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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WK단편선 63>붉은 바다의 교수들

by 김동은WhtDrgon

미모대사국 기밀연구시설 49층 회의실에는 불편한 침묵이 흘렀다. 홀로그램 투사기에서 붉은빛이 일렁였고, 그 빛은 둥근 회의 테이블 위 유리에 반사되어 참석자들의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몽상교수는 자신의 태블릿에 뭔가를 계속 적어 내려가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든, 그는 거의 반응하지 않았다.

"시간이 없습니다."

장군의 목소리는 낮고 무거웠다. 그의 목소리만큼이나 하중을 지닌 것은 테이블 중앙에 떠 있는 홀로그램이었다. 휘몰아치는 붉은 바다, 그 위로 떠 있는 어두운 섬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감싸고 있는 혼돈의 에너지가 선명하게 보였다.

"이 차원버블은 72시간 이내에 소멸될 것으로 예측됩니다. 소멸 전에 우리는 가능한 한 많은 오주사를 회수해야 합니다."

흑교수가 목을 가다듬었다. 전투훈장이 가득한 장군 앞에서도 그는 자신감에 가득 찬 모습이었다.

"제 연구에 따르면, 이 차원버블에서의 흑공은 우리 세계의 것과는 성질이 약간 다릅니다. 원시적이고 더 불안정하죠. 하지만 이를 역으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흑공 안정화 장치를 설치하여 오주사 생성 과정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흑교수는 손을 흔들어 홀로그램을 조작했다. 붉은 바다 위에 검은 기계 장치들이 떠올랐다.

"이 장치들이 흑공을 안정화시켜 오주사 생성을 더 효율적으로 만듭니다. 수확량이 최소 300% 증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신교수는 코웃음을 쳤다. 그는 항상 밝은 색 정장을 입었고, 흑교수와는 대조적으로 늘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흑공만 고려하시는군요. 이 차원버블에서는 신기와 흑공이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신단을 이식하면 이 균형을 우리에게 유리하게 조절할 수 있습니다. 신기의 흐름을 통제하여 오주사 생성을 가속화할 수 있을 겁니다."

신교수는 자신의 태블릿에서 복잡한 도표를 홀로그램에 전송했다. 붉은 바다 위에 빛나는 구조물이 등장했다.

"이 신단을 통해 오주사의 생성을 적어도 500% 증가시킬 수 있습니다."

시간교수는 초조하게 손목에 찬 여러 개의 시계를 확인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분 다 좋은 의견입니다만, 무엇보다 시간이 부족합니다. 제 계산에 따르면, 차원버블은 생각보다 빨리 소멸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차원의 시간축을 조절하면, 버블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습니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깜박이는 다이어그램을 보여주었다.

"이 기술을 사용하면 우리는 실제 72시간이 아닌, 최대 2주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더 많은 오주사를 채취할 수 있죠."

흑해교수와 신해교수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일어섰다. 이 쌍둥이처럼 닮은 형제는 항상 함께 행동했다.

흑해교수가 먼저 말했다. "차라리 바다 자체에 접근하는 게 효율적입니다. 특수 바다 추출기를 개발하여-"

"오주사가 풍부한 바닷물을 직접 끌어올리면 됩니다," 신해교수가 문장을 마무리했다.

"우리의 계산에 따르면," 그들이 동시에 말했다. "이 방법은 가장 직접적이고 확실합니다."

논쟁은 점점 격렬해졌다. 교수들은 각자의 이론에 집착하며, 다른 의견을 무시했다. 홀로그램 속 차원버블은 점점 더 불안정하게 요동쳤다.

"이론적으로는 완벽합니다. 현장 요원들이 정확히 지시를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흑교수가 주장했다.

"신단의 힘을 과소평가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계산은 틀림없습니다," 신교수가 반박했다.

"시간은 상대적입니다. 우리가 조절할 수 있다면, 버블이 붕괴되는 시간도 늦출 수 있습니다," 시간교수가 고집했다.

몽상교수는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는 창밖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미모대사국의 거대한 도시가 창 너머로 펼쳐져 있었다. 빌딩들과 비행 차량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감싸고 있는 하늘.

문득 그는 입을 열었다. "이 차원버블과 우리 세계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회의실이 순간 조용해졌다. 모두가 몽상교수를 바라보았다.

