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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타공인 잉꼬부부 이야기
08화
생리할 때 미역국 끓여주는 사람
그 사람의 평범함에 관심을 가져봐도 좋을 것 같다.
by
여름바다
Mar 1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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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남편이 운전하는 차 안에서 사과와 고구마를 먹으며 출근한다. 배가 살살 아픈 게 심상치 않다.
고구마를 한 입 베어 물고서는 남편에게
얘기한다.
"오빠~ 오늘 나 왠지 생리할 것 같아. 배가
생리할 것 같은 느낌이야"
"응. 생리 팡팡해 팡팡~ 마음껏
`
"
우리에게 생리가 시작한다는 건 임신이 안됬다는 통보였다. 남편은 내가 실망할새 없이 일부러 즐겁게 이야기해주었다
회사에 도착하자 예상대로 생리가 시작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배가 슬슬 아파왔다.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오빠, 나 생리해~~"
"그렇구나. 배는 좀 어때?"
"살살 아파와. 아직 고비는 아니야"
"여보, 힘들면 보건실 가서 좀 쉬어. 무리하지 말고"
"응~"
회사 일이 바빠서 쉴 수 있는 상황이 못 되었다. 남편은 내 상태가 괜찮은지 몇 번이고 확인했다.
"여보, 배는 좀 어때?"
"많이 아파. 있다가 점심 먹고 바로 약 먹어야겠어"
우연히 구내식당에서 남편과 점심을 함께 먹었다. 반가운 마음으로 마주 앉았다.
"이구, 여보 아픈 얼굴이네. 힘이 하나도 없네ㅠㅠ"
"응. 밥 먹고 진짜 조금 쉬어야겠어"
남편은 오후에 사무실로 올라와서 안쓰러운 표정으로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지금은 좀 어때?"
"약 먹어서 조금 괜찮아졌어"
"다행이다. 힘들면 보건실 가서 또 쉬어 여보"
남편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일이 많아서 야근을 했다. 퇴근 무렵 핏기 없는 내 얼굴을 바라보다가 남편은 어쩔 수 없이 먼저 퇴근했다.
아픈 배를 붙들고 야근을 했다. 밤이 되어서야 드디어 일이 끝났고 남편에게 전화했다.
"오빠~~~ 나
끝났어~~~~ 해방!"
"여보~~~ 수고했어. 얼른 데리러 갈게"
도착한 남편의 손에는 미역이랑 소고기, 멸치액젓이 들려있었다.
"우리 여보, 고생했어. 배는 좀 어때? 오빠가 맛있는 미역국 끓여줄게. 내일 아침에 꼭 먹고 가"
"힝~ 배는 이제 좀 괜찮아. 오빠 미역국 너무 맛있겠다. 고마워. 감동이야"
집에 도착해보니 집안이 말끔히
정리되어
있었다. 바닥도 깨끗했고 빨래도 가지런히 개어져 있었다. 내가 일하는 동안 남편도 쉬지 못하고 계속
집안일을
한 것 같다.
"오빠 좀 쉬지. 청소하느라 하나도 못 쉬었겠네"
"아니야~ 청소 끝내고 좀 쉬었어. 여보 얼른 쉬세요~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세요~!"
남편은 저녁 10시에 미역국을 끓이기 시작했다. 싱겁게 먹는 날 위해서 직접 먹이면서 간을 맞추었다.
다음 날 아침. 남편은 나를 보자마자 배는 좀 어떠냐고 물었다.
생리할 때면 남편은 하루에 최소 4번 이상은 내 상태를 체크한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출근할 때, 오전에, 오후에, 저녁에
등등.
신기하게도 남편이 그렇게 물어봐주는 덕분에 생리하는 하루가 싫지 않다.
결혼하기 전, 생리하는데 일이 바빠서 못 쉴 때면 내 신세가 참 딱하다고 생각했었다. 배가 아픈 날에도 푹 쉬어주지 못하는 스스로한테 미안했었다.
남편이 미역국과 함께 맛있는 아침을 차려 주었다. 생리를 할 때면 피가 빠져나가서 확실히 힘이 없다. 허벅지 안쪽에 근육이 풀리는 기분이 든다.
평소 아침에 밥을 안 먹는데 몸이 본능적으로 스스로 지키려는지 미역국이 쑥쑥 들어갔다. 미역국을
두 그릇이나
먹었다. 내 입맛에 딱 맞춘 고소하고 깔끔한 바다 맛 미역국이 정말 맛있었다. 미역국 파워 덕분에 오전 내내 쾌활하게 지낼 수 있었다.
오늘도 역시 남편의 진심 어린 질문 세례를 받았다.
"여보 배는 좀 어때?"
대답할 때마다 고마웠고 힘이 났다.
나
를 감시하듯 챙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행복이었다.
점심때 수목원을 산책하면서 문득 이걸 다른 사람한테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주의를 존중한다는 이유로 서로의 기본적인 안부를 묻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시대가 된 것 같다.
먼저, 하루 종일 옆에 앉아있는 회사 짝꿍 김민찬 과장님에게도 안부를 자주 물어봐야겠다. 과장님은 승진을 계속 못하고 있어서 항상 어깨가 처져있고 한숨을 많이 쉬신다.
내일부터 김민찬 과장님에게 이렇게 안부를 물어보자.
(아침에) "과장님, 어제 저녁에는 잘 잤어요? 컨디션은 좀 어때요?"
(점심에) "과장님, 점심 맛있게 드셨어요? 밥 먹고 뭐하면서 좀 쉬셨어요?"
(오후에) "과장님, 요즘 건강은 좀 어때요?" 혹은 "담배 끊는 거 힘들지는 않아요?"
(퇴근 무렵) "과장님, 주말에 뭐하세요~?"
상대방의 일상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지 않을까.
있어 보이는 주제로 대화하려고 하기보다 그 사람의 평범함에 관심을 가져봐도 좋을 것 같다.
keyword
생리
관심
남편
Brunch Book
자타공인 잉꼬부부 이야기
06
새살을 돋게 하는 마음, 진심
07
세상에 '옳은 결정'이란 없다
08
생리할 때 미역국 끓여주는 사람
09
행복을 결정하는 '가치' 순위
10
네스프레소 커피머신을 고치면서 깨달은 것
자타공인 잉꼬부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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