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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랜더 홀씨 Aug 27. 2019

내 것일수록 어려운 것, 브랜딩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은 진리요, 팩트니라.

오늘 우리는 하루 종일 헤매었다. 어디를 헤맸을까? 달래는 원래 길치라서 길을 잘 헤매지만 오늘 우리가 헤맨 것은 '정체성의 숲'이었다. 


우리는 보통의연구소와 부산 디자이너 그룹 프로토, 두 가지를 운영하고 있는데 브랜드라고 하기에는 조금 미흡하지만 어쨌든 각각 다른 정체성을 가진 두 개의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 


한동안 마케팅이라는 단어가 굉장한 주목을 받더니 요즘은 브랜딩이라는 단어가 엄청 뜨고 있다. 서점에만 가도 갖가지 브랜드 서적이 즐비하고 브랜딩이 회사를 경영하거나 장사를 한다면 반드시 알아야 할 덕목으로 떠올랐다. 


이유를 살펴보자면 이제는 많은 제품들이 품질면에서는 상향 평준화가 된 지 오래이고 세상에 없던 물건이 시장에 나와 독점하는 경우는 아주아주 드물어졌다. 그만큼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 시대이니만큼 내가 파는 물건(혹은 서비스)과 다른 사람이 파는 물건과의 차이점도 아주 희미해졌다. 그러다 보니 눈에 보이지 않는 결정적인 차이점을 찾아야만 하는데 그것이 정체성이고 요즘 말하는 브랜딩의 본질이다(라고 생각한다) 


브랜드의 기본 요소인 로고, 즉 심벌의 기원은 과거 농경사회에 다른 사람의 소와 우리 집 소를 구분하기 위해 엉덩이에 찍던 낙인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삼성과 애플을 구분하고 흰 우유 중에서도 남양우유와 매일우유를 구분하는 것처럼 지금도 그 기원은 여전히 이어져오고 있다. 


최근에 이르러 거기에 더해진 것이 브랜드의 스토리, 정신(철학), 경험인데 이제 낙인으로만 구분하던 소비자들이 더 나아가 그 기업의 서비스, 제품 등 내가 피부로 느끼는 모든 것을 통해서 그 브랜드를 구분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요즘 브랜드 디자인 의뢰가 들어오면 잘 받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 이유는 과거에 로고만 달랑 만들어주고(혹은 명함 정도 더 만들어주고) 끝나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로고는 정말 단순한 상징일 뿐 사실 더 중요한 건 제품이나 서비스를 통한 시각적 이미지들이 훨씬 더 중요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에게 의뢰하는 소상공인 분들은 그럴 정도의 예산이 없다. 그래서 반의 반쪽짜리 일을 해드릴 바에는 시작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아쉽지만 거절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장황하게 잘난척하며 글을 쓰는 우리는 어떨까. 잘하고 있을까? 사실 전혀 그렇지 않다. 중이 제 머리 깎지 못한다는 말은 신체적인 특성을 표현한 1차원적인 속담이라고 생각했는데 회사를 운영하면서 보니 정말 그 말은 진리요, 팩트였다. 


오늘 우리가 헤맨 정체성의 숲은 비단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프로토는 디자이너 모임이 만들어진지 4년 만에 이름이 생겼고 보통의 연구소는 클라이언트를 만나는 중요한 창구가 되는 블로그나 인스타그램 관리를 전혀 못하고 있다. 시간이 없어서, 라는 핑계를 대고 있지만 제일 중요한 건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클라이언트와 미팅할 때는 세상 심각한 얼굴로 "음... 그건 그렇지만 이것보다는 이런 이런 방향이 더 좋을 것 같아요"라는 말로 단호하게 방향을 제안하지만 우리에게도 누가 좀 그렇게 말해줬으면 좋겠다는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다. 물론 진짜 들으면 무척 기분이 나쁘겠지만.. 어쨌든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뚜렷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질문하고 우리 스스로 검열하는 이상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남의 일은 제 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제안할 수 있는데 우리 스스로는 왜 우리가 원하는 걸 찾지 못할까? 어제는 이렇게 가자고 했다가 오늘은 "곰곰이 생각해봤는데..."라는 말로 순식간에 뒤집어지는 우리의 정체성. 그 와중에 다행히 불변인 건 '자매'라는 사실인가 보다. 


어쨌든 보통의연구소는 디자인으로, 부산 디자이너 그룹 프로토는 디자이너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으로 그 정체성을 찾아나가야 한다. 이름 짓는데 2년이나 걸렸어요, 브랜드 론칭하는데 2년이나 걸렸어요, 하는 말들이 그냥 대외적인 쇼맨십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브랜딩이라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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