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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명운 Apr 26. 2018

22. 스웨터

  날은 어느덧 초가을로 접어들고 있었다.

은우는 고모네를 다녀온 이후로 엄마의 눈치를 살피며 조금씩 밖에 나가 노는 일이 잦아졌고, 은우 엄마는 집안일을 더 이상 혁이 엄마에게 의지하지 않았다. 은우 엄마가 조금씩 본인의 모습을 찾아갈 즈음, 혁이 엄마는 미루던 대청도행을 실행했다. 충분히 애쓰고 마음 써 주고 떠나는 길이었음에도 혁이 엄마는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 언니, 미안해요. 좀 더 있어 주지 못해서..

    혁이 아빠가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할 때가 돼 나서..

  혁이 엄마마저 대청도로 떠나고, 미연이네가 떠난 방은 아직 사람을 들이지 않아서 이제 은우네 집엔 은우네 세 식구뿐이었다. 불과 몇 달 전만해도 활기로 가득 찼던 집을 이제 쓸쓸함이 채우고 있었다.      


  은우가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은우 엄마는 어제까지 혁이 엄마가 머물렀던 방에 누워 있었다. 은우는 왜 엄마가 안방을 두고 혁이네가 있던 아랫방에 누워 있는지 의아했지만 이유를 물을 수는 없었다. 

  그날 저녁, 은우 엄마는 저녁상을 치우고 나서 다시 아랫방으로 들어갔고 날이 새도록 나오지 않았다. 그날부터 은우는 아빠랑 둘이서만 안방에서 잤다. 은우 아빠는 은우 엄마에게 아직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지, 아랫방에서 혼자 자는 은우 엄마를 그냥 내버려두었다.      


  여느 날처럼 학교에 갔다가 돌아온 은우는 아랫방에 잠들어 있는 엄마를 보았다. 꿈에서 은수라도 봤는지, 뺨을 타고 흐른 눈물이 베갯잇을 적시고 있었다. 은수의 베개였다. 장례를 치를 때, 은수의 물건들은 전부 외할머니가 가져가서 화장터에서 태워버렸는데, 그 와중에 엄마가 용케 숨겨둔 것이었다. 은수의 베개를 보자 은우는 매일 잠들기 전 이불 위에서 은수와 벌이던 베개 싸움이 생각나 울컥 눈물이 날 뻔했다. 그리고 왜 엄마가 아랫방에 틀어박혀 혼자 자는지 알 것 같았다. 은우는 엄마의 슬픔을 이해하며 조용히 방문을 닫았지만, 자신은 점점 엄마로부터 멀어지는 것만 같아 쓸쓸했다.     


  며칠 후부터 은우 엄마는 뜨개질을 시작했다. 밥상 차리는 시간을 제외하고 모든 시간을 아랫방에 틀어박혀 뜨개질에만 집중했다. 저녁상을 물리고도 늦은 밤까지 아랫방의 불은 켜져 있었다. 두꺼운 털실로 짜는 옷 모양의 뜨개질로 봐서 은우는 엄마가 자신이 겨울에 입을 스웨터를 짜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이후로, 길 건널 때 차 조심하라는 말 말고는 자신에게 통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엄마였지만.. 자신이 입을 스웨터를 짜고 있다는 걸 알게 되자, 은우는 엄마와의 관계를 예전처럼 회복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엄마와 불편한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은우는 엄마에게 먼저 다가갔다. 집에 돌아오면 엄마 곁에 앉아 학교에서 있었던 재미난 일들이나 친구 관계를 말하곤 했다. 하지만 엄마는 은우의 말에 별 반응 없이 뜨개질에만 집중할 뿐이었고, 엄마의 뜨개질이 모양을 갖춰 갈수록 은우는 지쳐가고 있었다.         


  저녁 장을 보기 위해 엄마가 시장에 간 사이, 은우는 엄마가 뜨고 있는 스웨터를 자기 몸에 대보았다. 아직 완성된 모습이 아니었지만, 어깨 부분이 어쩐지 조금 작게 느껴졌다. ‘앞으로 더 떠서 완성이 되면 그땐 맞겠지’라는 생각으로 스웨터를 내려놓는데, 엄마가 베고 있던 은수의 베개 밑으로 뭔가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잡아당겨 보니 은수의 사진이었다. 은우는 은수의 얼굴을 본 반가움보다 스웨터의 주인이 은수였다는 사실이 더 아팠다. 사진을 원래대로 베개 밑에 넣어 놓고 방을 나오는 은우의 두 눈은 완전한 소외감으로 젖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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