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감각, 첫 번째
“정문아, 디테일이 스타일이란다.” 신입 PD 시절 선배가 건넨 첫 조언이다. 서른 개의 프레임이 모여 1초가 되는데, PD는 한 프레임의 시간에도 민감해져야 한다고 했다. “아주 자세하게 관찰하고 촬영하고 편집해야 돼. 그런 디테일들이 쌓이면 어느 순간 PD의 스타일이 만들어지는 거야”라는 선배의 말을 뼈에 새겼다. ‘디테일을 아는 몸’이 됐달까.
<PD수첩>과 <불만제로> 같은 시사 프로그램에서 디테일을 놓치면 치명상을 입는다. 잘못 쓴 내레이션 한 줄이 자칫 소송으로 이어진다.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의 말 “신은 디테일 속에 있다”를 떠올리면 된다. 아름답고 거대한 건축물이라도 볼트와 너트 같은 사소한 것을 챙기지 않으면 명작이 될 수 없다. PD로서 디테일에 대한 집착은 딸아이에게도 이어졌다.
이제 막 걷기 시작한 14개월 된 딸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건 건전지가 들어가는 동요책이다. 손가락 마디만 한 플라스틱 버튼을 누르면 내장된 동요가 재생된다. 언제 어디서나 발랄하게 동심의 세계를 소환하는 이 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덕분에 나도 동요 노랫말과 재생 순서까지 통째로 외운다. ‘컴백홈’과 ‘필승’이 수록된 1995년 서태지와 아이들 4집 이후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디테일병(病)이 도져 노랫말이 거슬리기 시작한 거다. “삐악삐악 병아리 음매음매 송아지.” 그리고 이어지는 가사 “따당따당 사냥꾼”. 어린 동물들의 애교 섞인 울음소리에 기분 좋아지려는데 총 든 사냥꾼이 아이들을 쫓는 상황이 갑작스럽게 펼쳐져 당혹스럽다. 힘내서 도망가렴 병아리야 송아지야!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이 노랫말도 신경 쓰인다. 1950년에 만들어진 노래다. 생계 때문에 아이를 집에 두고 일해야 했던 그 시절 어머니들의 안타까움을 이해하지만, 집에 혼자 아기를 둔다는 가사는 그래도 마음에 걸린다. 하지만 나를 더 괴롭히는 동요는 이거다. 딸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 토마토가 주인공이다. 노랫말은 이렇다. “울퉁불퉁 멋진 몸매에 빠알간 옷을 입고/ 새콤달콤 향기 풍기는 멋쟁이 토마토/ 나는야 주스 될 거야(꿀꺽) 나는야 케첩 될 거야(찌익).”
주스나 케첩이 된다는 건, 과정을 디테일하게 따져보면 무척이나 공포스러운 일이다. 끓는 물에 데쳐진 후, 믹서에 무자비하게 갈린다. 케첩이 되는 건 더 고통스럽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갈린 상태에서 30분간 더 끓여진다. 육감적인 빨간 옷을 입고 매혹적인 향기를 풍기며 한 세상 재밌게 살아도 모자랄 판에 왜 토마토는 누군가에게 ‘꿀꺽’ 삼켜지는 주스가 되거나 달걀말이 위에 ‘찌익’ 뿌려지는 케첩이 되어야 하나? 나는 이 노래가 이른바 ‘헬조선’의 알레고리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의 열정과 꿈을, 아니 사람 자체를 갈아 넣어야 돌아가는 헬조선의 애국가가, 이제 막 걷기 시작하는 딸아이의 귓전에 울리는 것 같아 화가 났다. 아이가 마흔다섯이 되는 2060년엔 노동인구 100명이 노인 101명을 먹여살려야 한다는 뉴스가 우울을 더한다.
그래도 숨 쉴 구멍은 아직 있다. 노래의 마지막 줄이 다른 이야길 하고 있어서다. “나는야 춤을 출 거야(헤이!) 뽐내는 토마토.” 그래, 기왕 태어난 거 발랄하게 춤추면서 살겠다는 토마토가 하나쯤은 있구나. 나는 딸이 이 마지막 토마토가 됐으면 좋겠다. 자기를 지키면서, 하고 싶은 걸 맘껏 할 수 있는 삶. 아이가 자신을 갈아 넣지 않아도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나라. 그러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이어야 한다. ‘한국이 싫지만’ 그렇다고 내 아이가 나중에 춤조차 출 수 없는 곳이 되어선 안되니까 일단 정신 단단히 붙잡고 있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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