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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랜더 홀씨 Oct 30. 2019

창업한 지 2년 만에 찾게 되는 회사의 정체성

나의 지인은 미용실을 갈 때 그 미용실 디자이너의 헤어스타일을 보고 그 가게에 갈지 말지를 정한다. 이유인즉, 대부분의 헤어디자이너들이 본인의 스타일과 비슷한 느낌으로 머리를 해줄 때가 많았는데 본인의 얼굴형에 잘 어울리는 헤어스타일을 유지하는 헤어디자이너들은 다른 사람의 머리를 해줄 때도 스타일에 맞게 잘해주더라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클라이언트가 디자인 회사를 고를 때에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웹사이트를 만들고자 하는 클라이언트는 의뢰를 하고자 하는 회사의 현재 웹사이트 디자인을 눈여겨볼 것이고 브랜드 개발을 하려는 클라이언트라면 로고가 엉망진창인 회사를 고를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처음 보통의연구소를 만들 때 이름을 지을 때부터 숱한 고민의 연속이었다. 당시에 운영하고 있던 우리 프로젝트 이름이 꽃바람쌀롱이었으니까 그 이름을 그대로 쓸까 하다가 도저히 “네~ 꽃바람쌀롱 이민들레입니다~”이렇게 전화를 받을 자신이 없어서 포기했다. 그리고 디자인 스타일이 여리고 감성적인 스타일도 아니어서 꽃 이름과는 도저히 매치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스스로 클라이언트가 돼서 나 자신에게 되물어보면 어떨까?라는 심정으로 우리가 클라이언트에게 질문하듯 어떤 디자인을 하고 싶은지, 어떤 이미지를 가진 회사가 되고 싶은지 되물어보니 내가 디자인을 하면서 갈증을 느꼈던 한 가지 포인트가 떠올랐다.


디자인, 정말 멋있어야만 잘한 디자인일까?


관공서, 대학, 일반 제조기업 등 가리지 않고 부산에서만 편집디자인을 10년 하다 보니 내 포트폴리오는 정말 멋이 없었다. 월간디자인이나 비핸스에서 보던 디자이너 포트폴리오는 이렇지 않았는데 정말 이상과 현실의 온도차는 냉정했다. 그래도 나는 내가 보낸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많은 클라이언트들과 일하며 쌓아온 커뮤니케이션들이 즐거웠고 프로젝트가 끝날 때마다 덕분에 행사를 잘 마쳤다, 홍보가 잘 되었다, 사람들이 포스터 예쁘다고 많이 칭찬했다 등 이런 소소한 말들에 보람을 느끼며 일해왔다. 한때는 그럴듯한 멋진 디자인을 하지 못하는 현실에 괴로워했지만 어느 순간 직업에 귀천이 없듯 디자인에도 귀천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상을 좇으며 불행할 바에는 현실의 즐거운 일들 속에서 행복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다행히도 나는 10년이 넘는 시간을 무사히 버티고 창업을 했다.


그래서 창업을 하고 내가 하고 싶은 디자인은 잡지나 해외 어워드에 실리는 그런 멋진 디자인이 아니어도 디자인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내가 가진 능력을 다해해 줄 수 있는 그런 디자인이었다. 그러한 생각 끝에 우리는 ‘보통의연구소’가 되었다.


달래와 나는 사실 멋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의 외적인 모습도, 우리의 디자인 스타일도 세련되거나 힙하기보다는 그냥 다정하다. 그래서 처음 보통의연구소 로고를 만들 때 이런 우리의 성격보다는 그래도 클라이언트들이 어떤 회사를 좋아할까?라는 생각을 하며 뭔가 규모 있어 보이고 신뢰감 있어 보이는 스타일이 되어어야한다는 생각이 우선적이었다. 자기 머리를 예쁘게 하고 있는 헤어디자이너처럼 우리 로고를 근사하게 만들어야 그런 일들이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2년 정도 이런 일, 저런 일 해보다 보니 결국 돈을 벌기 위한 디자인이 재미가 없어졌다. 당연한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100페이지 넘는 인디자인 편집 일에서도 재미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보람도 없이 그저 돈을 좇아하는 일에서는 아무런 재미를 느낄 수 없었다. 그리고 사업을 한다면 누구나 고민해야 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기 위해 억지로 디자인을 맞춰 넣어 보니 우리가 디자인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사라졌다.


우리는 디자인이 재밌고 우리가 만들어준 디자인이 어딘가에 가서 잘 쓰이는 것에 보람을 느끼며 일하고 있다. 그리고 진정성 없는 일에 있어서는 단 1%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데 오죽하면 달래는 비 인기 캐릭터인 이탈리아 그레이 하운드(달래 반려견) 대신 비숑 일러스트를 그려보면 어떻냐는 나의 제안에 자신이 키우지도 않는 개를 그릴 수는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2년 만에 회사의 정체성을 다시 찾고 리뉴얼 계획을 세웠다. 작고 영세한 회사라서 있어 보이고 싶은 마음에 유지하고 있던 아빠 옷 같은 브랜드 디자인 대신 우리에게 맞게 다정하고 따뜻한 디자인으로 갈아입고 우리가 하고 싶은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하는 회사가 되어보자고 한다 . 디자인을 만들어주는 우리도 이렇게 회사의 정체성을 찾고 그에 맞는 방향성을 잡는데 오래 걸리는데 디자인을 모르는 사람들은 얼마나 답답할까? 이제 보통의연구소는 우리와 같은 그런 ‘보통’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들을 해보려고 한다. 대한민국 최고는 당연히 안되고 부산 최고도 어려울 것 같지만 이제 곧 이사 갈 프로토룸이 있는 안락동에서는 한번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우리 동네’를 대표하는 디자인 회사가 되어볼까 한다.


우리가 너무 좋아하고 우리의 삶에 기쁨과 행복이 되어주는 디자인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 디자인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의 생활이 행복해질 수 있도록 하는 일, 이것이 2년 만에 찾은 우리가 진정 원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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