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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랜더 홀씨 Sep 27. 2019

생일날 야근한 달대리의 눈물

짠맛의 보람을 느낀 청춘의 밤

직장생활을 오래 한 디자이너들에겐 묘한 징크스가 있다.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보는 기념일의 저주. 대부분 생일에 걸려서 퇴근을 못하거나 크리스마스이브, 12월 마지막 날 묘하게 걸리는 사람들이 꼭 있다. 


올해는 달래가 그 징크스에 딱 걸렸는데, 바로 어제 달래의 생일에 야근의 저주에 걸리고 말았다. 두어 달 정도 가지고 있던 프로젝트가 이제 인쇄 준비가 끝나서 마지막 수정사항이 오가고 있었는데 그게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동래에 강의를 가야 해서 사무실에 오신 담당자님과 달래를 두고 발걸음을 옮겼는데 수업을 마친 9시쯤 달래에게 톡을 하니 달래도 그 시간쯤 마쳤다는 것이 아닌가! 저녁시간은 훌쩍 지나갔고 터덜터덜 돌아갔을 달래의 발걸음을 생각하니 안타깝기도 하고 미안했다. 예전에 내가 직원일 땐 덮어두고 사장님을 욕했는데 달래는 그러지도 못하고 나 역시 그 사장님 입장이 돼보니 해줄 수 있는 건 그냥 토닥임 뿐이었다.


어쨌든 집에 들어가 늦은 저녁을 먹고 제부와 와인을 마시며 가볍게 생일날을 마무리했는데 제부가 생일이 이제 5분 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로 놀리자 달래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또록 흘렀다고 했다. 사실 해마다 생일은 늘 돌아왔고 그렇게 생일을 목숨 걸고 챙기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의도치 못하게 밤 11시가 넘어서 생일상을 받으니 상황이 뭔가 서글퍼진 모양이었다.


생일에 야근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편집디자인 일을 하다 보면 정말 수정을 끝의 끝까지 해야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특히 많은 사람들과 함께 협업해야 하는 행사의 홍보물 같은 경우는 더욱 심한데 여러 기관과 부서들의 정보를 취합해서 반영해야 하기 때문에 수정 피드백도 늦고 변동사항도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한 특성이 있는 일을 하기 때문에 인쇄 스케줄에 맞추려면 마감일에 가까워질수록 야근이 잦아진다. 그러다보니 우연히 이렇게 생일이나 특별한 기념일에 걸리는 경우가 있는데 특별히 악한 의도가 있거나 고의적인 일이 아니기 때문에 누구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일이 생긴다면 클라이언트에게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회사 차원에서 인센티브나 평일 휴무 등으로 반드시 보상해줘야 한다.


편집디자이너는 텍스트를 활용해 디자인 하는 것 뿐만 아니라 인쇄라는 엄청난 책임이 따르는 역할을 하고 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수정하고 인쇄파일로 만들어 넘기기까지 전문적인 지식과 뚜렷한 책임감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달래는 자신이 그린 지도와 한 달여간 잡고 있던 프로젝트 인쇄 파일을 넘기며 그러한 역할을 잘 마무리했다. 


이렇게 힘든 디자이너라는 직업의 길로 달래를 인도했다고 지인들이 나를 비난(?)했지만 나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겪는 고통보다 후에 찾아오는 보람과 성취감이 더욱 컸기 때문에 이 일을 주저 없이 달래에게 권했다. 


달래가 생일날 눈물을 찔끔 흘리며 보낸 이 지도는 다음 달 본 행사에서 많은 사람들의 부산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고 그 보람은 달래를 한층 더 성장시켜 줄 것이다.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좋은 건 계속해서 일을 통해서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 경험을 통해 이 일을 하기 전과 후가 다른 달래가 될 것이고 새로운 영역을 확장시키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적고 보니 사장의 마음으로 순전히 직원에게 열정의 헛바람을 넣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내가 보낸 10년은 분명 그랬다. 나는 그 보람과 성취감으로 여기까지 왔기 때문에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실제로 오늘 달래는 시청에서 연락 온 어떠한 일에 대해 적극적인 의지를 불태우며 이 일도 맡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 다운 일을 더 많이 해서 디자이너로 유명해지고 돈도 많이 벌고 싶다는 자기 목표를 스스로 세워 나가는 것이다. 


사람은 매 순간 성장한다. 달래도 처음 왔을 때와 지금이 많이 달라졌다. 금융위기를 겪었던 올해 1, 2월의 충격적인 텅장을 경험하고 많은 프로젝트와 사람들을 만나면서 감성소녀였던 달래는 프로 사업가의 모습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젠 회의를 하는 스킬도 늘어나고 기획도 곧잘 한다. 정말 고맙고 대견하다. 달래 짱이다..(옛날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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