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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하는 사유 Nov 09. 2018

이상형이 어떻게 되세요?

이별 후에 비로소 완성되는 것

  입영통지서가 날아온 날, 네온사인이 밝게 빛나는 거리에서 서럽게 울었다. 내가 살던 원미동은 재개발구역이었다. 낮보다 아름다운 밤을 보내기 좋았던 부천역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중이었다. 나는 내가 즐겨가던 냉면집 위의 오락실이 공사 중이라 슬펐고 아래층의 옷가게가 페인트칠을 다시 해서 슬펐다. 다시 돌아왔을 때 모든 것이 변해있지는 않을까. 우리 집, 내가 즐겨가던 술집과 카페, 내가 아끼던 가로등이 사라지면 어쩌지? 아직 글로 남겨놓지 못한 수많은 골목과 그 냄새가 사라질까 무서워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밥보다 과자를 좋아했던 짝꿍과의 산책길은 내게 첫 떨림이었다. 나는 아직도 사랑을 모르기 때문에 그녀를 첫사랑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방과 후, 집에 돌아오면 그녀의 냄새를 떠올리고 그녀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일부로 지우개를 떨어뜨리고 그녀의 교복에 내 옷깃이 스치길 바랐던, 사랑이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 이제와 지레짐작할 뿐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상형이 어떻게 되냐는 질문을 받으면 과거 짝꿍의 모습이 떠오른다. 불량식품 같았던 그때의 추억. 입안에 넣는 순간 퍼져나갔던 그 달달한 냄새는 어느새 진한 향기로 남아있다. 내 기억 속에 살고 있는 짝꿍은 눈부시게 하얀 교복을 입고 있고, 그녀의 등 뒤에는 작고 귀여운 두 개의 날개가 달려 있다.      


  첫 떨림 이후의 연애도 마찬가지였다. 연애는 언제나 솜털처럼 부드럽고 달짝지근했다. 코를 찡긋거리는 버릇이 있던 이와의 만남. 댄스음악에 발을 가만두지 못했던 그다음의 만남. 그녀들이 그녀들일 수 있는 수많은 이유가 내게는 떨림이었다. 전혀 공통점이 없었던 몇몇 연애를 거치며 내 이상형이 비단 얼굴과 성격으로 단정 지을 수 없는 무엇인가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입영통지서를 받은 날 내 이상형은 확실해졌다.       

  

  스스로가 너무 한심하다고 느껴질 때,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그녀들은 나를 왜 좋아했을까? 길다고 하면 충분히 긴 시간이 지난 지금, 그녀들은 나를 어디서 다시 떠올릴까?     


  나는 쉽게 떨림을 느낀다. 별 거 아닌 한마디에 웃어주고, 내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면 나는 그녀의 눈동자에 갇혀버린다. 그러나 관계를 이어가는 건 그 이후의 문제다. 불쏘시개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불을 키워줄 바람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상실의 시대 속, 나오코는 말한다. 


  나를 언제까지라도 잊지 말아 줘. 내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걸 기억해 줘.   

  

  불길에 몸을 맡기고 불어올 바람을 온몸으로 맞는다. 함께 걷다 발이 걸려 넘어졌던 길에서 나를 추억하는 사람. 그 길을 새롭게 포장할 때 눈물 흘리는 사람. 내가 없던 그 길도 사랑하는, 그런 사람. 내게 그런 바람이 불어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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