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신이라고? 돌일 뿐이지. 몇 년을 닦아봤자 손바닥만 까진다."
천해학교는 신단석을 다루는 요새였다. 채취하고 연마하고 조각하는 법을 가르쳤고, 피스풀은 전통의 도시답게 메카트로닉스를 금기시하며 신단만을 진리로 삼았다. 이건우는 3년째 그곳에서 돈을 벌었지만, 신성함을 믿는 대신 늘 회의적인 눈초리로 돌을 바라봤다.
그는 노점에서 튀김을 사 먹으며 혼잣말을 던졌다. "돌도 튀기면 맛있으려나?"
튀김은 평범한 재료가 기름에 잠기며 맛있는 무언가로 변했다. 신단석과 달리 한 입에 행복을 주었다. 오스피셔스에서 그를 위로하는 유일한 존재였다.
어느 날, 오렌지 갱단 소탕 작전에서 한 소녀가 구출되었다. 메카트로닉스 밀거래 조직의 지도자 실험실에서 발견된 그녀는 천해학교 지하 격리실로 옮겨졌다. 열여섯쯤 되어 보이는 소녀는 창백한 피부와 커다란 눈을 가졌다.
"가야라고 불러주세요." 그녀가 말했다. 목소리는 놀라울 정도로 평범했다.
이건우는 호기심에 격리실을 찾았다. 가야의 등과 팔에는 신단석 조각들이 박혀 있었다. 크리스탈 뾰루지처럼 반짝이는 그것은 피부와 하나 되어 맥박에 맞춰 빛을 냈다. 하지만 그녀는 침대에 앉아 만화책을 읽고 있었다.
"이게 뭐지, 진짜 인간 신단인가?" 이건우는 눈을 가늘게 뜨며 중얼거렸다. 가야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기의 오라는 분명 신단의 그것이었다.
가야가 고개를 들었다. "왜 그렇게 봐요? 신단석 붙은 괴물 같아요?"
그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아니, 그게... 여기서 뭐 해요?"
"만화 읽고 있잖아요." 가야가 책을 흔들며 웃었다. "이거 진짜 재밌네요."
이건우가 조심스레 다가갔다. "신단석, 안 아프세요?"
가야가 팔을 내밀었다. "이거요? 아뇨, 그냥 제 일부예요. 어릴 땐 뾰루지처럼 징그러웠는데, 이젠 뭐, 그런가 보다 해요. 그래도 빠져나가면 흉터도 안 남기니까... 고맙다고 해야 하나?"
그녀가 쿡쿡 웃었다. 이건우는 그 태연한 태도에 피식 미소를 지었다.
"아빠가 어릴 때부터 신단석 가루를 먹였어요. 실험이라나... 근데 아빠는 갱단에 잡혀서..."
가야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이건우는 주머니에서 튀김을 꺼냈다.
"이거 먹어볼래요? 맛있어요."
가야가 튀김을 받아 한 입 베어 물었다. 눈이 동그래졌다. "와, 진짜 맛있어요! 이게 뭐예요?"
"새로 나온 고구마 튀김이에요. 노점에서 산 거예요." 이건우가 씩 웃었다. 그녀의 순수한 반응에 가슴이 따뜻해졌다.
그때 김도원 신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오십 대, 얼굴이 굳은 천해학교 지도자였다. 질서와 전통을 목숨처럼 여겼다.
"여기서 뭐 하는 거냐!" 그의 목소리가 낮고 차가웠다. 튀김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신성한 공간에서 음식이라니, 터무니없다!"
가야를 보자 그의 눈이 커졌다. 경악과 경외감이 뒤섞였다.
"이 아이가 그 아이인가? 신단이라니 정말이구나. 이게 가능한가? 인간과 신단석이 결합되다니?"
김도원이 이를 악물었다. "신단의 희소성이 곧 신성함의 근거다. 인간이 신단이 되면 모든 질서가 무너진다!" 그의 손에서 신기가 뿜어져 나오며 거대한 조각도가 실체화되었다. 이건우가 앞으로 나섰다. "그래서 뭘 어쩌자는 거예요? 칼 좀 내려놓고 말하면 안 돼요? 신단이 여자라도 괜찮지 않아요?"
김도원은 칼을 집어넣으려 했지만 흥분한 탓에 손이 떨렸다. 이건우는 그의 폭발적 액션에 눈을 굴리며 익숙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살짝 긴장했다.
박루미가 뛰어 들어왔다. 스물여덟, 천해학교의 유일한 여성 기술자였다. 변화와 혁신을 중시하며 비밀리에 메카트로닉스를 연구했다.
"김 신사님!" 루미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소식 들었어요. 정말인가요?"
가야를 본 그녀의 눈이 빛났다. "믿기지 않아요..."
그녀가 단말기를 꺼내 가야의 신단석을 스캔했다. "이건 단순한 돌이 아니에요. 감정에 반응해요. 신단석이 생명처럼 움직인다고요!"
논쟁이 시작되었다.
김도원이 목소리를 높였다. "가야는 도구다. 신단석처럼 관리해야 한다. 신성함은 희소성에서 온다!"
루미가 반박했다. "희소성이 신성을 만들었다면, 가야는 그 신성을 새로 정의해요. 신이 돌에서만 나와야 한다는 법이 어디 있죠?"
