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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은WhtDrgon Dec 10. 2022

하얀용 세계관AMA 제작 강의 요약본 1.

김동은WhtDrgon. 221201 

이 내용은 하얀용 세계관 비공개 강연의 내용 1차 정리본입니다. 


1강. 커뮤니티와 세계관 개요

1강 – OT. 전체 내용의 아우름. 

2강 – 세계관 개요와 제작법

3강 – 핵심 키워드, 반응 키워드

4강 – 메시지와 장면, 커뮤니티 진입경로 

5강 – 커뮤니티의 의미, 커뮤니티·메타버스·세계관의 관계


[커뮤니티: 이웃 사람은 멀어졌고 캐릭터는 가까워졌다]


국내 최대의 패션 플랫폼 중 하나인 ‘무신사’는 알고 보면 ‘무진장 신발 사진 많은 곳’의 줄임말이다. 신발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로 시작해 커머스로 발전한 것이다. 한편 네이버의 자회사, 중고거래 플랫폼인 ‘크림’은 지난해 네이버카페 ‘나이키매니아’를 80억 원에 인수했다. 나이키매니아는 스니커즈에 대한 정보글이 분 단위로 공유되는 커뮤니티로, 100만 명이 넘는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기업들에게 커뮤니티란 직접 만들거나, 돈을 들여서라도 가져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렇다면 직접 만들든, 돈을 주고 사든 좋은 커뮤니티를 판단하는 기준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커뮤니티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방식을 보면 각자 다른 의미로 쓰는 경우를 마주한다. 김 이사님이 생각하는 커뮤니티, 박 과장님이 생각하는 커뮤니티, 최 인턴이 생각하는 커뮤니티가 제각각인 것이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 커뮤니티의 양상은 달라져왔기 때문이다. 


- 오프라인 커뮤니티

커뮤니티를 사전에 검색하면 ‘공동체, 지역사회를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즉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모임을 떠올리는 것이다.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공통점이 많아진다. 같은 지역에 살고, 같은 언어를 쓰며, 같은 문화권에 사는 사람이다. 이를테면 우리집에서 담근 김장 김치가 많을 때 김치를 나눠주는 사이. 한국에서 김장 김치를 나눠주면서 옆집 사람이 한국어를 못하고 프랑스어를 쓰면 어쩌나 걱정한다든지, 김치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면 어쩌지 걱정하지는 않는다. 물리적인 가까움은 많은 공통점을 전제한다. 가까이 사는 사람이라는 것만 알면 처음 만나는 사이라고 해도 이미 상대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아는 셈이다. 나와 비슷할 테니까.

- 온라인 커뮤니티

그렇다면 물리적인 가까움이 없는 온라인에서 커뮤니티 개념은 어떨까? 제일 먼저 빼야 할 항목이 ‘같은 지역에 살고’다. 디지털 세상에는 거리 개념이 없으니까. 처음 만난 상대의 외모와 성장환경, 사고방식은 천차만별이다. 물론 이때에도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지구 건너편에 사는 사람과도 교류하며 온라인 커뮤니티로 발전할 수 있다. 이때 언어는 한국어, 영어, 중국어 등을 말한다기보다는 특정 관심사를 공유하는 집단에서 공통적으로 쓰는 어휘를 말한다. 파스타를 좋아하는 사람이 모이면 링귀네, 알 덴테 같은 이탈리아어를 알 수밖에 없다. 아이돌 덕후라면 스밍, 생카 등의 용어를 익숙하게 쓴다. 이러한 단어들이 커뮤니티마다 존재한다. 즉, 온라인에서 커뮤니티란 동일한 관심사를 기반으로 같은 단어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 메타버스 커뮤니티

여기서 메타버스와 아바타 등의 개념을 더하면 커뮤니티의 구성원은 사람이 아니라 ‘캐릭터’로 바뀐다. 동일한 관심사를 가진 캐릭터가 모여 커뮤니티를 이룬다는 말은 어색하게 들린다면 부캐나 페르소나를 사용한다고 생각해보자. 직장에서의 나와 혼자 있을 때의 내가 다르게 행동하듯이, 가상 현실에서의 나도 부캐를 내세워 커뮤니티의 일원으로 활동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메타버스 커뮤니티에서 캐릭터는 오프라인에서의 개인과 무엇이 다를까. 

