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정문PD May 10. 2019

침묵은 소란보다 무섭다

MBC <PD수첩> "호텔 사모님의 마지막 메시지" 제작 후기

“경고합니다! 정차 금지 구역입니다!” 

 고막을 찢을 듯 크고도 날카로운 기계음이 귀를 때렸다. 순간 몸이 움찔할 정도로 데시벨이 높고 겨울바람처럼 매섭도록 냉정한 경고 방송이었다. 제작진이 밤 0시에 잠시 차를 멈췄던 곳, 그리고 차를 세우자마자 공중에서 경고음이 신경질적으로 울린 곳은 방화대교다. 3년 전 여름에 세상을 등진 여인의 발이 마지막으로 닿아있던 지상. 나는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아직은 살아있던 그녀가 삶의 끝에서 바라보았을 서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지만, 방화대교를 관리하는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 순찰대에게 쫓겨나고 말았다. 나와 카메라 감독과 조연출을 태워 한 시간을 넘게 달려온 스타렉스는 도착한 지 5분 만에 다시 다리로부터 천천히 멀어졌다. 야간 조명을 받아 창백하게 빛나며 시야에서 조금씩 작아지는 방화대교를 보며 나는 차라리 3년 전 그날, 그 밤, 그곳에 차를 세워놓고 한참 서성였을 그녀를 오늘처럼 순찰대가 발견하고 경고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2019년 3월 5일 <PD수첩> 1185회 “호텔 사모님의 마지막 메시지”는 이미란씨를 둘러싼 비극을 담았다. 조선일보 4대 주주이자 광화문 한 복판에 서 있는 코리아나호텔 회장 방용훈의 부인이었던 사람. 그러나 자녀들에 의해 사설구급차에 실려 집에서 쫓겨나고 8일 만에 한강에 투신한 여인. 그녀가 남긴 유서에는 ‘지옥'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고, 투신 직전 남긴 음성메시지에는 살아서 지옥을 걷는 사람처럼 모든 걸 체념한 목소리가 남아 있었다. 50억원의 행방, 남편과의 갈등, 자녀들의 폭언, 몸에 남은 피멍, 그걸 지켜본 가사도우미가 공포에 질려 증언한 녹취... 너무나 끔찍했지만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비극의 증거들이 입수되었지만 이걸 방송으로 만들지 결심하기는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웠다. ‘그건 가정사야’라며 세상의 숱한 비극들을 덮어왔던 편견의 힘센 파고를 넘어야했으므로.

“이거 CCTV 원본 맞아요?”

 상반되는 진술, 모순되는 증언이 겹겹이 쌓여있을 때 법은 ‘객관적인 물증’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다. CCTV, 사진, 문서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데 때로 법은 명확한 물증 앞에서 뻔뻔하게 눈을 감는다. 힘세고, 돈 많고, 그래서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권력’ 앞에서. 


 이미란씨는 친정 오빠에게 보낸 마지막 음성메시지에서 “조선일보 방용훈을 어떻게 이기겠어요?”라는 말을 남겼다. 33년간 조선일보가의 며느리로, 부인으로, 사모님으로 살면서 목격했거나 체험했을 그 큰 힘이 이제는 자신을 향해 칼끝을 겨누고 있을 때 이미란씨는 차라리 죽음을 선택했다. 절망과 체념에 발목 잡힌 이미란씨가 방화대교에서 걸음을 멈춘 지 두 달, 친정 식구들은 그녀를 대신해 다시 발을 내딛으려 하고 있었다. 방용훈 회장 자녀들을 상대로 법정 다툼을 준비 중이던 그때, 일이 터졌다.

 얼음 도끼와 돌맹이. 방용훈 회장과 큰 아들이 흉기를 들고 새벽에 이미란씨 친정 언니집에 찾아와 난동을 부렸다. 이 모습은 모두 CCTV에 찍혔다. 그런데 경찰은 방용훈에게 혐의가 없다고 했다. 검찰도 같은 결론이었다. 나는 이미란씨 친정 식구들에게 물었다. “이거 CCTV 원본 맞아요? 혹시 방용훈에게 혐의가 없다는 걸 증명하는 다른 장면이 있는 건 아닌가요?” 친정 식구들은 “그런 건 없다”고 했다. “용산이잖아요.”라는 말도 덧붙였다. ‘방용훈의 집이 위치한 곳의 관할이 용산경찰서다’라는 말. ‘용산이니까요’라는 말. 곱씹을수록 묘하게 무서운 말. 

