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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문PD Aug 22. 2017

시사교양 PD를 꿈꾸는 분들께

각오... 되셨나요? (ㅜㅜ)

3천만 원짜리 협박 메일

PD가 되고 싶다는 학생들을 자주 만납니다. 열에 여섯은 예능을, 넷은 드라마를 지망합니다. 시사교양 PD를 꿈꾸는 분들은 가끔 봅니다. 열에 쩜오 정도라고나 할까요. 그나마 희귀한 시사교양 PD 지망생들을 만나게 되면 저는 늘 말합니다. "하지 마세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초면이라 정중하게 말하지만 조금 친해진 다음엔 더 단호하게 말립니다. "안돼, 돌아가, 빨리 돌아가."

출처: SBS


대체 왜?라는 궁금증이 생기시나요?

지금부터 시사교양 PD 11년 차에 접어든 제가 시사교양 PD 지망생들을 뜯어말리는 이유를 말씀드릴게요. 시사교양 PD 지망생분들, 잘 들어보세요.


지난 7월 21일부터 제가 몸담고 있는 MBC <PD수첩> 소속 PD 10명은 '제작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제작 중단'이라는 정해진 절차 같은 게 있는 건 아닙니다. 말 그대로, PD에게 주어진 '프로그램 제작'이라는 임무를 '더 이상은 못하겠다'라고 선언하고 프로그램 제작을 멈춘 겁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해고 등 징계할 사유가 충분한 행위입니다. 그런데도 왜 저희는 그런 무모한 짓을 했는가.


설명드리려면 조금 긴 이야기입니다만 지난해 촛불 집회에 참석하셨거나 관심 있게 지켜보신 분들이라면 이 한 장의 사진으로 쉽게 이해하실 것 같네요.

http://www.nocutnews.co.kr/news/4688661

촛불집회 현장에서 MBC 기자가 찍힌 사진입니다. 사진으로는 확인할 수 없지만 현장을 뒤덮은 소리는 "엠빙신"이었습니다. 취재하지 말고 돌아가라는 이야기죠.


PD수첩 PD들이 왜 제작 중단을 할 수밖에 없었느냐는 저 사진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2012년 언론사상 최장기 파업이었던 170일 파업이 패배로 끝난 후 MBC는 철저하게 망가졌습니다. '정권에 부담되는' 내용은 취재 자체가 불허됐고, 이에 저항하면 쫓겨났습니다. MBC에 대한 비판도 못하게 했습니다. 회사 상황을 풍자하는 웹툰을 그렸다는 이유로 해고당한 예능 PD도 있었죠. PD수첩도 그런 억압과 검열 속에 있었던 겁니다. '세월호'를 PD수첩에서 다룰 수 없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느 정도 설명이 되려나요. 그리고 그런 상황을 PD들이 더는 못 버티겠어서 '제작 중단'을 선언한 겁니다.


PD들이 일손을 놓았으니 방송은 나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MBC는 저희 PD수첩 PD들에게 '3천만 원+@'의 손해 배상을 청구하겠다고 합니다. 방송이 못 나간 건 PD들 탓이니, 그 손해를 PD들 개개인이 물어내라는 겁니다. 살벌하죠. 


직장에서 날아온 3,000만원을 배상하라는 메일


파업 노동자들에게 회사가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월급이 가압류되고 빚이 생기고 가정이 파탄 나고 끝내 자살하기까지 하는 그런 문제를 취재했던 저희 PD수첩 PD들이, 이제는 그런 사건의 당사자가 된 겁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가 그런 회사인 줄 모르고 세상의 부조리함을 취재해온 거죠. 바보 멍청입니다. MBC가 손해 배상을 청구하면 저희는 누가 취재해주려나요.


시사교양 PD를 꿈꾸는 분들께 그 꿈을 얼른 접으라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이런 겁니다. 프로그램을 제대로 하겠다는 의지가 회사 경영진의 이익과 상충할 때, 그때 가해지는 압력과 스트레스를 버텨야하는 직종이 바로 시사교양 PD입니다. 운 나쁘면 회사와 법정에서 만나 싸워야 하는 것이죠. 지금처럼 제작을 중단하고 길에서 피켓팅을 할 일도 생깁니다. 이렇게요.

