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엄마에게 마음을 표현한 날

엄마에게 안전한 경계를 선언하다.

by 꿈꾸는왕해



엄마를 생각하면 하염없이 슬프고, 짠하다.

가부장적인 남편과 살면서 시어머님을 20년 모시고,

애들 키우면서 일도 해야 하고 엄마의 삶은 참 버거웠을 거다. 그런데 그녀가 낳은 딸은 ‘할 말 다 하는 MZ세대’에 속한다.


갈수록 여성인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남녀가 평등한 사회가 되어가지만 과거를 돌아볼수록 여성들의 삶은 매우 고달팠다.

그리고 ‘할 말 다 하는 세대’인 나도 다른 딸들처럼,

엄마의 결핍을 채우면서 살아왔다.


나는 엄마가 온순한 성격의 사람이라서
‘엄마랑 싸우고 자란다’는 아이들의 말을 공감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렇게 모두에게 맞추기만 하다 보니 엄마의

마음엔 큰 구멍이 생겨났나 보다.

갱년기를 기점으로 엄마가 술을 많이 마시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아빠와 경제적인 이유였을 거다.


외향적인 성격의 아빠는 집 안보다 밖을 좋아했다.

어릴 때 나는 아빠의 긍정적이고 유쾌한 성격이 재미있어 아빠를 매우 좋아했다.
그런데 엄마가 아빠 때문에 힘든 것을 계속 바라보다 보니 어느새 아빠를 미워하는 딸로 자라나 있었다.


내가 결혼 생활을 하면서 엄마, 아빠를 바라보니

둘은 성격 차이가 너무 컸다.
그래서 서로가 채우지 못하는 결핍이 있던 것 같다.

나는 그들 사이에 불안정 애착을 가지고 크고 있었다.


어릴 적을 떠올려보면 우리 가족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갑자기 시골로 이사를 갔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정신적인 충격으로 치매가 온할머니를 모신다는 이유였다.

과거는 지금에 이르는 과정이 되어서 후회를 안 하기로 하지만, 우리 가족을 위해서는 이때의 선택이 잘못되었던 것 같다.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일이 왕성했던 아빠는 시골로 간 뒤 일자리를 잃어서 그때부터 엄마가 생계를 유지하기 시작했다.

아빠도 노력은 했지만, 바로 IMF가 터지고 쉽지 않았다.

본인의 일에 자신감이 있던 아빠가 변하기 시작한 게 그 무렵이었다.


아빠는 엄마의 인정을 못 받으니 밖으로 돌고 엄마는 더 외로워지고, 그들은 같이 살면서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봤다.


내가 중학교에서 고등학생 올라갈 무렵, 엄마, 아빠가 정말 많이 싸웠다.

큰 사건이 생기고, 일단락이 되었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모두 상처가 생겼다.

그렇게 내 청년기 시기는 한없이 불안하고, 두려웠다.


그 불안감이 오래갔다

학교에서도, 일터에서도 연애에서도 티가 났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럽게 내 배우자는 아빠의 반대 성격의 사람을 원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다행히도 자상하고 듬직하고 책임감 있으며 정서적으로 안정된 남편을 만나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다.


살면서 처음으로 마주하는 안정감.

처음엔 어색했지만 날이 갈수록 편안해졌다.


그런 나와 다르게 엄마의 삶은 똑같이 버거웠나 보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나에게 전화가 왔다.

차라리 “아빠 때문에 술 한잔 했어”라고 털어놨더라면
편하게 대화하고 풀어줄 수 있었는데,
엄마는 자신이 술을 마신 걸 수면 위로 드러낸 적이 없다.

그 이유가 늘 궁금했지만, 엄마가 말하길 원치 않아서 늘 그렇게 걱정에, 추측만 하는 나날이 늘어갔다.


그런데 며칠 전에 일이 생겼다.
내가 수술 때문에 입원했다 퇴원하는데,
엄마가 나에게 “아프냐?”는 말을 한 번 묻더니,
또 아빠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너랑 아빠는 병원에 너무 많이 간다... 증상은 없는데 아프다 해서 검사비만 나갔다.”

엄마 입장에선 마음도 써야 하고 지출도 커서 힘든 상황이라는 걸 이해는 하지만 굳이 왜 지금일까 싶었다.


나는 몇 년을 지켜보다가 수술한 거고 지금 너무 아픈 상황이었다.

또한 스무 살 때부터 내가 알아서 살고 경제적 지원을 받지 않았다.

결혼 전에도 갑상선암 수술을 하고, 결혼생활하면서도 자잘하게 아파서 이것저것 수술을 많이 했던 나는 이번에도 제법 병원비를 낸 상태였다.

그러니까, 나도 여유가 없었다

내가 이런 상황에도 엄마는 본인의 말만 하는구나 싶어서 몹시 서운함이 몰려왔다.

나는 그런 엄마에게 처음으로 마음을 드러냈다.

그동안은 엄마가 힘든데 더 힘들어질까 봐 참았는데

더는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늘 이런 패턴의 전화가 너무 힘들다”

“나는 엄마, 아빠 걱정할까 봐
아픈데도 아프다고 말하지 않고 괜찮다고만 하는데,
왜 엄마는 여기서 아빠 얘기를 꺼내?
나는 매번 엄마 위주로 흘러가는 대화가 듣기 힘들고 너무 서운해.”라고 말했다.


속으로는

‘엄마의 삶에는 긍정이 없어?’
‘즐거운 시간이 없어?’
‘나는 맨날 엄마 힘들고 술 마시면 전화받는 사람이야?’

'엄마가 전화만 오면, 또 무슨 일이 있을까 봐 걱정이 돼'

마음속에서는 수많은 말이 쏟아졌지만 다 하지 못했다


그간 여러 가지 일로 내 감정을 쏟아내듯이 말하면

나중에 더 미안해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애써서 서운하다고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뒤로 며칠 생각을 정리한 뒤에 엄마에게 장문의 글을 보냈다.



그동안 나는 20여 년을 엄마의 결핍을 채우는 사람으로 살았던 거 같다.

이젠 나도 안정을 얻고 싶다고 말하면서 내내 힘들었는데 20년 만에 처음 표현한다고, 아빠와 엄마의 일은 둘이 이제 알아서 했으면 좋겠고 나는 내 딸에게 그런 불안감을 물려주기 싫다고 선언했다.




엄마가 상처받을까 봐, 엄마의 삶이 힘들까 봐,
엄마만을 생각하던 딸이 20년 만에 처음으로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하고 싶은 말을 해놓고 나니 걱정과 후련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떨리는 마음으로 엄마의 답장을 기다렸는데,

엄마가 많이 미안하다고 답을 보내왔다.


“내가 언제?”라고 되묻지 않는 엄마여서, 그것만으로도 고마웠다.

아직은 엄마랑은 어색하다, 그렇지만 이게 서로 좀

좋아지는 방법 아니었을까?

안전하게 경계를 긋는 것 말이다.



나는 이제 정말 편안해지고 싶다.
관계든 가족이든, 힘든 일이 없을 수는 없지만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하며 오랜 시간 반복된 일들은 분명히 괴롭다.

하지만, 괴로움만 느끼고 용기 내서 표현하지 않는다면, 상대와 내 사이가 달라지지 않는다.


이제는, 다른 사람의 마음보다는 나를 먼저 생각하자.
내가 힘든 순간에 경계를 세우고,

표현하며, 내 안전선을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렇게 갈수록 가벼워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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