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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은WhtDrgon Dec 27. 2020

<양자역학적 세계관-사건,테이블>

김동은WhtDrgon 201227 #게임기획자하얀용

나는 세계관을 정리할 때 먼저 키워드를 뽑고 분류할 때 인물, 사건, 사물, 장소 등을 분류하는데 사건은 4가지 중 첫 번째이다. 소설과 스토리와는 달리 세계관에서는 인물이 대체로 후순위에 놓인다. 생성 순서대로 놓자면  사건, 장소, 사물, 인물 순이다. 그중 인물이 가장 중요하지만 먼저 설명하지 않는 이유는, 원래 중요한 것은 뒤에 나오기 때문이지! 그리고 영웅은 난세라는 사건이 만드는 것이다.


인물. 캐릭터.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공이고 감정이입의 대상이며 인과율을 벗어나는 주체적 존재이기 때문에 스토리의 흥미진진함과 관심을 만들어내고, 관심이 없다면 허락받을 수 없고, 허락받을 수 없다면 세계관은 무대에 오를 수 없다. 하지만 인물은 결국 사건들을 겪지 못한 인물은 매력적일 수 없기 때문에 사건을 먼저 이야기하려 한다.


스토리는 타임라인이 있고, 작가에 의해 전시의 순서가 차이가 있을 뿐이지만, 세계관은 드넓게 펼쳐져있다. 물론 스토리도 무한한 가능성으로 펼쳐져있다. 하지만 세계관은 마치 랜덤으로 뽑는 타롯카드같이 정리되어있다고 할 수 있겠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타롯카드, 트럼프 카드, 화투는 랜덤이긴 하지만 그 안에서 나온다. “만약 뽑아낸 카드의 가능성이 "하트의 퀸", "사신", "전함 포춈킹" 등등 아무것이나 나온다고 하면 대체 어떻게 의지 결정을 할 수 있을까. “

(참고 1 :  (Interactive Fantasy #2 코스티켄 게임론 29페이지 https://www.drivethrurpg.com/.../Interactive-Fantasy-2 이민석, 홍순명님이 번역한 1994년 본 한글본이 인터넷에 있다. http://www.mobizen.pe.kr/351 개인적으로는 2002년판보다 1994년판이 더 다정하게 느껴진다.)


세계관도 일관되게 정리된 카드들이 있다. 랜덤성은 있지만 그 모든 것은 일관된 분류하에 모여있을 것이다. 작가는 카드를 뽑아 로열 스트레이트 플래시를 만든다. 선택되기 전까지 스토리에 나올지 알 수 없는 '고양이'가 된다.


세계관의 실무적 용도는 웹툰, 웹소설, 영화, 드라마, 게임, 뮤직비디오, 노래 가사, 굿즈, 축제, CI 등의 다양한 ‘매체’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다양한 경우의 수와 스토리라인들을 위한 준비가 있고, 그 준비들은 각 매체의 문법에 맞게 선별적으로 선택되고, 선택된 요소들은 각 매체용 대본, 설정, 콘셉트의 제작에 활용된다.


이 선택의 대상이 바로 세계관의 테이블 들이다. (예전엔 이 ‘선택’을 ‘간택’이라고 표현했는데, 바람직하지 않은 표현이라 이젠 쓰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뉘앙스인지 설명하기 위해 이렇게 언급한다.)

자 이제 제목이 <양자역학적 세계관>인 몇 가지 이유 중에 첫 번째에 대하여 말해보자면, 슈레딩거의 고양이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 테이블들은 서로 대치될 수 있는 항목들이며 선택될 때까지 무엇이 나올지 모르는 상태이다.


스토리의 전개에 따라 인물 A는 죽었을 수도 있고, 장소 B가 생겨났을 수 있고, 사건 C가 벌어졌을 수 있다.  테이블 안에서 경우의 수들은 반드시 존재하지만, 뚜껑을 열기 전까지 (작가가 작품의 타임라인에 골라 담기 전까진) 무엇이 존재하는지 모르는 상태가 된다.  


