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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WK단편선 49>기억을 고치는 신

by 김동은WhtDrgon

메가시티-47의 폐허 위로 붉은 황혼이 드리웠다. 한때 고층 건물들이 하늘을 찔렀던 도시는 이제 잊혀진 문명의 유적처럼 침묵 속에 잠겨 있었다. 건물들은 갈라진 이빨처럼 부서졌고, 부러진 네온사인의 잔해가 도로 위에서 빛을 깜박였다. 그러나 그 모든 황폐함 속에서도 한 건물은 단단히 버티고 있었다. 그것을 교회라고 부를 어떤 단서도 없었지만 아무리 봐도 그것은 분명 교회였다.


매일 저녁, 같은 시간이 되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모두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평온하고 공허한. 그들은 피부가 탁하고 눈빛이 흐렸지만, 누구에게나 미소 지었다. 그들의 옷은 낡고 해졌지만 깨끗했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그들은 매일 같은 움직임을 반복했다.


기계교회의 중심에는 노인 솔라가 있었다. 흰 수염이 길게 자란 그는, 낡은 작업복을 입고 끊임없이 움직였다. 그의 주름진 손은 복잡한 기계를 만지작거렸다. 이 거대한 서버는 교회 중앙에 위치해 있었고, 푸른빛을 내뿜으며 윙윙거렸다.



솔라는 땀을 닦으며 잠시 숨을 돌렸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그를 신이라 불렀다. 하지만 솔라는 자신이 신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그저 죽어가는 도시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기술자, 정비공일 뿐이었다.


"기억이 유지된다면, 인간은 죽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 질문은 매일 그를 괴롭혔다. "변화 없이 반복된다면, 그것은 삶인가?"


빛나는 서버는 도시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정신을 유지하는 장치였다. 그들의 육체는 살아 있었지만, 그들의 의식은 기록된 기억의 루프 속에 갇혀 있었다. 재난이 이 도시를 강타했을 때, 솔라는 필사적으로 사람들을 구하려 했었다. 그러나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기억을 저장하는 것뿐이었다.


이제 그들은 사실상 죽었다. 그러나 솔라는 그들을 놓아줄 수 없었다. 그는 그들의 기억이 유지되는 한, 그들이 여전히 살아있는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아니, 어쩌면 그는 그저 혼자 남는 것이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서버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솔라는 서둘러 회로를 점검했다. 그의 손가락은 기계적으로 움직였다. 수십 년간 그는 이 시스템을 유지해왔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삶의 유일한 목적이 되었다.


-


경계선을 넘어 메가시티-47로 들어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방사능 경고와 출입금지 표지판이 도시 전체를 둘러싸고 있었다. 하지만 린은 FEWK의 러너였다. 그에게 불가능한 임무란 없었다.

린은 도시의 폐허를 조심스럽게 탐색했다. 그의 검은 레더 재킷과 어깨에 걸친 작은 배낭은 그가 오랫동안 여행해 왔음을 보여주었다. 그의 눈은 경계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이 도시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멀리서 들려오는 기계음과 희미한 빛은 무언가가 여전히 살아있음을 알려주었다.


그는 미션 브리핑을 떠올렸다. "노인 솔라를 찾아 죽이고, 시스템을 종료하라." 간단명료한 임무였다. 그러나 이유는 알려주지 않았다. 린은 묻지 않았다. 그것이 러너의 규칙이었다.

하지만 도시를 지나치며, 그는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죽은 듯한 표정으로 같은 길을 걸었다. 같은 말을 반복했다. 마치 녹음된 메시지처럼.

"신의 축복이 당신에게 있기를," 한 여자가 그에게 말했다. 그녀의 표정에는 미소가 있었지만, 눈빛은 공허했다.


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기계교회를 향해 걸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그는 압도적인 광경을 마주했다. 푸른 빛을 내뿜는 거대한 서버와 그 주위를 돌며 기도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노인이 있었다.

솔라였다. 그는 린이 들어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는 너무 기계에 집중해 있었다. 린은 조용히 다가갔다. 그의 손은 무기를 향해 움직였다.


"당신이 솔라인가요?" 린의 목소리가 침묵을 깼다.

노인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은 피로로 가득 차 있었지만, 날카로웠다. "그렇다네, 젊은이. 자네는 누구지?"

"저는 린입니다. FEWK에서 왔어요." 린은 거리를 유지한 채 대답했다.

솔라는 흥미롭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오래된 이름이군. FEWK가 아직 존재한다니 놀랍네. 그들이 자네를 왜 보냈는지 알 수 있을까?"

