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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WK단편선 25>공백의 신

by 김동은WhtDrgon


카디스는 헬멧 바이저에 표시된 공기 분석 데이터를 확인한다. 신기 농도는 0.3ppm, 흑공 잔재 농도는 0.8ppm이다. 숨을 쉴 때마다 목이 따끔거리지만, 두 수치 모두 안전선을 넘지 않는다.

“신기랑 흑공이 뒤섞여도 이 정도면 안 죽는다. 뉴동백 놈들이 터뜨린 게 더 위험하지.”

(주)뉴동백의 산속 연구소는 신폭으로 박살난 지 사흘이 지났다. 어비스에서 흘러나온 흑공이 일으킨 재앙이다. 부서진 콘크리트 조각이 발밑에서 바스러지고, 녹아내린 강철 파편이 여기저기 굴러다닌다. 그는 부츠로 땅을 툭 찬다. “또 터졌다. 몇 번째 사고인가? 이 멍청이들, 사고 기록으로 기네스북에 도전할 기세다.”


그는 주머니에서 흑공 얼음 조각을 꺼내 손끝으로 굴린다. 어비스 지층에서 안정화된 흑공이 압축된 이 작은 덩어리는 지난번 뉴동백 폐허에서 주운 것이다. 손가락으로 만질 때마다 이상한 감각이 전해진다. 존재하지 않는 무게를 느끼는 듯하다. “50크레딧은 받겠지. 뉴동백이 귀하다고 떠들던 거라 장사꾼들 눈엔 보물일지도 모른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조각을 들여다본다. “나한테는 차가운 쓰레기일 뿐인데, 왜 이렇게 무겁게 느껴지지?” 그는 잠시 손에서 굴리다가 어깃장난스럽게 어깨를 으쓱이며 폐허 안으로 들어간다. 바이저의 경고음이 깜빡인다. 그는 손으로 꺼버린다. “시끄럽다. 나까지 터질 일은 없다.”


연구소 중심부는 엉망이다. 신단이 터진 흔적인지, 바닥에는 끈적한 검은 얼룩이 번져 있고, 벽은 뜯겨나가며 배선이 불꽃을 튀긴다. 카디스는 데이터 패드를 꺼내 스캔을 시작한다. 방사선 수치는 정상이고, 차원계 안정도는 92%다. “신폭치고 깔끔하다.” 그의 시선이 부서진 실험 탁자 위로 향한다. 공중에 떠 있는 얇은 디스크가 눈에 들어온다. 심연의 원이다. 뉴동백이 엑토 오일을 압축해 만든 물건이다. 그는 디스크를 낚아챈다. 손끝에서 미세한 진동이 느껴진다. “성물이라더니, 그냥 부유 장치인가?” 그는 고개를 젓는다. “전자기장은 아니다. 이건 다르다.”


디스크 주위 공간은 완벽하게 깨끗하다. 신폭의 열기로 탁자는 녹아내렸지만, 이곳엔 먼지조차 없다. 손목의 차원계 분석기를 켜자 ‘데이터 없음’이 뜬다. 그는 눈을 좁힌다. “고장 난 게 아니다. 이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 건가?” 그는 디스크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빙글빙글 돌린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만지는 기묘한 감각이 점점 강해진다. 주머니 속 흑공 얼음이 반응하듯 떨린다.


그는 디스크 주변에서 부서진 데이터 단말을 발견한다. “이거라도 남았군.” 단말을 데이터 패드에 연결하자 노이즈 섞인 영상이 재생된다. 연구원들이 흥분된 목소리로 떠들어댄다. “창조의 심연이 열린다!” 한 명이 디스크를 들고 신단으로 다가간다. “이것은 신의 질서다! 어비스의 힘을…” 폭발이 일어난다. 신기가 엑토 오일과 반응하며 불꽃이 치솟는다. 연구원이 비명과 함께 녹아내리고 영상이 꺼진다.



카디스는 픽 웃는다. 그러나 웃음에 불안이 섞여 있다. 그는 디스크의 진동에서 이상한 패턴을 느낀다. 존재가 희석되는 듯한 리듬이다. 그는 흑공 얼음을 꺼내 분석기로 스캔한다. 디스크와 가까이 있을 때 미세한 에너지 피크가 잡힌다. “이 조각이 흑공과 엑토 오일을 연결하는 건가? 엑토 오일과 흑공 얼음이 만나 차원계를 무너뜨린다고?” 그는 냉소적인 미소를 짓는다. “신이 없다는 걸 증명하려면 먼저 신이 있다고 가정해야 하나? 이걸로 뉴동백의 터무니없는 신화를 끝낸다면 재미있겠군.”


그는 흑공 얼음을 디스크에 찔러 넣는다. 무음 속에서 맥동이 일어난다.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는다. 폐허의 벽이 휘어지며 접히고, 바닥이 녹아내리듯 사라진다. 하늘이 뒤틀리며 균열이 퍼진다. 분석기가 경고를 띄운다. [경고: 차원계 데이터 오류. 존재 지움 발생.] 카디스의 손이 보이지 않는다. 장비가 투명해지고, 부츠가 흐려진다. 그의 몸이 지워진다. “신은 없다.” 그의 목소리는 공허 속으로 빨려든다. “이걸 터뜨린 내가 멍청이였을…” 목소리가 사라진다. 카디스라는 존재가 완전히 삭제된다.


공허 속에 검은 안개가 피어오른다. 먹개비다. 러너들이 두려워하는 인과율 오류의 보정자다. 검은 연기가 심연의 원을 감싸고, 디스크는 소리 없이 사라진다. 바람이 다시 분다. 시간이 흐른다. 이 근방은 균열을 메우며 안정화된다. 그날 밤 뉴스에서는 지층 붕괴 속보가 흘러나온다. “오늘 산악 지대에서 싱크홀 발생으로 대규모 지반침하가 관측되었습니다…” 카디스가 일으킨 붕괴는 세상 누구도 알아채지 못한다. 앵커는 심드렁한 목소리로 다음 소식을 읽는다. “다음은 날씨입니다.”


그러나 공허 속에서 의식이 맴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렇다면 존재하는데 왜 없는가? “지금 생각하는 나는 누구인가?” 질문만이 울린다. 그때 희미한 신호가 공허를 뚫고 닿는다. 뉴동백의 흔적인 듯하다. 신을 찾는 소리인지 모호한 파장이 이어진다.

"이제 와서 신을 찾나? 터무니없군." 그는 잠시 망설인다.

사실 그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주)뉴동백은 기어히 신을 찾아내고야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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