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옳은 결정'이란 없다

내가 한 선택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뿐

by 여름바다

이사 온 집 벽지를 바꾸기 위해서 숨고에 견적서를 요청했다. 재료비를 모두 포함해서 20만 원이었다. 함께 이삿짐을 정리하던 친정엄마가 도배 업체 부르려면 비싸니까 셀프로 해보는 건 어떠냐고 제안했다.

예전부터 셀프 도배를 한 번 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튜브로 셀프 도배를 찾아보던 중 '물 벽지'라는 걸 발견했다. 소폭 벽지를 물에 5초간 담갔다가 벽에 붙이고 수건으로 눌러주면 끝이었다.

가성비가 좋아 보였다. 유튜브 영상 달랑 1개를 보고서 '물 벽지' 구매를 결정했다. 평소 꼼꼼하게 따지는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에 빠르게 주문했다. 색상도 크게 고민하지 않고 깔끔한 화이트로 골랐다.


거실 벽면을 모두 시공하려다 보니 벽지 10개 롤이 필요했다. 한 개에 6,900원일 때는 싸다고 생각했는데 10개를 주문하고 나니 벌써 70,000원이었다.


'도배 업체 부르는 비용보다 엄청 싸지는 않네. 아. 그냥 도배업체 불러서 빨리 쉽게 끝내고 싶다.

아니야. 그래도 셀프 도배해보고 싶었으니까 경험 삼아 해보자. 비용도 절반이나 아낄 수 있으니까'


문득, 집주인분의 부탁이 떠올랐다. 도배를 하게 되면 거실과 벽 천장에 도배지가 조금 들떠있는 부분도 함께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비용은 발생한 만큼 주시겠다고 하셨었다.

그럼 도배업체를 불러도 인건비를 절반으로 줄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숨고에 견적을 받았던 업체에 문의를 해보았다. 아쉽게도 천장에 들뜬 부분은 필름 시공이라서 본인들이 못한다고 했다. 어쩔 수 없었다.


다음 날 기다리던 '물 벽지'가 도착했다. 너무 새하얗지는 않은지 확인을 한 뒤 과감하게 벽지를 뜯어보았다.

빨리 벽지를 바꾸고 싶은 마음이 컸다. 반품을 해서 색상을 다시 고르고 받아보고 싶지 않았다.


'화이트는 어디든 잘 어울리니까 괜찮을 거야'


벽지를 물에 담근 후 벽에 붙였다. 예상치도 못하게 색상보다 재질이 문제였다. 재질이 맨들거려서 저렴한 티를 팍팍 냈다. 기존 집안 인테리어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하. 망했다'


도저히 '물 벽지'를 쓸 수는 없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나머지 9개 롤은 어떻게 반품하지. 반품이 되려나. 조금 더 꼼꼼히 알아볼걸. 인터넷 후기도 더 찾아볼걸'


엄마에 대한 원망도 들었다.


'엄마가 셀프로 하라고 안 했으면 그냥 편하게 도배업체 불렀을 텐데'


함께 벽지를 붙인 남편에게 얘기했다.


"오빠, 나 도저히 이 벽지는 못 쓸 것 같아. 그리고 그냥 도배 업체 불러서 깔끔하게 하고 싶어"


"그래? 그럼 나머지 벽지 9개는 어떻게 하지? 일단 한 번 붙여보는 건 어때?"


인터넷으로 주문한 벽지가 엉망이었기 때문에 더 이상 힘을 빼고 싶지 않았다. 거실 벽지를 깔끔하고 예쁘게 바꾸고 싶은 마음만 더 커졌다.


"오빠, 진짜 저 '물 벽지' 붙이고는 이 집에 못 살 것 같아. 꼭 도배 업체 불러서 다시 하고 싶어"


"그래. 그럼 도배 업체 지금 전화해보자"


나의 잘못된 선택에 속상했다. 이제 벽지가 반품이 안된다면 돈을 7만 원 더 쓰고 고생한 일이 될 것이다. 계속 후회가 되었다.


'그냥 하고 싶었던 대로 도배 업체 바로 부를걸. 괜히 돈 아끼려다가 돈을 더 썼네'


남편이 도배 업체랑 통화해보니, 업체에서 천장에 들뜬 필름지도 한 번 봐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인건비의 절반은 아낄 수 있었다.


순간 또 다른 후회가 밀려왔다.


'들뜬 필름지까지 함께 봐주는 업체를 왜 더 알아보지 않았을까. 그런 업체를 찾을 때까지 전화를 돌려봤어야지. 그럼 바로 도배업체에 맡겼을 텐데. 돈도 시간도 낭비할 일은 없었을 텐데'


거실 벽지도 나의 선택도 마음에 안 들었다. 뒤엉킨 후회들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의 모습을 보던 남편은 위로해주었다.


"여보. 기분이 많이 안 좋아? 벽지 반품 안돼도 괜찮아. 좋은 경험 했다고 생각하면 되지. 그리고 다음에 하남 이사 가면 남은 벽지 쓰자!"


"응... 고마워. 근데 하남 가서도 저 벽지는 별로 안 쓰고 싶을 것 같아. 반품 다시 시켜봐야지"


나머지 벽지 롤 9개를 돌돌 말기 시작했다. 바닥에 앉아서 착잡한 기분으로 벽지만 조용히 말았다.


"환불되면 좋겠다"


내가 말했다.


"근데 그거 개봉 후 환불 불가 이런 문구는 없어 여보?"


