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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하는 사유 Nov 15. 2018

그는 전 여자친구가 죽었다고 했다

불행을 동경하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 건너편에 숨어 소보로 빵을 먹는 도중에 등교하던 짝꿍과 마주쳤다. 수업이 끝나고 짝꿍과 그 부모님, 남동생이 우리 집 앞에 찾아왔다. 다음날, 나는 짝꿍의 부모님이 건네준 즉석밥과 반찬을 먹고 등교했다. 나는 그 아이를 짝사랑하고 있었다. 


  학창 시절에 친구와 천 원짜리 과자를 손에 들고 운동장을 거닐었던 적이 있다. 친구는 내 옛이야기를 들으며 사람들에게 흥미로운 얘기를 해줄 수 있어 부럽다고 했다. 스무 살에는 부모님이 용돈으로 20만 원을 보내려다가 실수로 200만 원을 넣어주는 친구와 술을 마셨다. 글을 쓰는 친구였는데, 주기적으로 술을 사 줄 테니 그때마다 내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경험에 대한 동경. 나는 그들의 태도가 무례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깊은 유대감을 느꼈다. 오히려 그 친구들이 있지도 않은 과거를 떠들어대며 '불행 배틀'을 신청해왔다면, 차마 다 듣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도망쳤을 것이다. 나는 슬픈 기억을 부러워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그 나름의 슬픔을 느꼈다. 


  아는 사람의 얘기를 들려주고 싶다. 친구가 A라는 지인과 만난 날이었다. 친구는 평소와는 다른 A의 말투와 표정 때문에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다. A는 별 일 아니라는 듯이 대답을 피하다가, 슬며시 오늘이 전 여자친구의 기일이라는 얘기를 꺼냈다고 한다. 여자친구가 내게로 뛰어오다가 차에 치여 죽었어. 친구는 절대 네 탓이 아니라며 진심 어린 위로를 해줬다.

  그런데 알고 보니 A의 전 여자친구는 멀쩡히 살아 있었고, 그들의 이별 이유는 사고가 아닌 '잠수'였다. 이별 중에서도 최악의 유형으로 분류되는 이별을 겪었다니 어찌 보면 그것도 위로받을 만한 일이었을 것이다. 


  자신을 게으르고 한심하다 여기면서 소설 속의 주인공이 되길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달콤한 해피엔딩에는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알기 때문에, 행복의 대안으로 불행을 선택한다. 불행은 맘대로 찾아와 내게 목줄을 걸어버린다. 노력 없이 드라마 속 비련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기회. 오늘도 한 편의 소설을 쓰고 있는 이들에게는 얼마나 큰 유혹인가. 그래서 과거를 부정했던 A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한다. 불행에 끌려다니기. 나 역시 즐겨 사용했던 삶의 작문법이다.


  그러나 꾸며진 불행은 그 불행을 믿고 공감해주는 사람을 만나면 무너지고 만다. 상대방의 믿음으로 인해 만들어진 '불행한 나'는 '불행을 연기하는 나'와 상충되며, 진짜 내 모습인 '불행을 꿈꾸는 나'는 두 곳 중 어디에도 자리 잡지 못한 채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 끝에는 불안과 자책, 내가 간절히 원했던 '순수한 불행'이 깔려 있다. 


  불행을 기다리고 과거를 부정하는 비참한 행위를 그만뒀으면 좋겠다. 그건 술을 마시자는 친구의 연락, 짧았던 연인과의 입맞춤, 내게 다가왔던 모든 사람들의 노력을 무(無)로 되돌리는 행위이며 우리를 사랑하고, 사랑했던 이들에 대한 무시임과 동시에, '순수한 불행'에 끌려다니며 행복한 결말을 부르짖는 이들에 대한 모욕이다. 


  비련의 주인공이 되길 꿈꾸는 당신. 당신은 이미 충분히 불행하다는 것을 깨닫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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