이 날 낮 최고 온도가 32도였지요.


시사교양 PD가 되면 추운데 추운 데서 피켓들고, 더운데 더운 데서 피켓듭니다. 조심하세요!


시사교양PD는 공부해도 안해도 더울 때 더운 데서, 추울 때 추운 데서.


잃어버린 4년

저는 MBC에 2006년 12월에 입사해 10년 8개월째 일하고 있습니다. 조연출 시절에는 <북극의 눈물> 촬영으로 북극에 가서 북극곰도 코 앞에서 만났고요, <자체발광>이라는 프로그램에서는 '오리배 타고 제주도 가기'라는 황당 프로젝트에 출연해 '오리배로 항해한 최장 기록'이라는 한국 기네스를 달성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재미있었어요. 태어나 가장 잘 한 일이 PD, 그중에서도 시사교양 PD 된 것이라는 생각으로 매일이 즐거웠습니다. 회사가 너무 좋았어요. 여의도에 있는 회사에 빨리 가고 싶어서 집도 마포대교만 건너면 되는 곳에 얻고, 매일 회사에서 저녁 먹고 퇴근하면 회사 근처에서 술 한 잔 하고, 또 회사 가고 뭐 그런 낭만의 시대였지요. 하지만 인생이란 게 그렇듯, 좋은 시간은 좀 짧아요.


2010년 김재철 씨가 '낙하산' 논란 속에서 MBC 사장이 됐습니다. 비극은 거기서 시작되죠. 전 그때 PD수첩 조연출을 하다가 연출자로 입봉 한 상태였습니다. PD수첩이라는 오래된, MBC의 상징 같은 탐사보도프로그램의 제작자로 참여한다는 게 참 부담스럽고도 영광스러운 때였는데 김재철 사장 부임 이후 많은 게 바뀌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모든 게 역행하기 시작했지요. '검열'이라는 것을 경험한 것도 그때가 처음입니다. 김재철 사장이 임명한 윤길용 시사교양국장, 그리고 그가 임명한 김철진 PD수첩 팀장은 정말 말 그대로 '검열'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아이템들이 검열되나를 따져보니 너무 뻔했습니다. '현 정권'의 문제점을 파고드는 아이템들은 무조건 못하게 했죠.


저 같은 경우에는 대한민국 38대 검찰총창으로 내정됐던 한상대 후보자를 둘러싼 각종 의혹을 취재해보려 했어요. 그 이야기를 김철진 당시 팀장에게 보고한 게 금요일이었고 그가 '월요일에 다시 이야기해보자'라고 했는데 이상한 일이 그 주 주말에 일어납니다. 토요일인가 일요일에 주진우 선배에게 전화가 왔어요.


"PD수첩에서 한상대 안 한다며?"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PD수첩에서 한상대 다루는 거 아니냐고 검찰 쪽에서 한창 시끄러웠는데 MBC에서 안 하기로 했다고 이쪽에 소문 다 돌았어."


한상대 검찰총창 후보자 관련 의혹을 취재해보겠다고 팀장한테 보고하고 최종 컨펌이 나기도 전에 들려온 황당한 소식이었습니다. 그리고 더 황당했던 건 주말이 지난 월요일, 팀장과의 대화였죠. 국장에게 보고했는데 국장이 취재를 허가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어찌 된 일인지 한상대 관련 의혹을 발제한 당사자인 저보다, 검찰 출입 기자가 먼저 아이템 통과 여부를 알게 된 셈이죠.


이런 이상한 일이 한 두 개가 아니었고요 보도국도 사정은 비슷했습니다. 결국 2012년 저희는 1월 30일에 시작해 7월 17일에 끝나는 한국 언론사상 최장기 파업을 시작했고 졌습니다. 저는 파업이 채 끝나기도 전에 대기발령을 받고, 신천에 있는 MBC 아카데미(주로 방송 PD 지망생들이 교육받는 곳)에 가서 브런치 만들기, 요가 수업 같은 각종 황당 업무 재교육을 받았습니다. 모욕주기를 위한 교육이었지요. 그리고는 성남 구시가지에 있는 오래된 건물에 입주해 있는 MBC 성남지국에 발령받았고 부당전보 가처분 신청이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져 제작파트로 잠시 복귀했지만 다시 주조정실이라는 송출 파트로 발령받았습니다. 이 시절을 합치면 4년 남짓. 3년간 조연출 생활, 나머지 7년은 연출 생활인데 그중 4년 동안 프로그램을 못 만들게 했습니다, 이 회사가요.


