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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하는 사유 Nov 09. 2018

남자가 많아 외로운 여자

만남과 반비례하는 '고독'에 대한 이야기

  아버지는 꼭 TV를 틀어놓고 주무신다. 너무 슬프게도,

  아버지가 웃고, 말하고, 옆으로 누워 주무실 때마다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열 명의 친구보다 믿을만한 사람 한 명이 있는 게 좋다는 얘기를 간혹 듣는다. 우리가 애타게 찾는 그 한 명들은 다 어디에 있을까.


  동네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할 때의 일이다.

  자주 오는 여자 손님이 한 명 있었다. 사장님 말로는 나와 동갑이라고 했다. 그녀는 매주 한 번씩 찾아와 꽤 많은 안주와 달달한 술을 시켰다. 키는 나보다 조금 작은 편이었고, 샛노란 머리카락이 눈에 띄는 손님이었다. 안경을 놓고 와 안경 없이 일을 하던 날이 있었는데, 그녀는 맥주를 따르는 내게 안경이 어울리니 내일부터는 다시 안경을 꼈으면 좋겠다며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그녀는 몇 가지 이유 때문에 기억에 남는다. 

  첫째로, 내가 일하던 호프집은 동네 어르신들이 즐겨 오던 곳이라 내 또래의 여성이 손님으로 오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사장님의 시원찮은 선곡 센스 때문에 애초에 젊은 손님이 없기도 했다. 

 둘째로, 그녀는 예뻤다. 그녀에게는 ‘은근하게 예쁘다’는 표현이 적적할 것 같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지만 내가 그녀를 기억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녀와 함께 오던 사람들 때문이다. 그녀는 꼭 두 명 이상의 남자와 가게를 찾아왔고 그때마다 그녀는 홍일점이었다. 함께 찾아오는 남자들은 매번 다른 사람들이었다. 오며 가며 들었던 그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그녀는 그 동네에서 태어나 어딜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우리 호프집 옆의 치킨집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으며 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 것 같았다. 남자친구는 없었다. 웃음소리 때문에 주변 손님들이 불편한 기색을 비치는 경우가 허다했는데, 그녀는 별로 개의치 않는 듯 보였다.    


  한 번은 그녀가 다른 날보다 술을 많이 마셔서 잔뜩 취해 있었다. 이 날도 마찬가지로 테이블에는 세 남자가 있었다. 그녀는 시시콜콜한 얘기를 늘어놓더니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는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참 놀랍게도, 남자들은 그녀에 대한 언급 없이 한참을 떠들다가 그대로 술집을 나갔다.      

  사장님은 테이블을 치우라고 했고, 나는 그녀의 어깨를 흔들었다. 깨워주길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는 바로 고개를 들었다.     


  "다 어디 있어요?"


  "갔어요."

    

  그녀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잠시 뒤에, 아까 자리에 없던 새로운 남자가 오더니 그녀를 부축해 술집을 나갔다.     


  그 뒤로도 그녀는 몇몇 남자들과 꾸준히 호프집을 찾아왔다. 그들의 테이블에는 전혀 무게감 없는 가십거리뿐이었다. 나는 두 달 뒤에 아르바이트를 그만뒀다. 사장님께 그동안 감사했다는 인사를 하고 나오는 길에 그녀가 일한다던 가게의 앞을 지나갔다. 그녀는 닭을 튀기고 있었고, 그게 내가 기억하는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다.


  외롭다는 말을 아끼는 이들에게서 외로움을 느낀다. 그녀는 왜 세 남자에게 어떻게 나만 두고 갈 수 있냐며 투정 부리지 않았을까. 기회가 된다면 그녀와 단 둘이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언젠가는, 그녀가 TV를 끄고 잘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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