린은 잠시 망설였다. 그는 진실을 말하기로 했다. "당신을 죽이고 이 시스템을 종료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솔라는 놀라지 않은 것 같았다. 오히려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예상했던 일이야. 언젠가는 올 거라 생각했지."

"이게 뭐죠? 이 사람들은..." 린은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솔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 시스템이 무엇인지 보여주지. 그리고 자네가 결정하게."


그는 린을 서버 앞으로 안내했다. 화면을 몇 번 터치하자, 이미지가 나타났다. 메가시티-47의 과거 모습이었다. 번영하던 도시의 모습, 웃고 있는 사람들, 아이들이 뛰어노는 공원.

"40년 전, 이 도시는 재난을 맞았네. 모두가 죽어갔어. 난 그들을 구하려 했지만..." 솔라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남은 것들을 보살피는 것뿐이었어. 그들의 육체는 살아남았지만, 어디로도 갈 수 없지. 그래서 난 그들의 기억을 루프로 만들었네. 같은 날, 같은 시간을 반복하게 했지. 그들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린은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솔라도 있었다. 훨씬 젊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여자와 아이가 있었다.

"당신의..." 린이 물었다.

"내 가족이지." 솔라가 대답했다. "모두 이 서버 안에 있네. 내 아내, 내 딸... 모두."

"이 시스템을 끄면 어떻게 되죠?" 린이 물었다.

솔라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 미소는 지친 한숨처럼 보였다.


린은 고민했다. 이 사람들은 정말 죽은 걸까? 아니면 아직 살아 있는 걸까?

솔라는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린, 만약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치자. 그 사람이 사라졌을 때, 너는 그의 기억을 남기지 않겠나?"

린은 천천히 대답했다. "남긴다고 해도... 그건 진짜 그 사람이 아니겠죠."

솔라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렇다면, 너는 그 사람을 두 번 잃을 수 있겠나?"


린은 입을 다물었다. 그는 솔라의 눈에서 깊은 슬픔을 보았다. 이것은 단순한 임무가 아니었다. 이것은 한 사람의 40년 된 슬픔과 집착이었다.


밤이 깊어졌다. 린은 결단을 내려야 했다. 그는 기계교회를 떠나 도시를 걸었다. 공허한 거리와 무너진 건물들 사이로, 그는 생각에 잠겼다.

그가 알던 세계에서, 죽은 자는 죽은 자였다.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곳에서, 솔라는 죽은 자들의 잔상을 붙들고 있었다. 그것은 삶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억의 감옥이었다.

"이들을 해방시켜야 해," 린은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건 삶이 아니야."


그러나 그가 도시를 떠나려는 순간, 광신도들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그들의 얼굴은 온화했다. 그들의 눈에는 아무 의심도 없었다.

"이곳은 완전합니다," 한 남자가 말했다.

"우리의 신은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다른 여자가 덧붙였다.

"왜 이 아름다운 세상을 부수려 하는 겁니까?" 노인이 물었다.

그들의 목소리는 떨림이 없었다. 그들에게 이곳은 천국이었다. 그러나 린은 알고 있었다. 이곳은 천국이 아니라, 멈춰버린 기억의 감옥이라는 것을.


"너희는 이미 죽었어!" 린이 외쳤다.

그러나 광신도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린을 감싸고, 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우리는 살아 있습니다."

그들의 표정에는 두려움조차 없었다. 린은 그제야 깨달았다. 이 사람들은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렇다면... 진실을 말하는 것이 옳은 걸까? 이들에게 진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린은 그들 사이로 걸어 다시 기계교회로 돌아갔다. 솔라는 여전히 서버 앞에 있었다. 그는 끊임없이 기계를 점검하고 있었다.

"돌아왔군," 솔라가 말했다. 그는 놀라지 않은 것 같았다.

"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죠?" 린이 물었다.

솔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에게 그런 고통을 주고 싶지 않았네. 그들이 행복하기를 바랐지."

"하지만 이건 거짓된 행복이에요," 린이 말했다.

"그렇다면 진정한 행복이란 뭐지?" 솔라가 반문했다. "우리 모두 환상 속에서 살아가네. 과거의 기억, 미래의 희망... 모두 우리가 만들어낸 이야기일 뿐이야."


린은 말문이 막혔다. 솔라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이야기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이것은 달랐다. 이것은 성장도, 변화도 없는 영원한 정지 상태였다.


