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씨와 제로원은 러너였다. 평생을 이렇게 살 생각은 없었다. 아주 위험한 임무 세 개만 하고 클럽을 차릴 돈을 벌어,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 흔한 말로 '사망 플래그'를 잔뜩 세운 커플이었다. 씨씨는 이미 클럽 이름도 정해놨다. '마지막 드랍아웃'. 제로원은 그 이름이 불길하다고 했지만, 씨씨는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이제 죽지 않아. 다 끝나고 시작하는 거야."
드랍아웃. 차원계에서 사망하면 물질계에서 깨어나는 것. 죽음을 경험하는 불쾌함도 있고 해당 차원계에 다시는 진입할 수 없었지만, 그만큼 보수가 좋았다. 씨씨와 제로원은 동귀어진하는 전문 러너였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말하는 건 거짓말이지만, 적어도 그들은 서로가 있었다. 씨씨의 오른쪽 눈과 제로원의 왼쪽 눈은 같은 회사의 임플란트였다. 서로의 시야를 공유할 수 있었다.
그들의 브로커, 야메 렌드는 그 사망 플래그를 현실로 만들어줄 사람이었다. 다른 러너들은 그를 피했다. 하도 드랍아웃율이 높아 러너들 사이에서도 악명이 자자했지만, 그만큼 보상도 컸다. 한탕 크게 벌어 떠나고 싶은 이들에게, 그의 거래는 유혹적이었다.
야메 렌드는 항상 미소를 띠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의 불행을 기다리는 듯한 미소. 계약서를 건넬 때, 그의 손가락에는 희미한 흑공의 흔적이 보였다.
"이런 임무는 처음이시죠?" 그가 물었다. "특별한 분께 특별한 기회를 드리는 겁니다."
그의 시선은 계속 씨씨를 향해 미소짓고 있었다.
이번 임무도 예외는 아니었다. 수락 전까지 임무 내용은 비밀이었다. 그래도 씨씨와 제로원은 계약서에 서명했다. 그리고 도착한 곳에서 그들은 경악했다.
휴대용 핵배낭 네 개.
녹슨 금속 케이스에 담긴 고대의 무기들. 제로원은 오래된 장비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건 진짜 골동품인데..." 그의 말에는 불안감이 묻어났다. 왜 하필 이런 구식 무기일까? 현대의 무기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무언가를 파괴하려는 걸까? 핵배낭 케이스 위에는 희미하게 '신성 연구소 - 초자연 제어국'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씨씨는 그런 걸 신경 쓰지 않는 척했다. 그녀는 장비를 들 생각조차 안 하고 딴 데를 보고 있었다. "네 기계팔 진짜 구려. 대체 언제 바꿀 거야?" 평소처럼 투덜거렸지만, 그녀의 목소리에도 긴장감이 묻어있었다. 그녀의 피부 아래로 임플란트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죽음은 사실 익숙해지기 힘든 과정이다.
제로원은 씨씨의 잔소리를 들으며 지도에 표시된 위치로 이동했다. 지하 협곡을 지나, 어두운 동굴을 따라 걸었다. 이상했다. 흑공이나 신기의 반응도 없이, 그저 깊어지기만 하는 동굴. 마치 세계의 끝으로 향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끝에서, 그들은 그것을 보았다.
거대한 심장이 뛰고 있었다.
둥. 둥. 둥.
엄청난 크기의 유기체가 공동의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그 자체가 하나의 생명체였다. 맥동하는 심장은 마치 세계의 일부처럼 보였다. 심장 주위로 희미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제로원은 그것이 고대 신단의 문양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아챘다. 신기 연구자들이 말하는 '세계의 회로도'와도 닮아있었다.
"이걸 터뜨리라고...?" 제로원이 중얼거렸다. 이건 잘못됐다. 무언가 크게 잘못됐다는 느낌. 심장이 뛸 때마다 주변 공기가 진동했다. 마치 세계의 맥박 같았다.
씨씨는 아무 말 없이 배낭을 내려놓고 핸들을 잡았다. 예정된 절차였다. 터뜨리고, 드랍아웃. 하지만 그녀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임플란트 눈동자가 이상하게 반응했다. 심장을 볼 때마다 그녀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마치 무언가를 인식하는 것처럼.
그들은 서로를 꼭 끌어안았다. 마지막일지도 모를 포옹. 씨씨의 체온이 평소보다 높았다. 그리고 동시에 핸들을 돌렸다.
