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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하는 사유 Nov 09. 2018

냄새나는 여자를 만났다

눈물 나리만치 지독했던 향기

    그녀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며 관계에서 손해 보지 않기 위해 자위했던 그때의 나를 반성한다. 가슴 깊숙이 박힌 송곳을 덤덤히 뽑아내던 그녀를, 피가 옮겨 묻을까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던 내가 과연 변화시킬 수 있었을까.    


  4년 전, 어느 여자를 만나고 있을 때의 일이다. 그녀는 내가 살면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부류의 인간이었다. 그녀는 지독히도 아름답고 징그러웠으며, 날카로우면서도 부드러웠다. 그 시절의 나는 그녀의 퇴폐적인 매력에 푹 빠져서 합리적인 판단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이제부터 그녀를 A라고 하겠다.     


  A는 강남역 근처에서 매달 백만 원의 사글세를 내며 원룸 생활을 하는 중이었다. A는 주민등록증의 이름과 불리고자 하는 이름, 일하면서 쓰는 이름이 다른 여자였는데 저녁 늦게 출근해서, 날이 밝으면 목돈과 술 냄새를 안고 퇴근했다. 그녀는 향기가 너무 강해 주변 사람의 머릿속을 헤집어놓는 매력이 있었다. 섬유유연제와 값비싼 화장품 냄새, 그녀만의 독특한 살 냄새. 출근하기 전 꼭 챙겨 먹는 잉글리시 블랙퍼스트의 향, 그 모든 것들이 그녀의 이름을 대신했다. 그러면서 향수는 지독히도 싫어하던, 그녀는 그런 여자였다.      


  A도 내게 관심이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이 부분에 관한 기억은 아주 주관적이라는 점을 유념하길 바란다. A는 내게 사랑한다고 말했고, 사랑을 말하는 목소리와 눈빛이 꽤 달콤했다. 인생은 돈이 전부라고 생각하던 그녀가 날 만나고 나서부터 일을 한동안 가지 않았다는 점, 매주 백만 원 남짓의 돈을 썼다는 점도 내 확신을 뒷받침해줬다. A는 내가 순수해서 좋다고 했다. 일하면서 만나는 남자들과는 다른 아이라고, 나와는 제발 깊은 관계를 맺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나도 그녀가 바라는 만큼 순수한 남자가 되고 싶었다. 그래야 그녀에게서 베이비파우더 같은 냄새가 나지 않을까 생각했다.    

 

  ‘관찰’이라는 버릇은 정말 무섭다. 나는 사람을 만나면 나만의 기준에 맞춰 줄 세우고 판단하는 버릇이 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을 수첩이든 노트북이든 어딘가에 기록으로 남겨놓는다. A와 한 계절을 같이 보냈을 무렵, A의 독특한 매력을 글로 옮겨 담고 싶다는 욕심이 일었다. 나는 A가 잘 때마다 몰래 노트북을 켜 A를 닮은 한 여성에 관해 글을 써나갔다. 내가 생각하기에 A의 감정은 불완전했다. 그런 심리 상태를 갖게 되려면 무슨 경험을 해야 할까, 라는 고민이 끝없이 이어졌다. 결국 내 글 속의 여성은 어릴 적에 아버지에게 상처 받고, 구역질 나는 일련의 사건 때문에 순수함을 잃어버린 존재로 탄생했다.     


  그 일이 일어난 날도 마찬가지로 글을 쓰는 중이었다. A가 수면제를 먹고 잠든 걸 내 두 눈으로 확인한 후였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 한 시간이 지났을 무렵,     


  "뭐 하고 있어?"     


  자는 줄만 알았던 A가 내게 말했다. 나는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노트북을 닫고 A의 옆에 같이 누웠다. 그냥 일하고 있었어. A가 말릴 새도 없이 일어나 내 노트북을 켜고 내가 쓰던 글을 찾아내 읽기 시작했다. 글 속의 여성은 A와 이름이 달랐다. 그러나 A는 글 속의 주인공이 자신이라는 것을 금세 알아차렸다. 너 뭐야. 자신을 글의 소재로 썼다는 것 때문에 배신감을 느낀 듯했다.     


  "내가 주인공이야?"     


  아니라고 수십 번은 말했다. 그저 너를 닮은 사람이라고. 그 말이 화근이었다. A는 태도를 바꾸더니 왜 자신이 아니라 자신을 닮은 누군가에 관해 글을 쓰느냐는 비난을 쏟아냈다. 나는 당장 글을 삭제하겠다고 했고, 그녀는 왜 삭제하려 하냐며 또다시 쏘아붙였다. 어떻게든 맞춰주려 했지만 그녀의 분노에는 기준이 없었다. 그녀는 화를 내고자 마음먹으면 화를 내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결국 A가 원하는 대답을 찾지 못했다. 그것이 그녀가 원하는 결과였다. 침묵이 이어졌다. 글을 읽고 또 읽었다. 그녀가 울었고 나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헤어졌다. 서로의 집에 남아있던 각자의 흔적은 택배기사를 통해 전달됐다. 질렸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내 글이 이별의 방아쇠였던 것은 분명하다. 택배 상자가 집에 도착한 날, A가 내 글을 보며 울었던 기억이 잠깐 떠올라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내게서 살면서 맡아본 가장 고약한 냄새가 나던 날이었다.    

  그녀와의 마지막이 안타깝지는 않았다. 그 시절의 내가 느꼈던 감정은 ‘안타깝다’가 아니라 ‘아깝다’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녀가 매달 내게 썼던 돈은 기억나지 않았다. 그녀와 씀씀이를 맞추기 위해 친구에게 빚졌던 100만 원 남짓한 돈만 떠올랐다.     


  ‘아깝다, 아깝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이기적인 감정은 안정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내게는 A와의 만남이 결코 손해가 아니었다는 확신이 필요했다. 내 옷에서 아직 그녀의 섬유유연제 냄새가 빠지지 않았을 때였는데, 고민 끝에 결국 돈이 아깝지 않을 방법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나는 그녀와의 잠자리에 값을 매겼다. 10만 원, 20만 원, 30만 원……. 기억을 더듬을수록 액수는 불어났다. 이기적이고 구차한 혼자만의 싸움이었다. 싸움은 기억이 더럽혀질 만큼 더럽혀지고 나서야 끝났다. 그저 한 마리의 짐승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다. 나는 그녀의 남자가 아니라 그녀의 손님이었다. 그렇게 A가 나를 좋아했던 이유가 무너졌고, 나는 한동안 거울을 볼 수가 없었다.    

  

  그녀는 내가 순수해서 좋다고 했고, 그래서 나는 더 추악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나는 왜 내게서 나는 고약한 냄새를 맡지 못하고 그녀에게서 베이비파우더 냄새가 나길 바랐을까. 


  우리는 모두 각기 다른 냄새가 난다. 누군가의 냄새가 당신의 코를 고약하게 찌른다면, 그건 아직 본인에게서 어떤 냄새가 나는지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만에 하나 자신에게서 달콤한 냄새가 날지라도 내게는 그렇지 않다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그래야 내가 기분 좋게 잠들 수 있으니까 말이다. 


  오늘의 내게서는 무슨 냄새가 났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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