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WK단편선 28> 하지만, 신의 아이들.

by 김동은WhtDrgon

도시는 여전히 무거웠다. 기업의 점유 지역들은 대부분 얇은 먼지와 희미한 안개에 잠겨 있었다. 흑공 분출이 줄어들었다 해도 공기는 여전히 묵직하게 폐를 눌렀다. 해가 중천에 떠올랐지만 하늘은 잿빛으로 흐려 있었다. 차량의 방음 유리 너머로 희뿌연 거리가 스쳐 지나갔다. 건물 외벽에 붙은 낡은 디스플레이 패널이 간헐적으로 깜빡이며 오래된 광고를 뱉어냈다. 광고 속 인물의 목소리가 끊기며 이상한 고음을 냈다.


(주)우주굴의 사회기여부 임원 하지만은 뒷좌석에 앉아 기업망 태블릿 화면을 넘겼다. 우주굴 로고가 깜빡이며 화면에 떠올랐다. 그는 창밖을 보다가 손으로 눈가를 문질렀다. 미간에 박힌 액골 임플란트가 과부하 경고음을 뱉으며 피부를 찔렀다. 손끝이 스크린을 스칠 때마다 숫자들이 변했다. 3분기 기업전 지원금, 3,142억 크레딧. 그중 절반은 ‘우회 처리’라는 이름 아래 미로 같은 계정으로 흘러갈 금액이었다. 나머지도 대부분 정해진 주머니로 들어갈 터였다. 그의 손에 쥐어진 재량은 320억 크레딧, 우수리라 부르기에도 민망한 단위였다.


하지만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공기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며 미세한 따끔거림을 남겼다. 눈꺼풀이 무거웠다. 오늘은 긴 하루가 될 것이었다. 아직 절반 이상이 남아 있었다.


연회장은 평소라면 한 자리에서 볼 수 없는 풍경으로 채워져 있었다. 궁정구의 귀족들과 살롱즈의 콜렉터들이 한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보수와 진보를 자처하며 서로를 경멸하던 이들이, 1,200억 크레딧짜리 지원금 앞에서는 다정한 동지로 변신했다. 대리석 바닥은 티끌 하나 없이 반짝였고, 천장에는 전통 패턴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 벽에 설치된 얇은 투명 스크린에서는 실시간으로 도시의 데이터 흐름이 흐릿하게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오케스트라의 현악이 공기를 가르며 울렸지만, 그 소리는 그들의 대화만큼이나 계산적이었다. 테이블 위의 유리잔이 미세하게 진동하며 빛을 굴절시켰다.


“하지만 고문님, 귀한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귀족 한 명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매끄럽고 낮았지만, 눈빛은 날카로웠다. 그의 목에 걸린 생체 모니터링 장치가 미세하게 빛을 깜빡이며 심박수를 표시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손이 와인잔을 놓치며 테이블을 적셨다. 모니터링 장치가 붉게 깜빡였다. 접시에 놓인 요리는 값비싼 해산물과 정교하게 조각된 채소로 장식되어 있었다. 와인잔이 조용히 돌며 붉은 빛을 반사했다. 하지만은 그들의 연기를 지켜보았다. 존경이 아닌 두려움이었다. 품위 있게 포장된 굽실거림, 철저히 계산된 환대.


“우리 도시의 문화 발전을 위해 궁정구와 살롱즈가 힘을 모아…” 귀족이 말을 꺼내자 콜렉터들이 격하게 동조했다. 한 콜렉터가 슬쩍 덧붙였다. “사실 저희가 준비한 특별 프로젝트가 있는데… 165억 크레딧 정도만 추가로 지원된다면…” 그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눈동자가 탐욕으로 반짝였다. 하지만은 그 말을 흘려들으며 태블릿을 힐끗 봤다. 숨을 삼켰다. 그는 와인잔을 내려놓으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액골 임플란트가 다시 경고음을 냈다. 또 피곤해지겠군. 내일이면 이들은 서로를 비난할 것이다.


힙스는 달랐다. 거대한 홀로그램 광고가 거리를 밝혔고, 미술관과 공연장 앞에는 긴 대기 줄이 이어졌다. 화려한 쇼핑몰과 상품과 광고판의 향연, 그 사이의 무언가는 예술일 것이었다. 힙스의 예술가들은 “혁신”과 “창의성”을 입에 달고 살았다. 회의실에서 그들은 480억 크레딧짜리 지역 문화 부흥 프로젝트를 설명했다. 천장에 매달린 오래된 아트 조명 장치가 낮은 윙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레트로스럽게 장식된 먼지가 쌓인 날개가 공기를 흐리게 했다. 그 아래 예술가들의 땀 냄새가 떠돌았다.