우리가 오프라인에서 사람을 식별하는 방법은 외모와 성격, 말투 등이다. 여러 요소들 중 개인차가 뚜렷하고, 쉽게 바꾸기 어려운 것들을 사용한다. 그런데 메타버스 세상에서는 이 모든 것들을 마음대로 꾸며내고 바꿀 수 있다. 아니 꾸며내야 한다. 캐릭터를 만들지 않으면 메타버스에서 나는 다른 사람에게 인식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존재하기 위해서는 나에 대한 정보를 생산(전달)해야 하는 것이다. 가령 SNS에서 한 계정을 발견했는데 프로필 사진도 없고, 게시물도 없고, 누구도 팔로우하지 않는 사람의 정보는 알 방법이 없다. 커뮤니티의 일원은커녕 ‘유령계정’이라 불리며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한다. 메타버스에서의 나는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창작함으로써만 존재한다. 모두가 크리에이터가 되어야 한다.


[커뮤니티의 주재료, 세계관]

가상 세계에서 캐릭터(=크리에이터)로 존재하는 순간 비로소 다른 캐릭터들과의 접점이 생긴다. 그럼 어떤 사람과 교류하고 싶은가? 이때 등장하는 것이 세계관이다. 세계관이 비슷한 사람이 교류 대상 1순위이기 때문이다. 세계관이라는 단어를 한자 그대로 풀어보면 세상을 보는 관점을 뜻한다. 세상이라는 단어의 범위는 너무 넓으니 범위를 좁혀보자. ‘사과’라는 단어를 듣고 아담과 하와, 선악과를 떠올리는 사람은 기독교 세계관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한편 IT 기업인 애플을 떠올리는 사람은 애플 세계관을 가진 셈이다. 또, 애플 주식을 떠올리는 사람들은 투자자 세계관에 속한다. 주식에 꽂힌 사람은 무슨 얘기를 하든 결국 주식 얘기를 하지 않던가. 정리하자면, 세계관이 같은 사람이 모여 커뮤니티가 된다는 말은 구성원 A와 B가 같은 ‘같은 단어를 보고 같은 것을 떠올리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물론 꼭 ‘단어’일 필요는 없다. 이미지, 동영상, 음악 등 무엇이든 같은 대상이기만 하면 된다. 그러니까 세계관은 특정한 대상과 그 대상을 감상했을 때 떠오른 감정 또는 생각의 조합이다. 여기에 앞서 언급한 커뮤니티와 캐릭터를 조합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크리에이터는 자신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캐릭터이다. 커뮤니티는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캐릭터들의 모임이다. 

*이 정의에서 캐릭터라는 단어를 사람이라고 바꿔도 틀린 것은 아니다. 결국 세계관은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소비하는 것이니까. 다만 이때의 생산과 소비는 개인으로서의 행동이라기보다 캐릭터로서의 행동이다. 가상 세계에서 활동하는 나의 모습은 오프라인에서의 나와 비슷할 수도, 정반대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직장에서의 나와 친구들 사이에서의 나는 같은 사람이지만 다른 역할을 수행하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세계관, 크리에이터, 커뮤니티 중 기업이 가장 갖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답은 커뮤니티일 것이다. 세계관과 크리에이터는 수단에 가깝다. 커뮤니티의 요구에 따라 세계관과 크리에이터는 수정, 폐기, 교체될 수 있다. 결국 매출을 내주는 건 세계관이 아니라 고객이니까. 주도권은 고객이 쥐고 있다. 기업과 제품이 많지 않을 때에는 제품을 잘 만드는 것만으로 차별화가 가능했지만, 제품 퀄리티가 상향평준화되고 공급이 수요를 초과한 지금 시점에 차별화 요소는 결국 기업이 가진 브랜드 가치다. 기업들은 이 브랜드 가치에 열광해줄 커뮤니티를 필요로한다. 애플의 혁신과 테슬라의 비전에 열광하는 사람들처럼. 팬으로서의 고객, 수익모델로서의 세계관을 구축하려는 이유다. 