"뭐라고요?" 흑교수가 물었다.

"질문이 이상하군요," 신교수가 코웃음을 쳤다. "너무 분명한 차이가 있는데."

"우리에겐 시간이 없습니다," 시간교수가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철학적 담론은 나중에 하시죠."

몽상교수는 대답 없이 다시 태블릿으로 눈을 돌렸다. 장군만이 그를 깊이 응시하고 있었다.

논쟁은 다시 시작되었다.


-


그때 경보음이 울렸다.

"잠시만요," 장군이 손을 들었다. "새로운 데이터가 들어왔습니다."

홀로그램이 변화했다. 차원버블이 더 빠르게 불안정해지는 모습이 표시되었다.

"예상보다 빨리 붕괴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48시간이 아닌, 36시간 이내에 버블이 소멸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교수들 사이에 동요가 일었다.

"더 서둘러야 합니다," 흑교수가 말했다. "제 방법이 가장 빠릅니다."

"아닙니다," 신교수가 반박했다. "신단 이식이 더 효율적입니다."

시간교수는 초조하게 계산기를 두들겼다. "시간축 조정이 더 시급해졌습니다."

해양교수들은 서로 속삭이며 새로운 계산을 시작했다.

그때 모니터에 또 다른 경고가 떴다. 장군은 그것을 확인하고 표정이 굳었다.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차원버블 내부에 이상 현상이 감지되었습니다. 오주사가 비정상적으로 응집되는 현상이 관찰되고 있습니다."

"이건 예상치 못한 결과입니다," 흑교수가 중얼거렸다.

"신기의 변화일 수도 있습니다," 신교수가 추측했다.

시간교수는 손목시계들을 신경질적으로 맞추고 있었다. "시간 왜곡이 발생하고 있는 건가요?"

장군은 깊은 숨을 내쉬었다. "여러분, 지금 우리는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각자의 방법을 제안해 주셨는데, 모두 나름의 장점과 위험이 있어 보입니다."

그는 교수들을 하나하나 바라보았다.

"흑교수님의 안정화 장치는 흑공 폭발 위험이 있고, 신교수님의 신단 이식은 구조 붕괴 가능성이 있습니다. 시간교수님의 시간축 조정은 버블을 더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고, 해양교수님들의 바다 추출은 현장 인력의 직접적인 위험을 수반합니다."

교수들은 불편한 시선을 교환했다.


"하지만 우리는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결정했습니다."

모두가 긴장한 채 장군의 말을 기다렸다.

"모든 교수님들이 직접 현장에 투입되어 자신의 이론을 실행하게 됩니다."

순간 회의실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네?" 흑교수가 놀라 소리쳤다.

"이건 말도 안 됩니다! 저는 현장 요원이 아닙니다!" 신교수가 항의했다.

"시간이 없습니다! 준비가 필요합니다!" 시간교수가 당황했다.

해양교수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입을 다물었다.

장군은 손을 들어 그들을 진정시켰다. 그의 표정은 진지했다.

"교수님들, 현장이 여러분을 필요로 합니다. 이 임무는 일반 요원들이 수행하기에는 너무 복잡합니다. 여러분의 전문 지식이 직접 현장에서 필요합니다."

그는 잠시 멈추고 각 교수를 바라보았다.

"이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치면 우리 대사국에서 '야전교수' 인증을 해드리겠습니다. 현장이 증거죠. 안 그렇습니까?"

교수들은 여전히 동요하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공포와 당혹감이 교차했다.

"하지만 장군님, 우리는 연구자입니다. 현장 경험이 거의 없습니다," 흑교수가 항변했다.

"그래서 더욱 귀중한 기회입니다," 장군이 대답했다. "연구와 현실의 괴리를 좁히는 경험이 될 것입니다."

시간교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치려는 듯한 자세를 취했지만, 문 앞에 서 있는 경비병들을 보고 다시 앉았다.

"준비 시간은 얼마나 됩니까?" 신교수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물었다.

"2시간입니다. 헬기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장군은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안심시키는 미소가 아니라, 결정이 내려졌음을 알리는 미소였다.

모두가 당황스러워하는 가운데, 오직 몽상교수만이 평온해 보였다. 그는 태블릿을 접고 창밖을 응시했다.