세계관의 자료구조 형식과 사용법이 바로 이런 식이다. 인물 사건 사물 장소가 테이블로 분류되어 참조되고 연결될 수 있도록 편집된 ‘수동’DB의 구성을 가진다. 사건은 이 세계관을 보여주는 ‘스틸샷’이 될 것이다. 물론 사건에는 대체로 인물, 장소가 들어있기 마련이지만, A 씨, B대륙으로 표현될 수 있으니까. ‘옛날 옛적 파파 어웨이에 한 공주가 살았습니다.’  이것도 사건이다. 


특히 사건은 사건 분기를 만들어낸다. 세계관에서는 반복되는 ‘핑크’와 세계에 발자국을 남기는 ‘블랙’을 둘 다 포괄해야 한다. 어떤 사건들은 큰 흔적 없이 반복된다. 가령 주인공들이 어떤 의뢰를 받아 해결했다. 끝.  슈퍼내추럴의 형제가 ‘지나가던 마을에서 악마를 발견하고 퇴치 의뢰를 받아 해결했다.’ 끝.  이런 핑크 사건들은 어딘가에 따로 모여있을 수 있다. 핑크 사건 테이블. 


그런데 어떤 사건들은 태생이 블랙이거나, 핑크로 태어났다가 블랙이 된다. 가령 반복되는 핑크 사건을 의뢰해주는 조연인 ‘술집 바텐더’에게 개인적 사건이 생겼다. 혹은 숨은 흑막이었다. 아이언맨에 나온 조연인 줄 알았던 필 콜슨이 드라마 에이전트 오브 실드의 주인공이 돼서 나타난다.


세계관 설계의 목적 자체가 확장과 스핀오프 등의 다양한 세계관들을 인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이런 선택과 확장이 발생하고 다양한 ‘사건 분기’가 만들어진다. 이 자료의 형태 자체가 시간 분기에 의한 평행세계적 모습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자 여기 사건 A17과 사건 B31에 등장한 인물 16번을 사건 C11에 쓰고, 인물이 정해져 있지 않은 사건 D98번에 등장인물을 고르다 보니 인물 16번이 또 선택되고, 여기에 관객들의 호응이 이어져서 사건 E1번에서는 주연으로 채택되고.  이제 인물 16번을 중심으로 인물, 사건, 사물, 장소를 추가하게 된다. 태어난 장소, 가장 친한 친구, 상징하는 물건.


이 흐름을 매끄럽게 만들어주는 작업이 세계관의 테이블 작업이고 이 전체를 세계관 라이브러리 설계 및 유지, 불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출시와 관계없이 다양한 사건 소재들, 인물, 배경, 사물 등이 테이블화 되어 정리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객체들이 일관성을 유지한다. 울버린은 만화책도 영화도 소설도 모두 울버린이다. 배트맨도 디자인이 바뀌고 배우가 바뀌고 묘사가 바뀌어도 배트맨을 유지한다. 단지 매체 특성에 따라 조정된 설정들이 여러 가지가 있을 뿐이다. 


인물 ‘배트맨’은 시대, 매체별로 다양한 설정들을 가지고 있고, 그 설정들이 블랙 시놉에 따라 나이, 시대, 미디어, 사건별 테이블로 정리되고, 재선택되고 강화되고 중요해진다. 웨인 엔터프라이즈 같은 '집단’이나, 진주 목걸이 같은 '사물', 극장 뒤 부모의 죽음 같은 사건들이 강화되다 못해 핵심 요소의 영역에 오르고 브랜드가 된다. 


‘양자역학적 세계관’이라 이름 붙인 두 번째 이유는 바로 이 ‘커플링’이다. 인물을 정리한 ‘인물 시트’가 변경되면 인용된 다른 모든 사건들에 등장하는 형태가 바뀌고, 해당 인물의 새로운 콘셉트가 추가되면, 인물 시트가 추가 보강되고, 또 다른 사건이나 스토리에 사용된다. 시간과 장소를 초월한 동일성의 유지. 


