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못.찾.겠.다.꾀.꼬.리.
고추잠자리가 한가로이 날아다니는 볕 좋은 가을이었다.
은우는 친구들과 숨바꼭질 놀이에 정신이 없었다. 한 번도 술래가 되지 않아서 신이 난 은우였지만, 이내 싫증이 난 아이들은 다른 놀이를 찾기 시작했다.
- 우리 구슬치기 하자!
준호의 말에 은우는 풀이 죽어 움츠러들었다. 은우에겐 구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개중에는 양쪽 바지 주머니를 가득 채울 만큼 많은 구슬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도 있었고, 없어도 보통 10개씩은 가지고들 있는 구슬이었지만, 은우 엄마는 은우에게 구슬 살 돈을 주지 않았다.
은우가 친구들이 구슬치기 하는 걸 멀뚱히 보고 있는데, 맑은 하늘에서 빗방울이 후드둑 떨어졌다.
- 여우비다!
여우가 시집가나보다.
- 아니야, 호랑이가 장가가는 날이야.
- 아니래두!~
- 호랑이랑 여우가 결혼하는 날 아니야?
아이들은 설전을 벌이며 가까운 처마 밑으로 몸을 피했다.
- 어? 생각보다 빨리 그치네?
신기하다. 하늘은 계속 맑아.
창민이가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 어! 무지개다!
석주가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무지개라는 말에 심쿵해서 하늘을 올려다본 은우는 정말로 하늘에 떠 있는 무지개를 보고 그 아름다움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무지개가 정말 있었구나..
은수가 했던 말이 거짓말이 아니었어.’
- 야, 우리 저어~기 무지개 끝까지 누가 먼저 가나 해 보자.
범준이의 말에 아이들은 무지개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고 은우도 아이들을 따라 달렸다. 모두들 무지개 끝을 향해 달렸지만, 은우는 단지 끝까지 가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비록 무지개를 믿지 않던 은우였지만, 무지개가 정말 있다면 믿고 싶었던 사실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것은 ‘연이와 버들잎 도령’에서 본 내용처럼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올라갈 수 있을 거란 믿음이었다. 다른 아이들에겐 말도 안 되는 믿음이겠지만, 불과 5분 전의 은우에게는 무지개의 존재 자체가 그랬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이 세상에 그려질 수 있다는 걸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었다. 그런데 생애 처음 그토록 선명하고 아름다운 일곱 빛깔 무지개를 눈으로 직접 본 순간, 은우는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 또한 가능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단지 한(恨)스러운 게 있다면 버들잎 도령을 살려낸 하양, 빨강, 파랑의 약병이 자신에게는 없다는 것이었는데, ‘그것들만 있다면 은수를 살려낼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에 은우의 가슴은 미어졌다.
은우는 쉬지 않고 뛰었다. 뒤에서 출발했지만 어느새 아이들을 하나씩 따라잡고 맨 앞에서 달리고 있었다. 중간에 뛰기를 포기한 아이들이 하나둘씩 생겨나면서, ‘이제 그만 가자’며 포기를 권하는 소리도 들렸지만 은우는 멈추지 않았다. 은우는 무지개를 타고 은수를 꼭 만나야 했다.
‘은수야, 기다려! 형이 갈게..’
은우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더 이상 뒤따라오는 아이도 없었다. 숨이 차올라 토할 것 같이 현기증이 났지만 은우는 멈추지 않았다. 동네를 한참 벗어나 낯선 동네에 들어와서도 은우는 무지개만 바라보고 달렸다.
‘어!?..’
무지개 끝만 바라보고 달리던 은우는 가슴이 철렁했다. 무지개 아치의 가운데가 선명한 빛깔을 잃고 곧 사라질 것처럼 희미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 돼! 안 돼..’
은우는 무지개가 사라지기 전에 끝에 닿기 위해 심장이 터져라 사력을 다해 달렸다. 입에서는 침이 말라 단내가 나고 다리는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을 것 같았지만 은우는 포기할 수 없었다.
‘기다려, 은수야.. 기다려! 형이 갈게.’
은우는 불길함을 떨치려 필사적으로 뛰었지만 어느새 무지개의 가운데 아치는 이미 끊어진 뒤였고, 아직 남아 있는 끝자락도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기다려, 은수야! 형이 갈게, 응? 기다려..’
은우는 사라져 가는 무지개 끝자락을 보며 간절한 마음으로 달렸다.
‘제발 가지 마, 은수야.. 은수야, 제발 가지 마!~’
닿기엔 아직도 먼, 하지만 이미 스러져 가는 무지개를 보며 은우는 울먹거렸다. 은우가 마지막 힘을 짜내 달리며 무지개 끝자락을 부여잡으려 손을 뻗는 순간, 무지개는 은우의 손끝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
‘은수야, 가지 마! 형아도 데려가..’
낯선 동네를 그대로 되짚어 터벅터벅 걸어가는 은우의 어깨는 축 쳐져 있었고 얼굴은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애써 아무 생각 없이, 지나온 길을 되돌아가는 길임에도 눈물은 주책없이 흘렀다.
한참을 걸어 동네에 들어온 은우는 친구들과 어울리기도, 집에 들어가기도 싫었다. 동네 초입에서 배회하다 눈앞에 아른대는 고추잠자리를 따라 공원으로 올라간 은우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한적한 풀밭에 몸을 뉘었다. 몹시 지쳐 있던 은우는 따뜻한 햇볕을 이불 삼아 그대로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 노을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은우는 일어나 앉아 붉게 타는 노을을 바라보았다.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 뒤로, 공원 나무에 매달린 스피커에서 지지직거리는 잡음과 함께 라디오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마 나는 아직은
어린가 봐 그런가 봐
엄마야 나는 왜
자꾸만 기다리지
엄마야 나는 왜
갑자기 보고 싶지
아마 나는 아직은
어린가 봐 그런가 봐
엄마야 나는 왜
자꾸만 슬퍼지지
엄마야 나는 왜
갑자기 울고 싶지
가을빛 물든 언덕에
들꽃 따러 왔다가 잠든 날
엄마야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외로움 젖은 마음으로
하늘을 보면 흰 구름만 흘러가고
나는 어지러워 어지럼 뱅뱅
날아가는 고추잠자리
아마 나는 아직은
어린가 봐 그런가 봐
엄마야 나는 왜
자꾸만 기다리지
엄마야 나는 왜
갑자기 보고 싶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