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WK단편선 45>솔트미러편. 최후의 성가

by 김동은WhtDrgon

솔트미러 지방의 가장 대표적인 항구인 올라이즈 앞바다는 죽은 자들의 무덤이었다. 로세아 제국의 군함과 화물선들이 수십 년간 침몰하여 해저를 뒤덮었다. 그들은 마치 절반의 침몰을 당연히 여긴 듯 두 척씩 무더기로 보냈던 무모함의 흔적을 남겼다. 녹슨 강철 골격과 부서진 리벳 위로 바다 생물이 얽히며 자라났다. 잠수부들은 이 폐허에서 쓸만한 금속을 건져 올리며 생계를 꾸렸다. 세르게이 황, 사람들은 그를 세루라 불렀다. 그는 누구보다 깊이 내려갈 수 있었고, 어둠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았다. 그러나 그날, 그는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충동에 이끌려 미지의 심해로 내려갔다.


DALL·E 2025-03-03 19.15.09 - A deep, dark underwater graveyard filled with the sunken wreckage of Russian steel warships from the interwar period between World War I and World War.jpeg


수온이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빛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의 잠수복 헤드램프가 어둠을 뚫고 닿은 곳에서 그는 그것을 발견했다.


거대한 철구가 해저에 박혀 있었다.


지름은 100m를 훌쩍 넘었다. 표면은 검고 매끈했으며, 단 하나의 흠집도 없었다. 두께 20cm가 넘는 중공업 철판들이 겹겹이 용접되고, 거대한 리벳들이 박혀 있었다. 그러나 이 철구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었다. 표면에는 기묘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러시아 정교회의 성상에서 볼 법한 금빛 후광이 둥글게 퍼져 있었고, 그 위로 검은 뱀 모양의 선들이 끝없이 얽히며 꿈틀거리는 듯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문양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착시가 일었다. 세루는 숨을 멈췄다. 철구를 바라보는 순간, 그의 가슴이 쿵쾅거렸다. 마치 심연 속 고래의 눈을 들여다보는 듯했다. 거대하고 무한한 존재감이 그의 영혼을 짓눌렀다. 내부에서 붉은빛이 새어 나왔다. 원자로의 낮은 진동음이 물을 타고 그의 뼈를 흔들었다.


그는 두려웠다. 그러나 동시에 끌렸다. 이곳에 내려오지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과, 더 깊이 알고 싶다는 욕망이 뒤섞였다. 손이 저절로 쇠지레를 쥐었다.


그 순간, 물속임에도 선명한 소리가 그의 머리를 꿰뚫었다.


"Господи, упокой души их в вечности…"
("주여, 그들의 영혼을 영원히 안식하게 하소서…")


성가였다. 불길한 음색이 장중한 장례식 분위기를 띠었으나, 신성함과 불경함이 뒤틀린 기묘한 울림이었다. 물속에서 소리가 들린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세루는 귀를 막고 싶었지만, 잠수복 헬멧이 그의 손을 가로막았다. 성가는 그의 뇌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는 깨달았다. 이것이 올라이즈의 도시 전설, 네무로프볼임을. 솔트미러 지역을 지배했던 로세아대사국의 대사, 알렉세이 네무로프의 이름이 새겨진 물건이었다. 그의 이름은 공문서, 낡은 기록, 심지어 최신 출입허가 문서에도 찍혀 있었다. 그러나 그 이름은 100년도 더 된 과거의 유물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역사 속 허구, 혹은 정치적 신화로 치부했다. 실존했던 인물이라 믿는 이는 없었다. 세루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곳, 이 심해에서 그는 잠들어 있었다.


철구는 로세아의 흑마술과 중공업 기술이 얽힌 결정체였다. 정교회 성직자들이 금지된 기도문을 읊으며 영혼을 봉인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봉인된 자는 네무로프였다. 세루는 그 전설을 떠올리며 손을 떨었다. 떠나야 한다고 머리가 외쳤다. 그러나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손이 철판에 닿았다. 문양이 붉게 빛났다. 리벳들이 하나씩 깨어났다.


그는 홀린 듯 쇠지레를 들어 첫 번째 봉인을 뜯었다.

철판이 갈라지며 귀를 찢는 소리가 울렸다. 흑공이 뿜어져 나왔다. 잠수복의 방사선 경고음이 날카롭게 울렸다. 물이 소용돌이쳤다. 세루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성가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고 장중하게 변했다.