커뮤니티에 세계관이라는 은유적, 정서적 재료가 필요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단순히 특정 기업의 제품을 구매한 고객이 모여있기만 하면 기업에게 큰 이익이 되지 않는다. 브랜드에 열광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사람들, 팬이 필요하다. 열광하려면 하나의 구심점이 필요한데, 그 구심점이 제품의 성능은 아닐 것이다. 정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정서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메타버스와 세계관]

메타버스는 (그 단어가 소설에서 유래했음을 너머) 메타(Meta)와 우주(Universe)의 합성어다. 우주가 우리가 숨 쉬고 있는 현실을 말한다면, 메타는 현실 너머의 바깥을 의미한다. 흔히 ‘똑똑한 아이는 메타인지 능력이 뛰어나다’라고 할 때 메타인지란 자신이 인지력을 스스로 관찰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가장 쉬운 사례로는 “현정이는요, 배가 고파요”라며 자신의 상태를 알리는 3인칭 화법이 있다. 그러니까 메타버스는 유니버스 바깥에서 유니버스다. 메타버스에서 우리는 유니버스에 대해 대화한다. 같은 유니버스를 바라보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세계관은 너와 나를 우리로 묶는 실이다.


[커뮤니티의 작동 방식: 캐릭터 간의 정서적 신용 교환]

커뮤니티 안에 있는 구성원들, ‘우리’는 어떤 관계를 맺을까. 너와 나가 따로 떨어진 상태에서 우리가 되기 위해선, 어떤 식으로든 서로 신용해야 한다. 이때 신용은 논리적 신용과 정서적 신용으로 나뉜다. 논리적 신용이란 사실에 근거한 믿음이다. 논리적 신용을 기반으로 한 커뮤니티에서는 뉴스를 공유하거나 기업 간 이해관계에 기반한 계약 등이 이뤄진다. 

반면 정서적 신용은 논리적 근거보다 감정적 믿음이 앞선다. 정서적 신뢰를 기반으로 한 커뮤니티의 구성원들은 자신의 감정을 공유한다. 가령 ‘한국 대표팀이 월드컵 16강에 진출했다’까지가 정보라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16강에 진출한 선수들이 자랑스럽다’라는 식으로 감정을 보태는 것이 정서적 신뢰에 기반한 관계다. 기업이 지향하는 커뮤니티는 정서적 신뢰를 전제한다. 열광적인 지지는 논리적 반응이 아닌 정서적 반응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서적 신용은 각 커뮤니티의 특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애니메이션 덕후 커뮤니티에서 통용되는 단어와 정서를 기독교 커뮤니티에 가서 쓰면 난감한 상황이 벌어진다는 뜻이다. 교회에서 만난 상대방에게 ‘자매님/형제님’이라고 하지 않고 ‘여~ 히사시부리’라고 말하는 사람을 상상해보라. 커뮤니티 안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배타성을 지닌다. 그래서 초기 가입자에겐 학습 기간이 필요하다. 마치 영어 문화권 커뮤니티에 들어가기 위해 두꺼운 영단어 서적을 공부하는 것과 같다. 로마에 갔으니 로마 법을 배우는 거다. 이를 조금 어렵게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정서적 신용은 배타적 지식체계로 구성된다. 


