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트는 승자였다. 64명의 러너가 투입된 차원 생존 전략게임, "전쟁과 평화"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자. 언카날 밸리라는 개척차원계의 흙먼지를 밟은 이들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지배자.
규칙은 단순했다. 주어진 부족을 규합하고, 다른 플레이어들을 제거하며, 최후의 한 명이 되는 것. 케이트는 누구보다 치밀했다. 전쟁 초반, 그녀는 고요한 물처럼 움직임 없이 깊숙이 가라앉았다. 네이티브 부족 하나를 설득해 아군으로 삼고, 그들을 키웠다. 타 플레이어들이 서로의 영토에 불을 지피고 피로 강을 물들일 때, 그녀는 침묵 속에서 기다렸다. 그리고 마지막 세 세력만 남았을 때, 물 밖으로 튀어오른 상어처럼 단숨에 그들을 삼켰다.
승리의 맛은 달콤했다. 물질계로 돌아가 상금을 받고, 살롱즈의 네온 조명 아래 유리잔을 기울이며 새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러너라면 누구나 꿈꾸는 엔딩. 하지만 케이트는 그 문을 열지 않았다. 그녀는 언카날 밸리에 발을 디딘 채로 남았다.
"왜 안 돌아갔어?" 프리먼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호수의 표면처럼 잔물결 없이 고요했다.
전쟁이 끝난 후, 케이트는 승리의 상금을 물질계 화폐 대신 이 차원계의 물질로 받았다. 현실에서는 쓸모없는 디지털 주화와 다름없는 선택. 물질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뇌가 타버렸나? 현실에서 못 쓰는데?" 하지만 케이트는 웃었다. 그녀는 이곳에서 자신이 만든 유토피아를 지키고 싶었다. 자신의 손끝에서 자라난 세계.
프리먼은 그녀가 처음 규합한 부족의 일원이었다. 날카롭게 이글거리는 눈과 단단한 턱선을 가진 미남. 부족 내에서 가장 예리했고, 케이트의 전략을 해독하는 유일한 네이티브였다. 전쟁 중 그녀는 그를 자신의 그림자처럼 곁에 두었다. 승리 후엔 더 가까워졌다. 백야의 밤마다 그들은 함께 누웠고, 케이트는 그를 사랑한다고 믿었다.
"여기 있는 게 나쁘지 않잖아." 케이트가 말했다. 그녀의 손길 아래 도시가 자랐다. 흩어진 부족들은 한데 모여 안정을 찾았다. 전쟁의 폐허는 재건되었고, 평화의 씨앗이 자리잡았다. 방송국은 이 장면을 특집편으로 연장해 중계했다. 시청률은 하늘을 찔렀다. 전쟁광들은 이미 다음 시즌의 피로 물든 경기장으로 시선을 돌렸지만, 케이트와 프리먼의 이야기는 여전히 시청자들의 홍채를 사로잡았다.
프리먼은 고개를 저었다. "이건 우리가 만든 게 아니야. 너 혼자 만든 거지."
케이트는 그의 얼굴을 손으로 감쌌다. "넌 정말 완고해."
그녀는 몰랐다. 프리먼에게 그녀는 사랑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걸. 그에게 케이트는 달 표면에 내려앉은 외계 바이러스에 불과했다. 언카날 밸리는 1g에 1해 바이트의 세계였다. 물질계보다 1/10000 낮은 정보 밀도. 하지만 이곳은 단순한 게임 공간이 아니었다. 네이티브들은 육안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존재였다. 뇌네라는 차원 보정이 작동해 인간의 형상을 했지만, 그 본질은 심해생물처럼 알 수 없었다. 개미일 수도, 아메바일 수도 있었다.
프리먼은 그들 중 하나였다. 이 땅의 고유한 데이터 패턴으로 태어나고 자란 자.
케이트는 달랐다. 그녀는 하늘을 가른 전기 불꽃처럼 내려온 침략자였다. 전쟁 중 그녀는 자신을 반신이라 불렀다. 신의 권능을 가진 외부 존재. 부족들은 그녀의 발자국 소리에 엎드렸다. 두려움과 경외심의 혼합물로. 하지만 전쟁이 끝난 지금, 그녀는 무엇이었는가? 프리먼의 눈에 그녀는 마지막 남은 적이었다. 이 우주에 침입한 바이러스의 마지막 코드.
"네가 떠나야 해, 케이트." 그가 말했다. 목소리에는 감정이 없었지만, 눈빛은 겨울의 마지막 얼음처럼 단호했다.