"И даждь им свет вечный…"
("그리고 그들에게 영원한 빛을 주소서…")


두 번째 봉인을 뜯었다. 붉은빛이 심해를 물들였다. 원자로의 진동이 그의 심장을 쥐어짰다. 숨이 가빠졌다. 손끝이 떨렸다. 멈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성가가 그의 의지를 묶었다. 그는 갈등했다. 이곳에서 도망쳐야 할까? 아니면 끝까지 알아내야 할까? 그의 손은 이미 세 번째 봉인을 겨누고 있었다.


봉인이 풀리는 순간, 공간이 뒤틀렸다.

물은 밀려나고, 그의 앞에 로세아의 잃어버린 도시가 펼쳐졌다. 황금빛 돔이 잿빛 하늘 아래 빛났다. 대리석 광장에는 검은 제복을 입은 귀족들이 행진했다. 거리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공장 굴뚝의 검은 연기와 포화의 흔적이 뒤섞였다. 멀리서 폭격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성가를 불렀다.


"Спаси нас, Господи, от тьмы вечной…"
("주여, 우리를 영원한 어둠에서 구하소서…")


도시 한가운데, 거대한 철탑이 서 있었다. 그 꼭대기에서 알렉세이 네무로프가 내려왔다. 그는 황제의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낡고 해진 망토였으나, 그의 눈빛은 권위를 잃지 않았다. 군중이 환호했다. 성가가 공간을 뒤흔들었다. 세루는 그 중심에 서 있었다. 그의 잠수복은 젖어 있었으나, 발밑에는 차가운 대리석이 깔려 있었다. 그는 혼란스러웠다. 이곳은 어디인가? 이 사람들은 누구인가?


네무로프가 그에게 다가왔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고, 눈동자는 붉게 빛났다. 손에는 금목걸이가 들려 있었다. 목걸이에는 로세아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독수리와 망치가 얽힌 문양 위로 정교회 십자가가 얹혀 있었다.


"너는 나를 풀어주었다." 네무로프의 목소리는 낮고 깊었다. "내가 속박된 백 년의 어둠을 끝낸 자여, 이제 우리는 자유다."


그의 말에는 아이러니가 묻어 있었다. 자유라는 단어가 텅 빈 메아리처럼 들렸다. 세루는 그의 눈을 보았다. 그 눈빛에는 기쁨이 없었다. 오직 끝없는 피로와 체념만이 담겨 있었다. 네무로프는 왜 봉인되었던 걸까? 무엇을 속였던 걸까? 세루의 머릿속이 질문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그는 묻지 못했다. 군중이 환호하며 성가를 멈췄다.


하늘이 갈라졌다. 잿빛 구름이 찢어지며 바닷물이 쏟아졌다. 거리는 순식간에 물에 잠겼다. 사람들은 웃으며 물결 속으로 녹아들었다. 네무로프도 미소를 지으며 사라졌다. 세루는 손에 쥔 목걸이를 내려다보았다. 금속의 차가운 무게가 그의 손바닥을 눌렀다.


DALL·E 2025-03-03 19.17.12 - A massive 100-meter iron sphere, its thick steel plating now torn apart, revealing an ominous and ancient interior. A regal figure, dressed in tattere.jpeg


물거품이 걷히며 현실로 돌아왔다.

그의 앞에는 아직도 빛의 여운을 표면에 늘어놓은 철구의 잔해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겹겹이 뜯겨진 강철판들은 심해 속에서 나뒹굴었다. 내부에는 불길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로세아 문자로 쓰인 낙서와 다잉 메시지들이었다. 그러나 그중 일부는 인간의 언어가 아니었다. 뒤틀린 기호와 이해할 수 없는 선들이 벽을 뒤덮었다. "우리를 풀어달라." "대사는 우리를 속였다." "성가는 끝나지 않는다." 원자로는 꺼져 있었다. 붉은빛은 사라졌다.


세루는 숨을 몰아쉬었다. 산소탱크의 경고음이 울렸다. 그는 목걸이를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생각이 맴돌았다.


'이걸 어디서 팔아야 하지?'


그는 수면을 향해 떠올랐다. 몸은 무거웠다. 심해의 압력이 그를 짓눌렀다. 뒤에 남은 철구의 잔해는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러나 수면에 가까워질수록, 어디선가 아주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Господи, помилуй…"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목걸이였다. 그의 주머니에서 희미한 진동이 느껴졌다. 세루는 잠시 멈췄다. 손을 주머니에 넣어 목걸이를 만졌다. 차가운 금속이 따뜻해지고 있었다. 성가는 점점 커졌다. 인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무언가 깊은 곳에서 울리는, 형언할 수 없는 소리였다. 그의 가슴이 떨렸다. 불안이 스며들었다. 그는 서둘러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러나 그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목걸이를 쥔 손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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