[세계관 제작 연습 – 키워드 정리법으로 독창적인 세계관 정립하기]

지금까지 커뮤니티와 세계관의 구성요소를 살펴봤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압축하고 또 압축해 가장 작은 구성요소로 요약하면 공통 단어, 키워드만 남는다. 그렇다면 세계관을 만들기 위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 지가 분명해진다. 우리끼리 사용하는 키워드를 만들면 된다. 물론 단어를 단순히 나열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단어들 간의 결합을 통해 어떤 장면이나 상징을 만들어내야 한다. 가령 마늘과 곰을 연결하면 한국인들은 단군신화를 떠올린다. 이때 마늘은 식재료가 아니라 동물을 사람으로 만드는 상징물이자 인내의 상징으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은 ‘어떤 단어들을 연결해야 할까’이다. 하나의 정답이 있기 어려운 질문이다. 상황에 따라, 지향하는 가치에 따라,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를 테니까. 질문의 목적을 구체화해보자. 개인과 기업은 결국 매력적이고 독창적인 세계관을 구축하려 한다. 1) 충분한 관심을 받으면서도 2) 다른 누군가가 따라할 수 없는 세계관이어야 한다. 전자는 흥행 사업의 영역이므로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반면 후자에 해당하는 독창적인 세계관은 누구나 시도할 수 있다. 고유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내가 잘 알고 있는 대상인 ‘나’를 재료로 사용하면 된다. 나의 경험과 감정을 단어로 정리하고, 이를 연결하는 것이다. 세계관 제작에 있어 이러한 키워드 묶음 작업을 ‘세계관 샘플링’이라고 해보자. 세계관 샘플링을 작업하는 순서는 인식 ②리스팅 분류 군집 표현 연결이다.  


①인식 

인식 혹은 인지. 존재 그 자체를 인식하는 것이다. 이름을 붙이려면 그 존재 자체를 인식해야 한다. 점 혹은 빈공간의 인식. 게임 제작에서는 이 인식이 매우 구체적으로 나타나는데, 빛이나 사물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점'이 먼저 존재해야 한다. 가령 손에 무기를 들기위해 손 끝에 접점, 무기의 총구에서 '화염'이 존재하기 위해 무기의 끝에 '엠프티 포인트'라는 빈 점이 존재한다. 그 자리에 '화염'이라는 모델링, 그 모델에 씌워지는 이펙트 그래픽이 차근차근 붙는다. 

마찬가지로 세계관은 스토리가 아닌 재조립을 전재로 하는 서로 연결된 구조체이다. 그러기위해서는 네러티브로 흐르는 완성물이 아니라 그 이전 구성이 있어야하고, 구성을 하기위해서는 인식과 작명이 필요하다.

이 작업은 마치 서울-대전의 7시 기차편이 존재하기위해서 기차가 있어야하고, 그 기차가 다니기 위해 철로가 있어야함과 유사하다. 


②리스팅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기 위해선 전문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우리 모두는 나 자신에 대해 깊게 사유하고 이를 타인이 알아듣기 편한 데이터로 정리하는 일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막연하고 어떤 키워드를 뽑아야 할지 헷갈린다. 그래서 첫 번째 단계인 인식을 조금 쉽게 접근하기 위해 간단하고 쉬운 사실관계부터 나열하자. 나에 대해 파악하기 위해 출생부터 현재까지의 타임라인과 주소지를 적는 것이다. 주민등록 초본을 발급받으면 나오는 기초적인 정보니까 헷갈릴 염려가 없다. 그다음으로는 각각의 타임라인에 나에게 영향을 준 인물, 사건, 사물, 장소 등을 추가한다. 이때 정보의 근거로 일기장, SNS, 사진첩, 학교 성적표 등을 활용할 수 있다. 여기까지가 두 번째 단계인 리스팅이다. 


분류 

다음으로는 산발적으로 나열된 정보를 분류한다. 나이를 기준으로 삼을 수도 있고, 리더십을 발휘했던 경험을 묶을 수도 있다. 혹은 정신적인 성숙도라는 추상적인 기준을 내세울 수도 있다. 무엇을 기준으로 삼을지 정하는 과정 자체가 독창성을 만든다. 대형서점에서는 책을 인문/소설/경제 등 학술적으로 나누지만, 독립서점에서는 ‘서른 살의 불안’, ‘새로운 세상을 배우는 즐거움’ 등 서점 주인의 관점에 따라 분류하는 것과 같다. 독창적인 세계관은 매력적인 독립서점과도 같다.


