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에 솔직해지기(2)

10년째 퇴사를 못하는 이유, 두 번째

by 여름바다

퇴사를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진짜 하고 싶은 일이 없었던 것이었다. 진기주 씨는 연기가 진짜 하고 싶었다고 한다. 삼성에 다닐 때 힘들 때면 친구들에게 본인은 나중에 연기할 거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내게는 진기주 씨처럼 퇴사를 빨리 하고 싶게 만드는 진짜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

흔히들 입사 후 3, 6, 9년이 됐을 때 퇴사의 충동이 많이 든다고 얘기한다. 나 역시 3, 6, 9년 차에 이직을 유독 많이 생각했었다. 하지만 늘 뚜렷하게 하고 싶은 건 없었다. 특별하게 잘하는 일도 없었다. 단지, 이 놈의 회사가 나의 역량을 드러낼 만한 곳이 못 된다고만 여겼다. 당시에 회사를 당장 그만두고 할 수 있는 일은 또 다른 기업에 입사하는 일뿐이었다.


사업을 할 만한 자본도 없었고 기발한 아이템과 기술도 없었다. 덜컥 혼자서 무언가를 할 만한 용기는 더욱 없었다.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지 고민한 끝에 나름 찾았다고 생각한 일들은 사회적으로 좋아 보이는 일들이었다. 사회적으로 좋아 보이는 일들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어렸을 때 한비야 씨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를 읽고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살면 가슴 뛰는 삶이겠다고 생각했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TV를 보면서 지내는 평범한 일상은 허무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막연하게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은 이상하리 만큼 내 안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28살에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일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마저 생겼었다. 그리고 이웃들을 도우며 사는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일지 고민했었다.

이웃을 도우며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들여다보지 못하게 했었다. 이웃을 도울 수 있는 가치 있는 일이라며 다양한 것을 시도했었지만 끝까지 해낸 건 하나도 없었다.


1. 임용고시를 봐서 영어교사가 된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에게 저렴하게 영어 교육해준다. 학생들이 영어 실력을 잘 키워서 좋은 직장을 구하도록 돕는다.

(영문학과 학사 학위를 취득하기 위하여 독학학위제 준비를 하다가 공부가 너무 재미없어서 관뒀다.)


2. 유대인 공부법 교육 전문가가 되어서 우리나라의 주입식 공부법을 창의적으로 바꾸는데 앞장선다.

(하브루타 교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유대인 관련 책도 많이 읽었다. 하지만 비전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다는 이유로 관뒀다.)


3. 교보문고와 같은 서점을 차려서 장애인들을 직원으로 고용한다. 장애인들도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 사업을 확장시켜 나간다. (당장 자본이 없으니, 생각만 하다가 말았다.)


결국, 모두 다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런저런 이유로 그만뒀던 것 같다.




그동안 나의 욕망을 완전히 드러내 놓고 바라보지 않았었다. '진짜 하고 싶은 일'에 솔직하지 못했었다.


나는 이사를 갈 때면 34평의 신축 아파트를 원했고 저렴한 브랜드의 옷을 입는 건 내키지 않았다. 백화점에 입점한 브랜드의 옷을 입고 다녔고 20만 원 이상의 귀걸이를 차는 건 내게는 당연했다. 왜냐하면 비싼 게 예쁘고 오래가고 좋으니까.

나는 이런 사람이었다. 내게 필요한 옷을 살 돈을 아껴서 불우이웃 돕기를 할 수는 없었다. 직장인으로서 적당히 비싸고 예쁜 옷을 입어야 했다. 친구들을 만나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가족들과 좋은 곳으로 여행 가서 추억을 만드는 게 기쁘고 좋았다. 열심히 번 만큼 어느 정도 쓰면서 어려운 사람들을 섬기고 싶었다.


거창하게 내가 무슨 우리나라 교육법을 바꾸고, 장애인들의 사회생활을 돕는 기업가가 된 모습은 그다지 재미가 없었다.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욕망을 모른 채 가치 있는 일들만 찾다 보니까 흥미를 느끼지 못했었다.


사회적으로 좋은 사람으로 사는 것 말고 진짜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생각해 봤다.

일단, 경제적으로 여유롭게 잘 먹고 잘 살고 싶었다. 사고 싶은 걸 사되, 돈이 없어서 못쓰는 게 아니라 아끼려고 일부러 안 사고 싶었다. 절약한 돈으로 어려운 이웃들과 나누고 싶었다. 내가 굳이 안 써도 되는 돈은 기부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못 먹고 못 사는 형편에 아등바등 대며 나누며 살고 싶지는 않았다.


백화점에 가서 돈에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옷을 적당히 사고 남을 만큼 돈을 벌고 싶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목표가 생기니까 가치 있는 삶을 목표로 할 때보다 더 흥분되었다.

이제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선명하게 그려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돈말글:그래도 괜찮은 오늘을 만드는 최소한의 습관' 책에서 정은길 작가는 이렇게 얘기한다.

