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유하는 사유 Nov 25. 2018

무서운 꿈을 꿨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꿈

  괴수나 악마는 나타나지 않았다. 내가 왜 여기 있는 건지, 무엇을 하려던 건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럼 나는 갑자기 도망치기 시작한다. 나를 쫓아오는 건 실체화된 '공포'였다.  


  가끔씩 핸드폰의 메모장을 훑어보면 나도 몰랐던 장문의 메모들을 발견한다. 꿈은 아주 잠깐이라도 생각을 멈추면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에 글로 남겨놓는다. 이상하게도 꿈은 항상 설명하기 어려운 '공포'를 내재하고 있다. 남의 꿈 얘기만큼 재미없는 얘기도 없지만, 내 꿈을 예로 들어 우리의 꿈에는 항상 공통된 두려움이 있다는 얘기를 하고자 한다. 아래는 내가 꿨던 꿈 일기의 일부다.  


2017년 3월 15일

  ······그녀는 친구와 음식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어쩐지 '국수'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가 국수를 싫어한다고 말했던 기억이 얼핏 나서 국수를 싫어하지 않냐고 물어봤다. 그녀는 국수가 아니라 냉면을 싫어한다고 했다. 나는 그녀와 관련된 것을 기억해내지 못한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다시는 까먹지 않으려고 메모장을 꺼내 적었다. '그녀는 국수를 싫어한다.'


2017년 12월 7일

  ······그녀는 자신이 'A'라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정말 오랜만이다!

  "A라는 이름이 워낙 많아서······"

  그녀는 내가 자신을 검색할 수 있게 몇 가지 정보를 알려준다. 찾아보니 내가 알던 A가 아니다. 우리는 정말 구면인 걸까?


2018년 11월 2일

  ······내가 살던 세상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나는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 건가. 한 경찰이 내게 묻는다. 여기서 뭐하고 계십니까? 술 마시고 집에 가는 길이었습니다. 이게 꿈일 거라 믿고 내 정신을 아득한 공간에 넘어뜨린다는 상상을 한다. 세상이 뒤바뀐다.

  ······반딧불이 별빛처럼 쏟아지며 내 눈을 어지럽힌다. 돌고래 떼가 땅 위로 튀어 오른다. 아름다움이 너무 치명적이라 그런 걸까. 공허함을 느낀다. 옆의 그녀가 곧 떠날 것이라는 생각에 외로워 미치겠다. 내가 무슨 행동을 취하기만 해도 사라질 것만 같아 두렵다.

  ······경찰이 그녀를 찾는다. 그녀는 저 멀리 공터 구석에서, 배 나온 경찰의 취조를 받고 있다. 나는 공터의 중앙에 홀로 서 있다. 취조가 끝나자 그녀가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 지독하게 외로워진다.


  꿈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불안을 안고 있다. 그것은 짝사랑을 고백하는 것과 비슷하다. 나의 감정은 확실하지만, 상대방의 감정에는 확신이 서지 않는 상황. 그래서 어떤 대답을 듣게 될지 알 수 없다는 불안감. 예측 불가능성에서 오는 불안의 감정은 기억과 깊은 연관이 있다. 특히나 나의 불안은, 앞으로 벌어질 내가 모르는 '상황' 보다 '모른다는 사실'에 유난히 집착한다.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살인자에게 쫓기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모른다는 사실'에 집착한다는 것은, 그녀가 붙잡히기 직전에 '살려줘!'라고 소리치지 않고 '우리 왜 도망치는 거야?'라고 말할까 봐 두려운 것이다. 그것보다 더한 두려움이 있다면, 그녀가 '너는 누군데 나랑 같이 도망치고 있는 거야?'라고 말하는 것이다.


  꿈의 내용으로 짐작해보건대, 나는 고독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 잊혀지는 것은 죽음과 같다.

  사랑하는 이가 나를 잊고 나마저 그를 잊게 된다면, 우리의 시간은 사라진다. 얼마나 많은 반딧불이 쏟아졌는지, 파도처럼 춤을 췄던 게 돌고래였는지 상어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잊는 순간, 함께했던 추억을 증거 불충분으로 놓아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꿈은 우리가 깨어있는 동안 보고, 듣고, 느꼈던 모든 감각을 다시 학습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막연한 두려움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그 해결책으로 꿈 일기를 추천하고 싶다. 두려움은 언제나 무지에서 샘솟는다. 꿈 일기를 통해 당신의 막연한 두려움이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고, 두려움을 반복 학습하는 것이 현실 속 두려움을 해소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나 또한 꿈속에서 끊임없이 학습하며 고독에 대한 내성을 쌓고 있는 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는 전 여자친구가 죽었다고 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