군집

이렇게 나열하고 분류한 키워드는 한 사람당 최대 4천 개 정도가 나온다. 여기까지 완료되면 나에게 특별히 중요하고 의미 있는 키워드를 3~10개 뽑아 따로 적어보자. 그리고 중요 키워드들 아래에는 해당 키워드와 연결된 단어를 배치하고 연결하자. 그러면 키워드들끼리 서로 연결되며 단어의 결합을 통해 특정한 장면과 상징이 생성된다. 앞서 말한 세계관의 최소단위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가장 많은 연결점을 가진 키워드를 추려보자. 이 키워드가 곧 핵심 키워드다. 처음 뽑았던 3~10개의 키워드는 연결점의 개수를 기준으로 보면 핵심 키워드가 아닐 수 있다. 좋은 신호다. 막연한 감이나 시시각각 바뀌는 기분이 아니라 데이터를 기반으로 나의 세계관을 파악하게 됐다는 증거니까.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핵심 키워드들의 공통점이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핵심 키워드가 나에게 중요한 것들이라면, 그 대상에 대한 나의 감정이나 의견을 포착해낼 수 있다. 이를 정리하면 내 세계관의 메시지가 튀어나온다. 그리고 이 메시지를 가장 잘 드러내는 장면이나 사건 등을 꼽을 수도 있다. 세계관의 하이라이트 시퀀스가 등장하는 순간이다.

이렇게 나를 대상으로 한 세계관 제작 과정의 의미는 독창적인 세계관을 정리하는 데에 있다. 나만의 세계관을 정리해서 스스로 인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언제든 꺼내쓸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놓는 것이다. 어떤 세계관을 만들든 나만의 독창성이 들어가야 하고, 그때 나만의 핵심 키워드와 샘플링된 키워드를 활용하기 위해서다.


[세계관 제작 연습 – 경험으로부터 독창적인 표현 끌어내기] 

세계관을 펼칠 때 핵심 키워드를 있는 그대로 나열할 수는 없다. 독창적인 세계관에 걸맞는 독창적인 표현법을 연습할 필요가 있다. 감상자가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표현법을 연습해보자. 

표현력이 높으면서 학습 도구로 구하기 쉬운 것이 사진이다. 사진은 글자보다 훨씬 빠르게 흡수된다. 또 주제와 무관하게 어떤 키워드로 검색해도 충분한 양의 자료를 확보할 수 있다. 사진으로 표현법을 연습은 ①리스팅, ②열람, ③분류, ④기재 순서로 진행한다.

리스팅,열람

가령 구글이나 핀터레스트 등에서 ‘구두’를 검색해 10만 장의 사진을 본다고 생각해보자. 기억할 필요는 없다. 1초에 한 장씩 보면서 빠르게 넘긴다. 무수한 사진 중 나에게 어떤 감상을 떠오르게 하는 사진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게 어떤 종류의 감상이든 뭔가가 떠오르면 해당 사진을 별도의 폴더에 저장한다. 이렇게 1,000장까지는 하나의 폴더에 저장한다. 

