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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문PD Sep 17. 2019

마이바흐를 탄 목사님

<PD수첩-어느 목사님의 이중생활> 성락교회 김기동 목사 편 제작 후기

1. 날이 좋아도 날이 좋지 않아도 달라지지 않는 풍경이 있다.


 김기동 목사의 일요일 교회 출근길. 새벽 6시 목사 사택 앞마당에는 왁스질이 잘 돼 번쩍이는 검은 세단이 들어선다. 왕복 7차선 길 건너에서도 눈이 부시다. 멀리서 보면 그냥 검은 세단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차종이 매번 다르다. 이번 주엔 벤츠 마이바흐 S500이었다가 다음 주엔 에쿠스 EQ900. 연예인 차의 대명사 스타크래프트 밴도 그의 주차장에 서 있다. 차가 들어오면 잠시 후 검은 양복을 빼입은 사내들과 블라우스 정장 차림의 여인들이 나타난다. 다소곳이, 그러나 긴장을 잃지 않은 이들의 시선은 사택 현관을 향한다. 현관등 센서에는 아직 아무런 움직임도 감지되지 않았다.

 목사가 모습을 드러내기 전 사택 앞 도로의 움직임은 심상찮다. 승합차 두 대와 SUV와 중형 세단이 비상등을 켜고 대기 중이다. 차에서 내린 운전자들의 눈빛은 사주 경계하는 군인처럼 날이 서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7edy2Csx1Y&t=4s


 6시 5분. 센서에 그림자가 스친다. 현관등이 번쩍 켜진다. 목사. 사람 좋은 미소가 떠나지 않는 백발의 노인. 옆에는 경호원이 보폭을 맞춰 걷는다. 목사가 차에 다가서자 경호원은 허리를 45도 쯤 굽힌 채 왼손을 펴서 명치에 대고 오른손으로 검정 세단 뒷문을 연다. 공손함이라는 걸 온몸으로 내뿜는 중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저 자세로 경호가 될까 싶은 의문이 잠깐 들었지만, 위협이 없는 곳의 경호니까 경호답지 않은 경호여도 상관없는 것 아닌가 싶어 의문 지워버렸다.

 목사의 세단이 사택을 나서기로 하고 헤드라이트를 켜면 대로에 정차하고 있던 차량들도 변속기를 D에 놓는다. 회색 승합차가 액셀을 밟으면 그 뒤를 회장님, 아니 목사님 세단이 따르고 그 뒤에 승합차가 그 뒤에 SUV가 따라붙는다. 1열 종대를 이룬 호송차량들은 속도를 높이되 간격을 흩트리지 않으며 15분을 달려 1700억 원짜리 예배당으로 들어선다.

https://www.youtube.com/watch?v=R7edy2Csx1Y&t=4s

 이 장면을 목격한 나는 충격받았다. 왜 김기동 목사의 출근길은 작전처럼 펼쳐지는가. 목사가 예배를 인도하러 가는 길은 왜 경호되어야 하는가. 저 비싼 억 단위의 세단과 호송차량의 행렬은 무슨 의미인가.


2. 제대로 찍고 싶었다.  


 김 목사의 출근길을 처음 지켜봤을 때 내 옆에는 카메라 한 대 뿐이었다. 이 한 대로는 일요일 새벽 6시의 그 스산함을 충분히 담을 수 없다. 필요한 촬영 장비와 촬영 포인트를 계산했다. 촬영 시간은 1시간 안쪽. 출발지와 도착지에 각각 드론이 필요하고, 지상 촬영 포인트는 다섯 곳. PD수첩에서 좀처럼 꾸리지 않는 대규모 인원. 전체 제작비 1/12 정도를 30분짜리 촬영에 몰아넣는 결정. 일을 망치면 목돈 날릴 판. 그래서 할까 말까 망설였는데 잠을 자려고 누우면 자꾸 떠오르는 그림. 찍을까 말까 찍을까 말까. 촬영 당일의 상황을 예측할 수는 없으므로 경험에 기대기로 한다. 안 하고 후회하느니 하고 후회하는 게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었던 지난날들이 떠올랐다. 그래 찍자. 망하면, 망하는 거지 뭐. 이 장면을 준비하면서 머릿속에 맴돌던 레퍼런스는 2015년 극장에서 본 영화 시카리오의 차량 호송 씬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CiDUfhV43c&t=169s


