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休
거울 앞에서 군복을 가다듬었다.
그녀를 만나러 가는 손엔
스물 두 송이의 장미가 들려 있었다.
고집 있어 보이던 그녀의 눈썹은
초생달 모양으로 다듬어져 있었고,
윤기 나던 긴 생머리는
짧게 귀밑에 젖어 있었다.
안부를 묻는 형식적인 절차들이 오간 뒤에
나는 그녀에게 나의 사랑을 설명해야 했다.
가슴이 느끼는 걸,
머리가 이해하도록 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장황한 나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나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의 필요성을 그다지 느낄 수 없었던 건지도 몰랐다.
난 나의 사랑이 그리 쉽게 변질되지 않을 거란 믿음을
그녀에게 심어주려 애썼지만,
그러한 나의 노력 또한 헛된 것이었다는 걸
그녀의 눈웃음과 입가에 띤 미소가 말해주고 있었다.
카페에서 나와
우리는 반대편으로 길을 걸었다.
나는 한참 동안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끝내 내게 뒤돌아보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흐릿한 안개속으로 사라져가는 그녀를 보내며
나 또한 뒷모습을 보였다.
군화 끝을 바라보는 고개 숙인 발걸음에
가슴에 핀 붉은 명찰이 검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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