흑미밥, 잡곡밥 등에 이어 요즘 햇반에선 햇반솥반을 메인으로 삼고 있는 걸 보면 솥밥 자체가 트렌드인건 분명한 모양이다.



참지 못하고 같이 주문해버린 한국식 깻잎튀김 앤 일본식 새우튀김’s

건강하고 든든한 밥심으로 배를 채우고 난 다음으로는 후식 코스.

후식코스에선 눈을 힐링시키기 위해 전망이 트여있는 곳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부산이라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고도 생각되는 ‘바다가 바로 앞’

이 카페는 광안리 한켠에 있는 별 특색없는 일반적인 빌딩 꼭대기층인 9층-10층에 있었다. 확실히 지나가다가 들릴만한 곳은 아니다.



빌딩 속에 숨겨진 광안리 뷰 카페 [고유한]

고유한은 리뷰 사진들을 찾아보다 현대와 전통적인 느낌이 섞여져 있는 것들이 실제 어떤 느낌으로 어우러져 있나 궁금한 마음에 정하게 된 코스이다. 2020년 한창 코로나로 침체되어 있던 시기에 오픈한 카페인데 처음 오픈할 때는 커피와 케이크가 주메뉴인 ‘광안대교 뷰가 좋은 루프탑 카페'로 시작을 했다. 현대적이긴 하지만 그릇이며 식기나 인테리어 소품들이 살짝 전통적인 느낌이 나서 원래부터 다과나 한국식 차를 같이 판매를 하는 줄 알았는데 하나하나 메뉴가 늘어난 것 같다. 



2021년에 오픈한 기장 하녹이라는 무드있는 한국식 전통가옥에서도 고유한의 메뉴를 모두 맛볼 수 있다고 하니 다음에 꼭 방문해봐야겠다. 고유한은 현대에 전통을 살짝 섞은 느낌이라면 하녹은 한국식에 현대를 살짝 섞은 느낌이랄까.


https://naver.me/xW1j0cqJ



사람들이 추천하는 메뉴는 아니었지만 여기 뷰와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에 고른 코리안 에이드 문경오미자&자몽. 다들 각자의 취향에 맞게 제주청귤&목련 에이드, 아이스아메리카노, 흑임자라떼를 주문했다. 케이크 맛집이라는 소문은 들었으나 밥을 배부르게 먹고 바로 온데다가 바로 다음 코스를 생각해서 미니양갱세트를 간단하게 주문했다.



커다란 창으로 보이는 광안대교. 

일반적으로 부산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라고 하면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조금 걸어 나가 바다를 보고 영감을 얻는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사실 일상생활에서 그런 일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평일에 광안대교 뷰를 보고 있노라면 그런 로망 속에 살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멍하게 뷰를 바라보고 있으니 바빴던 마음이 금새 평온해졌다. 


9층 실내를 벗어나 10층으로 올라가면 실내인듯 실내가 아닌 루프탑이 있다.

사방으로 벽이 둘러쌓여 있고 밖을 볼 수 있도록 창문도 트여있지만 천정이 뚫려있는걸 보면 여기서 음료나 디저트를 먹는 곳은 아닌 것 같았다. 9층에 이어 진심으로 뷰를 관람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고유한 주변은 아직 개발이 덜 된 광안리 소형 빌딩들이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멀리 황령산도 보이고 전체적으로 탁 트인 뷰를 자랑한다. 마음이 꽤나 답답했는데 시원한 뷰를 보니 가슴도 탁 트인다. 


뱃속 힐링과 눈의 힐링을 마쳤으니 이제 몸의 힐링을 하러 갈 차례다.


‘브랜드데이로 몸 펴러 갈래요?’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장기간으로 하고 있는 전시 및 체험 프로그램 ‘나는 미술관에 OO하러 간다 On my way to the Museum’를 보러, 아니 하러 가기로 결정했다. 



100세 시대의 도래는 이전의 생애주기를 탈피한 새로운 인생주기를 설정하게 한다. 인간의 수명이 연장되면서 우리 모두가 100세까지의 삶을 전제하게 된 것이다. 유한하지만 ‘더 확보된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전 세대에게 주어졌다. 이에 따라 인간은 단순히 ‘오래 사는(living longer) 삶’이 아닌 ‘잘 사는(living well) 삶’의 방식에 집중하게 되었으며, 사회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생활 방식은 바뀌었다. 개개인은 각자의 일상성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의미(work-life balance)의 준말인 워라밸이라는 말은 현대인의 라이프 스타일을 대변하는 말이 되었다. 주어진 여가 시간을 잘 보낸다는 것은 휴식, 기분전환, 자기개발 등의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 준다. 우리 모두는 이러한 여가 시간을 균형 있게 영위하기 위한 스스로의 대안이 필요하다.

자유로운 시간(free time)에 선택하는 활동인 여가(free time)에도 많은 불평등적 요소들이 존재한다. 지역, 성별, 연령, 소득 수준 등에 따라 선택의 제약이 따르기도 하고 알고리즘의 유인으로 개인의 여가 취향이 결정되기도 한다. 《나는 미술관에 OO하러 간다》전은 여가 활동의 불평등을 극복하고 미술관이 제안할 수 있는 대안적 알고리즘을 보여주는 시도이다. 미술관은 작품 감상을 통해 예술을 즐기는 공간이자 프로그램 참여를 통해 여가를 탐문하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전시의 구성은 동시대 여가 현상과 여가 활동을 탐색해보는 ‘인트로’ 섹션, 미술관이 제공할 수 있는 본질적인 감상의 여가와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채워진 ‘O+O+O’, ‘O+O’, ‘O’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나는 미술관에 OO하러 간다》가 ‘스스로에게 필요한 진정한 여가(행복)’를 찾아가는 여정 그 자체이길 바란다.


