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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문PD Apr 01. 2019

어떤 전문가들은 거짓말을 한다

<PD수첩> "소리박사 배명진의 진실" 제작 후기

“코에 붙인 거 뭐예요?”

댓글창이 폭발했다. 질문이 폭우처럼 쏟아졌다. 방송을 하루 앞둔 월요일, 유튜브와 페이스북에 공개된 예고편 클립에 네티즌들이 열광했다. <PD수첩> "목소리로 범인을 찾아 드립니다 - 소리박사 배명진의 진실" 편 예고에 달린 댓글의 대부분은 “도대체 배명진 교수가 코에 붙인 검은 물체가 뭐냐”는 물음과 그에 대한 추측성 대답이었다. 그 장치, 사실 궁금했다. 배명진 교수의 음성 분석이 실은 전혀 과학적인 근거 없는 말잔치 아니냐는 의혹을 취재한 끝에, 배명진 교수의 반론을 듣기 위해 찾아간 그의 연구실에서 마주한 모습은 꽤 당혹스러웠다. 그는 무언가를 코에 부착한 상태로 제작진을 30여 분간 힐난했다. “과학자도 아닌 PD가 감히 전문가인 나를 검증하려 드느냐”고, 배명진 교수는 소리 질렀다.

2018년 5월 22일 < PD수첩 > "목소리로 범인을 찾아드립니다-소리박사 배명진의 진실"


“PD수첩 캐삭빵 각 아니냐?”

살벌한 말이 이어지는 동안 잠시 딴 생각을 했다. ‘대체 저 검은 장치는 뭐지?’ 네티즌도 아마 이 지점에서 궁금증이 폭발한 듯했다. 나름의 추측들이 댓글의 댓글을 낳았다. “위산 측정 기계”라는 얘기부터 “먹는 김을 코에 붙인 것 아니냐”는 실없는 농담까지. 꽤나 장난스러운 반응들을 읽어 내려가다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졌다.


댓글창에서 확인한 것은 대중의 분노였다. 꽤 오랜 시간 TV에서 ‘소리’와 관련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호출됐던 어떤 전문가가 실은 꽤 오랜 시간 거짓말을 하고 있었고, 그래서 실은 여러분 모두 꽤 오랜 시간 속아오셨던 겁니다,라고 PD수첩 예고편은 말하고 있었고 거기에 대중은 뜨겁게 반응했다. ‘우리 모두 속고 있었어’라는 메시지는 즉각적인 분노를 일으킨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메시지가 틀린 것이라면, 분노는 잘못된 메시지를 퍼트린 자를 향해 방향을 바꿔 거꾸로 돌진한다. 간단히 말해, 배명진 교수를 검증하려는 PD수첩의 시도가 틀릴 경우 대중의 분노는 고스란히 PD수첩으로 쏟아진다는 뜻이다. 이 상황을 2018년 대한민국 10‧20대 게임 유저들의 언어로 풀어내자면, 바로 이 말이다. 캐삭빵.


“PD수첩 캐삭빵 각 아니냐?” 누군가가 댓글로 달아놓은 이 문장이 핵심을 관통하고 있었다. 캐삭빵. 발음이 꽤 거친 이 말은 실제로도 거칠고 살벌한 의미를 지녔다. ‘나무위키’에서는 캐삭빵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캐삭빵 : ‘캐릭터 삭제 빵’의 준말. 온라인 게임에서 말 그대로 캐릭터 삭제를 걸고 PvP(Player Vs. Player)를 하는 행위다. … 또한 목숨, 직위 등을 걸고 대결하는 행위를 캐삭빵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온라인 게임 중 서로 시비가 붙은 유저들끼리 자신의 캐릭터를 걸고 하는 대결이 바로 ‘캐삭빵’이다. 둘 중 하나는 캐릭터를 삭제, 즉 ‘죽어야’ 하는 절체절명의 대결을 두고 하는 말이다. 나무위키에서는 캐삭빵의 현실 사례로 2011년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의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든다. “PD수첩 캐삭빵 각 아니냐?”는, 그러니까 배명진 교수를 검증하려는 PD수첩이나 의혹을 정면으로 반박해야 하는 배명진 교수 둘 중 하나는 어떤 식으로든 사회적으로 매장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린 것 아니냐는 물음이다. 그러니 당장 내일이면 MBC 채널을 통해 세상에 공개될 방송을 준비하고 있는 담당 PD로서 등골이 서늘할 수밖에.


