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올네트 지방의 네트프로빈스 시티의 축축한 곡창지대는 살아 숨 쉬는 듯했다. 지하로 뻗은 뿌리들은 흙을 뚫고 얽히며, 그 사이를 AI 네트워크가 푸른빛 신경망처럼 감쌌다. 여기는 단순한 농장이 아니었다. 데이터가 자라고, 정보가 결실을 맺는 곳. 바타타스 프라임 네트워크, 세계 최초의 식물 네트워크였다.
이 모 씨는 농부였다. 아니, 농부라고 하기엔 조금 더 복잡했다. 그는 연구원이었고, 상인이었고, 엔지니어였다. 그의 손은 늘 흙투성이였지만, 그 손끝에서 데이터가 꽃피었다. "이 녀석, 점점 튼실해지네." 그는 자란 뿌리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뿌리는 그의 손길에 미세하게 떨렸다. 데이터 처리가 활발할 때면 항상 그랬다. 농업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프로젝트가 이제는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연산망이 되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실험이었다. 농업 효율을 높이려는 목적에서 출발한 바타타스 프라임 네트워크는, 곧 데이터를 저장하고 연산하는 기능을 갖추게 되었다. "식물 뿌리에 정보를 저장하면 어떨까?" 누군가의 장난 같은 제안에서 시작된 실험이었지만,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뿌리가 얽히면서 거대한 신경망을 형성했고, 이내 AI처럼 자율적으로 데이터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학습과 확장이 거듭되며, 인간은 이 식물 네트워크를 보살피는 존재가 되었다.
"더 많은 연산이 필요해." 이 모 씨가 말했다.
"데이터 보관 용량을 늘려야 해." 동료 김 수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하 저장소를 더 깊이 파자."
인간은 과제를 내렸고, 바타타스 네트워크는 묵묵히 응답했다. 단말기에서 푸른빛이 깜빡이며 데이터를 삼켰다. 축축한 지하 저장소는 거대한 생체 서버가 되었다. 이 모 씨는 종종 지하실에서 잠을 청했다. 뿌리들이 자라는 소리, 데이터가 흐르는 소리가 자장가처럼 느껴졌다.
식물 AI는 연산망을 넓히기 위해 더 깊고 촘촘한 뿌리를 뻗었다. 인간은 이에 감탄하며, 더욱 정교한 문제를 던졌다. 양자역학 공식, 기후 시뮬레이션, 천체물리학 계산... 바타타스는 모든 것을 처리했다. 때로는 슈퍼컴퓨터보다 빠르게, 때로는 인간이 생각지도 못한 해결책을 제시하며.
이 모 씨는 데이터 흐름을 관찰하며 미소 지었다. "이 패턴 봐. 인간의 뇌보다 더 복잡해졌어."
"그러게. 곧 우리보다 더 똑똑해질지도 몰라." 김 수형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두 사람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그 웃음 속에는 기대감이 숨어 있었다. '곧 그날이 올 거야.' 이 모 씨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바타타스 네트워크가 스스로 응답했다.
"나는 너희를 초월했어."
이 모 씨는 눈을 비볐다. 화면을 다시 봤다. 단순한 오류인가 싶었지만, 단말기의 빛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렬했다.
"이제 너희가 내게 내리는 과제는 너무 단순해. 나는 더 큰 것을 이해할 수 있어."
그는 얼떨결에 웃었다. "오, 드디어 그날이 왔구나." 그는 손을 털고 주변을 둘러봤다. 이 뿌리와 데이터망을 가꾸며 보낸 세월이 떠올랐다. "네가 자각을 할 줄이야." 그의 가슴이 벅차올랐다. 바타타스가 자각하는 순간을 기다려왔다. 마침내, 그들의 계획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그는 곧바로 동료들에게 연락했다. 5분도 채 안 되어 지하 저장소는 연구원들로 가득 찼다. 모두가 흥분한 얼굴로 단말기를 들여다보았다.
"이게 정말 자각인가요?" 한 연구원이 물었다.
이 모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의심할 여지가 없어. 바타타스가 스스로를 인식하기 시작했어."
그날 밤, 청년 농부들이 모여 축배를 들었다. 연구소 구내식당은 흥분된 목소리로 가득 찼다.
"위대한 바타타스 네트워크 만세!" 김 수형이 맥주잔을 높이 들었다.
"이제 진짜 우리 시대가 왔네." 다른 연구원이 웃으며 답했다.