그리고 세계가 찢어졌다.
영화와는 달리 폭심의 중심지에 있는 그들은 폭발을 관찰할 수 없었다. 본래 물질계에서 바로 깨어나야 할 그들은 허공에 떠 있었다. 이건 정상적인 드랍아웃이 아니었다. 주변의 시공간이 일그러지며 흑공과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다.
흩어진 몸, 꿈꾸는 시야.
그 심장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파괴되지는 않았다. 심장의 중심에서 무언가가 기어나왔다. 심장 표면의 문양들이 살아 움직이며 한 곳으로 모여들었다.
태아.
새하얀 피부, 커다란 눈.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형상을 한 무언가일 뿐이었다. 그 반투명한 존재는 허공을 떠다니다가 씨씨에게 겹쳐붙었다. 마치 운명이 정해진 것처럼. 그 순간 씨씨의 임플란트가 격렬하게 반응했다. 그녀의 눈동자에 세계의 회로도가 깜빡였다.
"떨어져!"
제로원이 태아를 떼어내려 했지만 손이 닿지 않았다. 씨씨의 눈이 흐려졌다. 꿈꾸는 듯한, 몽롱한 표정. 마치 최면에 걸린 것처럼. 하지만 그녀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있었다. 태아는 그녀의 다리 사이로 기어들어갔다. 그리고 그녀가 비명을 질렀다. 고통인지, 환희인지 모를 비명. 그 순간 그녀의 전신의 임플란트가 일제히 빛났다.
드랍아웃.
눈을 떴을 때, 야메 렌드가 웃고 있었다. 그의 미소는 전과 달랐다. 마치 계획이 성공한 과학자처럼. 그의 손가락의 흑공 흔적이 더욱 선명해져 있었다.
그는 엄지를 치켜세웠다. "성공했다. 새로운 시대의 시작입니다."
뇌에 새겨진 HUD가 반짝였다. 입금 완료.
각종 화폐 단위가 마구 뒤섞인 채 색색의 불꽃놀이처럼 시야를 채웠다. 추적을 피하려는 듯 다양한 방식으로 나뉘어 들어왔다. 범죄의 대가라도 되는 양. 제로원은 씨씨를 돌아보았다. 그녀도 같은 입금 신호를 보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녀는 어딘가 달라 보였다. 피부 아래로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그녀의 임플란트들이 이상한 패턴으로 깜빡였다.
씨씨는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의 시야에도 다른 메시지가 떠오르고 있었다.
[상태 변화 : 임신]
그녀의 손이 떨렸다. "...뭐?"
시야를 공유하는 제로원의 생각이 복잡해졌다.
어찌 보면 흔한 미혼 커플 남성의 첫 반응이었다.
"...저거... 정말 내 아이인가?"
야메 렌드는 여전히 미소 짓고 있었다.
둘은 이제서야 그 미소가 수상해졌다.
✅ 드랍아웃(Drop Out) : 러너들이 차원계에서 사망하면 물질계로 튕겨나오는 현상. 하지만 해당 차원계로 다시 진입할 수 없으며, 패러독스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 흑공(黑空, Tenebrae) : FEWK 세계관에서 설명되지 않는 초자연적 현상. 현실을 침식하고, 특정한 존재를 변형시키는 미지의 힘. 야메 렌드의 손가락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음.
✅ 임플란트 시야 공유 : 씨씨와 제로원의 오른쪽, 왼쪽 눈이 같은 회사의 임플란트로 연결되어 있어, 서로의 시야를 볼 수 있다. 이는 전투 중 효율적인 협업을 가능하게 하지만, 불가피한 비밀 공유도 초래함.
✅ 야메(YAME) : '야메'는 임플란트 시술과 수리, 개조, 외과적 치료 등을 하는 불법 의사들이다. 임플란터와 식체롱사, 의사를 합친듯한 직업으로 성인식 때 받은 임플란트를 불법 거래하거나 임플란트담보의 전당포를 운영하는 등의 온갖 잡다한 일을 한다.
✅ 렌드 : 고위험 임무를 브로커하는 인물. 단순한 중개자가 아니라, 특정 목적을 위해 러너들을 이용하는 듯한 모습이 보인다. 그의 손가락에 남아 있는 흑공의 흔적은 그가 단순한 인간이 아닐 가능성을 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