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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은WhtDrgon Apr 02. 2021

<세계관 최강자를 찾는장르 여행에 붙여>

이 글은 <세계관 최강자를 찾는 장르 여행>이라는 주제로 열린 장르문학ZOOM살롱 참가의 소회를 대신하는 글이다.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이런 강의를 공짜에 (가깝게) 들은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기획하신 오영진 님과 강의자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뭔가 받았으면 나눠야 하는 것이 도리라, 강의 내용에 대한 독후감이라기보다 제목에서 떠오르는 것들을 상념 기록 차원에서 수정 없이 한 번에 써내리는 글.


1-1 어니스트 클라인과 혼합현실의 히어로들.

요즘 메타버스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스노 크래시와 함께 대표적인 작품인 레디 플레이어 원의 저작자. 팬덤(오덕)에 대한 애정으로 차있는 작가. 스타워즈 오덕들 이야기. 팬 보이즈(2009)가 유명한데, 갤럭시 퀘스트(1999)가 생각난다. 스타트렉, 스타워즈, 닥터 후를 3대 팬덤이라고 할 수 있겠다. SF팬덤이라고 부르고 싶은데 그러면 자주 싸움이 난다. 작품화는 성덕의 상징이고 금손의 종착역이다.

소설가가 된 이유가 영화에서 자꾸 뜯어고쳐서라고 하는데 공감하면서도, 동시에 대중성과 구현 비용, 시간 등의 매체 제한을 덜 받는 단계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시사해준다. 마치 영화에 비해 소설이 훨씬 더 오리지널을 드러낼 수 있는 것처럼, (2000만 명의 기마대가 평원을 덮었다 같은 것) 인디게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같은 것을 말해주는 듯하다. 픽셀 게임에선 돌 캐고, 낚시하고, 춤추고, 맘껏 대화할 수 있지만, FULL 3D/VR MMORPG 같은걸 만들면 하나하나가 다 엄청난 비용이 될 테니까. 어치피 작품이 괜찮다면 인기는 시각화의 비용 충당의 기반이 될 것이다.

참고로 레디 플레이어 2도 있다. 추가로 레디 플레이어 원은 어니스트가 가장 좋아하는 게임 블랙타이거/블랙 드래건이라는 게임에서 따왔다는데 한국에서도 꽤 히트 쳤던 작품이니 보시면 아실 듯

https://oldgameheaven.com/98 


1-2 아이작 아시모프와 로봇공학. 

초등... 아니 국민학교 때 어릴 적 동네에 책을 대여해주는 가게가 생겼어서 거기서 파운데이션을 접했던 것 같다. 로봇도. 책 표지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어린이가 제목에 홀려 실수로 읽지 못하게 하려는 디자인인 듯하다. 완전 신세계였는데도 뭔가 매끈한 아시모프의 세계보다는  BE (Battle Field Earth)가 더 재미있었다. 조니 굿 타일러였나. 작품이 캐주얼하기도 했고, 화폐에 자기 이름 받아 넣는 호쾌함이 있다. 떼돈 버는 것부터 해서 요즘 이세계물이 떠오른다. 워낙 유명해서 언급할 필요도 없지만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은 일반인도 쉽게 플레이할 수 있으니 게이머가 아니라면 플레이를 권한다. 왜 게임인가?라는 답을 경험하게 해 준다. 아시모프의 세계도 실감 나게 이해할 수 있고.  


1-3 할란 엘리슨과 종말의 황무지. 

 '바깥에 없으니까 안으로 돌아간다'라는 표현이 기억에 남는다. 세계에서 탈출한 주인공은 다시 온 곳으로 돌아가는데 영웅의 흐름은 '신들의 세계'를 가지만 그곳을 장소 A라고 한다면 'A'가 텅 빈 곳이어도 흐름에 아무 문제없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0.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라는 선택지를 가지고 있으니까.  우리의 미래를 막는 '어마어마한 공포의 숲'에 아무것도 없다는 공포. 이제 우리의 미래는 무엇으로 개척하는가라는 절망.  무언가 해치우고 쓰러트리고 정복하고 얻어내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지만 그 시간이 지나면 찾아오는 허무감. 'nowhere'은 정말 중요한 장소이다.  

