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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WK단편선 74> 작은 불꽃들

by 김동은WhtDrgon








1.

리버시티의 아침은 날카로운 광물 분진과 달콤 쓴 커피 향으로 시작된다. 두 냄새가 뒤섞인 좁은 골목을 지나면, 지붕 한 귀퉁이가 비가 올 때마다 새는 김 씨 가족의 낡은 집이 있다. 마당에 내려앉은 광물 먼지는 비가 오면 진흙처럼 끈적이고, 마르면 날리는 가루가 되어 옷에 달라붙는다. 그곳에서 네 남매는 각자의 방식으로 함께 살아간다.

민준은 비틀거리며 현관문을 열었다. 왼쪽 다리가 욱신거렸다. 지난해 광산 사고로 다친 후, 찬 공기가 스미는 아침마다 상처가 그를 괴롭혔다. 푸르스름한 하늘이 막 밝아오고 있었다. 출근 시간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었지만, 그는 늘 일찍 집을 나섰다. 중장비 점검을 위해서였다. 민준의 얼굴은 피로로 지쳐 있었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단단했다.


"형, 벌써 가?"

도윤이 잠에서 덜 깬 목소리로 물었다. 그는 거실 소파에서 이불을 덮고 자고 있었다. 열여섯 살 소년의 까만 머리카락이 삐죽 솟아있었다. 항상 왼쪽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작은 수첩이 소파 옆 탁자에 놓여 있었다.

"일찍 가야 해. 업무 전 장비 점검일이야." 민준이 담담하게 말했다. "어머니 약은 서랍에 넣어뒀어. 아침에 꼭 드시게 해."

어머니 방에서 기침 소리가 들렸다. 마른기침 소리는 종종 그녀의 온몸을 뒤흔들었다. 난초대사국의 무용수 연습생이였던 어머니는 아버지를 만난 후 무용단이 해산되고 여러 우여곡절 끝에 정착하게 된 리버시티 해안가 커피 공장에서 몇십 년을 일하며 들이마신 화학물질 때문에 그녀의 기관지는 이미 만신창이였다. 아침마다 들리는 기침 소리는 민준에게 마음의 짐이 됐다.

민준은 자신도 모르게 어머니의 방 쪽을 바라보았다. 얼마 전부터 그녀의 기침이 더 심해졌다. 아버지는 3년 전, "더 좋은 일자리"를 찾아 떠났다. 처음에는 가끔 연락이 왔고, 간혹 송금도 했지만, 이제는 몇 달째 소식이 끊겼다.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빈자리였다.


"오빠..."

루나의 목소리가 계단에서 들렸다. 금발에 푸른 눈, 나이에 맞지 않게 화려한 액세서리들. 열두 살 소녀는, 다른 가족들과 달리, 엄마를 닮아 난초대사국 혈통의 특징을 보였다.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눈매와 짙은 속눈썹, 서민구역에서는 보기 드문 금발은 어디를 가든 시선을 끌었다.

루나가 조심스럽게 '태백 소녀' 오디션 포스터를 꺼냈다. 포스터 속 다섯 명의 소녀들은 환한 미소로 손을 흔들고 있었다. 루나의 눈빛에는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오빠, 나 오디션 보고 싶어."

민준은 한숨을 쉬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침마다 복용하는 진통제를 잊고 나온 탓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아픈 것은 루나의 간절한 눈빛을 외면해야 하는 마음이었다.

"우리 형편이... 그리고 너 아직 열두 살이잖아." 민준은 최대한 부드럽게 말하려 했다. "학교는 어떡하고."

"태백 소녀의 막내도 열세 살이었대... 그리고 난 춤 잘 춰. ‘스타 방송’으로 독학했어." 루나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그리고 합격하면... 돈도 많이 벌 수 있어."

민준은 루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의 금발이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이제 학교 준비할 시간이야."


광산으로 가는 길, 민준의 다리가 욱신거렸다. 작년 사고 후로 날씨가 추울 때면 통증이 찾아왔다. 검은 광산 장화를 신은 그의 발걸음은 무겁고 불규칙했다. 병원에서는 "더 쉬어야 한다"라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하루 쉬는 것은 하루치 식탁을 비우는 것과 같았다. 장남으로서, 그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버지가 남긴 빈자리를 그가 채워야 했다.

리버시티 외곽 광산은 여전히 어둠에 잠겨 있었다. 굵직한 중장비들이 잠든 괴물처럼 도사리고, 작업자들의 얼굴은 광물 분진으로 검게 물들어 있었다. 땀과 광물 냄새가 뒤섞인 공기는 무겁고 축축했다. 민준은 익숙한 몸짓으로 작업복을 갈아입고 안전모를 썼다.


청린석은 리버시티의 경제를 지탱하는 희귀 광물로, 리버힐의 신단과 신사들이 그 유통을 장악하고 있었다. 서민들은 그저, 그것을 채굴하는 일꾼에 불과했다.


