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숙집 사업이 하고 싶을 줄이야

취미 만들기 여정의 시작

by 여름바다

어느 부부의 댄스 신고식



토요일 오전, 브레이브걸스의 롤린이라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어질러진 거실에서 30대 남녀 한쌍이 팔을 벌리고 엉덩이를 돌리고 있다. 이어서 팔을 머리에 얹어 가오리 모양으로 만들어 네 방향으로 돌아가며 춤을 춘다. 조금 미친 듯 보이는 두 사람은 다름 아닌 우리 부부다. 내 손에는 젖은 머리를 말리다가 만 순건이 들려 있고 머리 위로 휙휙 돌린다.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를 외치던 마음이 나와 같았으리라. 남편에게 한 껏 들뜬 목소리로 우리 뭐 하는 거냐고 웃으며 이야기 하지만 춤은 멈출 줄 모른다.

이내 흐르던 노래가 그치고 우리 부부는 자유롭게 표출하던 기쁨을 다시 마음속으로 가져왔다. 차분하려 애쓰며, 남편과 나는 특유의 현실적이고 진지한 대화에 돌입했다.



하숙집 사업이 하고 싶을 줄이야


“오빠! 하숙집 사업, 진짜 좋은 생각 같지? 얼마 전에 정리했던 ‘내 성향 5가지’ 오빠도 봤지? 그걸 정리하면서 내가 사람을 많이 만나고 도와주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에 확신이 생겼거든. 그래서 사람을 많이 만나면서 도와줄 수 있는 일을 생각해봤어. 거기에 지금 배우는 그림이랑 글쓰기도 엮어서 사업화를 시키도록 말이지. 요즘 오빠도 알다시피 1인 가구들이 외로워서 다시 하숙집으로 모이고 있다잖아. 그 사람들이 세련된 곳에서 함께 즐겁게 지내도록 돕고 싶어. 나도 미치도록 외로웠던 자취생 시절이 있어서 그런지 동기부여도 잘 되더라고”


“맞아, 그랬지. 여보는 나랑 다르게 사람을 만나면서 활력을 얻으니까 ‘친절한 임대인’ 재밌게 잘할 거야”


“하숙집을 이런 식으로 운영해보면 좋겠어. 어떤지 들어봐, 오빠. 1층은 공용공간으로 쓰는 거야. 항상 커피 향이 솔솔 풍기는 거지. 누구든지 편하게 커피를 내려 먹을 수 있도록 네스프레소 캡슐 머신이랑 커피 드립 도구들도 한편에 놓는 거야. 그림 그리기나 글쓰기 원데이 클래스도 자주 열어서 내가 직접 지도해줄 거야. 유명 작가 북콘서트도 열면 좋겠다. 벽면을 따라서 책장도 크게 만들어서 책을 한 가득 들여놓기도 하고. 하숙집 주인 추천도서도 진열하고 청년들 인생 상담도 해주면 뿌듯하겠어. 하숙생들과 다 같이 저녁 식사 모임도 갖고. 어때 오빠?”


“좋아. 여보 지금 그림 그리기랑 글쓰기 할 때 동기부여도 더 되겠다. 여보가 또 이벤트 기획 좋아하고 잘하잖아. 나중에 인테리어에도 관심을 가져보면 좋겠다. 그런데 여보, 하숙집은 주택으로 지을 거야?”


“음, 그게 조금 문제인데. 주택으로 하기에는 수용인원이 너무 적어. 주택은 집 값도 금방 떨어지니까 비효율적이고”


“다가구 주택은 어떨까?”


“다가구 주택, 그 1층에 주차공간 있는 건물? 그럼 1층에 공용공간을 못 만들지 않아?”


“그렇긴 하지. 가장 위층에 있는 넓은 평수 방이랑 옥상을 공용공간으로 활용해야지”


“흠, 그럼 조금 애매한데. 아니면 오빠 1층에 상가 있고 그 위에 원룸 있는 건물은 어때?”


“아, 근린주택? 그게 좋겠다. 1층을 아예 여보 개인 작업실처럼 쓰는 거지”


“오, 좋다 좋다. 더 근사해지겠는 걸. 1층을 그림이랑 글쓰기 작업실로 사용해서 정규 수강생을 받으면 되겠다. 원룸 임차인들 모아서 저녁에 파티도 종종 하고. 임차인들은 1층 공간을 무료로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거지. 캬, 너무 멋진다 오빠”


“그러게. 여보가 지금까지 구상했던 사업 아이템 중에 가장 여보랑 잘 어울리고 현실적이야. 나도 미래를 함께 생각하면 그림이 잘 그려져”


“그렇지? 오빠. 나도 그렇게 지낼 생각 하니까 가슴이 설레어. 오빠 말대로 목표도 선명하게 잘 그려지고. 너무 행복하다. 오빠, 나 이렇게 좋아하는 일로 돈까지 벌 수 있는 아이템 찾는데 진짜 오래 걸렸다. 그렇지?”


그랬다. 좋아하는 일로 돈 버는 걸 로망으로 삼은 지 1년 반이 흘렀었다. 낮아진 자존감을 붙들어 가며 치열하게 고민했던 길고도 힘든 시간이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을까. 좋아하는 일을 간단히 얘기하면 취미다. 취미 만들기가 언제부터 이토록 어렵고 중요한 일이 되었나. 성공의 기준은 낮고 넓어졌다. 이런 사회를 미리 준비하지 못했던 내 또래의 사람들은 혼란스럽다. 안정적인 직장에서 정년퇴직하는 게 최고라고 하지 않았었나. 이제 와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라고 하니, 혼란스러웠다.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몰랐다. 퇴사는 요즘에 유행이 아니란다. 회사 다니면서도 다른 일을 많이 할 수 있다고 한다. 남들은 그렇게 잘 살고 있는데 나만 할 줄 아는 게 없는 기분이었다.


사회에서 나름 표준으로 여겨지는 길을 걸어서 공기업에 입사했다. 안정적인 직장 잘 다니는데 취미가 대수냐 생각하겠지만 나도 이제야 알았다. 취미가 이렇게 중요한 줄 말이다.

취미는 특기를 만들 수 있는 출발점이었고 특기는 정체성을 뿜어내는 비밀의 열쇠였다.


"어떤 이름을 부르기 전까지 막연했던 무언가가 하나의 단어로 정의되는 순간, 겹겹이 쌓여있던 안갯속을 지나 청명한 길을 걷는 기분(퇴사 말고 사이드잡, 원부연)"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하나의 문장으로 정의할 수 있으면 좋겠다. 서른이 넘은 어른이가 1년 반 동안 ‘나다운 일’을 찾아 헤맸던 여정을 공개한다. 나답게 조금 더 행복하게 살고 싶은 어른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기를 바란다. 그럼, 중요한 만큼 어려운 취미 만들기 여정을 시작해보자. Let’s get it!


* 취미 :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표준국어대사전)

@brainbabb,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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