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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명운 May 11. 2018

18. 악몽

  은우와 은수는 공터에서 얌체공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은수가 공을 잘 받지 못해서, 은우는 은수가 받기 쉽게 공을 던져 줬지만 세 살 터울인 여섯 살 은수는 놓치는 공이 더 많았다. 

  - 아이! 왜 이렇게 못 받어? 형아가 받기 좋게 던져 줬잖아!

  - 미안해, 헝아..

  얌체공 놀이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엄청난 탄력과 반발력의 공을 잡아내는 게 전부인데, 그걸 받지 못하고 주우러 다니기 바쁘니 은우로서는 재미가 영 신통치 않았다.  

  - 됐어! 재미없으니까, 너는 그냥 미연이랑 놀아. 형 혼자 할 거야.

  - 알았어..

  시무룩한 표정으로 어깨를 늘어뜨리고 돌아서는 은수를 외면하며 은우는 얌체공을 벽에 튕기며 놀았다. 확실히 은수랑 노는 것보다 차라리 혼자 벽에 튕기며 노는 게 훨씬 더 재미있었다. 벽에 튕겨져 돌아오는 얌체공을 한 번도 놓치지 않고 잡아서 자신감이 생긴 은우는 이번엔 얌체공을 더 힘껏 던졌다. 울퉁불퉁한 벽에 세게 맞고 튕긴 공은 은우의 키를 훌쩍 넘어 뒤로 날아갔는데, 하필이면 공이 날아간 곳이 내리막길로 이어지는 큰길 방향이었다. 얌체공이 내리막길로 굴러가면 찾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엄청난 반발력으로 튕겨져 굴러가는 공을 잡을 수도 없거니와, 순식간에 어느 집 담장 안으로 넘어가거나 맨홀 구멍에 빠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마침 은수와 미연이가 걸어가는 앞으로 공이 떨어졌고, 땅에 튕기고 앞으로 굴러가는 얌체공을 보자마자 은수가 공을 쫓아 뛰면서 뒤돌아보며 말했다.

  - 헝아! 내가 잡아 줄게!

  얌체공은 굴러가면서 점차 탄력을 잃긴 했지만 내리막길에 점점 가까워지더니 금세 은우의 시야에서 은수와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제발.. 제발..’

  은우는 얌체공을 잃어버리지 않길 바라며 은수가 뛰어간 내리막길로 전력을 다해 달려갔다. 공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터라 아무래도 은수만으로는 미덥지 않았다. 

  달려오던 관성으로 내리막길 초입을 훨씬 지나서 멈춰 선 은우는 탁 트인 내리막길 어디에도 은수와 얌체공이 보이지 않아 당황했다. 지나가는 사람도 없어서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 둘 다 어디로 갔지?’

  - 은수야!.. 은수야! 은수야, 어딨어?

  은우는 목청껏 은수의 이름을 불렀지만 은수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마음이 급해진 은우는 내리막길을 뛰어 내려가며 다시 은수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다.

  - 은수야!.. 은수야 어딨어?..

  불길한 예감에, 울먹이며 동생의 이름을 불렀지만 사방은 고요하기만 했다. 

  - 은수야.. 은수야..

  맑던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은우가 서 있는 땅 위로 검은 그림자가 불쑥 솟아올랐다. 깜짝 놀란 은우가 뒤돌아보니 미연이었다.

  - 미연아.. 은수는.. 은수 못 봤어?

  미연이는 대답 없이 고개를 젓더니 쥐고 있던 손을 펴 보였다. 미연이가 펴 보인 손바닥 위엔 은우가 놓친 형광색 얌체공이 놓여 있었다.

  - 은수는? 미연아, 은수는?..

  은우는 미연이의 어깨를 흔들며 은수의 행방을 물어봤지만 미연이는 말없이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 은수야! 은수야! 은수야!~

  자신의 외침에 놀라 벌떡 일어난 은우는 캄캄한 방에서 은수부터 찾았다. 다행히 은수는 바로 옆에서 곤히 자고 있었다.

  - 왜 그래 은우야? 나쁜 꿈 꿨어?

  엄마의 말을 듣고 잠꼬대를 했다는 걸 안 은우는 그제서야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 다시 자. 누워.

  엄마가 이불을 덮어 주며 같이 누웠다. 은우는 은수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하고 손을 더듬어 은수의 손을 꼭 잡았다.      


  - 아아아아아악!~

  비명에 놀라 깬 엄마는 은우를 흔들어 깨웠다. 

  - 은우야, 은우야! 왜?..

  꿈에서 깬 은우는 옆에 은수가 있는지부터 살폈다.

  - 왜 그래? 은우야, 또 꿈 꿨어?

  은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어휴~ 얘 땀 좀 봐. 무슨 꿈을 꿨길래 이렇게 땀을 많이 흘렸어? 무서운 꿈이야?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은우의 눈에 눈물이 맺혀있었다.     


  은우는 여느 때처럼 은수와 뽀뽀뽀를 보고 있었다. 뽀미 언니와 뽀식이, 뽀병이, 뽀동이 다음 인형 친구들이 나왔다. 은우는 뽀뽀뽀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다 좋아했지만, 단 하나 예외가 있었다. 마술사 모자를 쓴, 짙은 갈색 얼굴에 주근깨가 있는 입이 큰 인형이었다. 은우는 그 인형이 처음부터 왠지 무섭고 싫었다. 다른 인형들의 말이 끝나고 그 기분 나쁜 인형이 브라운관에 꽉 들어찼을 때, 마술사 모자를 쓴 그 인형은 은우의 눈을 쏘아보면서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갑자기 저주를 퍼부었다. 말의 의미를 알 수는 없었지만, 인형의 표정이나 입 모양 그리고 억양으로 봐서 저주가 분명했다. 은우는 질겁해서 은수를 찾았지만 방금 전까지 함께 뽀뽀뽀를 보고 있던 은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은우가 무서워서 TV를 끄려고 스위치 앞으로 손을 뻗는 순간, 그 기분 나쁜 인형의 손이 은우의 손을 덥석 잡아당겼다.

  - 아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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