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름바다 May 23. 2021

머리보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기

선한 마음이면 충분하다

생리가 시작되었다. 생각이 많아졌다.

먼저는 이번 달도 임신이 안됬다는 게 실망이었다. 언제쯤 아이가 생길까 하는 지친 마음이 들었다. 이건 뭐 내 힘으로 안 되는 일이니까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두 번째로 내일부터 회사 야유회가 시작되는 날이라는 게 떠올랐다. 팀원들과 1박 2일 동안 지리산을 가는 일정이었다. 첫째 날은 지리산 천왕봉을 올라가는 코스였다. 생리를 하게 되면 힘이 많이 부족해서 올라가기 힘들 것 같았다. 약 3주 전부터 팀원들과 상의하며 야유회를 준비했었다. 내가 코스를 정하고 숙소를 예약하는 일을 모두 담당했다. 야유회를 주관하는 사람으로서 천왕봉을 못 간다면 많이 아쉬울 것 같았다. 팀원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천왕봉을 꼭 가보고 싶다고 무리해서 추진한 사람이 나였기 때문이었다. 일부 팀원들은  너무 힘든 일정이라고 했지만 개의치 않고 추진했었다. 힘든 만큼 정상에 올라갔을 때 기쁨도 크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세 번째로 다가온 걱정은 당장 오늘 일이었다. 회사에서 현장을 점검하러 나가는 날이었다. 평소에 첫날 생리통이 가장 심했었다. 통증 피크타임이 찾아오면 3~4시간 정도는 누워있어야 했다. 현장에 나가서 언제 통증이 찾아올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감독해야 하는 업체들을 앞에 두고 아픈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혹은 오고 가는 길에 차에서 배가 아파서 낑낑거리고 싶지도 않았다. 함께 현장에 가는 파트너 김 과장님께 민망할 일이었다.  


아침 묵상을 함께 하면서 복잡한 마음을 남편에게 털어놨다.


“오빠, 어떡하지. 내일 야유회 가서 나 등산 못할 것 같은데. 생리할 때 무리하면 쓰러질 수도 있잖아”


“맞아. 우리 여보 괌 놀러 갔다가 생리기간에 무리해서 쓰러졌었잖아. 천왕봉 다 올라가지 말고 여보는 중간에 내려와. 아니면 아예 올라가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아”


“그러게. 중간에 내려와서 기다리는 것보다 처음부터 안 가는 게 나을 것 같아. 후발대로 출발할까봐. 오빠는 나 등산 안 가도 갈 거야? 너무 무리되는 건 아니야?”


다른 팀에 있는 남편도 야유회에 함께 가기로 되어 있었다.


“아, 응. 여보 같이 가면 좋지만 여보 못가도 나는 올라갈까 봐. 이 차장님이 꼭 같이 가자고도 했고 또 다른 사람들이랑 친해지면 좋으니까”


“그래, 오빠. 그러면 오빠는 올라갔다 오구 나는 후발대 사람들이랑 같이 출발해야겠다. 진짜 아쉽다. 나 천왕봉 꼭 가보고 싶었는데”


“그러게. 속상하겠다 우리 여보”


“응 속상해. 어쩔 수 없지. 오늘은 또 현장 나가야 되네. 휴~”


“여보 오늘 현장가?”


“응, 김 과장님이랑 용역 업체 안전 컨설팅하러 보령지사가. 과장님만 다녀오시라고 그럴까? 중간에 나 또 생리통 시작될 텐데”


“그래, 여보. 김 과장님만 보내. 여보랑 연애할 때 아산 다녀오는 길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 여보 생리통 심해져서 차 타고 오는 길에 토하고 그랬잖아. 그때 진짜 119에 전화해야 되는 줄 알았어”


“호호호, 맞아. 그랬었지. 아직은 괜찮은데 미리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아. 회사 가서 김 과장님께 죄송하다고 혼자 다녀오시라고 해야겠다”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들을 안고 남편과 출근을 했다. 아직은 생리통이 시작되지 않아서 컨디션이 괜찮았다. 회사에 다 도착할 무렵 남편에게 얘기했다.


“그냥 천왕봉 갈까봐 오빠. 보통 첫째 날 생리통이 심하니까 다음날은 괜찮을 거야. 주관자 없이 팀원들만 보내고 싶지 않은 것 같아. 그리고 천왕봉이 너무 가고 싶어! 이런 기회 아니면 더 나이 들어서 가기 힘들지 않을까? 올라가다가 정 힘들면 내려오지 뭐. 가고 싶으니까 그냥 가야겠다. 미리 걱정하지 말아야지!”