리틀 황우석

배명진 교수에 대한 의혹은 PD수첩 팩트체크 팀장인 박건식 선배에게 들어온 제보였다. 어떤 학자가 약간의 분노를 담아 전달한 내용이었다. 이 학자가 외국에서 공부하던 시절, 머리 식히려고 켜놓은 한국 방송에서 ‘소리’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등장한 배명진 교수의 분석을 들으며 그저 웃어넘기고 말았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배명진 교수가 목소리로 범인을 지목하고 있는 걸 보고는 경악했다고 한다. ‘이건 아닌데’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PD수첩에 제보한 그 학자의 분석은 흥미로웠다. 요약하자면 배명진 교수의 음성 분석에는 그럴듯한 과학 용어와 학자들은 사용하지도 않는 용어가 적절히 배합돼 있어서 일반 대중에게는 아주 효과적으로 먹혀들었을 거라는 내용이다. 메밀 100%의 냉면 보다 적당히 전분 섞은 냉면이 더 잘 팔리는 현상이랄까(물론 배명진 교수의 음성 분석과 냉면을 비교할 수는 없다. 특히 요즘 같은 폭염에는 냉면이 훨씬 더 사람들을 이롭게 한다).


배명진 교수에 대한 검증은 배명진 교수만을 검증하는 걸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흥미로운 동시에 곤혹스러웠다. 투트랙으로 작업해야 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소리’ 하면 가장 먼저 호출되는 과학자의 과학을 검증해야 하고, 동시에 ‘소리’ 하면 가장 먼저 배명진 교수를 호출해온 MBC를 포함한 언론의 검증 시스템을 검증해야 하는 상황. 어라? 왠지 낯익다. 이거, 언제 어디선가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PD수첩 PD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공유된 이 제보를 두고, PD수첩 앵커로 활약 중인 한학수 선배는 한마디로 정리했다. “리틀 황우석이네.” 13년 전 겨울, PD수첩과 서울대 황우석 교수의 명운을 건 싸움을 시작한 한학수 선배의 한마디. 취재 방향과 성격이 명확해졌다. 배명진 교수의 소리 분석을 과학적으로 검증할 것 그리고 배명진 교수를 활용해온 언론 역시 재조명할 것. 물론 그 언론에는 나를 포함한 MBC 역시 들어 있어야 한다. 결코 우호적이지 않은 취재 환경이 펼쳐질 거라고, 그때 예감했어야 하는 건데.


황우석 교수에 대한 검증 과정에서 가장 큰 반론 혹은 공격의 요지는, “PD가 과학자냐?”라는 질문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배명진 교수의 경우에도 같은 공격이 들어올 것은 분명했다. PD인, 과학자가 아닌, 음성학 전공자도 아닌 내가 혼자 막을 수 있는 칼은 아니다. 학계의 도움이 필요했다. 복수의 학자들이 개별적으로 검증해 공통의 결론을 도출해야 했다. 그래야 ‘과학자도 아닌 것이 과학자를 검증하려 드느냐’는 일견 유치한, 그러나 치명적이기도 한 초식을 돌파할 수 있다.


하지만 ‘학계는 좁은 곳’이라는 학자들의 인식이 배명진 교수에 대한 공개 검증을 어렵게 만들었다. 용기를 내 카메라 앞에 섰다가, 며칠 후에 출연을 없던 일로 해달라는 학자들이 생겨났다. 전화로도 아무런 말을 해주지 않는 학자들이 있었다. 아군이 잘 모이지 않는다는 불안에 제보자 역시 결정적인 순간에 움츠러들었다. 대한민국에서 음성학과 음향학 관련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음성학회와 음향학회 모두 검증을 거부했다. 학자들 개개인은 그럴 수 있다고 해도, 학회 차원에서까지 공개 검증을 못하겠다고 나올 줄은 몰랐다. 큰일났다. 뱃속에 시계를 삼켜 똑딱똑딱 소리를 내는 악어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후크 선장의 심정이 이럴까. 방송일은 다가오는데, 등 돌리는 이들은 왜 이토록 많은가.


