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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명운 Apr 24. 2018

24. 못 찾겠다 꾀꼬리

  - 못.찾.겠.다.꾀.꼬.리.

  고추잠자리가 한가로이 날아다니는 볕 좋은 가을이었다.

은우는 친구들과 술래잡기 놀이에 정신이 없었다. 한 번도 술래가 되지 않아서 신이 난 은우였지만, 이내 싫증이 난 아이들은 다른 놀이를 찾기 시작했다. 

  - 우리 구슬치기 하자!

  준호의 말에 은우는 풀이 죽어 움츠러들었다. 은우는 구슬이 없었다. 주머니를 가득 채울 만큼 가지고 있는 아이들도 있고, 없어도 보통 10개씩 이상은 가지고들 있는 구슬이었지만, 엄마는 은우에게 구슬 살 돈을 주지 않았다. 사 달라고 졸라도 들어주지 않을 엄마였지만, 아직까지 엄마에게 그런 말을 할 분위기도 아니었다. 

  은우가 친구들이 구슬치기 하는 걸 보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졌다. 하늘은 맑은데 빗방울이 떨어지는 현상을 신기해서 바라보고 있는데

  - 여우비다!

    여우가 시집가나보다.

  - 아니야, 호랑이가 장가가는 날이야.

  - 아니래두!~

  - 호랑이랑 여우가 결혼하는 날 아니야?

  아이들이 설전을 벌이기 시작했고, 빗방울은 점점 더 굵어지더니 장맛비처럼 퍼붓기 시작했다. 골목에서 구슬치기를 하던 아이들은 모두 처마 밑으로 모여들었고, 한동안 비는 계속됐다. 비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몰라 아이들이 처마 밑에 계속 있을지, 집으로 가야 할지를 망설이고 있을 때쯤 비가 그쳤다. 

  - 어? 생각보다 빨리 그치네?

  - 신기하다. 하늘은 계속 맑아.

  - 야, 우리 땅바닥이 젖었으니까 구슬치기는 나중에 하고 다시 술래잡기 할래?

  창민이가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 어! 무지개다!

  석주가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무지개라는 말에 심쿵해서 하늘을 올려다본 은우는 정말로 하늘에 떠 있는 무지개를 보고 그 아름다움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무지개가 정말 있었구나..

  은수가 했던 말이 거짓말이 아니었어.’

  - 야, 우리 저어~기 무지개 끝까지 누가 먼저 가나 해 보자.

  범준이의 말에 아이들은 무지개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고 은우도 아이들을 따라 달렸다. 모두들 무지개 끝을 향해 달렸지만, 은우는 단지 끝까지 가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무지개를 믿지 않았던 은우였지만, 무지개가 정말 있다면 믿고 싶었던 사실이 하나 더 있었다. ‘연이와 버들잎 도령’에서 본 내용처럼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올라갈 수 있을 거란 믿음이었다. 다른 아이들에겐 말도 안 되는 믿음 같겠지만, 은우에게는 무지개의 존재 자체가 그랬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풍경이 이 세상에 그려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그런데 생애 처음 그토록 선명한 일곱 빛깔 무지개를 눈으로 직접 본 순간, 은우는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 또한 충분히 가능하리라 믿었다. 단지 한(恨)스러운 게 있다면, 버들잎 도령을 살려낸 하양, 빨강, 파랑의 약병이 자신에게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것만 있다면 은수를 살려낼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에 은우는 가슴이 너무 아팠다. 

  은우는 쉬지 않고 달렸다. 뒤에서 출발했지만 어느새 아이들을 하나씩 따라잡고 맨 앞에서 뛰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달려도 무지개 끝은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중간에 뛰기를 포기한 아이들이 하나둘씩 생겨났고, 뒤에서 ‘이제 그만 가자’며 포기를 권유하는 소리도 들렸지만 은우는 멈추지 않았다. 무지개 끝에서 은수를 꼭 만나야 했다.

  ‘은수야, 기다려! 형이 갈게.’

  은우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더 이상 뒤따라오는 아이도 없었다. 숨이 차올라 토할 것 같이 현기증이 났지만 은우는 멈추지 않았다. 동네를 한참 벗어나 낯선 동네에 들어와서도 은우는 무지개만 바라보고 달렸다. 

  ‘어!?..’

  무지개 끝만 바라보고 달리던 은우는 깜짝 놀랐다. 무지개 아치의 가운데가 선명한 빛깔을 잃고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희미해지고 있었다. 

  ‘안 돼! 안 돼!..’

  은우는 무지개가 사라지기 전에 끝에 닿기 위해 심장이 터져라 사력을 다해 달렸다. 입에서는 침이 말라 단내가 나고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을 것 같았지만 은우는 포기할 수 없었다.

  ‘기다려, 은수야.. 기다려! 형이 갈게.’

  불길함을 떨치려 필사적으로 뛰었지만 어느새 무지개의 가운데 아치는 끊어지고 없었다. 아직 끝자락이 남아 있었지만 언제 사라질지 모르게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기다려, 은수야! 형이 갈게, 응? 기다려!..’

  은우는 희미하게 사라져 가는 무지개 끝자락을 보며 간절한 마음으로 달렸다.

  ‘제발 가지 마, 은수야.. 은수야, 제발 가지 마!’

  닿기엔 아직도 먼, 하지만 이미 희미해진 무지개 끝자락을 보며 은우는 울먹거렸다. 은우는 마지막 힘을 짜내 달리며 무지개 끝자락을 부여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무지개는 은우의 손끝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

  ‘은수야, 가지 마! 형아도 데려가..’     


  낯선 동네를 그대로 되짚어 터벅터벅 걸어가는 은우의 어깨는 축 쳐져 있었고 얼굴엔 눈물이 얼룩져 있었다. 애써 아무 생각 없이, 지나온 길을 되돌아가는 길임에도 눈물은 주책없이 흘러내렸다. 

  한참을 걸어 동네에 들어온 은우는 친구들과 어울리기도, 집에 들어가기도 싫었다. 동네 초입에서 배회하던 은우는 눈앞에 아른대는 고추잠자리를 따라 공원으로 올라갔다. 공원은 잠자리 천지였다. 은우는 공원에서도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한적한 곳을 찾아 그대로 풀밭에 누웠다. 몹시 지쳐 있던 은우는 따뜻한 햇볕을 이불 삼아 그대로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 붉은 노을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은우는 일어나 앉아 붉게 타는 노을을 바라보았다. 저절로 눈물이 흘렀다. 공원 나무에 매달린 스피커에서 지지직거리는 잡음과 함께 라디오 노래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마 나는 아직은

  어린가 봐 그런가 봐

  엄마야 나는 왜

  자꾸만 기다리지

  엄마야 나는 왜

  갑자기 보고 싶지     


  아마 나는 아직은

  어린가 봐 그런가 봐

  엄마야 나는 왜

  자꾸만 슬퍼지지

  엄마야 나는 왜

  갑자기 울고 싶지

 

  가을빛 물든 언덕에 

  들꽃 따러 왔다가 잠든 날  

  엄마야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외로움 젖은 마음으로  

  하늘을 보면 흰 구름만 흘러가고 

  나는 어지러워 어지럼 뱅뱅

  날아가는 고추잠자리


  아마 나는 아직은  

  어린가 봐 그런가 봐  

  엄마야 나는 왜  

  자꾸만 기다리지  

  엄마야 나는 왜  

  갑자기 보고 싶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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