 소설 'A Boy And His Dog (1969)'. 영화도 있다. 이 강의 주제였는데, 아포칼립스+인간+개가 있는 풍경은 인간미와 비장미를 같이 표현해주는, 아는 사람만 아는 염화미소 같은 미장센이다. 이 '개'는 세계관의 상징 동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인간성을 말해줄 수 없다. 특히 아포칼립스 상황에서는. 개는 인간다움을 짓어준다. 

 NetHack이라는 게임은 끝없는 던전을 여행하는 게임인데 시작할 때 fido라는 개와 함께 간다. "d" 진짜 이렇게 생겼다. "d" 그리고 나는 "@"  그래서 "@ d"는 개가 있는 풍경이 되겠다. (고양이도 있다.) 이 개는 몬스터와 싸우거나 도망가면서 물건을 집어 오기도 하고, 내가 먹어야 할 방금 쓰러트린 몬스터를 먹어치우기도 하고, 귀한 식량도 나눠주고 함께 모험하다가 어느 순간 함정에 걸리거나, 몬스터에게 죽거나... 이별의 순간이 온다.  나는 지하 깊은 층 어딘가 쯤에서 개를 살려둔 채 굶어 죽은 기억이 있다. 게임은 끝났지만 그 개는 나를 먹었을지 궁금하다. 그랬으면 좋겠다. 


2-1 코난 도일은 왜 빅토리안인가? 

 빅토리안은 사람들이 무척 지루해했던 정말 멋진 시기였다.  장르문학 입장에서는 이 시대를 르네상스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 그 유명한 뱀파이어부터 빅토리안을 고향으로 두고 있는 장르/서브 장르들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언젠가 전설의 고향도 그런 지위를 가질 수 있을까.  

 인터넷에 일본에서 작성된 코난 도일의 라노베 스토리가 돌아다닌다. 표현이 거칠지만 나름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느끼는 점도 많아지는 글이다. http://egloos.zum.com/maidsuki/v/4195631 

 장르가 그릇이지만 그릇 안에도 그릇이 있다.  TRPG는 시나리오 작성과 진행을 '마스터'라고 불리는 사람이 하는데 나도 '던전마스터'출신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가와는 다른 공연 작가이자 진행자라고 할 수 있고 나도 몇천 시간쯤을 그렇게 놀며 훈련했던 것 같다. 그중에 일본의 '바바 히데카즈'가 마스터링 강좌가 있는데. 1.4 장르 부분을 읽어볼 만하다.  https://elflee.tistory.com/260  다른 사람이 남긴 말이지만 '모두는 주사위 아래 형제'인 것이다. 장르물도 그렇다. SF도 웨스턴도 판타지도 사무라이도 무협도 추리도 모두 사람을 위로하는 가족들이다. 


2-2 러브크래프트와 크툴루 신화. 

러브크래프트는 장르계의 고흐지만, 올드원과 고대신들 앞에서 감히 무엄한 이야기지만 크툴루가 가지는 코즈믹 호러는 이제 누군가에 의해 새 그릇에 담길 때가 된듯하다. 처음 보는 사람은 빵 터진다.  캐러비안의 해적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15년, 혹은 다음 15년인 30년이 콘텐츠와 키워드가 새 옷을 입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세계관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15년마다 불사조처럼 다시 태어나 독자의 자녀들로 세대를 이어가는 무시무시한 힘 때문이다. 어떤 반전도, 기가 막힌 스토리도 독자가 용건 없이 만나는 세계관의 반복성을 상대로 이길 수 없다. 어떤 콘텐츠가 그냥 존재하는 '백두산'을 이길 수 있나. 심지어 이 산은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아서 요세미티보다 더 오래갈 수도 있다.  인간이 그만큼 오래 갈지가 걱정일 뿐이지.


2-3 다나카 요시키와 은하 영웅전설

종로서적에서 이 책을 샀다. 8시가 되니까 문 닫는다고 나가라고 방송 나와서 해서 급히 샀던 것 같은데. 이미 완독 후에 책을 사러 갈 만큼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유명 서점에서 정가로 이 책을 산건 존경을 표현하는 의식이었던 셈. 나는 SF보다 판타지의 팬임에도 불구하고 비슷하게 나온 <아르스란 전기>보다 더 재미있게 읽었다.  