어쩌면 욕심일 수도 있었다. 검증에 참여한 학자들만 해도 30여 명을 훌쩍 넘겼고, 그래서 방송에 실명으로든 익명으로든 출연한 학자들이 또 10여 명 남짓이었으니 검증에 충분한 증언을 확보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는 20여 년 넘게 전 국민을 상대로 ‘소리박사’로 행세해온 사람. 함부로 고삐를 늦출 수 없었다. 방송일 직전까지, 찾아가고 또 전화했다. 그렇게 만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전옥엽 박사, 경상대 김미란 교수, 나사렛대 이봉원 교수 그리고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음성학자 A, B, C, D, E, F와 제보자에게 깊은 경의를 표한다.



누워서 침을 뱉어야 하는 고역

2011년 MBC가 어떤 영화를 상대로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가 기각된 적이 있다. 누구보다 언론 자유에 앞장서야 할 방송사가 ‘이 영화 상영을 막아달라’며 법원에 달려간 어처구니 없는 사건. 결론은, 기각이었다. MBC로서는 망신이었다. 영화 이름은 ‘트루맛쇼’. 당시 성행하던 맛집 소개 프로그램들이 실은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걸 폭로한 영화다. 진짜 맛집인지 아닌지 검증하지도 않고, 다짜고짜 맛집으로 포장해 방송해버리는 행태를 신랄하게 고발했다. 이 영화 참 재미있게 봤고, 맛집 프로그램을 만드는 방송사에 근무하는 입장에서 반성도 했던 영화다.


그런데 ‘방송 참 무섭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 일이 있다. 이 영화를 본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지방에 출장을 갔다. 우리 누구도 연고가 없고 방문한 적도 없는 낯선 동네라 어디가 맛있는 집인지를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 포털사이트에 들어가 맛집 프로그램에 소개된 그 동네 식당 리스트를 검색해 찾아갔다. ‘맛집 프로그램 믿을 거 못 된다’며 끌끌댔는데, 정작 모르는 동네에 가서는 ‘맛집 프로그램에 소개된 집’을 찾아다닌 거다. ‘방송 한 번 탔다’는 것이 ‘검증됐다’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방송 참 무섭다.


배명진 교수 취재 때, 방송 무섭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꼈다. 배명진 교수 본인 주장에 의하면 그는 25년간 7,000번 넘게 방송과 신문에 출연했다. 1.3일에 한 번씩 나온 셈이다. 그의 말에 과장이 있다고 하더라도, 언론이 배명진 교수를 문이 닳도록 불러다 모셔온 건 사실이다. ‘소리’와 관련한 일이 있을 때마다 언론은 호출했고 그는 응답했다. 그렇게 쌓인 시간이 25년이다.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이유는 쉽게 짐작된다. 언론은 전문가를 필요로 하고, 다른 매체에 전문가로 소개된 사람들을 찾는다. ‘다른 언론에서도 전문가로 코멘트를 했으니, 그는 전문가임에 틀림없을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 때문이다. 게다가 ‘교수’라는 타이틀에 과하게 높은 사회적 지위를 부여하는 한국 사회의 특성상 ‘어느 대학 교수’라면 더할 나위 없이 딱 좋은 ‘전문가’다. 검증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시간도, 능력도 없기 때문에. 덕분에 일단 한 번이라도 매체를 타기 시작하면 곧 우후죽순처럼 그 전문가의 이름이 각종 매체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교수만 그런 것도 아니다. 변호사도, 의사도, 각종 평론가도 마찬가지다. 언론은 그렇게 막 호출하고 막 갖다 쓴다.


배명진 교수 취재를 하면서 언론의 문제를 다루지 않을 수 없었다. 누워서 침 뱉는 작업인 줄 알지만, 어쩔 수 없다. 검증 없이 유사 과학자의 그럴듯한 말들을 확대 재생산해온 책임의 한 축은 분명히 언론이다. 우선 취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배명진 교수가 출연한 MBC 프로그램들을 정리했다. PD수첩으로 제보가 들어오던 그 즈음에도 MBC 동물 프로그램에서 배명진 교수를 인터뷰해 방송했다. 데이터베이스에 걸리는 것만 해도 수백 건. 우리는 그중 배명진 교수의 음성 분석이 특정 사건의 범인을 추정하는 데 활용됐거나, 민감한 법적 증거로 사용될 수 있는 코멘트가 있는가를 집중적으로 찾기로 했다. 학계 관계자 및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협조를 받아 취재를 해나가던 중 배명진 교수가 SBS ‘궁금한 이야기 Y’와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목소리만으로 범인의 연령을 추정하고, 때로는 특정인을 범인으로 몰아가는 식의 분석을 했다는 걸 확인했다. 학계 관계자들이 집에서 TV를 보다가 경악했다며 제작진에게 제보한 내용이었다.


