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퇴사를 못하는 이유, 첫 번째
퇴근길에 유튜브 추천 영상으로 뜬 '유퀴즈 온 더 블록'을 눌렀다. 썸네일 타이틀에는 '삼성, 기자, 모델, 배우 이직의 달인 '진기주'의 대공감.....'이라고 떠 있었다.
진기주라는 배우가 누군 줄 몰랐기 때문에 별다른 기대 없이 영상을 봤었다. 내용은 이렇다.
진기주 씨는 23살에 삼성에 입사해서 3년간 회사를 다녔다. 삼성을 그만둔 뒤 취업 준비를 하는 친구들에게 휩쓸려 어릴 적 꿈이었던 기자라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진기주 씨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일은 연기였지만 당시에 자신이 없었다고 한다. 기자라는 회사생활을 다시 시작했고 머리를 감다가 토할 정도로 일을 하게 되었다. 수습기간이 끝날 때쯤 이번에는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자는 생각으로 기자를 그만두었다. 집에서 우연히 TV를 보던 중 슈퍼모델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하게 되었다. 마침내 슈퍼모델이 된 뒤 배우라는 꿈까지 이룰 수 있었다.
진기주 씨의 얘기를 들으면서 세 가지가 인상 깊었다.
첫 번째는 삼성을 다니면서 힘들어하는 진기주 씨를 보고 엄마가 한 얘기다.
"기주야. 너무 힘들면 회사 그만 다녀. 그리고 너 하고 싶은 거 해. 아직 어리잖아. 뭐든지 할 수 있는 나이야"
두 번째는 삼성을 그만둘 때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걸 해야겠다'라는 말, 그리고 기자를 그만둘 때 '이제 진짜 하고 싶은 걸 해야겠다'라는 말이었다.
세 번째는 이직을 할 때, 새로운 직장이 이전 직장보다 좋지 않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선택을 할 만큼 하고 싶어야 한다는 얘기였다.
24살에 한국도로공사에 입사한 뒤 6개월이 되어 갈 때쯤이었다. 신입사원 연수가 끝나고 일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었다. 너무 힘들어서 거의 매일 엄마에게 전화해서 펑펑 울었다. 울며불며 회사가 너무 힘들다고 얘기했었다. 엄마는 회사가 다 그런 거라며, 적응하면 괜찮을 거라고 이야기하셨다. 아빠는 내가 왜 힘든지 조차 물어보지 않으셨었다. 평소 딸 의견을 잘 들어주고 다정하신 분이었는데 퇴사 앞에서는 결코 양보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회사가 힘들어도 버텨야 했고 내 꿈은 혼자서 알아서 이루어야 했다. 이후로 3년, 6년, 그리고 지금까지도 부모님께 이직의 의사를 내비치면 결사반대하신다. 퇴사는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부모님께 나의 직장은 힘들어도 참고 다녀야 하는 좋은 직장이었다.
그럼 우리 부모님이 진기주 배우 엄마와 달리 응원을 해주지 않아서 내가 퇴사를 못한 걸까?
그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10년 동안 퇴사를 못하는 이유를 정리해봤다.
가장 큰 이유는 나를 믿지 못해서였다. 나에 대한 신뢰가 부족했었다. 왜 그랬을까.
학창 시절에 항상 1등을 목표로 두고 공부를 했었지만 정작 1등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었다. 학급에서 3, 4등 정도 했었다. 그 성적으로 한의대를 목표로 했었다. 다녔던 고등학교가 공부를 못했었기 때문에 전교 30등이 한의대를 갈 수는 없었다. 수능을 치른 후 당연한 결과가 나왔고 지방 국립대 공대에 입학했었다.
수준에 맞는 목표를 정하고 단계별로 올라갔다면 성취감을 많이 느꼈을 텐데 지금 생각하면 참 아쉽다. 내가 이룬 일에 대한 성취감을 맛보지 못한 채 학창 시절을 보냈었다.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는 패배감만 남아 있었다.
대학교에 입학 후, 여러 번 장학금을 받으며 다녔었다. 하지만 내 실력으로 한 게 아니라고 여겼다. 선배님들이 구해주신 족보 덕분이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노력해서 얻은 좋은 결과를 남에게 돌렸던 것이다.
힘든 취직 준비 끝에 공기업에 합격했을 때에도 나를 기특하게 여겨주지 않았었다.
정말 기뻤지만 다른 친구들도 많이 합격했기 때문에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여겼었다. 오히려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 덕분이라고 나도 합격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었다.
결국 내게 칭찬을 해준 적은 없었다. 나보다 잘난 사람과 늘 비교했었고 난 더 노력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회사에서 성취감을 느낄만한 일은 더욱 없었다. 월급을 받고 하는 일이기 때문에 잘하는 게 당연했다.
2019년, 회사에서 어렵다는 차장 승진 시험을 죽을힘을 다해 공부해서 합격했다. 진짜 열심히 했었기에 그만큼 기뻤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공로를 온전히 하나님께 돌렸다. 기도를 많이 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내 실력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주님이 이루어 주셨다고 여겼다.
다른 사람들은 나를 보면서 뭐든지 잘한다고, 못하는 게 뭐냐는 말을 한다. 하지만 정작 긴 시간 동안 스스로 인정해 주지 않았다. 칭찬하고 사랑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자존감은 나도 모르게 낮아져 있었다.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10년째 이 자리에 있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