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도는 카페 구석에 앉아 커피를 홀짝였다. 얇은 먼지와 희미한 안개가 창밖을 뒤덮은 FEWK의 공단계는 숨 막혔지만, 이곳은 잠깐의 평온을 줬다. 오퍼나지 갱단 꼬맹이들한테서 벗어난 지 얼마나 됐는지 기억도 안 났다. 마지막으로 제대로 쉰 게 언제였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짱쿠소와 그 패거리들이 워낙 손 많이 가는 놈들이라 머리 식히는 게 절실했다. 커피를 반 잔도 못 비웠을 때, 손목의 통신 임플란트가 찌릿하며 진동했다. 메시지가 떴다.
“야, 삼촌! 우리가 못 가는데서 혼자 뭐하냐? 두목이 애들 팽시키기야? 우리가 니 사냥개라도 되냐? 왜 삶고 난리야? 나이드니까 이제 삶은 개가 땡겨? 우리 요란하게 개 한번 잡아볼까? 한따까리 해?”
황도는 눈을 찡그리며 단말기를 내려봤다. 아따, 이 새끼 또 뭐야? 고개를 들자 카페 유리문에 짱쿠소와 여동생 아름이가 얼굴을 납작하게 붙이고 있었다. 코와 입이 유리에 찌그러져 우스꽝스러운 모양을 만들었다. 그 앞엔 커다란 팻말이 붙어 있었다. 들어올 때 신경 쓰지 못했던 글자였다.
어린이 출입 금지 (NO 'KIZ' ZONE)
황도는 피식 웃었다. 이 망할 꼴통들, 새삼 웃기네. 공단 차원계 신디케이트를 능욕하던 미스터리 갱단이 이런 데선 또 순수했다. 물론 입 밖으로 내면 안 된다. 약한 티 내면 평생 쥐어짜일 테니까.
황도가 이 오퍼나지 갱단의 어른 보호자가 된 건 우연이었다. ‘복숭아’라는 예명으로 악명 높은 피지컬 러너인 그는 러너들을 물질계에서 습격해온 덕에 악질 취급을 받고 있었다. 차원계에서는 죽어봐야 현실이고, 매번 물질계 현실로 도망나오는 경우도 있고, 차원계 러닝중에 물질계에서는 잠들게 되니 피지컬 습격이 유효한 경우도 많아서 공단계의 더러운 일거리를 도맡아왔다. 그러던 중 공단계에 이름 없는 갱단이 나타났다. 약탈 없이 학살과 파괴만 일삼는 놈들. 조폭 사업장이 묻지마 테러로 쑥대밭이 되자, 앙숙인 신디케이트들이 돈을 모아 황도를 불렀다. 그들이 경멸하던 피지컬 러너를 부를 정도면 사태가 심각했다. 특히 드랍아웃시킨 보스 딸 얼굴에 똥 싸놓은 사건이 결정타였다.
황도는 작업에 들어갔다. 인공계와 물질계 연결을 추적하고, 흔적을 더듬었다. 위치를 특정하고, 터미널 룸에서 모자를 쓰고, 폭탄 가방을 메고 산길을 걸었다. 목표 건물 앞에 도착했을 때, 눈에 들어온 건 ‘들꽃 보육원’ 간판이었다. 아무리 더러운 일을 해도 보육원은 못 건드렸다.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DDOGG로 보호받는 애들이 있는 곳에서 패러독스가 터지면 끝장날 테니까. 조사를 깊이 파고든 그는 전말을 알아냈다.
어린 고아들이었다. 보육원 지하 동쟁시대 벙커의 터미널을 발견한 아이들이 게임인 줄 알고 벌인 짓이었다. 신디케이트에 갱단을 처리했다고 보고하고 보수를 챙긴 황도는 두 가지 고민을 떠안았다. 희귀한 두 자리 벙커29와 이 빌어먹을 꼬맹이 갱단. 그리고 특히 그 두목격인 꼬마 쿠소.
황도가 들꽃 보육원 벙커로 돌아오자 짱쿠소가 반쯤 자는 애들을 모아놓고 쌍욕을 뱉고 있었다.