 뜬금없지만 일본에서 쏟아져 나오는 이 세계 만화들 중에 '악역 영애'물이 생각났다. 악역 영애는 주로 이 세계에서 깨어났더니 악역 영애 (순정 만화에서 주인공을 괴롭히는 역할인 악역 + 있는 집 귀족 따님. 영애)가 되어있어서 끝에 파멸이 예정되어있기 때문에 살 길을 찾는 내용이다. 이게 소녀 취향처럼 보이는데, 아니다. 이건 소년 물이다. 이런 류의 진행을 가지는 여성향 게임 사례를 실제로 찾기는 힘들다. 즉, 남성이 생각하는 (고대시절의) 여성향 게임/소설이라는 설정을 세우고, 그 작품으로 다시 들어가는 구조이다. 가공이라도 어쨌든 '여성향'을 세웠음에도 남성 독자에게 재미있게 읽힌다.  최근 기세를 드러내는 여성향 콘텐츠들은 소년 물에 비해 '빌드업'이 없어 보인다. 'slice of life'같은 주제라서 남자가 보기엔 뭔가 맥(아리가)이 없어 보이는데, 이걸 소년 장르의 초창기로 보아 다음은 그런 빌드업 구성 콘텐츠가 등장한다고 봐야 할지, 아니면 화성남자 금성 여자나 여성은 공감을 원하는데 남자는 해결하려 든다는 오래된 클리세로 봐야 할지는 추이를 지켜봐야겠다. 

 갑자기 생각난 악역 영애 물은 SF가 판타지나 다른 독자들에게 다가서기 위해 어떤 중간 형태.... 그러니까 SF가 사이파이가 아니라 스페이스 픽션이라거나 오페라라거나 뭐 암튼  '이건 SF가 아니야'라는 형식을 취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기념비적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은하 영웅전설은 베르사유의 장미 같기도 하고 대하극 같기도 하고, 무협이나 삼국지 같은 대하극 같기도 하고, 밀리터리물 같기도 하다. 그래서 모든 팬들, 적어도 나는 이 은하 영웅전설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복잡한 거 다 헛소리고 재미있으면 장땡'이라는 발언을 경멸한다. 모든 재미는 쌓아온 지식에서 탄생한 영감을 치열하게 고민하여 담아낸 결과물이다. 단지, 이 모든 설정 모순과 장르파괴와 부적절함을 <분위기 atmosphere> 설계로 압도하여 암묵적 무시의 약속을 받아내어 여기서 딴 이야기 꺼내면 '분위기 파악 못하는 놈'으로 만들어 내는 기술이 있을 뿐이다. 지금 하늘에 스타 디스트로이어가 떠있는데 별의 중력과 역학의 모순을 왜 이야기 하나. 은하 영웅전설에서 전함의 도열에 딴 소리하는 자는 분위기 파악 못하는 것이다. 

다나카 요시키 만세. 


2-4 톨킨 세계. 

이 분에겐 별로 할 말이 없다. 그분 말씀대로 하나의 단어에서 하나의 신화가 탄생한다.  어느 날 그분께서 식당에서 혹은 자신의 서재에서 양탄자에 난 구멍을 보다가 한 줄을 쓰셨다.  “땅에 난 구멍 속에 한 호빗이 살고 있었다.” “In a hole in the ground there lived a hobbit."  그리고 글자들이 나와 그 뒤에 줄 맞춰 도열했다.  "Not a nasty, dirty, wet hole, filled with the ends of worms and an oozy smell, nor yet a dry, bare, sandy hole with nothing in it to sit down on or to eat: it was a hobbit-hole, and that means comfort.” 1920년에 그렇게 세계가 탄생했다. 나는 월드 크리에이터, 세계관 제작자가 직업으로서 존재하는 것, 창직에 대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데 그에 대한 책을 쓴다면 꼭 첫머리에 적어놓을 것이다. (저작권 침해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3-1 데즈카 오사무와 생명과 평화의 세계관. 

3-2 제프 벤더미어와 소멸의 땅

불행하게도 당일 새벽까지 일한 후 일요일에 퍼질러 자느라 이 두 강연을 듣지 못했다. 슬프다. 


3-3 윌리엄 깁슨과 사이버 해방전선.

플랫 라인. 멈춘 심박동이 그리는 선. 육체에서의 해방이 기억에 남는 키워드.  결국 모든 것의 깊이는 사람에게서 온다. 사이버펑크도 그 깊이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탐구에 도달한다.  '단, 마찰력은 0으로 한다'같은 과학 문제처럼 어떤 탐구는 현실에서 벗어나야 더 본질에 가까워진다. SF의 매트릭스 세계는 팔다리와 현실까지 없앰으로써 인간이 무엇인지 더 선명하게 관찰할 수 있는 환경이다. 반면 정말 이런 세계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을까. 메타버스가 현실에서 서비스되기 시작하면 휴먼쉽? 정도 느낌의 철학적 지도가 인간에게 절실해질 것이다. '진정한 나를 찾는 여행'이라는 테마의 상품은 언제나 인기였으니까.  

