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감각, 두 번째
몸에 큰 불만을 갖고 살지는 않았다. 머리가 좀 크고 그에 비해 어깨는 넓지 않아 ‘가분수’라는 굴욕적인 별명을 얻게 된 초등학교 이후, 내 몸을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내 생각보다 좀 못생겼고, 내 느낌보다 볼품없는 몸매를 갖고 있다. 딱히 아쉽진 않다. 아니 ‘않았다’고 고쳐 써야겠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신생아 시절, 딸아이는 교과서적으로 두 시간마다 한 번씩 배고프다고 울었다. 두 시간 주기로 자다 깨다를 반복한 건 논산 훈련소 이후 오랜만이었다. 그땐 차가운 밤공기 속 초소에서 별을 세는 호사라도 누렸는데, 아이가 허기를 호소하는 밤에 낭만 따위 없다. 아내가 일어나면 젖을 물리고, 내가 깨면 미리 짜둔 모유를 데우거나 분유를 탄다. 그리고 촙촙촙촙, 젖을 빠는 소리,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리듬만이 방을 가득 채운다.
강제적인 불면의 밤에 익숙해질 무렵, 일이 터졌다. 그 밤 아내는 야근으로 집을 비웠고 나는 아이 옆에 누워 불침번을 서고 있었다. 아이가 칭얼대며 깼다. 동시에 나는 5분 대기조처럼 부엌으로 달려가 잘 훈련된 병사처럼 익숙하고 빠른 손놀림으로 분유를 탔다. 후다닥 방으로 돌아와 아이를 다리 위에 눕혀 젖병을 물렸다.
하지만 분유를 다 먹고도 아이는 계속 울었다. 이유 모를 울음이었다. 젖꼭지를 물리고, 동요도 불러 봤지만 소용이 없다. 3일 같은 30분이 지나도록 그치지 않던 울음은, 마침 집으로 돌아온 아내에 의해 종결됐다. 해답은 간단했다. 가슴. 바로 그 가슴. 아내는 윗옷을 걷어 올린 후 아이를 안아 젖을 물렸다.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고요가 순식간에 찾아왔다. 오 신이시여.
언제 어디서든 아이의 불편과 불안과 불만을 해소해주는 건 아내의 가슴이다. 반면 나에겐 별 게 없다. 엄마 가슴을 흉내 낸 공갈 젖꼭지만이 나의 전부다. 하지만 아이는 귀신처럼 ‘뭣이 중헌지’를 안다. 퉤! 하고 내뱉은 공갈이 떨어져 데굴데굴 구를 때, 내 마음도 바닥을 뒹군다.
내 몸에 대한 본격적인 불만은 이 때 생겨났다. 왜 내겐 ‘가슴’이 없는 걸까. 적어도 육아 중인 남자에게는 젖 물릴 가슴이 생겨야 하는 것 아닌가. 아빠 혼자 아이를 봐야할 때는 어쩌라고 엄마에게만 가슴을 허락한 것인가. 신이 있다면 그는 제 손으로 아이를 키워본 적 없어 디테일이 떨어지는 양반일 거다. 우리가 진화의 산물이라면 머지않은 미래, 가슴 달린 아빠들이 등장하려나. 아이에게 엄마만 줄 수 있는 게 있다면, 아빠만 줄 수 있는 것도 있어야 한다. 왜 내겐 가슴이 없느냐며 가슴을 쳐봐야 달라질 게 없다.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만든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에세이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촬영 때문에 한 달 반 집을 비웠다가 돌아왔는데, 세 살배기 딸이 곁에 오지 않았다. 어색한 밤을 보낸 다음날 아침, 현관에 배웅 나온 딸이 건넨 말은 “또 와.” 이 말에 상처 입은 그는 이렇게 썼다. “나와 함께한 3년이라는 축적된 시간이 딸의 내면에서는 완전히 리셋돼 있었다.”
결국 시간인 것 같다. 끊김이 없는 시간. 빈 화분에 흙을 채워 넣어 다지듯 딸과 함께하는 시간을 차곡차곡 쌓으면, 언젠가 가슴이 없는 내 품에서도 딸이 세상의 불안과 불만을 잠시 잊을 수 있겠지. 그러리라 믿는다.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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