해당 프로그램을 만든 제작진이 배명진 교수의 분석을 의심하기는 어려웠을 것임은 분명하다. 내가 담당 PD였다면, 범인을 추정하고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데 필요한 여러 근거를 확보하기 위해 전문가들을 섭외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배명진 교수 역시 호출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미제 사건이나 미스터리한 인물을 추적하는 해당 프로그램의 특성상 배명진 교수가 자주 섭외되어 중요한 역할을 맡았을 것이고, MBC에서는 그런 장르의 프로그램이 없었기 때문에 배명진 교수가 그런 역할을 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업계 종사자로서의 ‘이해’일 뿐, PD들에게도 ‘왜 배명진 교수를 섭외했는가’를 물어야 했다. 괴로운 순간이었다. 내가 그려온 궤적 역시 의도치 않은 실수로 점철되어 있을 텐데, 다른 PD들에게 실수의 이유를 물어야 하다니 무척 고민스러웠다. 하지만 물었고, 답을 들었고, 방송했다. 반론권 보장 차원에서도 필요한 작업이었다. 어쩌겠는가. ‘성역 없는 취재’라는 슬로건은 업계 내부에서도 예외일 수 없다. 누워서 침 뱉었고, 함께 맞았다.



“어떤 전문가들은 거짓말을 한다”

2018년 5월 22일 방송 이후, 음성이나 음향 분석 관련해 배명진 교수의 코멘트를 딴 매체는 현재까지 보이지 않는다. 배명진 교수나 숭실대 측의 반박도 없다. 소송을 걸지 않겠나, 내심 준비하고 있었다. 소송으로 가게 되면 법원을 통해 배명진 교수나 숭실대 측에 자료를 요구할 수 있으니 소송이 반드시 부정적인 건 아니다. 그런데 소식이 없다. (* 이 원고를 넘긴 시점에서는 배 교수 측의 반응이 없었는데, 2019년 3월부터 배 교수는 "PD수첩의 허구를 밝힌다"라는 제목의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다.)


배명진 교수가 방송을 통해 분석한 음성들은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자살 전에 남긴 말, 제주도 하사 자살 사건 관계자들의 목소리, 이형호 군 유괴 사건 범인의 전화 목소리 등이었다. 하나같이 사람들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분석들이었다. 애먼 사람을 범인으로 몰아 사건의 진실을 찾아가는 데 엄청나게 방해하는 분석이었다. 대체 무엇 때문에, 아무런 과학적인 근거가 없는 말잔치를 벌여 숱한 사람들의 삶을 망가트리려 했을까. “25년 전문가인 나를 감히 네가 검증하려 드느냐”며 제작진의 카메라를 부수던 배명진 교수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아마 ‘소리 전문가’ 배명진 교수의 인터뷰가 언론을 통해 나가는 건 이번 PD수첩이 마지막일 것이다. 문제는 다음이다. 언론은 다시 전문가를 호출해야 한다. 그때 호명된 누군가가 정말 진정한 의미의 ‘전문가’인지 검증해야 하는 일이 남았다. 그 지난한 검증 과정을 거치면서까지 방송 시간을 때우고 지면 분량을 채우는 수고를 나나 우리 언론은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갈 길이 멀다. 다만, 이번 취재로 딱 한 가지를 절실히 깨달았다. 1950년대 미국의 저널리스트 이지 스톤의 유명한 말 “모든 정부는 거짓말을 한다”를 조금 비틀었다. “어떤 전문가들은 거짓말을 한다.”


*월간 <신문과 방송> 2018년 8월호에 실은 원고를 일부 수정했습니다.
https://blog.naver.com/kpfjra_/221333498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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