-


린은 광신도들 사이에서 솔라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깨달았다. 솔라는 이들을 사랑했다. 그는 이들을 살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들의 기억을 유지하며 그들을 붙잡고 있었다.

"넌 신이 아니라, 죽은 자들의 무덤을 지키는 자야," 린이 말했다. "이제 그만 놓아줘."

솔라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난 이들을 놓아줄 수 없어. 이들을 놓아버리면, 나는 진짜로 혼자가 되니까."

린은 그의 고통을 이해했다. 솔라는 40년 동안 이 서버를 유지하며 살아왔다. 그에게 이 사람들은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었다. 그들은 그의 전부였다.


"하지만 이건 삶이 아니에요," 린이 부드럽게 말했다. "당신도 알고 계시잖아요."

솔라는 한동안 침묵했다. 그의 어깨가 무거워 보였다. "알고 있지," 그가 마침내 인정했다. "하지만 난 그들을 떠나보낼 용기가 없어."

린은 총을 꺼냈다. 그는 솔라를 죽일 수 있었다. 이 악몽을 끝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그는 결단을 내렸다. 그는 총을 내려놓았다.

"내가 도와드릴게요," 린이 말했다. "함께 이들을 보내드리죠."

그러나 그 순간, 얌전히 있던 이들이 기척도 없이 그를 붙잡았다. 그들의 표정은 여전히 평온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우리의 신을 해치지 말아 주세요," 그들이 말했다.

린은 놀랐다. 그는 저항하려 했지만, 그들은 그를 부드럽게 감쌌다. 그들의 손길은 차가웠지만, 부드러웠다. 그들은 그를 조용히 눕혔다.

"당신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한 여자가 말했다. "우리는 이곳에 있어야 해요."

"이곳이 우리의 집이에요," 다른 남자가 덧붙였다.

린은 그들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는 그들의 눈에서 공허함만이 아니라, 깊은 슬픔과 애착을 보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어쩌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이 기억의 감옥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솔라는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눈에는 복잡한 감정이 교차했다. 죄책감, 슬픔, 그리고 아마도... 안도감.

광신도들은 린의 목을 조였다. 그들의 움직임은 부드러웠지만, 확고했다. 린은 저항하지 않았다.

그들의 손길은 놀랍도록 부드러웠다. 마치, 오래된 연인을 안아주듯이. 린의 눈앞에서 빛이 깜빡였다. 그는 이해했다. 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세계를 지키고 싶었다. 그리고 그는 그 세계를 위협하는 존재였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솔라의 얼굴이었다. 노인의 눈에는 깊은 슬픔이 있었다. 마치 신이 인간을 애도하는 것처럼. 그렇게 린은 드랍아웃했다.


린은 드랍아웃과 함께 빛으로 사라졌다. 그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소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다시 기도하고, 웃고, 대화를 나눴다. 같은 말, 같은 움직임을 반복하며.


솔라는 린의 빛무리 옆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마음으로 젊은이의 눈을 감기고, 허공의 그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미안하네, 젊은이," 그가 속삭였다. "네가 맞았어. 그러나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네."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서버로 돌아갔다. 기계는 여전히 불안정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솔라는 숙련된 손길로 회로를 점검했다. 그의 움직임은 기계적이었다. 40년 동안 같은 일을 반복해 온 사람의 움직임.

기계가 다시 안정을 찾자, 광신도들의 표정이 평온해졌다. 그들은 다시 미소 지었다. 그들은 잊었다. 린이라는 존재가, 한때 이곳에 왔었다는 사실조차.


솔라는 자신의 낡은 의자에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신이 아니다," 그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들은 나를 신이라 부른다. 나는 거부하지 않는다. 나는 단지, 죽은 자들의 기억을 유지하는 정비공일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나는 왜 이토록 외로운가?"

그러나 그는 알고 있었다. 이 기억을 유지하는 한, 이곳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영원히 이 도시의 신으로 남을 것이다.


이것이, 신이 된 정비공의 저주였다.


밖에서는 붉은 황혼이 다시 도시를 덮었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색의 하늘. 솔라는 창을 통해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는 문득 생각했다. 어쩌면 그도 자신만의 루프 속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닐까?

"자네는 틀렸네, 린," 그가 속삭였다. "이들은 죽지 않았어. 죽은 것은 나야."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기계를 고쳤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죽은 자들의 기억을 유지하는 것. 그리고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갔다.

도시는 침묵 속에 잠겼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모든 것은 같을 것이다. 변하지 않는 세계. 정지된 시간.


그것이 바로 신이 된 정비공 솔라의 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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