“야, 삼촌! 잘 왔어! 우린 갱단인데, 뭔 X같은 애 취급이야? 여기 좀 봐! 아, 노화로 잘 안 들리나? 다시 말해줄까, 이 늙은 XX야?” 10살도 안 된 꼬맹이지만, 입만 열면 40년 짬바 깡패도 패고 싶어질 놈이었다. 황도는 이 꼴통이 왜 자기 밑에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삼촌, 우리가 문제야? 세상이 문제야? 정말 내는 이런 대우받고 못산다. 진짜. ”
“뭔 개소리야, 이 쌍욕쟁이 새끼.”
“야, NO KIZ ZONE? 어린이 출입 금지? 무슨 X같은 논리야? 쿠소는 애 취급 안 받아. 너나 애처럼 굴어, 이 어른 코스프레하는 XX야!”
갱단 애들이 웅성거렸다. 갈 곳 없는 고아들, 황도가 붙잡아 조직이 됐는데, 어디나 ‘어린이 출입 금지’ 딱지가 붙었다. 황도는 이유를 알았다.
문제는 애들이 아니라 DDOGG였다. 아이들과 함께 노는 오얏만한 반려 존재인 아동 친구들인 DDOGG는 언제부터인가 아이들과 함께 태어나 성인이 되면 사라지는 존재였다. 이들의 작용은 물질계에선 별 효력이 없지만 차원 패러독스에 노출된 러너들에겐 민감한 골칫거리였다. DDOGG가 만드는 로컬 인과율이 차원계에서 인과를 뒤틀어 패러독스를 일으켜 난데없이 애들 놀이에 패러독스를 왕창 뒤집어쓰는 사태가 날 수 있었다. 그래서 러너 카페엔 No kids의 의미로 “NO KIZ”가 붙은 거였다. 원래 그런걸 붙이지는 않았지만 오퍼나지 갱단이 공단계에서 사고를 제대로 치는 바람에 유행처럼 퍼진 스티커였을 뿐이다. 애들이 러너카페 올 일은 없었으니까.
황도는 설명할 생각 없었다. 짱쿠소가 주먹을 부르르 떨며 들 때마다 아름이가 따라 하는 게 귀여워 그냥 쳐다보고 있었다. 어차피 쿠소와는 처음에 눈물이 쏙 빠지게 펑펑 울게도 해보고 고쳐보려 했지만 포기한지 옛날이다.
저래보여도 애는 착하다. 어디선가 긁어모은 욕들은 욕이 아니라 그저 지지않을 애썬 노력일 뿐이다.
“이 XX놈들이 우리가 애라서 못 들어가게 해? 아주 무서운 게 없구만. 히어로폰 한 봉지 던져주면 질질 싸는 새끼들이…”
쿠소는 입으로 담배 피는 흉내를 내며 땅에 침을 뱉었다. “아따, 이놈들 손 많이 가는구만. 우린 애가 아니라 조직이야, 이 멍청한 XX들아!” 황도는 한숨을 쉬었다. 이 꼬맹이의 터무니없는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며칠 뒤, 오퍼나지 갱단은 벙커29에서 작전 회의를 열었다. 테이블은 낡은 금속 상자였고, 벽엔 폐 배터리 조명이 깜빡였다. 짱쿠소가 주먹을 치켜들며 외쳤다.
“야, 플랜 A 가동! 삼촌, 스페셜 임무 준비됐어?”
황도는 눈을 굴렸다. “뭔 또라이 같은 짓이야?”
“우린 애가 아니라 조직원이야. 삼촌이 증명해줘야지, 이 늙은 XX야!”
계획은 비장했다. 황도는 정장을 입고, 가짜 수염을 붙이고, 넥타이를 맸다. 손엔 위조된 ‘오퍼나지 주식회사’ 사업자 등록증을 들었다. 심호흡을 하고 NO KIZ ZONE 카페로 들어갔다. 카운터엔 덩치 큰 러너 점원이 서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오퍼나지 주식회사’ 대표입니다. 계약 논의하러 왔습니다.”