 근래의 메타버스란 말부터 사이버펑크 등등 결국 미래는 인간의 상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SF 장르는 국가 미래 자산이다. 4차 산업이 진정 나라의 미래라면 장르문학이라는 상상의 결과물을 국가 기간산업 대우해야 한다.  사이버+펑크처럼 애초에 인간 창작 활동들은 다 '어린이 풍선껌 향이 나는 보라색 케이스의 전자담배'처럼 결국 같은 궤에 존재한다. 유치하게 게임이니 대본소 만화니 장르소설가니 창작자들끼리 위상을 가지고 싸울 필요가 없는 것이다.

 Purple Hair  사이버의 상징색. 실제로 60년대쯤에 보라 머리 열풍이었으니까. 가장 유명한 것은 UFO라는 드라마인데 거기서는 우주기지라서 머리카락은 기기 보호를 이유로 박박 밀어버린 모양인데, 헤어도 유니폼의 일종이었고, 모두 보라색 가발을 착용했다.   이게 비인 종적 색깔이기도 하지만, 이런 류가 다 그렇듯 여러 가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다양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때가 컬러 TV 보급 기라는 것도 고려해야 할 듯. 애니메이션의 초록머리나 롤라장 옐로, 오락실 핫핑크 컬러처럼 이게 (재생기기 특성이나 사회풍조 등의 여러 가지 사정으로) 관습화 된 게 있는데 따로 자료를 모아봐도 재미있겠다.  보라색 머리가 주인공의 색인지는 잘 모르겠다.

 성공한 게임은 장르가 된다. 장르문학은 특성상 전승 문학을 모사하는 유래 때문일지 서로 복제하여 구성요소를 강화시킨다.  락과 SF소설의 상호 복제를 통한 장르 완성으로 다가간 사례는 (수십 년간 그 자리에 존재했을 것임에도) 오늘 처음 접해서 무척 흥미롭다.  극 중에서 언급된 '펑크'에 사이버가 붙어 사이버펑크가 된 이후 쏟아져 나온 온갖 펑크들도. 스팀펑크디젤 펑크. 그 외에도 태엽펑크솔라펑크루나펑크목장펑크가스등판타지바이오 펑크나노 펑크레이 펑크아톰 펑크레트로퓨처리즘네오퓨처리즘석탄 펑크(데코 펑크), 스틸 펑크무인도 펑크석기 펑크 등등을 생각해보면... 


 경찰이 절대적 권력을 가지는 이유에 대한 질문도 나왔는데, 경찰은 이 난장판의 세계에 대한 바탕색 역할일 것이다. 마치 무협지의 관군처럼. 물론 황제와 관군을 때려잡는 무협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꽤 오랫동안 관군은 언터처블?이었는데 그 이유가 태산을 부수고 하늘을 날다 보니 어딘가에 (실제로는 그렇지 않더라도) 현실의 제약이 존재해야 했기 때문이다.  

 미래 세계 묘사로 종종 등장하는 살인 서바이벌 게임이 전 세계에 TV로 중계되는 사회라면 그렇게 된 세계관적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냥 세계가 타락해서 그런 거라면 그 부분은 그렇게 대충 다루기로 약속된 것이라 세계관에서 불용 지역이 된다. 마찬가지로 (마법처럼) 뭐든 될 거 같은 무한의 가능성과, 그걸 잡아주는 사회도덕도 없는 개차반의 시대라면 '질서'가 어딘가에 있어야 상대적 중심축이 될 텐데, 경찰은 각계각층의 독자들이 아마 가장 쉽게 이해되고 누구나 접해봤으며 (강제로라도) 존중감을 가진 오피서니까.  거기다가 경찰은 그나마 진짜 힘을 감춘 최약체의 공권력이잖나! 개기면 스와트로 끝나지 않는다.  사이버펑크에도 무술, 무협, 사무라이, 웨스턴처럼 'A권력자에게 A로 되갚아주기'가 있을 텐데, 대대로 기업/국가가 그 역할을 해온 듯. 펑크답게.