인터넷에 있던 제품 설명을 다시 찾아봤다.


"아! 있다.ㅠㅠ 있어 오빠. 힝ㅠㅠ 그래도 보내보자"


기분은 더 안 좋아졌다. 책상에 앉아 턱을 괴고 얼굴을 감쌌다. 후회하는 마음이 소용돌이칠 때 문득 '자존감 수업'에서 배운 내용이 떠올랐다.




<결정을 잘하기 위한 조건 중 하나>

세상에 '옳은 결정'이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결정을 잘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 점을 알고 있다. 어떤 문제를 아무리 고민해봐야 정답은 없으며 사람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어떤(whaw) 결정을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결정한 후에 어떻게(how)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결정을 잘하는 사람들은 결정하기까지 에너지를 많이 낭비하지 않는다. 결정 잘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자신의 결정에 만족하는 힘'이다.


<자존감을 높이는 결정법>

1. 스스로 결정하기

자기 일은 스스로 결정한다.

남이 내린 결정은 책임감이 덜하지만 만족감도 덜하고 나의 자존감도 그만큼 낮아진다.

조언을 구하더라도, "결정은 제가 하겠지만"이라고 말을 시작하는 게 좋다. 핵심은 '나의 일'을 결정하는 것이다. 자신의 선택에 집중할수록 남에게 참견하는 일은 줄어든다.


2. 결정을 따르기

자신이 내린 결정을 따르자.

갈팡질팡하는 이유는 다른 걸 선택해도 결과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갈림길에 있다는 얘기는 양쪽 다 그게 그거라는 뜻이다. 손해 보는 결과가 나오더라도 걱정하지 말라. 스스로 내린 결정이기에. 좋은 학습이 될 것이다.


3. 결과가 나쁘면 미래형 후회하기

결과는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안 좋은 결과에 도달했다면 후회해도 된다. 결과에 전적으로 책임을 지고 아픔의 지분을 100퍼센트 본인이 가져가라. 단, 후회할 때 미래형 후회를 하자.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는 과거형 후회다. 당신의 자존감을 갉아먹는다.

'앞으로는 이런 경우가 있을 때, 반드시 이렇게 해야지!'라고 미래형 후회를 하라. 이 후회는 다짐이기도 하다.


4. 결과가 좋으면 타인에게 감사하기

결과가 좋으면 기뻐하라. 그 기쁨 또한 100퍼센트 본인이 누려라. 당신의 선택이 옳았으므로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러니, 감사의 기쁨을 타인에게 돌려라. "당신 조언 덕분에 성공할 수 있었어"라고 얘기하라. 그들 또한 기분이 좋아져서, 앞으로 당신이 더 잘되기를 바랄 것이다.




셀프 도배를 시공해보고자 했던 내 시도는 좋았다고 생각을 바꿨다. 어차피 한 번 해봤어야 할 일이었다.

앞으로 원하는 목표가 있으면 만족할 때까지 많이 조사해보자는 미래형 다짐을 했다. 엄마 탓을 하던 마음도 접었다. 결국 선택은 내가 했었으니까.

미래형 다짐을 하자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다음 날 도배지 견적을 보러 업체에서 방문했다. 도배지를 골라야 했고 신중에 신중을 더했다. 너무 하얗지 않은 적당히 밝은 그레이로 잘 골랐다.


도배를 하는데 색을 잘 고른 건지 하는 마음에 긴장 반 설렘 반이었다. 시공이 끝났지만 도배지가 마르기 전이라서 아직 얼룩덜룩하고 구김도 있었다. 마음을 놓기 힘들었지만 마르면 다 펴진다는 시공자 얘기를 믿고 기다렸다.


퇴근 후 다 마른 도배지를 볼 생각에 설레는 마음으로 집 문을 열었다. 도배지가 오전에 봤을 때보다 훨씬 예뻤다. 시공도 구김 없이 깔끔하게 잘 되어있었다. 만족스러웠다.


'휴. 다행이다. 도배지를 잘 골랐어'


남편도 예쁘다며 좋아했다. 업체에서 들뜬 필름지도 잘 붙여주어서 집주인 분과 시공비를 절반 정도 분담할 수 있었다. '물 벽지' 업체에서도 선뜻 반품을 해주겠다고 했다. 후회했던 것들과 달리 모든 게 잘 풀렸다.


'옳은 선택'이란 내가 한 선택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그토록 마음에 들었던 밝은 그레이 색 벽지가 한동안 진짜 예쁜가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올라왔다.

너무 차가운 느낌인 건 아닌지. 그레이 색이라서 집이 좁아 보이지는 않는지.

그러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이 벽지를 골랐으면 내가 어떻게 얘기했을까.


"여보. 벽지가 너무 차가워 보이지 않아?"


"음, 오빠 난 괜찮은데? 차분하고 깔끔해서 좋아. 다음에는 조금 따뜻한 색으로 해도 좋긴 좋을 것 같아"


이렇게 얘기하고 벽지가 혹시 신경 쓰이더라도 크게 연연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족하며 지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나한테는 어떤가.

더 예쁜 벽지를 고를 수 있지 않았나, 집이랑 잘 어울리는 조금 더 화사한 색을 고를 걸 그랬나 하는 평가를 그치지 않았다.


모든 결정에서 늘 최고의 선택을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선택에 책임지고 만족해하는 연습을 하는 게 더 중요한 것 같다. 이번에 선택한 벽지가 차가워 보이면 다음에는 따뜻한 색을 고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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