식빵 굽고 싶은 마음입니다

시사교양 PD로 사는 게 이렇게 힘듭니다. 몇 천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왔는데 회사가 정작 일을 못하게 합니다. 이걸 버텨야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는 현실이 참 이상합니다.


질문하는 직업

자, 이제 시사교양 PD를 해서는 안 될 1000가지 이유 중에 겨우 두 가지만 말씀드린 셈입니다. 나머지 998개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는데요, 이쯤에서 멈추겠습니다. 그 이유들 하나하나를 다 꺼내자니 마음이 아파서요. 그 이유들 때문에 MBC에서 해고되어 여전히 법정 싸움 중인 시사교양 PD가 두 분(최승호, 강지웅 PD)이나 계시고요, 그 이유 때문에 각종 징계를 받거나 PD와 무관한 부서로 발령 난 PD들이 수 십 명, 그리고 그 이유 때문에 회사를 그만둔 PD도 있어서요. 하나하나 아픈 이름들입니다.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사교양 PD를 계속 꿈꾸는 분들께 이 직업의 좋은 점 하나 정도는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이 직업은 질문이 일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누군가에게 대답을 받아내야 하는 일이 시사교양 PD의 일입니다. 대답을 꼭 들어야 하는 사람을 찾아가, 그에게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피하면 가능한 한 끝까지 쫓아가 계속 질문을 던지는 일이 저희의 일입니다.


어려운 일입니다. 때론 두려운 일이죠.


최승호 PD의 영화 <공범자들>에서는 최승호 선배가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5년의 세월을 두고 두 번의 질문을 던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첫 번째 질문은 4대 강 사업에 대한 것이고, 두 번째 질문은 망가져버린 공영방송에 대한 질문입니다.


<공범자들> 봤는데요, 재밌습니다. 얼른 극장으로 가세요!


저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최승호 PD만 궁금해한 것들이 아닐 겁니다. 하지만 전직 대통령에서 뭔가를 묻기 위해서 마냥 생활을 내팽개치고 그만 쫓아다닐 순 없는 노릇입니다. 생활이 바쁘다 보면 꼭 물어야 할 중요한 질문을 놓치고 살게도 되죠. 그런데 시사교양 PD는 질문하는 게 생업입니다.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직접 묻는 일로 먹고 삽니다.   


영화에선 최승호 선배가 MBC 직원들을 대신해 MBC 전현직 사장과 임원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장면도 나옵니다. 그들의 대답 혹은 회피 혹은 도망을 목격하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시사교양 PD라는 직업이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직업이란 걸 제가 개인적으로 영화를 통해 확인받은 셈이죠.


궁금한 게 있고, 그걸 묻는 것이 직업이라는 점에서 시사교양 PD는 할만한 일입니다. 그냥 할만한 수준이 아니고, 참 좋은 직업입니다.


제대로 다시 질문하기 위해서

물어야 할 질문을 누락하지 않고, 적절한 시간과 장소에서, 정확한 대상에게 제대로 묻는 것. 그건 시사교양 PD의 할 일이고 시사교양 PD가 몸담고 있는 회사가 권장하고 보장해야 하는 근로 조건입니다. 하지만 지난 5년간의 MBC는 시사교양 PD가 일하기 참 안 좋은 조건의 회사였지요.


7월에 저희 PD수첩 PD들이 제작을 중단했고, 오늘(8월 22일)이면 아나운서분들도 출연을 중단할 예정입니다. 현재 MBC에서 제작 중단에 들어간 직원들은 약 300명에 이릅니다. 일하기 좋은 회사 만들고 싶어서 시작한 싸움인데,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MBC가 좋아진다는 건 '물어야 할 것을 제대로 묻는' 언론사로 다시 태어난다는 뜻입니다.


그런 회사가 되면, 아마 저는 글을 다시 써야겠죠. 제목은 아마 이렇게 쓸거고요.


"시사교양 PD를 꿈꾸는 분들께... 두 번 되세요, 꼭 되세요!"라고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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