 문제는, 시카리오는 영화고 그래서 제작비가 허락하는 한 몇 번이든 다시 찍을 수 있지만 김기동 목사의 출근길은 몇 번이고 다시 찍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목사님, 죄송하지만 차로 한 바퀴 다시 돌아주셔야겠는데요 하하 앵글을 좀 바꿔서 가보려고요 하하..그럼 가볼게요 스탠바이 큐! 뭐 이럴 순 없으니까. 이미 김 목사 측에는 PD수첩이 취재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있고 제작진이 출근길을 촬영한다는 사실이 노출될 경우 김 목사가 출근 패턴을 바꿀 수 있으므로 내게 주어진 기회는 단 한 번이라고 봐야 한다.

  촬영 당일, 김 목사를 태우기 위한 세단의 등장으로 촬영이 시작됐다. 지상 카메라팀이 움직였고 콜을 받은 드론들이 날았다. 김 목사는 지난주처럼 오늘도 억대 세단에 올랐다. 호위 차량들이 앞 뒤를 지켰다. 최후방을 지키던 SUV는 때때로 속도를 높여 김 목사 세단 측면에 붙기도 했다. 훈련된 움직임이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중대본부라 부른다고 했다. 드론과 지상카메라 모두 제 역할을 다 했다. 촬영은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실제 방송된 2019년 8월 27일 자 PD수첩 방송 분량에서 김 목사의 출근길 부분은 1분 37초로 편집됐다.(https://youtu.be/R7edy2Csx1Y?t=310) 거기에 들어간 제작비는 다른 1분대에 들어간 제작비의 약 4배에 이른다. 편집하던 중 문득 스스로 궁금해졌다.


3. 대체 나는 왜 목사님의 출근길에 집착하게 됐을까.


 1년 전 가을. 대형교회, 그중에서도 이른바 주류 개신교를 쥐고 흔들 정도의 재력과 권력을 가진 명성교회를 취재할 때 나는 '원로목사'의 힘을 출근길에서 확인했다. 일요일 새벽 예배드리러 온 교인들의 주차를 통제하던 교회 차량부 봉사자들의 무전기가 바빠진다. 삐리릭-하는 무전기 수신음에 이어지는 보고.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의 차량이 자택을 떠나면 즉시 그 소식이 전파된다. 차량부원들은 긴장한다. 그리고 20여분 후, 목사의 차량이 교회 근처 사거리로 진입하면 "원로목사님 1번 게이트 통과하셨습니다." 잠시후, "원로목사님 2번 게이트 통과하셨습니다." ... 삐빅 "앞마당 차량 통제 해주시고요. 원로 목사님 지나가신 다음에 다시 오픈하겠습니다." 그리고 교인을 포함한 그 누구의 차도 들어설 수 없는 교회 입구 바로 앞마당 바리케이드가 열리면 목사의 차가 물 흐르듯 진입하고 진작부터 기다리고 서 있던 장로와 집사와 교회 직원들 앞에 차가 서면 거기서 김삼환 목사가 유유히 내렸다. 그 장면을 목격하고 나서야, 아, 내가 보통 사람을 건드리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실감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Qbt57TpD2E

 그때 알았다. 목사님이 누구인지를 알려면 그의 출근길을 살펴야 한다고. 예수는 제자들의 낡은 겉옷을 얹은 나귀 새끼에 올라 예루살렘에 입성했고 헤롯과 빌라도는 의장대와 군악대와 투구와 병기와 독수리가 그려진 군기를 앞세워 화려하게 입성했다는, 그래서 당신들은 어떤 행렬에 열광할 것이냐는 흔한 설교들이 떠오른 건 나중의 일이었다.


PD수첩 다시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R7edy2Csx1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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