분류, 기재

그리고 1,000장 이후부터 자신만의 폴더 분류 기준을 세워 저장하면 된다. 사진을 분류하고 나면 각각의 사진에 대한 감상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단계로 넘어간다. 아무리 사소하거나 이상한 것이라도 좋다. 사진에서 나를 끌어당긴 부분은 어디인지, 내 안에서 어떤 감상이 떠오르는지 적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진을 보고 매혹적이라고 느꼈다면 그 감각이 인물의 표정에서 비롯되었는지, 사진의 색감과 톤 때문인지 기록한다. 이때 사회적 시선이나 옳고 그름 등을 의식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감각에 의존해야 한다. 나의 감각이 독창성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재 과정을 거치다 보면 표현력의 한계를 느끼게 된다. 어떤 사진을 보고 ‘세련됐다’는 말 외에 딱히 덧붙일 말을 찾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기 십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각을 언어화하는 과정에서 막힐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도 훈련이 필요하다. 평범한 사람이 5년 차 먹방 유튜버보다 맛 표현을 정확하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럼 표현력을 기르기 위해서 책을 읽거나 말 잘하는 학원을 다녀야 하냐면 그렇지 않다. 다시 나 자신에서 시작해보자. 나의 경험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가령 ‘세련됐다’는 표현에 살을 붙이려면 머릿속으로 과거에 본 세련된 사람이나 물건을 떠올리면 된다. 세련된 옷을 입은 사람 A는 특별한 장식 없이 체형에 잘 어울리는 핏과 사이즈를 고른 것만으로 돋보였다고 해보자. 이 기억을 가공해 ‘맞춤복을 입은 듯이 세련됐다’, ‘절제미가 돋보이는 세련됨이다’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 표현이 정 안 떠오른다면, 그러니까 아무리 찾아도 경험이 없는 것 같으면 경험을 만들면 된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세련된 제품을 구경하거나 세련된 작품을 감상하러 가면 그만이다.

표현력을 훈련하는 간단한 연습을 해보자. 순서는 다음과 같다. 우선 눈 앞에 보이는 사물의 색깔을 기록한다. 그리고 해당 색깔과 관련된 나의 경험을 떠올려본다. 떠올린 경험에서 인물, 사물, 사건, 장소를 단어로 기록한다. 각 단어와 해당 색깔을 연결해 의미를 부여한다. 분홍색을 보고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먹었던 솜사탕의 달콤함을 떠올리는 식으로 말이다. 여기에 ‘들뜬 기분’과 같은 감정을 더할 수도 있다. 이 연습을 반복하다보면 키워드에 맞는 경험을 불러와 나만의 키워드와 연결하는 속도가 빨라진다. 이 수준이 되면 새로운 세계관을 만들 준비가 된 것이다. 


[새로운 세계관 제작과 고객 유입 경로 설계] 

세계관 제작하려면 기반이 필요하다. 그 기반이 꼭 거창한 것일 필요는 없다. 흥미진진한 장면, 어떤 현상에 대한 생각, 장르, 분위기 등 무엇이든 좋다. ‘무엇’이 준비되었다면 그 다음엔 앞서 연습한 것처럼 무엇을 보고 떠오른 나의 경험과 감정 키워드를 나열한다. 계속 나열하면서 이 단어들이 내가 만들고 싶은 세계관에 가까워지는지만 확연하면 된다. 이렇게 200~300개를 기록하면 워드 클라우드(Word Cloud, 하나의 주제와 연관된 단어들의 집합)가 만들어진다. 이 워드 클라우드가 내 세계관의 구성요소다. 

워드 클라우드를 만들었으면, 세계관의 정의를 내릴 차례다. 정의의 구조는 다른 세계관들과 큰 범주에서의 공통점을 규정하고 그 다음에 차이점을 말하는 식으로 구성한다. ‘A와 같고 B와 다르다’ 그러니까 ‘좀비물인데 로맨스다’, ‘추리물인데 코믹 요소가 강하다’처럼 규정하는 것이다. 이 형식의 장점은 두 가지이다. A를 좋아하는 커뮤니티의 구성원이 관심을 가지게끔 하면서도, B로 독창성을 확보한다. A로 유입되어 B의 매력에 빠져 머물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가상의 세계에 존재하는 인격체를 '부캐(부 캐릭터)'라고 규정한다면, 어딘가에는 '본캐'(본 캐릭터)가 있을 것. 현실세계의 육체를 가진 존재를 의미한다. 이를 명확하게 표현하기위해 '고객'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내 세계관으로 유입되는 경로가 하나라면 고객의 수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번에는 작품의 정의(내부)에서 출발하는 대신 고객의 세계관(바깥)에서 시작해보자. 내 세계관에 불러들일 고객이 반응하는 세계관은 무엇일지 질문하는 거다. 가령 고객들의 세계관 워드 클라우드에 ‘가족’이 있다면 좀비 로맨스 세계관에서 주인공의 가족이 등장하는 장면을 뽑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장면이라고 했지만 더 정확하게는 시퀀스다. 영화에서 시퀀스는 연속된 장면들의 결합으로 정의되지만, 세계관에서 시퀀스는 시간 개념에 구속받지 않는다. 시퀀스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다양한 구성요소를 포함할 수 있다. 여러 개의 시퀀스를 뽑아내다보면 세계관의 윤곽이 잡힌다. 윤곽이 잡혔다는 기준은 세계관 제작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시퀀스를 뽑아도 세계관이 깨지지 않고 컨셉이나 테마 등의 공통점이 유지되는 정도일 때이다.  


