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해의 파도는 늘 검었다. 볼래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흑해 어부였다. 바다는 원래 그러한 것이었고, 중요한 것은 그저 잡을 물고기가 있느냐 없느냐였다. 물고기와 술값만 나오면 되는 단순한 인생이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 바다는 더 이상 같은 바다가 아니었다. 그의 인생도 단순함과는 정반대로 흘러갔다.
그 시작은 여교수 간시였다. 해신을 연구한다는 괴짜 학자. 그가 흑공이 터지는 바다 한가운데 있는 섬으로 태워 달라고 했을 때, 볼래는 비웃었다.
"거기 아직도 흑공 분출 중이라던데?"
간시는 긴 머리를 넘기며 대답했다. "그래서 가야 해. 과학이 부른다고."
과학이 아니라 죽음이 부른 것이었다. 그것도 볼래의 죽음을. 무사히 섬에 도착했지만, 간시는 신단에서 이상한 돌칩을 집어 들더니 신난 얼굴로 어딘가에 꽂아 넣었다. 그 순간, 땅이 울리고 바다가 끓었다. 그리고 그것이 떠올랐다.
거대한 검은 형체가 물속에서 일어났다. 그것이 바다 괴수인지, 신인지, 아니면 단순한 흑공의 부산물인지 볼래는 알 수 없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지금 섬을 향해 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볼래의 배는 단 한 번의 파도에 천 개의 조각으로 흩어졌다. 보험도 안 들어놨는데.
볼래는 간시를 노려보았다. 간시는 자기 눈으로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이게... 뭐지...?"
"그걸 나한테 묻냐? 내 배값이나 물어내!"
볼래는 도망칠 궁리를 했다. 그러나 간시는 신단 위에서 돌칩을 마구 쌓아 올리며 중얼거렸다.
"신호조각... 신호조각...! 이걸 조정하면…"
교수가 신단의 돌칩을 마구 쌓아보려고 드는데 꼴이 신호조각기술도 신호설계기술도 가지고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볼래는 쌓아 올려지던 돌칩을 단숨에 걷어찼다.
"네 손에서 그런 기술이 나올 리가 없지. 애들 블럭도 못 쌓게 생겼구만."
그 순간, 하늘이 갈라졌다.
비행선이 구름을 찢고 내려왔다. 대형 전함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괴수에게 광선포를 퍼부었다. 거대한 폭발이 이어졌다. 섬 전체가 흔들릴 정도였다.
그러나 볼래는 도망치는 것을 잊고 있었다. 너무 황당해서.
"뭐야, 이건 또...!"
간시는 볼래보다 더 겁에 질린 얼굴이었다.
"우아, 워피스다!"
"지금 그런 말이 나와?"
볼래가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간시는 신단을 향해 뛰었다. 그리고 손을 올리자 신단이 빛났다. 그 빛과 함께 간시는 증발했다. 볼래는 입을 딱 벌렸다.
"이제 와서 날 버린다고? 이 배신자! 머리채라도 잡아야 하는데..."
그 사이 비행선은 괴수를 갈기갈기 찢어놓고는 제 갈길 가듯 하늘로 사라졌다.
어부 볼래는 어처구니없이 그렇게 배도 없이 혼자가 되었다.
몇 주 후, 부실하게 깎은 나뭇가지를 작살 삼아 먹을 것을 찾아 해변을 돌던 볼래는 먹음직한 무언가를 발견했다. 고깃덩이. 진짜 고깃덩이였다.
생각해보니 이것은 광선포 맞고 작살난 괴물의 잔해일 터였다. 생존을 위해서라면 괴물고기라도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집어 들었고, 그 순간 이상한 감각이 스쳤다. 손끝이 녹아내리는 듯한 따가움. 무언가가 그의 신경을 더듬는 듯한 느낌. 그리고 고깃덩이는 형태를 만들기 시작했다. 입술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입술이 말했다.
"고맙다."
볼래는 몇 초간 침묵했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내가 미친 건가…? 아니면 굶어서 환각을 보는 건가?"
하지만 현실이었다. 그는 그 고깃덩이와 대화를 시작했다. 말은 입에서 나오지 않았지만, 그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이상한 방식으로 생각이 흘러들어왔다. 그리고 그는 결국 이 고기가 '해신'이었다는 것을 이해했다.