“결국 얼마가 필요한지, 그것부터 이야기합시다.” 하지만의 목소리가 회의실을 얼어붙게 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조명 장치의 윙 소리가 더 커진 듯했다. 한 예술가가 손톱을 물어뜯으며 홀로그램 노트에 낙서를 끄적였다. 그들의 열정은 공허하게 울렸다. 힙스는 언제나 화려했지만, 빌린 돈을 갚아야 하는 순간에는 어김없이 주저했다. 하지만은 시간을 확인하며 한숨을 삼켰다. 액골 임플란트가 다시 찌릿했다. 이곳은 언제나 피로를 남기지. 그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비즈니스구의 회의실은 차가웠다. 정장 차림의 임원들이 앉아 있었고, 그들의 목 뒤에 박힌 데이터 패치가 은은한 빛을 뿜었다. 테이블 위에는 차가운 숫자들이 적힌 보고서가 놓여 있었다. 벽면에는 실시간으로 계정 간 크레딧 흐름을 추적하는 홀로그램이 떠 있었다. 숫자들이 빠르게 바뀌며 허공에 잔상을 남겼다.


“3분기 처리 항목입니다. A계정으로 우회되는 금액은 1,571억 크레딧입니다.”

서로가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게임이었다. 한 임원이 보고서를 내밀며 미소를 지었지만, 눈은 차갑게 빛났다. 그가 의자를 살짝 뒤로 뺐다. 데이터 패치가 그의 목에서 낮은 신호음을 뱉었다. 하지만은 그들의 말투에서 허영을 찾을 수 없었다. 거짓말도 없었다. 비즈니스구는 적어도 정직했다. 거래는 거래였고, 이익은 이익이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미간이 다시 따끔거렸다. 여긴 그나마 나아.


서민구에서는 분노가 터져 나왔다. 낡은 커뮤니티 센터의 테이블에 앉은 주민 대표들은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의 손에는 구겨진 종이 몇 장이 들려 있었고, 그 위에는 조잡한 글씨로 예산안이 적혀 있었다. 벽에는 오래된 배관이 노출되어 있었고, 천장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바닥에 작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물이 튀며 신발에 얼룩을 남겼다.


“겨우 30억 크레딧입니까? 35억은 줘야지!”

한 남자가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는 갈라졌고, 얼굴은 땀으로 번들거렸다. 그의 손목에 박힌 오래된 임플란트가 삐걱이며 붉은 경고등을 깜빡였다. 다른 대표가 말했다. “줄이면 티 날 정도로 짜놓고, 이게 뭡니까?” 여자가 예산안을 찢으며 덧붙였다. “이 돈으로 필터 하나 더 사면 우리가 먹을 몫이 줄잖아요!” 그녀의 손이 떨리며 임플란트가 삐걱거렸다. 그들의 분노는 탐욕이 대놓고 뒤섞여 있었다. 하지만은 묵묵히 들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돈 맡겨놨나? 결국 자기들끼리 해먹을 돈 아니야?


“어차피 5억은 줄 돈이었잖아요. 그걸로 뭘 하라는 겁니까? 우리를 개돼지 취급하는 것도 아니고!” 여자가 손톱으로 테이블을 긁으며 소리쳤다. 결국 그는 태블릿에 35억 크레딧을 입력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무감했다. 액골 임플란트가 다시 경고음을 울렸다. 그는 손을 주물렀다.


마지막은 서민구 외곽, 노마드 영역에 가까운 곳이었다. 기업의 손길이 닿지 않는 세상의 끝. 어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메가톤교단인지 뭔지 유치한 급조된 이름 같은 곳 근처였다. 낡은 커뮤니티 센터는 초라했지만 정갈했다. 건물은 폐허에서 주운 금속 조각과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엉성하게 이어져 있었다. 창문은 부서진 유리 대신 얇은 플라스틱 시트로 덮여 있었고, 문 앞에는 오물 냄새가 진동했다. 노마드들이 입은 옷은 여기저기 기운 헝겊과 버려진 방수 재킷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한 남자의 팔에서 낡은 회로가 삐져나와 바람에 흔들렸다.