 CCTV라는 객관적 물증과는 정반대의 결론을 내린 경찰과 검찰의 수사결과를 확인한 후에 ‘그건 가정사일 뿐이므로’ 라는 마음의 허들을 넘었다. 법과 상식이 무력하게 주저앉은 사건 자체를 자세히 들여다보자고 결심했다. 제작진이 만난 전직 경찰, 검찰 출신 법조인들 모두 수사 결과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사건을 담당한 수사경찰과 수사를 지휘한 검사는 제대로 된 수사였다고 강변했다. “경위님이 보시기에도 이 CCTV에서 방용훈의 혐의가 없나요?”라고 물었지만 경찰은 거칠게 내 팔을 잡아끌면서 나를 경찰서 민원실 밖으로 밀어냈다. 한참 버티며 질문했지만 답은 없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행사하라고 국민이 위임한 권력이, 돈 많고 힘센 자들 앞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불쾌한 감각이 내 팔을 잡고 있는 경위의 손에서 전해졌다. 용산경찰서에서 쫓겨나면서 나는 공권력이 참 허망하다 느꼈다.  



“이건 협박도 뭐도 아니예요”

 방용훈 회장과의 인터뷰가 방송되자 많은 지인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힘내라고 했다. 응원한다는 메시지들이 이어졌다. 방용훈 회장이 내게 한 말 때문이었다. “내가 당신을 언제 어디서 만날지 모르니까 평생 살아가면서. 이건 겁주는 것도 아니고 협박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에요.” 방송에 공개하지 않았지만 방 회장은 내게 삼각지에서 따로 만나자고도 했다. 거기 곱창 잘 하는 집이 있다고 했다. 만나서 이야기하면 말을 알아들을 것이라고 했다. 호기로웠다. 전화 인터뷰 당시 자신은 미국에 있으니까 한국 돌아오면 보자고 했다. 며칠 전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곱창에 소주가 됐든, 정식 인터뷰를 하든 만나서 이야기해 보려고 말이다. 하지만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PD수첩을 제작하면서 겪는 갖가지 일들은, 이 직업이 3D로 분류될 수밖에 없음을 증명한다. 배우 정우성은 자신의 얼굴을 보면 매일 짜릿하고 새롭다는데, 왜 이 더럽고 어렵고 위험한 경험들은 13년차 PD가 되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건지 모르겠다. 익숙하지 않은 정도면 차라리 괜찮겠다. 이 일은, 외롭다. 

시청률은 7.1%를 기록했고 126건의 관련 청원이 올라왔다. 포털 검색어에도 며칠 간 방용훈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하지만 기자들은 침묵했다. 방송 관련 키워드를 끼워 넣은 어뷰징 기사들은 쏟아졌지만 ‘취재’에 나선 곳은 없었다. 그 와중에  KBS <저널리즘 토크쇼 J>,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출연을 요청했다. 흔쾌히 응했다. 이 사안이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를 바랐다. 덜 외롭고 싶어서. 


 민언련 모니터 보고에 의하면, ‘PD수첩’이나 ‘방용훈’을 언급한 방송사 종합뉴스는 아무 데도 없었고 전국단위 종합일간지에서 이를 다룬 곳은 한겨레와 경향신문 단 두 곳이었다. 기자들의 침묵은 이미란씨가 투신 자살한 2016년에도,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침묵은 소란보다 무섭다. 협박의 공포는 침묵 속에서 자란다. 이미란씨에 대해서도, 배우 장자연씨에 대해서도 왜 그토록 침묵은 집요한 것인지.

지옥을 함께 걷지는 못하지만

 이미란씨가 투신한 방화대교를 찾아간 건 촬영 마지막 회차 때였다. 그녀의 목소리, 사진, 유서, 문자메시지들을 모두 본 이후였고 그녀의 가족과 지인들을 만나 인터뷰를 끝낸 다음이었다. 그녀가 살아있는 동안 겪었을 지옥의 몇 조각만을 겨우 살펴본 정도였지만, 차에서 내려 고속도로 순찰대에 쫓겨나기 전까지의 5분 동안 방화대교 위에 잠시 서있었을 때는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 발끝에서부터 밀려왔다. 지옥을 걸었던 그녀가 세상에 남긴 발자국 위에 내 발을 포개어 얹은 것 같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나는 그녀의 지옥을 함께 걷지 못하고, 함께 걸으려 애썼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방화대교는 아직 창백하고 나는 그녀의 명복을 빌 뿐이다.


*월간 방송작가(2019년 5월, 한국방송작가협회 발간)에 실은 원고입니다.

이전 08화 기록할 만한 지나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