"내가 널 어떻게 도와주면 되냐?"
"선택해."
"뭐?"
"나를 먹든, 너를 먹든, 하나를 선택해야 해."
"그게 무슨 선택지야? 둘 다 이상한데?"
볼래는 생각했다. 대체 뭘 선택해야 하는 거지?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해신의 잔재는 점점 약해지고 있었고, 날카로운 이빨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을 본 볼래는 결국 입을 열었다.
"…내가 먹는다. 어차피 배고팠는데."
그 순간, 해신은 마지막 힘을 다해 스스로를 변형했다. 완벽한 마블링의 고기로. A5 등급은 되어 보였다.
볼래는 숯을 피우고, 바닷물을 소금 대신 적셔가며 천천히 구웠다. 그리고, 그 고기를 씹었다.
고기에서 바닷물 맛이 났다. 짠맛이 혀를 짜릿하게 감쌌다.
그리고 그의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비늘이 손등까지 퍼졌고, 피부가 해초처럼 미끈해졌다.
그의 폐가, 물속에서도 편안했다. 볼래는 이런 변화에도 아프지 않은 것이 더 짜증나는 기분이었다.
그 와중에 바다가 자신의 일부가 되었다는 시적 느낌이 우스웠다.
그는 더 이상 단순한 어부가 아니었다. 그는 해신 볼래가 되었다.
그리고 바다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광증에는 바닥이 없구나. 하다하다 이젠 흑해가 아늑해 보이네. 이제 난 바다와 하나인가…?"
검은 파도가 대답하듯 출렁였다.
볼래는 피식 웃었다.
"뭐, 이런 전개 웃기지만 나쁘지는 않네. 적어도 배 보험금보다는 낫잖아."
나중에 해신 볼래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흑해바다에서 펼칠 수 있는 해신의 특수능력보다는 영화화로 벌어들인 판권수익이었다.
✅ 흑해(黑海): "흑해의 파도는 늘 검었다"로 시작하는 본문의 배경. 흑공이 지속적으로 분출되는 바다이며, 기이한 생명체들이 발견되는 위험 지역. 본문에서는 흑공분출로 인한 위험을 알면서도 간시가 연구를 위해 방문하게 되는 장소. FEWK국의 주요 해역 중 하나로, 어업이 가능하지만 매우 위험한 지역으로 정부는 공식적으로 일부 구역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 흑공분출: 본문에서 "흑공이 터지는 바다 한가운데 있는 섬"의 현상. 공간이 찢어진 것처럼 먹물처럼 퍼져나오는 현상으로, 본문에서는 괴물의 출현과 연관됨. 차원의 균열과 비슷한 현상으로 물, 공기, 땅 등 매체 구분 없이 발생하며 현대에는 자연재해처럼 취급된다.
✅ 워피스: 본문에서 거대 비행선을 보유한 조직으로 등장. "우아, 워피스다!"라는 간시의 대사를 통해 그들의 위상과 영향력이 암시됨. 대령국의 종교와 FEWK국의 토속 직업인 신사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신흥 종교이자 군사조직으로, 성신기사들과 거대 비행선을 보유하고 있다.
✅ 신단: 본문에서 간시가 찾아간 섬의 핵심 장소. 신기를 뿜어내는 특별한 장소로, 간시가 이를 이용해 사라지는 장면에서 중요하게 등장. 제단, 서낭당, 신목, 탑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며 신기의 원천으로 여겨지는 성스러운 장소다.
✅ 신단석/돌칩: 본문에서 간시가 다루려 했던 도구. "신호조각... 신호조각...!"이라며 시도했으나 실패하는 장면에서 등장. 신단에서 채취한 돌로, 신호조각사나 신호설계사들이 다루는 신기 기반의 특수한 도구이며 일반적으로 '돌칩'이라고도 불린다.
✅ 신호연결: 본문에서 간시가 시도했으나 실패한 신단석 배치와 연관된 기술. 신사, 신호사 계열이 사용하는 보편적 기술로 신단석을 배치하고 작동시키는 방법을 의미한다. 특히 "신호조각... 신호조각...!"이라며 신단을 작동시키려 했던 간시의 시도가 실패한 것은 이 기초적인 기술조차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