“지난번 지원해주신 금액으로 이렇게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안내하는 노인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고, 눈빛은 맑았다. 센터 안에는 소박한 흔적들이 있었다. 폐 배터리로 만든 조명이 희미하게 깜빡였고, 버려진 상자에 심은 작은 식물들이 창가에 늘어서 있었다. 얼마였지? 그때. 기억력 좋은 그가 기억도 못할 금액이었을 것이다.


노인이 종이들을 내밀었다. “여기, 모두 함께 필요한 걸 적어봤습니다. 물 정화 필터 2백만 크레딧, 책 1백만, 나머지는 연필과 낡은 담요 값으로…” 서로 다른 필체로 차곡차곡 적힌 숫자를 꼼꼼히 읽다가 멈췄다. 노인의 손끝이 종이를 떨며 접혔다. “여기 계신 분들이 서로를 돕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그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그때 문이 삐걱이며 열렸다. 아이들이 뛰어 들어왔다. 맨발에 낡은 재킷을 걸친 그들은 손에 폐 플라스틱 조각을 들고 웃으며 노인에게 달려갔다. “할아버지, 이거 봐요!” 한 아이가 외쳤다. 그들의 반짝이는 눈이 하지만을 향했다. 그는 숨을 멈췄다. 아… 신의 아이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번 순회에서 길에서, 건물에서,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던 아이들. 숫자와 계정만 보던 눈이 처음으로 사람의 세계를 마주했다. 노인이 아이들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아이와 함께 들어온 여자가 다가왔다. 그녀는 하지만에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먼 곳까지 오시다니, 정말 고맙습니다.” 그녀가 폐 플라스틱 병에 담긴 물을 건네며 말했다. “이건 제가 어제 정화한 거예요. 드셔도 괜찮아요.” 그들의 태도는 예의 바르면서도 따뜻했다.


하지만이 무심코 던진 말—“기업은 여러분을 잊지 않을 겁니다”—에 그들은 진심으로 희망에 차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씀만으로도 힘이 됩니다.” “오늘 좀 피곤하네요”라는 한마디에 누군가가 낡은 의자를 끌어왔다. 아이 하나가 그의 옆에 서서 물끄러미 올려다봤다. 하지만은 문득 깨달았다. 이곳에서는 그의 권력이 의미 없었다. 다음 일정을 알리는 찌릿함이 액골 임플란트로 울려왔다.


“당신들은… 왜입니까?” 그의 알 수 없는 질문에 노인이 미소 지었다. “우리는 그저 사람답게 살고 싶을 뿐입니다. 당신도, 우리도, 모두가 그저 사람이니까요.” 하지만은 잠시 멈칫했다. 그들의 순수함이 불편하게 다가왔다. 그는 미간을 문지르며 숨을 내뱉었다. 내가 뭘 할 수 있단 거지? 이제서야 사람을 본 건가?


차 안에서 그는 태블릿을 켰다. 잠시 망설이다 숫자를 입력했다. 170억 5백만 크레딧. 비고란에 그는 적었다. ‘신의 아이들을 위한 특별 지원금. 단, 170억 크레딧은 서민구 내 지정된 재개발 지역 기부로 우회 처리.’ “170억 5백만 크레딧 처리 중. 확인?” AI 비서가 물었다. 그는 고개만 끄덕였다.


며칠 후, 그 급조된 이름의 근처 서민구 계좌로 5백만 크레딧이 입금되었다. 그들은 그 돈으로 필터를 사고, 책을 나눠주었다. 하지만 그 뒤로 이야기는 꼬였다. 기업망 정보에 따르면 - 궁정구 인사가 50억 크레딧 리베이트를 챙겼고, 교단은 힙스구로 떠났다. 아이들은 어떻게 됐는지 알 길 없었다. 다음 순회 목록에는 그 마을이 없다.


하지만은 태블릿을 내려놓으며 씁쓸하게 웃었다. “다음 순회 때 또 아이들을 볼 수 있을까.” 냉담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알고 있었다. 자기가 뭘 하든 이 도시엔 신 따윈 없다는 걸. 그는 화면을 업무로 전환했다. 제발 그 아이들에게 신의 은총이 우수리라도 남기를 바라면서.


DALL·E 2025-02-24 18.16.06 - A panoramic dystopian cityscape with a mix of decayed buildings and futuristic structures. The atmosphere is more hopeful, with golden sunset light br.jp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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