중간에 쓰러질 수도 있기 때문에 무리하지 않는 게 맞았다. 팀원들을 위해서도 그게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마음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멍청해 보이지만 팀원들과 함께 하고 싶었고 천왕봉이 정말 가보고 싶었다.


“여보 괜찮겠어?”


“응, 생리 시작할 때 컨디션이 어떨지 느낌이 있는데, 이번에는 피가 맑게 잘 나와서 통증이 많이 없을 것 같아”


“그래 그럼. 또 여직원인 최 과장님도 있으니까 둘이 천천히 올라오면 되겠다”


마음이 조금 후련해졌다. 사무실에 가서 갑자기 천왕봉을 못 간다는 얘기를 어떻게 꺼내나 싶은 걱정도 없어졌다.

출근해보니 김 과장님이 먼저 와있었다. 김 과장님께 몸이 안 좋으니 현장을 혼자 다녀오면 좋겠다는 말을 해야 했다. 사실, 현장에 나가기 귀찮은 마음이 저번 주부터 있었다. 배가 아플 것 같은 걱정도 있었지만 현장에 가기 싫은 마음도 컸다. 내 진심이 무엇인지 양심에게 물어봤다. 생리통이 언제 찾아올지 몰라서 걱정스러운 게 있었다. 현장에 나가기 싫은 마음도 분명했다. 차장으로서 현장 일을 과장님께만 떠맡기고 싶지도 않았다. 현장에 나가든 그렇지 않든 두 가지 선택 모두 타당했다. 그냥 내가 조금 더 희생하는 쪽을 선택하기로 했다.


“과장님, 우리 9시쯤 출발할까요?”


“네~ 그러시죠. 출장은 제가 올려놨어요”


운전도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번 주에 현장 나갈 때는 과장님이 했었다.


“과장님 업무차 키 챙겨놓으셨어요?”


“아, 아니요”


“제가 챙길게요. 제가 운전하려고요~”


그렇게 회사 차를 타고 둘이 함께 현장으로 출발했다. 즐겁게 수다를 떨면서 고속도로로 진입했다. 김 과장님의 전화가 울렸고 팀의 주무 차장님이었다. 현장에 가고 있는 우리에게 다시 사무실로 들어오라고 하셨다. 김 과장님이 고속도로에 이미 진입해서 차를 돌리기 힘들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들어오라고 하셨다. 차를 갓길에 세우고 내가 직접 통화를 했다. 팀장님이 야유회와 관련하여 회의를 급하게 하자고 한다고 했다. 팀장님이 김 과장님만 현장에 보내고 조차장은 꼭 사무실에 들어오라고 하셨다고 한다. 야유회 주관자가 회의에 빠지면 안 된다는 게 이유였다. 결국, 차를 돌려서 사무실로 들어왔다. 김 과장님은 나를 주차장에 내려주고 다시 현장으로 갔다.


회의 테이블에 팀원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내일 비가 온다고 한다. 천왕봉은 못 가게 되었고 다른 일정을 논의 중이었다.


‘할렐루야, 주님 감사합니다’


마음속으로 기쁨의 노래를 불렀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해결되었다.


같은 파트에서 일하는 김 과장님께 현장 점검을 나가는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일 수 있었다. 심지어 직접 운전을 함으로써 배려하는 마음까지 나타낼 수 있었다. 선의는 충분히 전달하였다. 몸은 팀장님의 회의 소집 덕분에 사무실에서 편히 쉴 수 있었다. 게다가 천왕봉 등반 일정도 자연스럽게 취소되었다. 정말 감사했다. 주변 사람들을 더 생각하는 마음에 충실한 결과였다.

한 시간 뒤쯤 생리통이 심해져서 양호실에 누워있었다. 현장에 나갔으면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았다. 나는 내 앞 길을 모르지만 늘 좋은 길로 인도해주시는 주님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주님이 계시니까 근심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앞으로 고민이 있을 때 이웃을 향한 선한 마음 따라 결정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이탄의 도구들(팀 페리)’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첫 직장을 얻거나 새로운 조직에 들어갔을 때는 자발적으로 안테암블로(종을 비유)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내가 만난 모든 성공자의 공통된 조언이다. 무작정 다른 사람에게 복종하고 아첨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저 다른 사람들이 잘 될 수 있는 도움을 자발적으로 제공하라는 것이다. 다른 이들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캔버스’를 마련해주라는 뜻이다.’


성경에도 이런 말씀이 있다.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이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빌립보서 2:4~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