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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명운 Apr 25. 2018

23. 미니카

  엄마의 감금에서 한결 자유로워진 은우는 고모부한테 받은 미니카를 옷 안에 숨겨서 대문을 나섰다. 마음 같아선 당장 친구들한테 보여주면서 자랑하고 싶었지만, 막상 미니카를 꺼내 놨을 때 예상되는 친구들의 반응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동네에 외국에서 온 이렇게 멋지고 세련된 미니카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은 없는데다, 그저 단순히 앞뒤로만 가는 게 아니라 제자리 회전 기능에 사이렌 소리까지 나는 걸 보면 신기해서 아이들이 가만 두지 않을 터였다. 너도 나도 만져보려고 달려들 테고, 그럼 표면에 흠집이 나거나 자꾸 스위치를 껐다 켰다 해서 고장이 날 염려도 있었다. 또 개중에 샘을 내는 아이가 신기해서 만지는 척 하다가 일부러 떨어뜨려서 흠집을 내거나 망가뜨릴 수도 있을 터였다. 아무리 조심해서 보호해도 왕성한 호기심으로 달려드는 아이들을 혼자서 막을 수는 없을 거라 생각한 은우는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멋진 미니카를 그동안 집에서만 갖고 놀았다. 하지만 안방도, 거실 마루도, 안마당도 미니카가 신나게 달리기엔 좁은 공간이었다. 은우는 좁은 공간에서 제한적으로 달리는 미니카를 보고 있자니 답답한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이렇게 볕 좋은 날, 집 안에만 틀어박혀 노는 것도 못 할 짓이었다. 그래서 이번엔 미니카를 밖에 가지고 나가서 미니카가 마음껏 달리게 내버려둘 생각이었다. 

  집 밖으로 나온 은우는 옷 안에 숨긴 미니카를 조심하며 공터로 갔다. 운 좋게도 동네 친구들은 보이지 않았다.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게, 아마도 전부 공원 쪽으로 올라가서 잠자리를 잡거나 술래잡기를 하는 모양이었다. 타이밍을 잘 잡았다고 생각한 은우는 옷 안에 숨겨 두었던 미니카를 꺼내 전원 스위치를 켜고 바닥에 내려놓았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달려가는 미니카.. 비록 땅바닥이 고르지 못해서 통통 튀면서 달리긴 해도, 집 안의 비좁은 공간에서 달릴 때보다는 훨씬 더 자유롭고 역동적으로 보였다. 게다가 차체의 날렵함은 햇살에 번뜩여 더 멋져 보였고, 제한적인 공간을 벗어나 달리는 미니카의 속도는 생각보다 훨씬 빨랐다. 3회전 후 직진할 때는 이미 따라가는 은우를 앞서가고 있었다. 

  다음날도 은우는 옷 안에 미니카를 숨겨서 가지고 나와 공터에서 혼자 놀았다.      


  하지만 사흘째 되는 날엔 그 멋진 미니카를 가지고 노는 일도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혼자 놀자니 흥이 나지 않았고,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자랑하고 같이 놀기엔 미니카가 아직 너무 새 것이라 아까웠다. 은우는 자연스레 은수가 생각났다. 은수가 있었다면 서로 자기가 먼저 가지고 놀겠다고 싸웠을 게 뻔하지만, 왠지 모를 허전함은 없었을 것 같았다. 은우는 처음으로 장난감을 혼자 독차지하고도 느끼는 허전함을 달래려 미니카를 들고 내리막길로 갔다. 미니카를 좀 더 스릴 있게 달리게 하면 그런 허전함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조심스럽게 스위치를 켜고 내려놓은 미니카는 꽤 빠르게 비탈길을 내려갔다. 그런데 고르지 못한 땅바닥 때문인지, 3회전 후 다시 직진으로 빠르게 내려가던 미니카는 울퉁불퉁한 길을 통통거리며 내려가다 결국 뒤집히더니 옆으로 몇 바퀴를 굴러 버렸다. 미니카는 다행히 뒤집힌 채로 바퀴만 계속 돌 뿐 밑으로 더 굴러가지는 않았지만,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차체는 이미 땅바닥에 긁혀 몇 군데 흠이 난 뒤였다. 미니카를 집어 들어 여기저기 흠이 난 걸 확인하고 급 짜증이 난 은우는 손에 들고 있던 미니카를 그대로 땅에 내리꽂았다. 바닥에 튕겨진 미니카는 몇 바퀴를 더 아래로 굴러갔다. 던지기가 무섭게 후회가 밀려든 은우는 황급히 미니카를 살펴봤지만, 이미 뒤집힌 채로 멈춰 있는 차체는 전면부 플라스틱이 깨진 채 앞바퀴 축이 빠져 있었다. 차체가 땅바닥에 처박힐 때 튕겨져 나온 배터리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내리막길을 굴러가고 있는 모습을 본 은우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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