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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랜더 홀씨 Oct 09. 2019

견적서에서 사라진 디자인 비용

관행이라기엔 정말 희안한 계산법

프리랜서 디자이너나 회사를 이제 막 시작한 1인 사업자들이 회계만큼이나 고민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건 바로 '견적'이다. 유형의 물건이 아니라 내가 들인 노동력을 금액으로 계산하는 일이기 때문에 단순한 금액의 문제가 아니라 많이 넣으면 뭔가 자만에 찬 디자이너처럼 보일까봐 걱정이 되고 적게 넣으면 내가 이것밖에 안되는 디자이너인가? 하는 생각에 자괴감이 든다. 


우리도 견적을 넣을때마다 굉장히 고민을 하는데 나름대로 내 경력과 달래의 경력을 합쳐서 시급으로 쪼개고 작업에 소요되는 시간을 곱해서 견적을 낸다. 초창기때보다는 견적이 조금씩 오르는 편인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건 아니고 견적이라는 것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 결정을 하는 것이다보니 변수를 대비해 조금씩 많이 넣게 되었다. 그러니 자연히 초기예산이 잡혀있는 경우나 항목을 상세히 알려주는 경우라면(특히 레퍼런스 제시) 견적을 충분히 조율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우리도 사람이다보니 소개를 통해 들어온 일이나 특별한 가치가 있는 일은 적은 예산이라도 진행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최근에 연락이 오는 곳들과는 견적조율에 실패해 일이 성사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들어보니 우리가 내는 견적이 부산의 일반적인 편집디자인 견적보다 2~3배 정도 비싼 모양이었다. 그래서 꼭 예산이나 지난 견적을 물어보게 되는데 정말로 그 가격에 인쇄랑 디자인을 다 해주는 곳이 있냐고 물어볼 정도로 터무니없는 견적이 많았다. 그 예로 포스터를 들어보고자 한다. 


예를 들어 포스터의 경우 전체 견적에서 제작비를 제외한 디자인 비용이 15만원 선이었는데 우리는 평균 80-100만원 선에서 포스터 견적을 낸다. 일단 포스터가 진행되는 과정을 살펴보자면 


1. 컨셉도출

2. 디자인 리서치

3. 디자인 작업(x2 / 평균 시안 2종 제공)

    - 카피라이팅 

    - 간단한 일러스트레이션

    - 스톡이미지 렌탈

    - 타이포그래피, 편집디자인

5. 클라이언트에게 제안 / 수정(시안 2가지를 제안했는데 모두 튕긴다면 1~3번 과정 무한반복)


이런 과정으로 포스터 1개가 완성이 되는데 이걸 비용으로 환산해본다면 15만원에 초기 시안 2개를 전달할 경우 도대체 항목별로 얼마를 측정할 수 있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정해진 예산이 그정도라면 정확한 텍스트와 이미지, 레퍼런스를 제공해주고 대신 구현해주는 정도(그래픽작업)로 진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디자인에 대해 잘 모르기때문에 어떤 레퍼런스를 제공해줘야하는지, 어떤 항목이 필요하고 어떤 형식의 원고가 필요한지도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다. 또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전문가가 될 수 있기도 한데 그 사이의 갭을 자꾸만 멀어지게 하는 건 역시나 견적이다. 


우리는 견적서에 반드시 디자인비용과 인쇄비용을 같이 적어준다. 보통 관행의 경우 인쇄비에서 마진을 남기는 편인데 우리는 인쇄비에서 마진을 거의 남기지 않는다. 그래서 디자인만 우리에게 의뢰하고 제작은 다른곳에서 해도 무관하도록 진행한다. 그렇다보니 디자인비가 자연히 비싸게 측정될 수 밖에 없고 계약은 없던 일이 된다. 


때로는 아쉽고 속상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디자인 견적서에서 사라졌던 '디자인 비용'을 되살리고 싶다. 컨셉을 잡고 리서치를 하고 디자인을 하는 모든 행위는 클라이언트가 해당 프로젝트에 소요해야하는 '디자인 파트'의 일을 대신 수행하는 엄연한 '노동'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디자인 비용' 기록은 디자인을 단순한 '예술'이나 '재능'으로 둔갑시켜 돈과 멀리 떨어뜨리는 사회적 관행을 우리 스스로는 따르지 않겠다는 작은 행동이며 또한 디자인이 단순히 제작을 위한 부수적인 도구가 아님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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