그리고 왜 인물, 사건, 사물, 장소 중에 가장 중요한 인물이 아닌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냐면 수많은 스토리 소재들의 평행 분기 속에서 ‘사건’만이 라이브러리의 질서를 유지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가 3차원이고 우주는 위아래가 없지만,  우리는 무중력이 아닌 아래로 지면과 위로 하늘을 기본으로 사고하고 있고, 그래서 우주전함이 나오는 콘텐츠도 위아래를 가지고 전함이 배치된다. 관객과 제작자가 혼동에 빠지면 안 되니까. 세계관 설계자도 앵커가 필요하다.


사건은 유니티에서 ‘엠프티 오브젝트 empty object ’나 ‘그래픽 툴의 ‘앵커 포인트 Anchor Point’ 역할을 한다. 보이지 않지만 빛이나 소리, 중력, 상대적인 위치, 속성 부여의 거점이 된다. 모든 사건들이나 설정을 다룰 때에는 반드시 근거가 되는 ‘사건’을 만들어놔야 소재가 표류하지 않고 테이블을 만들 수 있다. 이 사건은 번호가 붙고 다른 사건 목록들의 테이블에 포함될 것이다.


예를 들면 자 여기 마법 대륙이 있다. “사건 1 : 마법 대륙의 탄생”  여기에 구구절절 설명을 붙일 필요는 없다. 그냥 사건일 뿐이다. 마법 대륙이라는 장소는 이 사건 1에 연결된다. 그러고 보니 마법도 있네? ‘사건 2:마법의 탄생’. 마법사가 있나고? ‘사건 3:마법사의 탄생’. 마법사가 어떻게 마법을 쓰냐고? ‘사건 4:마법 법칙의 탄생’.  그리고 선택될 때까지 방치된다. 누군가 저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쓰게 될 수 있겠지.


각 사건번호들의 테이블 아래에는 (설사 써놓지 않더라도) 반드시 발생하는 분기가 있다. 바로 ‘이 사건이 발생하지 않음’  그래서 모든 사건은 ‘발생하지 않음’과 ‘발생함’ 최소한 2가지 분기가 생성되는 것이다.

세계관의 설정들은 흥행산업적 성격 (구조적 우수성에 관계없이 망하면 폐기되고, 뜨면 강화되는 운칠기삼적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점진적으로 동반하여 커플링 되어 함께 성장한다. 그리고 나중에 필요해질 때 사건에 대해 구술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사건에 반드시 스토리나 설정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세계관 전체 흐름의 메모장 역할을 하기도 한다. ‘사건 16 : 주인공이 뭔가 왕창 삐딱하게 된 계기’ 혹은 ‘사건 19:삼촌이 죽음’ ‘사건 13:타노스의 출생’ ‘사건 56:우주개척을 위한 우주선 기술 탄생’. '사건21 : 이 주인공을 멋지게 만들어 줄 뭔가 의미심장한 사건'.


사건을 그냥 만드는 것으로 사건이 존재함, 존재하지 않음 ‘분기’를 관리하게 된다. 그리고 사건별로 테이블을 만들 수 있게 되고, 이후 스토리가 있는 매체의 작가가 입맛대로 ‘선택’하여 스토리 타임라인을 채우고 새로운 인물과 사건과 설정을 세계관 테이블에 추가하게 된다.


제목이 양자역학적인 이유 세번째는 이것이다. 

"당신이 달을 보기 전에는 달이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이렇게 정리되면 이제 수많은 아이디어들이나 제안, 유저의 반응, 작가의 촉, 구상들 수많은 소재들이 버려지지 않고 세계관 라이브러리에 저장되고, 테이블화 되고, 선택의 대상이 되고, 언제 무엇이 선택되더라도 같이 연결된 인물, 사건, 사물, 장소의 참조 테이블에 의해 일관성이 유지되어 스토리 프랜차이즈의 일관성 즉 세계관이라는 요람이 탄생하게 된다.


이게 스토리나 설정과는 다른, 세계관의 존재 목적이다.


김동은WhtDrgon 201227

#게임기획자하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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