많은 체험 프로그램 중 우리가 갈 프로그램은 스트레칭 CLUB ‘나는 미술관에 요가하러 간다'이다.

'나는 미술관에 OO하러 간다'는 크게 ‘O+O+O’, ‘O+O’, ‘O’로 나누어지는데 쉽게 말하자면 

O는 나의 내면을 바라보는 혼자만의 시간,
O+O는 나와 작품이 마주하는 시간,
O+O+O는 모두 다 같이 타인의 생각을 나누는 배움의 시간.
 

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스트레칭 클럽은 O+O에 속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단순히 배우는 거 라고 생각하면 O+O+O일 수 있지만 요가를 하면 흔히 나를 마주한다라고 하니 그런 뜻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아무래도 디자인 업무의 특성상 의자에 엉덩이 붙이고, 게다가 꾸부정한 거북목을 하고 하루종일 일을 하는게 일상이다보니 체력도 딸리고 몸도 망가지는 것이 체감이 될 정도의 시기였다.(물론 지금이라고 나아진 건 아니지만…) 잠이 쏟아지기 시작하는 오후쯤에 한번씩 스트레칭을 하고 있지만 그래봐야 기지개 수준에 지나지 않았으니 이번 요가시간은 몸을 움직일 좋은 기회라고 생각되었다.



프로그램 예약시간이 임박하여 서둘러 화장실에 가서 편안한 복장으로 옷을 갈아입고 O+O 전시실 안으로 들어갔다. 윤필남 작가의 Beyond라는 커다란 오브제를 배경으로 스무명정도의 신청자들이 매트를 깔고 앉아 있는데 확실히 경험이 좀 있으신 분들은 선생님 앞으로 모여 앉으시더라.

우린 뻣뻣하기 그지없는 초라한 몸뚱이를 숨기기 위해 최대한 뒤쪽으로..


인도의 정신수련법으로 알려진 요가. 요가의 목적은 쁘라끄리띠의 속박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인식을 획득하는 것이라고 한다. 크게 보면 요가는 몸보다는 정신을 단련하는 것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컴퓨터 화면이나 핸드폰 화면을 하루종일 보는 나에겐 모든 전자기기들을 내려놓고 커다란 미술품들 속에서 눈을 감고 온전히 내 몸 하나하나를 느끼면서 집중하는 시간이 너무 어렵게 느껴졌다.

가만히 있는다는게 이렇게나 힘든 일인지 원.


다리를 펴고 발끝을 펴고 팔을 펴고 손 끝에 집중하고. 요가 강사님이 돌아다니면서 동작 하나하나 자세를 다시 잡아주시고 했는데 저질 몸뚱이인 나는 억하고 소리를 지를 뻔 한 순간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쉽게 생각했는데 요가는 생각보다 어려웠고 언제 끝나는거지? 라고 의문이 들 때쯤 수업은 종료됐다. 격한 운동이 아니었지만 우리는 쓰지 않았던 근육을 사용해서인지 모두 녹초가 되었다. 지친 몸을 가다듬고 전시장을 빠져나와 남은 전시를 천천히 둘러봤다. 



제일 안쪽 리드미컬한 음악이 들려오는 곳으로 들어가보니 모두가 빈백에 드러누어 있었는데 안은미 작가의 자화자찬(Self-Praise)이라는 전시공간이었다. 뚱땅거리는 이국적인 리듬과 전형적인 한국 아주머니들의 춤추는 몸짓이 묘하게 어우러져 멍하게 쳐다보게 되었다.



뒤이어 들어간 공간은 제니퍼 스타인캠프의 Madame Curie라는 무음 영상 작품.

커다랗게 꽃들이 일렁이는 화면 맞은편엔 바닥에 앉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는데 가만히 앉아 아무말 없이 화면을 바라보게 되는 장관이었다. 요즘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그것에 필요한 여가 프로그램, 전시들로 이루어진 ‘나는 미술관에 OO하러 간다'는 올해 10월 16일까지 운영한다.


우리는 3층 전시실을 아래층에서 전시 중인 한국현대미술작가조명 IV- 이형구전 전시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뼈만으로도 캐릭터의 생동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던 ANIMATUS를 시작으로 골격의 탐구에서 시각의 탐구, 관상학.. 인체의 내부로까지 이동한 작가의 유머러스한 전시품을 보고 있다보면 어느덧 소우주가 펼쳐진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면서 모두에게 ‘오늘 어땠나요?’라고 물으니 다들 오랜만에 몸을 쭉쭉 늘이고 펴서 기분이 좋았다고 한다. 브랜데이 때마다 여기가 핫하고, 여기가 브랜딩이 잘되었고, 우리가 하는 디자인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번씩은 몸과 마음을 프레시해주는 시간들도 중요한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다음날 침대와 한 몸이 되었다. 이번 브랜드데이의 결론.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필수 요소는 다른 무엇보다 맑은 정신과 튼튼한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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