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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명운 Apr 28. 2018

20. 그날 이후

  그날 이후.. 

엄마는 방 안에 틀어박혀 눈물만 흘리고 있었고, 은우는 학교를 제외하고는 어디에도 가지 못했다. 하루 종일 엄마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고는.. 은우가 학교에 갈 때,

  ‘찻길 건널 때 조심하고 학교 끝나면 아무 데도 가지 말고 바로 집으로 와.’ 

  이 한마디가 전부였다.   

  은수가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은우는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울어야 할 것 같은데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고, 딱히 슬프다는 느낌도 없었다. 은수는 내리막길에 주차돼 있던 차량에 치어 죽었다. 경찰 조사 결과, 사이드 브레이크가 제대로 채워지지 않았던 트럭의 브레이크가 풀리면서 아래에서 놀고 있던 은수를 덮쳤다는 것이었다. 당시 은수는 미연이와 함께 있었는데, 트럭이 덮칠 때 은수가 미연이를 밀쳐 내는 바람에 미연이는 한쪽 다리만 부러지고 크게 다치지 않았다고 했다. 병원에서 은수의 시체를 확인할 때, 은수의 손에 스티로폼 비행기가 구겨진 채 쥐어져 있었다고 하는데.. 그 모습을 본 엄마는 그동안 군것질이나 용돈에 인색했던, 당신이 준 100원을 들고 신나 하며 뛰어나가던 은수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라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고 했다. 

  은수의 장례가 끝나기가 무섭게 미연이네는 도망치듯 이사를 갔고, 반쯤 실성한 은우 엄마 곁을 지키면서 은우의 끼니와 책가방을 챙겨준 건 시댁에 갔다 비보를 듣고 한달음에 달려온 혁이 엄마였다.        


  은우는 아직 은수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했다. 동생이 없다고 크게 슬프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았다. 슬퍼해야 할 분위기 때문에 억지로 눈물을 짜내기도 싫었다. 이제 누군가를 영영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기에 은우의 아홉 살 생은 너무 짧았다. 은우는 죽음의 의미를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도 같은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방법을 아직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우는 은수를 위해 뭔가를 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진심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와서라기보다 아직 끝나지 않은 슬픔과 애도의 분위기에 동참하기 위해서였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은우는 수녀원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얼마 전 외할머니를 부르기 위해 달려왔던 곳.. 은우는 수녀원의 철제 후문을 밀고 계단을 내려갔다. 외할머니가 무릎을 꿇고 기도했던 성모상 앞에 서서 은우는 두 손을 모으고 기도했다.

  - 성모님, 은수가 다시 돌아오게 해 주세요.

    은수를 다시 보내 주세요. 네?

  은우는 처음부터 진심이 담긴 기도를 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기도를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막상 기도가 입 밖으로 나오자, 이제 정말 다시는 은수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눈시울과 목구멍이 뜨거워지는 것이었다. 그 뜨거운 먹먹함이 슬픔을 넘어선 아픔으로 다가오자 은우는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했다.  

  - 성모님, 제발 은수를 살려 주세요.

    제발 은수를 다시 돌려보내 주세요. 네?

    은수를.. 은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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