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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랜더 홀씨 Sep 11. 2019

작은 디자인 스튜디오가 색깔을 가져야 하는 이유

다 잘할 수는 없는데 다 잘해야 하는 괴로움에서 벗어나자


잘하는 디자인 스튜디오들은 다들 저마다의 스타일이 있다. 똑같은 주제도 그들의 스튜디오에서는 자신들만의 스타일로 해석되어 유니크한 매력을 뽐낸다. 직장인 디자이너로 일할 땐 너무 트렌디하거나 유니크한 디자인을 클라이언트들이 부담스러워해서 시도하지 못했고 언젠가 독립하면 나도 그런 멋있는 작업들을 하겠노라 다짐했었는데 막상 아무도 말리지 않는 지금은 괜한 자기 검열에 빠져 여전히 평범하고 무난한 디자인을 한다.


달래와 나는 거의 매일 디자인 회사가 색깔을 가지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양한 클라이언트들로부터 일을 받았는데 다 똑같은 스타일로 디자인을 하면 우리는 한 가지 스타일밖에 못 내는 회사가 되는 건 아닌지 겁을 내면서도 우리만의 색깔이 있어야 정체성을 찾는 게 아니냐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대화를 나눈다.


그러던 오늘, 우리는 드디어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작은 디자인 스튜디오일수록 색이 뚜렷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대부분의 디자인 스튜디오가 독립하는 이유는 ‘나만의 일’을 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툭툭 찍어내듯 만드는 인스턴트 같은 디자인에 질리고 디자이너로서의 진정한 보람을 느끼면서 일하고 싶은 그 마음. 나도 그랬고 주변의 많은 디자이너들도 그랬다. 하지만 2년 정도 독립해서 일을 해보니 클라이언트와 마감이 존재하는 한, 회사를 다니는 것이나 독립을 하는 것이나 달라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했다간 통장이 텅장이 되는 건 시간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엔 해본 적 없는 일도 할 수 있는 가능성만 있으면 일단 하고 보게 되는 것이 1인 기업이고 프리랜서의 업무 스타일이다. 웹이 전문은 아니지만 편집디자인과 비슷하니까 상세페이지 의뢰도 받고 사진은 전문이 아니지만 다룰 줄 아니까 찍게 된다. 인쇄 역시 해본 적 없지만 클라이언트가 해달라고 하니까 물어 물어하게 된다. 가만히 보면 시키는 사장님만 없다 뿐이지 직장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다. 좋게 생각하면 이런저런 일을 해보며 경험도 쌓고 그 경험은 결국 나의 자산이 되니까 크게 나쁠 건 없다 생각할 수도 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어떻게 한 가지만 하는 디자이너로 살아갈 수 있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전문이 아니지만 할 수 있는 일이 늘어갈수록 자신감은 오히려 하락한다는 것이었다. 모두 그렇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우린 그랬다. 해본 적 없는 일을 해냄으로써 만족감보다는 떳떳하지 못하다는 생각에 위축됐고 일하는 내내 이것이 맞는지 틀렸는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괴로웠다. 디자인에 답이 없다지만 그래도 환경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그 분야의 트렌드는 반드시 알아야 하는데 그것부터가 확실히 학습되지 않은 상태이다 보니 매번 멘탈이 털리는 일들이 허다했다.


그런 일들을 여러 번 겪으며 오늘 내린 결론은 외주의 비율을 줄이고 우리의 콘텐츠를 반드시 찾아야 이 괴로움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다양한 일을 하는 것은 디자인을 하면서 누릴 수 있는 큰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잘할 수 있고 그러한 부분을 보고 의뢰가 들어오는 클라이언트와는 파트너가 될 수 있지만 단지 돈 때문에 잘 알지도 못하는 일을 하는 것은 클라이언트에게 죄송한 일이며 우리 스스로를 괴롭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 잘할 수 없는데 억지로 다 잘해야 하는 괴로움을 우리 스스로가 끊어내지 않으면 이대로 우리가 도망쳐온 그저 그런 디자인 회사의 뒤를 이을 것만 같아 무서웠다. 그래서 오늘의 결론은 고정 거래처를 찾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고정된 분야를 찾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 마음에 꼭 새겨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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