'꿈을 적을 때 가장 중요한 건 진정성이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라면 적지 말라고 해도 쓰고 싶다. 말하지 말라고 해도 툭툭 튀어나온다. 모든 감각과 집중력이 그 목표를 향해 있다. 어떤 행동이나 결정을 해도 그 목표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하게 된다. 그러니 꿈이 안 이뤄지기도 힘들 것 같다. 그게 <종이 위의 기적 쓰면 이루어진다>의 저자가 말한 '사업 개시' 간판일 것이다. 뇌의 스위치를 켜는 역할이다.


'자신의 꿈과 열망을 적는 행위는 '사업 개시' 간판을 내거는 것과 같다. 아니면 친구 일레인이 표현한 것처럼 모든 일이 잘될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선포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러한 심리적인 효과 말고도 목표를 적는 행위는 무척 과학적인 면을 지니고 있다. 목표를 종이에 기록하는 것은 두뇌의 일부분인 망상 활성화 시스템을 자극하고 뇌의 그 특별한 시스템이 당신을 도와 목표를 이루게 하기 때문이다.(헨리에트 앤 클라우저, '종이 위의 기적 쓰면 이루어진다' 중에서)


어제와 오늘, 정은길 작가의 얘기에 공감을 많이 했었다. 진정성 있는 꿈을 드디어 찾은 건지 나도 모르게 자꾸 내 꿈을 자세히 그려보게 되었고 얘기하고 싶고 쓰고 싶어 졌다. 어제는 노트에 꿈을 열심히 적었고 오늘은 남편에게 내 새로운 꿈을 신나게 이야기했다.


꿈을 적을 때 실제로 일어난 것처럼 내 꿈을 작성하면 좋다고 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 유튜브를 시작하고 싶다. 3개월 만에 구독자가 1만 명이 됐으면 좋겠다. 내 콘텐츠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


위에 처럼 적기보다는 아래와 같이 적을 때 꿈이 더 잘 이루어진다고 한다.


- 나는 10만 구독자가 있는 유튜버다. 무려 6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소개했을 뿐인데 내 콘텐츠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많아 깜짝 놀랐다. 이제는 라이브 방송을 하며 소통을 하자는 댓글이 많아졌다.




어제 노트에 적은 실제 일어난 것 같은 내 꿈은 이렇다.


어느새 내 책이 100만 부가 팔리는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참 감사한 일이다. 내 책을 읽고 인생이 자유롭고 행복해졌다는 사람들이 많다. 몰랐던 자신을 발견하고 알아 가는 중이라는 사람들도 있다. 무엇보다도 부부가 함께 책을 읽고 성장하며 잘 살게 되었다는 말이 정말 기뻤다. 어른이 되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는데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는 청년들도 있다.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었는데 이제 무엇이든지 시작해볼 용기가 생겼다고도 한다.


책 출판 후 강의 요청이 많이 들어와서 직장을 그만두었다. 대학교, 대기업, 교회 등 다양한 곳에서 강의를 하는 일이 너무 신나고 재밌다. 내가 경험한 일을 잘 정리해서 이해하기 쉽도록 전달해주는 일이 역시나 적성에 잘 맞는 것 같다.


강의 수요가 줄어들 때쯤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했다. '테라로사'와 같이 넓고 편안한 공간에서 최고로 맛있는 스페셜티 커피를 제공하고 싶다. 내 카페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으면서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동안 카페를 다닐 때마다 틈틈이 장단점을 기록해둔 덕분에 쉽게 카페 콘셉트와 인테리어를 정할 수 있었다. 벌써 10호점까지 카페를 차렸다. 카페를 운영하면서 글도 꾸준히 쓰고 있다. 조만간 두 번째 책이 나올 예정이다.




글로 적어 보니까 진짜 살고 싶은 인생이었다. 책 인세와 강의비, 카페 수입이면 돈은 충분히 많지 않을까 싶다. 행복하게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계 캠퍼스'의 신병철 학장이 세바시에서 영국의 한 실험 이야기를 해주었다.

영국에서 3000명을 대상으로 '생각에 따라 목표를 달성하는 형태'를 실험했다고 한다.

첫 번째 그룹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긍정적으로만 생각했다.

두 번째 그룹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비관하고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세 번째 그룹은 먼 미래는 낙관하되 가까운 미래는 비판했다.

놀랍게도 목표 달성도가 가장 높은 건 세 번째 그룹이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첫 번째 그룹보다 두 번째 그룹의 목표 달성도가 높다는 것이었다.


신병철 학장은 우리가 세우는 계획보다 현실은 오류가 많다는 걸 인정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세 번째 그룹은 그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에 난관이 생길 때마다 계획을 수정하면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내가 쓴 목표를 진짜 이룰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지만 세 번째 그룹처럼 먼 미래는 낙관해보면 좋을 것 같다. 그 대신 가까운 미래인 오늘 혹은 한 달 뒤의 목표를 못 이룰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해보는 건 어떨까. 현실은 계획보다 오류가 많다는 사실도 잊지 않고 말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인,

돈 버는 일인 회사생활은 당장 그만두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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