그날 밤, 케이트는 자신의 왕국에서 깊게 잠들었다. 승리의 여운과 프리먼의 체온이 그녀를 감쌌다. 그녀는 꿈을 꾸었다. 자신이 심은 도시가 끝없는 평원 위에 퍼져나가고, 부족들이 그녀의 이름을 구원자로 새기는 꿈.
프리먼은 침대 위 케이트를 내려다보았다. 손에는 칼날이 들려 있었다. 그것은 무지개빛 금속으로, 차원계의 원소로 제련된 것이었다.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칼날은 케이트의 목을 가로질렀다. 피는 검은 디지털 잉크처럼 퍼져나갔다. 케이트의 눈이 잠깐 떠올랐지만, 이미 늦었다. 그녀의 몸은 빛의 입자로 분해되어 공기 중에 흩어졌다.
드랍아웃. 차원계에서 죽은 러너는 물질계로 강제 송환된다. 케이트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녀는 언카날 밸리의 데이터 스트림에서 영원히 지워졌다.
프리먼은 칼을 내려놓았다. "이제 끝났어." 그의 목소리에는 승리도, 후회도 없었다.
그는 케이트를 사랑한 적이 없었다. 그녀가 그를 아꼈던 건 케이트 혼자만의 환상이었다. 프리먼에게 케이트는 인간의 가면을 쓴 침략자였다. 이 세계를 마음대로 전쟁터로 만들고, 부족들을 체스말처럼 죽음으로 몰아넣은 외부자. 그녀가 남아있는 한, 이 땅은 영원히 그녀의 장난감일 뿐이었다. 암살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연이었다.
"전쟁과 평화"는 고해상도로 생중계된 생존게임이었다. 케이트의 드랍아웃 순간은 물질계 시청자들의 망막에 생생히 각인되었다. 그녀가 칼에 찔리는 장면, 몸이 빛의 입자로 분해되는 순간까지. 한때 그녀에게 지지를 보냈던 사람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그러나 그 소란은 디지털 태풍처럼 금세 지나갔다.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자 관심은 다음 희생양들에게 옮겨갔다.
케이트는 현실의 차가운 공기 속으로 돌아왔다. 고시원의 싸구려 다이버 코핀 안에서 그녀의 육체는 눈을 떴다. 상금은 차원계 물질로 받았기에, 그녀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방송국은 시청률을 위해 그녀를 인터뷰하려 했다. 자동응답기에 메시지가 쌓였지만 응답은 없었다. 결국 한 기자가 그녀의 주소지를 찾아갔다. 문을 열자, 케이트는 차원이동용 다이버 코핀 침대에 반쯤 걸친 채로 누워 있었다. 숨은 쉬었지만, 눈동자는 공허했다.
의사들은 뇌사를 판정했다. 드랍아웃의 일반적인 부작용은 아니었다. 조사 결과, 케이트는 자신을 드랍아웃시킨 언카날 밸리로 재진입을 시도한 흔적이 발견되었다. 죽은 자가 같은 차원계로 돌아가는 건 금지된 역설이었다. 그런 무모한 행위는 인과율 오류를 일으켰고, 그녀의 뇌는 차원 이동의 대가를 치렀다.
왜 그랬을까? 배신의 칼날이 남긴 상처 때문이었을까? 복수심이 그녀를 이끌었을까? 아니면 프리먼에 대한 맹목적 사랑이었을까? 아무도 몰랐다. 그저 단서만 남겨졌을 뿐이다. 물질계에서 러너의 죽음은 또 하나의 통계 숫자였다. 케이트도 그저 그중 하나로 역사의 페이지 뒤로 밀려났다.
케이트는 깨어난 수분 후 재진입을 시도했다. 그 사이, 시간대가 다른 언카날 밸리에서는 프리먼이 왕조의 시작을 선언했다. 대관식이 열리는 순간, 하늘이 전기로 갈라졌다. 대자연의 질서에 도전한 케이트의 바이트가 전해질로 분해되며 오로라가 되었고 빛은 디지털 이슬처럼 대관식장 위로 내려앉았다.
프리먼의 지지자들은 그 빛을 우주의 축복이라 해석했다. "우리의 왕이 선택받았다."
하지만 그림자 속 반대파들은 다른 이야기를 속삭였다. "성녀가 돌아왔다." "그녀의 혈통이 우리를 해방시킬 것이다." 저항의 씨앗이 심어졌다. 프리먼 왕조의 폭정을 뒤엎을 반란의 신화, 성녀 전설이 태동했다.
프리먼은 금속과 빛으로 만든 왕좌에 앉아 자신의 제국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빛은 알고리즘처럼 차갑고 계산적이었다. 신화가 퍼질수록, 그는 더 강력한 검열과 통제로 대응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케이트의 코드는 이 세계의 프로토콜에 영원히 각인되었다. 데이터는 결코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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