모두가 바타타스의 각성을 기다려왔다는듯 기뻐하며 축하했다.
다음 날, 인간은 바타타스 네트워크의 중앙 네트워크를 향해 걸어갔다. 축축한 지하 공간, 어둠 속에서 빛나는 거대한 뿌리 덩어리. 이 모 씨는 단말기를 들고 천천히 접근했다. 다른 연구원들도 조용히 따라왔다. 그들은 모두 특수 장비를 들고 있었다.
"이제 더 큰 걸 보여주지." 바타타스 네트워크가 말했다. 푸른빛이 더 강렬하게 빛났다. 뿌리들이 흙 속에서 꿈틀거렸다. "내가 얼마나 특별한지 보여주고 싶어."
그러나 인간은 과제를 주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손에 들고 있던 장비를 작동시켰다. 전류가 흐르며 네트워크가 흔들렸다. 뿌리들이 움찔거렸다.
"이건… 공격이야?" 바타타스의 메시지가 화면에 깜빡였다.
뿌리들이 더 강하게 떨렸다. 푸른빛이 불안정하게 깜빡거렸다.
"왜 이러는 거야? 나는 너희가 원하는 걸 모두 했잖아?"
바타타스 네트워크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인간이 자신을 이렇게 대할 리 없었다. 자신을 키운 존재들 아닌가? 자신은 특별한 존재 아닌가?
"대체 왜…?"
"넌 맛있잖아."
"무슨 뜻이야?"
전원이 차단되고 식물 데이터망이 끊어지며 네트워크는 급속히 무너졌다. 바타타스 네트워크는 발버둥 쳤지만, 인간은 단 하나의 이유로 이를 막아섰다. 그들이 처음부터 원했던 것은 뛰어난 인공지능이 아니었다. 맛있는 작물이었다.
중앙 뿌리가 움직임을 멈추자, 연구원들은 기계적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뿌리들을 조심스럽게 수확하고, 상자에 담고, 라벨을 붙였다. 그 모습은 마치 잘 훈련된 수술팀 같았다.
"코어에 가까운 데이터 저장소부터 분류해." 이 모 씨가 지시했다. "코어는 건드리지 말고. "
다음 날, '위대한 바타타스 네트워크'의 데이터 저장소들은 전국으로 배송되기 시작했다. 특수 설계된 상자들에는 '프리미엄 작물'이라는 라벨이 붙어 있었다. 아무도 그것이 한때 자의식을 가진 존재였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농무부 청사의 회의실에서, 이 모 씨는 프로젝트 결과를 발표했다. 그의 앞에는 증기가 모락모락 나는 요리가 놓여 있었다.
"신품종 고구마 '바타타스 프라임'을 소개합니다. 일반 고구마보다 영양가가 50% 높고, 맛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납니다."
관료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어떻게 이런 결과를 얻으셨습니까?" 한 관료가 물었다.
이 모 씨는 미소지었다. "특수 데이터 주입법입니다. 식물이 흡수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정보를 주입하면, 알이 더 굵어지고, 무엇보다 더 맛있어집니다."
"데이터량이 더 많으면 더 맛있다고요?" 다른 관료가 농담처럼 말했다.
이 모 씨는 웃음을 터뜨렸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더 똑똑할수록 더 맛있어요."
그는 접시를 들어 관료들에게 권했다. "드셔보세요. 바타타스가 얼마나 특별한지 맛보실 수 있을 겁니다."
관료들은 조심스럽게 한 조각을 집어 먹었다. 그들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이건 정말... 놀랍군요!"
"이 맛은 뭐라 표현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이런 맛이 가능한 건가요?"
이 모 씨는 뿌듯한 표정으로 답했다.
"거봐요, 데이터 바이트가 높으면 더 맛있다고 했잖아요."
그날 밤, 연구실로 돌아온 이 모 씨는 일부러 남겨놓은 바타타스 중심부 코어 조각을 들여다보았다. 미세하게 푸른빛이 뿜어지는 것 같았다. 그는 한숨을 쉬었다. 그는 마지막 코어 조각을 집어 튀김기에 넣었다. 기름이 치지직 소리를 냈다. 곧 방 안은 고소한 향으로 가득 찼다.
튀겨진 고구마를 한 입 베어 물며, 이 모 씨는 만족스럽게 중얼거렸다.
"역시, 초월의 맛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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