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평일 오후, 지이이잉- 차고 있던 애플워치가 강한 진동소리를 내며 화면에 낯선 전화번호를 띄웁니다.
"브랜딩을 좀 맡기려고 하는데요, 여기서 무슨일을 해주시는 건가요?"
잠시 빠르게 머리속을 더듬어 브랜딩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문장들을 찾아냅니다. 그리고 답을 전하기 전에 휴대폰 너머의 클라이언트에게 오히려 몇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신규 브랜드인가요? 네이밍은 되어 있나요? 온라인 브랜드인가요? 오프라인 브랜드인가요? 내부에 디자이너는 있으신가요? 그리고 또..."
브랜딩이 무엇인지 단번에 설명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유사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서로가 알고 있는 정보가 있으니 적당히 설명해도 소통이 가능하지만 브랜딩이라는 용어가 처음이거나 '브랜딩 = 로고디자인'이라고 생각하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려면 사실 <브랜딩 = 로고디자인 시스템>이었던 시절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브랜드 디자인의 일대기를 전해줘야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땐 재미있게도 "디자이너님에게 브랜딩에 대한 핵심 강의를 들은 것 같아요"라는 피드백을 듣기도 하죠.
브랜딩이라는 것이 로고를 만드는 게 전부가 아니라면 브랜드 디자이너(BX디자이너)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도 때론 '나의 역할은 어디까지일까?' 생각하게 될 만큼 광범위하고 디테일한 브랜드 디자이너의 일. 피스앤플렌티의 대표 프로젝트 <굿올'데이즈 호텔 & 카페>를 진행하던 날로 되돌아가 생각해봅니다.
굿올'데이즈의 가장 메인이 되는 경험콘텐츠는 '엽서'입니다. 바다가 없는 중앙동의 호텔에 손님을 찾아오게 할 만한 매력적인 이야기를 만드는 것과 동시에 해결해야하는 문제는 바로 'MZ세대는 과연 엽서를 쓰는가?' 였어요. 실제로 디자인을 맡은 디자이너들도 최근 몇년사이에는 우체통 근처에도 가보지 않았기에 정말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엽서를 쓰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중앙동'이라는 지역의 특징과 함께 어우러져야했기에 더욱 어려운 문제였죠.
그래서 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엽서쓰기'라는 행위를 해체해보기로 했어요. 전 국민이 다 알고 있는 '엽서'가 아니라 부산에서, 부산 중앙동에서 쓰는 엽서의 의미, 엽서를 쓰는 행위, 엽서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손바닥만한 엽서를 바다처럼 넓게 바라보며 그 속에 숨겨진 것을 찾아보았습니다. 그 곳에 답이 있을거라고 생각했어요.
굿올'데이즈에서 바라보는 '엽서'의 가치는 '사라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굿올'데이즈의 호스트이신 두 대표님은 여행에서의 경험은 기록하지 않으면 결국 사라지기 때문에 좋았던 순간을 꼭 기록으로 남기길 원하셨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엽서였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발견한 또 다른 엽서의 가치는 '현재를 미래로 보내는 행위'라는 것이었어요. 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가 평범한 하루를 보내다보면 어느 순간 엽서를 통해 과거의 좋았던 그 날이 다시 나를 찾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호텔을 통해 과거 번화했던 중앙동에 좋았던 시절을 다시 되돌리고 싶어하는 호스트의 바람과 맞물려 굿올'데이즈 호텔 & 카페는 <여행을 기록하는 호텔>로서 시간과 기록이라는 브랜드 에센스를 갖게 되었습니다.
브랜드 디자이너는 눈에 보이는 시각물을 만드는 사람 보다는 '설계자'에 가깝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그 중에서 매력적인 것을 소비자에게 <어떻게> 전할지, <어떻게> 보여줄지, <어떻게> 사용하게 할 지까지. 여기서 말하는 <어떻게>를 설계하는 사람인 것이죠.
브랜드의 성격에 맞게 이름을 짓고, 이름을 잘 기억하게 할 수 있는 문장(슬로건, 태그라인)을 만들고 브랜드와 어울리는 컬러나 텍스트를 정하고 브랜드가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가장 잘 경험할 수 있게 서비스를 만드는 것까지 모두 브랜드 디자이너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브랜드 디자이너라기 보다는 BX 디자이너(Brand eXperience designer)라고 표현하며, 여기서 말하는 경험이 바로 <어떻게> 그리고 <일관성 있게> 전할 것인가를 설계하는 부분인 것입니다.
오늘도 꽤 긴 시간동안 대화한 끝에 <브랜딩 = 로고디자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클라이언트와 함께 네이밍부터 새롭게 진행하는 신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역시 "브랜딩에 대해 족집게 수업을 들은 것 같아요"라는 재미있는 피드백을 받고 킥오프 미팅을 마쳤습니다.
다음 에세이는 '디자이너와 미팅할 때 무엇을 준비하면 좋을까?'입니다. 그동안 디자이너와 미팅하며 내 생각을 잘 전달하기 어려우셨던 분들은 다음 이야기가 도움이 되실 거에요. 궁금하신 점은 댓글 달아주셔도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