"몽상교수님은 이의가 없으신가요?" 장군이 물었다.

몽상교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장군을 바라보았다. "언젠가는 모든 이론이 현실과 마주해야 합니다."

그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회의실 전체에 울렸다.

두 시간 후, 교수들은 특수 제작된 차원 이동용 헬기에 탑승했다. 내부는 첨단 장비들로 가득 차 있었다. 창밖으로는 차원 게이트가 열리는 모습이 보였다. 붉은 소용돌이가 점점 커지며 그들을 반겼다.

교수들의 얼굴은 창백했다. 흑교수는 자신의 안정화 장치 설계도를 계속 확인하고 있었다. 신교수는 눈을 감고 입으로 기도문을 중얼거렸다. 시간교수는 손목시계들을 조정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해양교수들은 서로에게 의지한 채 침묵하고 있었다.

오직 몽상교수만이 평온해 보였다. 그는 창밖의 붉은 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다.

장군이 그들 앞에 섰다. "곧 차원버블에 진입합니다. 각자 자신의 이론을 증명할 기회입니다."

그는 교수들을 향해 경례했다. "행운을 빕니다, 야전교수님들."


-


헬기가 차원 게이트를 통과하자 붉은 안개가 기체를 감쌌다. 창밖으로 펼쳐진 광경은 경이로웠다. 끝없는 붉은 바다, 그 위로 떠 있는 섬들, 하늘을 가득 채운 혼돈의 에너지… 하지만 그 아름다움 뒤에는 불길한 기운이 감돌았다.

통신 장치에서 잡음이 들리더니 미모대사국과의 연결이 끊겼다. 그들은 완전히 고립되었다. 흑교수가 소리쳤다. "이게 뭐야?! 계획대로 안 돼!" 신교수는 떨리는 손으로 태블릿을 붙잡았다. "신기가… 신기가 이상해…" 시간교수는 시계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시간 왜곡이… 예상보다 심해…"

그때 헬기가 갑작스럽게 흔들렸다. 붉은 바다에서 거대한 파도가 솟아오르며 그들을 덮쳤다. 해양 쌍둥이가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바다가… 바다가 움직여!" 헬기 내부의 경보음이 울렸다.

몽상교수는 흔들리는 와중에도 창밖을 바라보았다. 붉은 바다 한가운데, 거대한 그림자가 서서히 떠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섬도, 기계도 아니었다. 마치 살아 있는 존재처럼 꿈틀거렸다. 그의 눈에 이상한 빛이 스쳤다.

헬기가 붉은 안개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자, 몽상교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 차원버블… 우리 세계와 다를 게 없어 보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흔들리는 헬기 안에서도 또렷하게 들렸다. 다른 교수들이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소립니까?!" 흑교수가 소리쳤다. "지금 상황이 급한데 철학이나 하고 있어요?"

몽상교수는 대답 대신 창밖을 가리켰다. 붉은 바다 한가운데 떠오른 그림자가 점점 더 선명해졌다. 그것은 거대한 눈이었다. 끝없이 깊은 눈동자가 그들을 응시하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우리는 자원을 캐러 왔다고 했지만… 어쩌면 우리가 그 자원일지도 모르죠."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말은 모두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


미모대사국 중앙관제실에서, 장군은 대형 모니터 앞에 서 있었다. 모니터에는 헬기의 마지막 송출 영상이 정지해 있었다. 붉은 바다 위로 솟아오른 거대한 눈. 공포에 질린 교수들의 얼굴. 그리고 마지막으로, 몽상교수의 깨달음에 찬 표정.

장군 주변으로 여러 명의 고위 공무원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모두 차분한 표정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타겟 해신이 완전히 일어섰습니다." 기술자가 보고했다.

장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파이오니아 부대를 투입시켜! 반드시 나포해!"
그는 천천히 돌아서서 회의실 안의 다른 고위 인사들을 바라보았다.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거봐요, 데이터 바이트가 높으면 더 맛있다고 했잖아요."


그 말에 회의실 안의 모든 사람들이 미소지었다.

대형 스크린에는 붉은 바다에서 솟아올라 교수들에게 다가가는 거대한 존재가 점점 더 선명하게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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