3-4 좀비 연대기: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부터 라오어 2까지. 

"재미가 없다면? 좀비를 넣으세요!"  - 식 좀이라는 약칭으로 유명한 플랜트 앤 좀비 게임을 만든 개발자의 말이다.  

 '지도 따위는 던져버리고 떠나라' 중년의 로망 할리데이비슨의 메시지이다. 요즘은 장사가 안돼서 슬림 버전이 나오지만, 그 우렁찬 사운드와 풍모는 '이걸 탄다면 나는 OO처럼 보이겠지'라는 착각을 완성시킨다. 하지만 그건 그런 삶을 살지 않는 이들의 꿈일 것. 

 '가로수길' 이란 단어가 주는 로망은 사람마다 다를 건데 어떤 이들은 아름다운 숲 속 길, 그게 산책로 혹은 아스팔트 길의 가로수일 것이고, 어떤 이들은 카페와 멋쟁이들로 가득 찬 거리일 것이다.  사람들은 현실에 기반하여 미지를 꿈꾼다.  

 좀비 역시 마찬가지인데, 좀비와 아포칼립스는 그리 멀리 나가지 않아서 좋다. 지금 여기에서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게 해 준다. 어딘지도 모르는 미지의 이 세계도 매력 있지만, 그래도 구관이 명관이라고 아는 곳의 새로운 면도 재미있다. '익숙하면서도 새로운'이라는 것. 정숙하면서도 도발적이며, 섹시하면서도 천박하지 않고, 고급스러우면서도 튀고, 튀면서도 단정한, 치솟아 높이 올라 마음을 압도하면서도 무너질 것 같은 불안감이 없는. 이 미의 완성은 종교와 예술에 귀의한 모든 이들의 꿈이었다. 게임도 그렇다. 

 좀비는 가장 익숙한 것들을 가장 새롭게 만드는 멋들어진 장르이다. 어떤 장르도 부모와 가족을 이렇게까지 새롭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여성은 여성적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없다. 그 단어의 주인이니까. 거꾸로 여성이 아닌 존재에게 여성성이 필요하고, 그건 대체로 '진짜 여자'들에게 불쾌감을 줄 것. 지들의     한 용도에 맞춰 타자화된 형식 그 자체니까. 세상천지에 어떤     들이 이런    같은 것들을 자꾸 만드나 싶을지도.  거꾸로 라오어 2는 이 '타자화 패키지'를 어겨서 팬들에게 어마어마한 원망을 들었고....  예전 글에 이런 상태를 써놨던 것 같은데....  찾았다. ""참하고 똑똑하고 깊이 있던 그녀가 대중에게 유명해지더니 그만..."이라고 묘사했었다. 

(서브컬처의 인싸 화에 대해서는 https://brunch.co.kr/@whtdrgon/5 )

 가상은 미친 듯 현실을 갈구한다. 비록 메타 월드의 메타는 비주류에 관광 온 '인싸'라는 단어의 다른 버전이지만,  리얼리티, 현실성, 현존 감 Presence은 장르문학의 영원한 탄탈로스의 갈증이다.(이쯤 하려는데 혹시 글자가 더 많이 필요하신 분은 https://brunch.co.kr/@whtdrgon/12

  게임은 오만가지 방법으로 프레즌스를 추구해왔는데, 대표적으로 실제 때리지도 않으면서 느끼려 드는 '타격감'같은 것이 그런 것이다.    현존 감은 직결되는 요소 외에도 독자가 자신의 경험을 풀어놓고 공감할 공간을 필요로 하는데, 좀비는 객체에 대한 감정이입부터 집단에 대한 볼거리까지 모든 것을 자유자재로 제공해준다.  마치 세계관이 스토리에 반하는, 썰려야만 하는 결혼식 케이크 같은 존재이듯, 어떤 'OO성'은 그 반대의 상황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좀비는 연민과 사랑과 증오, 인간에 대한 인간의 감정을 말초적으로 드러낸다. 어떤 몬스터가 이렇게 많은 공감 가능한 인생을 자동으로 담아 주겠나.    

 모든 말초들이 그렇듯 과정을 목적하는 포르노들이야 얼마든 있어서 사람을 죽이기 위해 좀비를 만드는 것도 중요한 용도 중에 하나지만.   좀비도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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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02 김동은WhtDrgon

#게임기획자하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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