김도원이 칼을 치켜들었다. "그건 혼돈이다!"
루미가 단말기를 흔들었다. "칼 내려놓고 논리나 들어봐요. 혼돈이 아니라 새로운 질서예요. 그녀를 인정하지 않으면 우린 과거에 갇힐 뿐이에요!"
가야가 이건우에게 속삭였다. "저 사람들 뭐예요? 신기하네요."
이건우가 어깨를 으쓱였다. "철학 싸움이에요. 당신이 뭐냐를 두고 다투는 거예요."
가야가 입을 삐쭉였다. "난 그냥 가야인데... 튀김이나 더 먹고 싶어요."
그 말에 이건우는 쿡 웃었다. 그녀의 태평함이 마음을 끌었다.
다음 날 아침, 가야는 신단석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내가 신이라면 왜 튀김이 먹고 싶은 걸까? 그냥 나로 충분한데..." 이건우가 찾아왔다. "튀김 더 있어요?" 가야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사 올게요." 그가 문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왔다. 튀김을 건네며 말했다. "난 신단이 뭔지 모르겠어요. 그냥 돌 무더기인데 근데 당신은 인간신단이라지만 돌 같지 않아요."
가야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럼 신단이면 연애 못 하나요?"
이건우가 당황하며 얼굴을 붉혔다. "그, 글쎄요?"
"농담이에요." 가야가 살짝 진지해졌다. "가끔 무서워요. 내가 신단이라면, 언젠가 사람으로 안 보일까 봐."
이건우가 튀김을 내밀었다. "당신은 사람처럼 튀김을 먹잖아요. 그거면 충분해요."
가야가 미소를 지었다. "신이 되면 튀김도 못 먹나요? 그럼 나도 신 안 할래요. 신이면 맘대로 다 해야죠."
이건우는 그 웃음소리에 가슴이 뛰었다.
며칠 뒤, 루미가 가야의 떨어진 신단석을 실험했다. "이 조각이 가야의 형태를 닮은 석상과 결합하면 신단을 재현해요!"
신단석의 희소성을 무너뜨릴 발견이었다.
김도원이 이를 막으려 했다. "신단의 희소성은 우리 신앙의 기반이다. 이건 혼돈의 시작이야!"
루미가 맞섰다. "모두가 신단을 가질 수 있어요! 가야는 신성과 인간의 경계를 허문 증거예요!"
피스풀 신사 명문 천해학교는 갈라졌다. 김도원은 외곽으로 떠나 전통을 지켰다. 루미는 가야사 길드를 세워 신단상을 팔았다. 가야는 루미에게 신단석 조각을 모아 넘겼다. 같은 여성이라 신뢰했고, 로열티 계산이 확실해 생활고가 사라졌다. 루미는 가야가 앞에 나서지 않는 덕에 여신처럼 주목받았고, 그 생활을 즐기는 듯했다. 가야는 속으로 쿡 웃었다. "뭐, 서로 윈윈이네."
이건우는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았다. 그는 가야가 "학교 가고 싶다"던 말을 떠올렸다. "신단이든 아이돌이든, 가야가 자유로워지려면 우상에서 벗어나야 해."
그는 도시 변두리의 학교를 찾아줬다. 오스피셔스에서도 인기 아이돌 소녀들이 다니는 곳이었다. 가야가 그곳에 들어가자, 가야사 길드 추종자들이 그녀를 찾아왔다. 하지만 이미 극성 팬들이 플래카드와 함성으로 자리를 장악했다. 신사와 신단에 열광하는 어른들과 달리, 학생들은 아이돌에만 관심 있었다. 추종자들이 '신단 소녀'를 외쳤지만, 아이돌 팬들이 '오빠 사랑해'를 외치며 플래카드를 휘두르자 물러섰다.
가야는 이건우에게 말했다. "여기 오니까 평범해졌어요. 추종자들이 신단 소녀라 떠들어도, 여기선 그냥 여학생이에요."
이건우가 씩 웃었다. "아이돌이든 신단이든, 다 우상화잖아요. 결국 비슷한 거예요."
가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근데 전 튀김 먹는 게 더 좋아요."
매주 금요일, 그들은 노점에서 튀김을 먹었다. 가야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점점 평범한 소녀처럼 웃었다. 어느 날, 그녀가 물었다.
"이건우, 궁금한 게 있어요."
"뭐예요?"
"돌도 튀기면 맛있을까요?"
그가 눈을 반짝였다. "한번 해볼까요? 신단석 튀김."
"신성모독 아니에요?"
"윤리가 뭐예요? 우리가 만든 규칙 아니에요?" 이건우가 루미 흉내를 냈다.
가야가 까르르 웃었다. "신이든 돌이든, 난 그냥 나로 있고 싶어요. 그거 가능하죠?"
"가능해요. 신단석이든 튀김이든, 당신이 선택하면 그게 당신이에요."
"근데 돌 튀김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그럼 튀김을 다르게 신성화해볼까요?"
"좋죠. 신단석 고구마 구이, 세상 최초로."
그들의 웃음이 거리를 채웠다.
신성함이 질서든 변화든, 그들이 쥔 건 튀김 한 조각과 서로를 웃게 하는 자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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