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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랜더 홀씨 Sep 25. 2019

소름 돋는 유전자의 힘

우리는 엄마와 아빠의 특장점만 쏙쏙 닮았다

"그거 들었어? 엄마 다시 일하러 가신대" 


요즘 연이은 야근으로 통 엄마와 통화할 시간이 없었는데 생일을 맞아 엄마와 통화를 했는지 달래가 엄마의 근황을 알려주었다. 


엄마는 2남 5녀의 장녀로 82년 김지영에 나오는 김지영의 어머니처럼 동생들 뒷바라지를 위해 부산으로 내려와 일찍 일을 시작하셨다. 20대 초반을 공장에서 보내고 아빠를 만나 결혼하며 더 격하게 일을 하셨는데 슈퍼에 참기름 가게에 메주공장에 과수원까지 안 해본 일이 없는 프로이직러다. 


우리는 부산에서 언양으로, 언양에서 함양으로 10여 년 동안 무려 10번이 넘는 이사를 다녔는데 엄마는 가는 동네마다 희한할 정도로 일을 잘 구하셨다. 아빠가 자아성찰과 구직난에 힘들어할 때에도 엄마는 묵묵히 회사에 가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신기한 일이다. 주중엔 워킹맘으로 주말엔 짬을 내어 아파트 근처에 텃밭을 가꾸느라 365일이 바쁘신 분이었다. 


반면에 아빠는 승률이 그다지 좋지 않은 프로이직러였는데 옮기는 데마다 아빠한테 상처를 남기고 괴로운 일이 자주 일어났다. 결국엔 혼자 일하는 게 답이라는 결론으로 지금은 아르바이트와 농사를 지으시는데 아빠 역시 새벽에 논에 갔다가 낮에는 월급을 받는 일을 하고 저녁에 퇴근하고 오면 또 논에 가고 그 사이에 밤도 줍고 양파도 심고 때때로 양배추도 심어서 엄마를 괴롭게 하는 워커홀릭이시다. 


그렇다 보니 우리가 부산에서 웬만큼 바쁜 건 부모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우리는 회사일과 프로토일, 그리고 달래의 개인 프로젝트 등으로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바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에 비하면 우린 그냥 집도 제대로 안 치우고 사는 게으른 자식들이 돼버린다. 


어쨌든 타고난 부지런함이 우리 자매에게 공통적인 유전이라면 엄마와 아빠로부터 각각 받은 두 가지 기질이 또 있다. 큰 딸은 원래 아빠를 닮는다고 나는 아빠와 외모도 성격도 비슷한데 가장 비슷한 건 장비병이 있고 사람 모으길 좋아한다는 점이다. 반면에 달래는 엄마를 닮아 대인관계에 있어서 분란을 싫어하고 내가 참아서 모두 편안해진다면 한번 참는다, 라는 주의이며 베푸는 걸 좋아한다. 


아빠는 과거 회사를 다니실 때 회사에서 사내 동호회 만드는 걸 좋아했는데 테니스에 재미가 들렸을 땐 회사 사람들을 다 꼬셔서 테니스를 치러 다니고 낚시로 취미가 바뀌었을 땐 또 우르르 낚시를 하러 다니셨다고 한다. 나도 회사에 다닐 때 나의 아이패드 구매를 시작으로 줄줄이 아이패드를 사게 만들고 크루저 보드를 타기 시작하면서 회사 사람들을 익스트림 스포츠의 길로 인도했다. 그래서 회사 사람들 자리 밑에 크루저 보드, 롱보드, 오빗휠 등 별의별 바퀴 달린 것들이 자리 잡게 되었다. 


반면에 엄마는 무언가 배우는 걸 좋아하고 남에게 베푸는 걸 좋아하는 성향이신데 달래가 엄마를 꼭 닮았다. 우리 집은 해마다 양파와 감자 농사를 짓는데 한 해 농사를 지어서 수확철이 되면 엄마는 부산과 함양을 오가며 감자 나눠주기를 하시느라 가장 바쁜 시기를 보내신다. 그렇게 공짜로 다 나눠줄 거면 농사를 안 짓는 게 어떻겠냐는 나의 말에 농사를 안 지으면 심심하니까 그럴 순 없다는 엄마. 달래도 엄마를 꼭 닮아서 무언가 나누는 걸 좋아하고 굿즈를 만들어 팔 때에도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고 해서 우리는 진짜 장사 제대로 하면 폭상 망하겠다는 말을 자주 한다. 


이렇듯 정말 신기하게도 아빠와 엄마의 성향을 반씩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모으고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누고 모두 고통스러워하는 문제들을 해결하고 싶어 한다. 군중을 모으는 아빠의 힘과 사람을 돕는 엄마의 성품을 그대로 이어받아 지금의 프로토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한동안 전국이 금수저, 흙수저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그 이분법적 논리로 본다면 우리 부모님은 분명 핑계 댈 수 없는 흙수저다. 우리는 20살 이후로 등록금도 용돈도 거의 받아본 적 없고 아무런 지원도 없이 그냥 평범하게 자란 가정의 아이들이다. 그래서 대학시절 내내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을 때, 달래랑 둘이 누우면 꽉 차던 원룸에서 살던 때, 달래가 서울에 취직해서 올라가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고시원에서 살아야 했을 때, 우리 집이 조금만 더 넉넉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나도 많이 했다. 


그래도 이제 우리 자매도 서른이 넘어가고 어른으로 무르익어가는 이 시점에서 본다면 신이 우리를 특별히 아껴서 엄마, 아빠의 자식으로 태어날 수 있게 해 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부모님의 자식으로 태어난 우리는 자매이자 친구이자 이제는 함께 꿈을 꾸는 파트너가 되었다. 아빠의 좋은 점과 엄마의 좋은 점을 각각 닮은 우리는 순풍에 돛을 단 배처럼 가고자 하는 방향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는 시너지가 있는 존재가 되었다. 돈이 많았다면 물론 더 좋았겠지만 지금 나이가 들어 돌이켜보니 부지런함과 따뜻한 마음을 가진 우리의 롤모델이 되어주신 부모님과 평생을 보내는 지금의 삶이야말로 신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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