[크리에이터를 위한 세계관 제작의 필요성]

최근 콘텐츠 업계에서 부상하는 직업 중 하나가 ‘각색가’이다. 웹소설이 드라마로 방영되고, 웹툰은 게임으로 출시되는 현상이 일반화되면서 매체를 넘나드는 전문가가 필요해진 것이다. 제작자는 시장 반응이 검증된 콘텐츠의 수익을 극대화하고자 하고, 원작을 5번쯤 감상한 덕후 소비자는 하나의 세계관에서 파생된 다양한 콘텐츠들을 기꺼이 씹고 뜻고 맛 보고 즐긴다.

지적재산권(IP)을 확장하는 시도는 앞으로도 꾸준히 증가할 것이다. 이쯤되면 어떤 매체를 통해 표현하느냐는 각색가의 영역일 뿐, 소비자 입장에선 크게 중요하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세계관을 잘 보여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중요한 건 매력적인 세계관의 존재다. 

세계관의 필요성은 메타버스의 등장으로 한번 더 강조된다. 창작자가 카메라의 위치를 정하는 영화와 달리, 유저라면 누구나 3차원으로 시선을 돌려가며 메타버스 세계를 구경하기 때문이다. 영화 <해리포터>에서는 9와 4분의 3 승강장을 잘 담아내면 끝이지만, 메타버스 세계에서는 그 승강장이 있는 지하철 역의 화장실까지 유저가 갈 수 있어야 한다. 왜? 세계관을 속속들이 즐기고 싶어하니까. 

이러한 흐름을 엿볼 수 있는 사례가 스트리밍 서비스인 디즈니+에 있다. 동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영화 <주토피아>가 흥행하자, 디즈니는 주토피아에 등장하는 조연들을 주인공 삼아 짧은 애니메이션들을 제작했다. 이른바 ‘주토피아 플러스’다. 영화에는 고작 몇 초간 등장하고 사라지는 캐릭터의 이야기가 주토피아 플러스에서 펼쳐지는 것이다.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흥미로운 일은 무엇이든 보여주겠다는 듯하다.


[스토리는 선형적, 세계관은 비선형적]

스토리는 시간에 구애받는다. 주인공이 A라는 사건에 B라는 행동으로 대응하면, 그 결과로 C를 얻는 식이다. 대중적인 스토리의 순서는 언제나 A에서 C로 향한다. 하나의 직선을 그은 것처럼 선형적이다. 그래야 이해하기 편하고, 주제도 산만해지지 않는다. 

반면 세계관은 선형적일 필요가 없다. 100명의 히어로 중에 3명을 골라 상대 플레이어와 싸우는 게임이 있다고 하자. 이때 100명은 각기 다른 배경과 특징을 가진다. 이들을 모두 하나의 이야기에 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가능하더라도 전혀 매력적이지 않을 것이다. 100명을 굳이 하나의 시간선에 몰아넣지 않아도 각자의 자리에 존재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누구를 골라 어떤 스토리를 만들지는 플레이어의 몫이다. 


-1강 끝-


하얀용WhtDrgon : (주)메타버스제작사 대표. NFT 아트 작가. '현명한 NFT 투자자' 저자. 

편집/정리 : 진성훈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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