점원이 황도를 위아래로 훑었다. “복숭아 아냐? 피지컬 러너?”
아! 아는 러너였다. 나름 황도에게 쌓인게 있는 러너.
황도는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대답했다. “오늘은 사업차 왔습니다.”
점원이 창밖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저 밖에 애들은 뭐야? 여긴 애들 출입 금지야.”
황도는 속으로 빵 터지지 마를 되뇌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애 아닙니다. 갱단입니다.”
점원이 어이없다는 듯 쳐다봤다. “뭐?” 험악한 말투에 황도의 말투가 공손해졌다.
“법적으로 조직폭력단입니다. ‘어린이 출입 금지’지, ‘갱단 출입 금지’는 아니잖아요?”
그 순간, 문이 벌컥 열리며 갱단 애들이 줄지어 들어왔다. 손엔 위조 신분증이 들려 있었다.
“저는 28세 성인입니다. 성장이 멈췄을 뿐이에요.”
“저는 드워프 혈통입니다.”
“저는 선천적 소인증이에요.”
점원이 기가 막혀 황도를 쳐다봤다. “그럼 너는 뭐야? 늙어 보이는 어린이?”
짱쿠소가 끼어들었다. “야, 머리 한번 깨져봐야 아 내가 말하기 전에 생각이란걸 해야하는구나하고 정신 차리겠어, 이 멍청한 XX야!”
점원이 더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야, 다 꺼져! 나가!”
꿀밤을 세게 맞은 쿠소가 걷어차인 황도의 궁둥이를 툭툭 치며 위로했다. “삼촌, 괜찮아. 저 새끼들이 더 X같은 새끼들이야. 협상은 개XX나 하는 거야, 쿠소는 무조건 이기는 게임만 해!”
벙커로 돌아온 쿠소는 포기할 줄 몰랐다.
“플랜 B 가동! 다 모여!”
황도는 눈을 굴렸다. “뭔 또 똥같은 계획이야?”
“이번엔 DDOGG다, 삼촌. 머리 써? 쿠소는 본때를 보여주는 사나이지! 야! 다 집합!”
NO KIZ ZONE 앞에 갱단의 DDOGG들이 배치됐다. 동백국 전통 떡같이 생긴 것들이 “똒 똒!” 소리를 내며 뛰어다녔다. DDOGG들은 아이들이 설정한 놀이에 따라 카페 입구마다 똥 테러를 시작했다. 하루 만에 카페 거리는 패러독스의 똥 지뢰밭이 됐다.
“도저히 영업 못 해…” 러너 운영진은 긴급 회의를 열었다. 딱히 보복할 방법도 없고 가치도 없고 이래저래 그냥 골치아플 뿐이라 결론은 쉽게 났다. DDOGG의 로컬 인과율이 패러독스를 일으키는 혼란을 우려해 ‘어린이 출입 금지’를 철회했다.
갱단은 승리의 기쁨에 환호했다. “이제 애들도 들어갈 수 있다!” 짱쿠소가 외쳤다. “삼촌, 이 XX같은 세상에서 쿠소가 웃는 걸 막을 놈들은 없어! 지들이 뭔데? 웃음 경찰이야?”
다음 날, 카페 앞에 간 쿠소는 어이없는 광경을 봤다. “NO KIZ ZONE” 팻말이 사라지고 새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갱단 출입 금지 (NO GANG ZONE)
“아니, 이 멍청한 XX야, 이게 뭐야!? 쿠소는 한 번 말하면 두 번 안 해! 안 들을 놈들은 다 XX로 보내버려!” 짱쿠소가 발을 굴렀다. 아름이가 따라 하며 깔깔 웃었다. 황도는 피식 웃었다. 웃음에 기분이 풀어진 쿠소가 따라 웃으며 말했다.
“그래. 뭐 우린 갱단이니까 갱단 출입금지구역을 갈 필요는 없지!” 그러곤 아름이 손을 잡고 고아원으로 돌아갔다.
황도는 다시 평온한 공간에서 커피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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