"오늘 2번 구역 파내는 거 네가 맡아." 현장 감독이 밝게 웃으며 그에게 다가와 말했다. 나이 든 감독의 눈 주변에는 광물 분진이 각인된 주름이 깊게 파여 있었다. "네 솜씨가 제일 좋으니까. 청린석 탐맥 감각이 정확해."

본청인가 대기업인가 어디에서 현장 교류 뭐라고 한참 긴 이름의 무슨 프로그램을 발표했는데, 서울에서 토목건축과 설계의 고급기술을 배우는 하우스 입주권이 제공되는 것이었다. 민준이 거기에 선정되었다. 사실 청년 어쩌고 하는 나이대와 학업 성적등의 조건에 맞는 게 민준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민준은 그냥 현장 작업을 계속하겠다고 했고, 그게 감독 맘에 든 것 같았다. 감독은 자주 의젓한 청년이라며 요즘 애들이 보고 배워야 한다고 추켜세워줬다.


그 현장감독이 배정해 준 2번 구역은 광산의 가장 깊은 곳으로, 경험 있는 인부들은 꺼려할 정도로 위험하지만 '청린석'이 많이 나오는 곳이었다.



점심시간, 민준은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맛없는 급식이었지만, 배고픔을 달래기에는 충분했다. 창문 너머로 리버시티가 보였다. 하얀 커피 공장 연기가 하늘로 솟구치고, 그 아래 작은 집들이 이어져 있었다. 그중 하나가 그의 집이었다. 깊은 곳에서 열망이 피어올랐다. 언젠가는 그 도시를 벗어나고 싶었다. 건축을 공부하고, 사람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집을 짓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 꿈을 깊숙이 접어두었다.

"민준아."

아버지의 오랜 친구 서진 아저씨가 다가왔다. 정년을 앞둔 노광부의 얼굴은 고단했다. "너한테 할 말이 있어서."

"무슨 일이세요?" 민준이 물었다. 이야기인즉 돈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다. 얼마나 사정이 급하면 뻔히 사정을 아는 자신에게 돈 이야기를 하는지 잘 이해가 가질 안았다.

"민준아, 네 아버지가 더 좋은 일자리를 찾아간 게 아니야."

민준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릇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도박 빚 때문에 도망친 거야. 광산 노조 자금도 좀 썼고..."

민준은 머리를 맞은 것 같았다. 아버지가 노조 활동하다 쫓겨난 줄 알았는데, 도박 빚이라니. 그동안의 믿음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목구멍이 막히는 듯했다.

"그 빚이 아직 남아있어. 네 아버지를 찾는 사람들이 있어." 서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조심해라. 너희 가족까지 건드릴지도 몰라. ”

민준의 손이 떨렸다. "얼마예요?"

서진은 숫자를 말했고, 민준은 숨이 막혔다. 일 년을 꼬박 일해도 모으기 어려운 액수였다. 단 한 푼도 안 쓰고도.

그의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혹시 아버지는 그래서 돌아오지 않는 걸까? 가족에게 미안해서? 아니면 그저 도망쳤을 뿐일까?


그날 오후, 민준은 더 깊이 광산을 파고들었다. 2번 구역의 어둠 속에서, 그의 중장비는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더 많은 청린석을 찾아내야 했다. 빚, 약값, 집세, 루나의 꿈... 모든 것이 돈으로 귀결되었다. 그의 중장비는 미친 듯이 움직였다. 땅과 바위를 파고들며, 그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실망을 쏟아냈다.

"민준아, 조심해!" 바로 옆 구역에서 일하던 성민의 외침이 스피커를 울렸지만, 이미 늦었다.

갑자기 바위가 무너져 내렸고, 민준의 중장비가 충격으로 울렸다. 다리에 격통이 밀려왔다. 다시 다쳤다. 그의 주변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바위와 흙이 쏟아져 내렸다.

민준은 그 순간 마지막을 결심했다. "미안해... 나마저 너희를 떠나다니..."


다행히 사고는 큰 피해 없이 넘어갔다. 바위가 무너졌지만 얇은 판층만 쏟아진 것이었고, 민준의 중장비는 멀쩡했다. 하지만 사고는 사고였기 때문에 광산 의무실에서 간단한 치료를 받은 후, 잠시 쉬던 민준은 문득 서진이 의무실 근처에 있다고 말했던 것이 생각나 찾아 둘러본 후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집 근처에서 도윤이 옥상 평상에 앉아 있는 민준을 발견했다. 도윤의 눈이 동그래졌다. 형은 광산에 있어야 할 시간이었다.


"벌써 왔네. 공방은 어땠어?"

도윤은 형의 표정을 살폈다. 무언가 달랐다. 늘 담담하던 형의 얼굴에는 흔들림이 있었다. 도윤은 형의 상태를 재빨리 파악했다. 그것이 도윤의 특기였다. 상대방의 미세한 표정 변화, 작은 움직임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관찰하는 능력.

"형, 무슨 일 있지?" 도윤이 물었다.

"오늘 광산에서..." 민준이 말을 잇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


의무실 근처에서 우연히 봤는데 임시 영안실 안에 도박장이 있었어. 거기서 아버지 사진을 봤어. '블랙리스트'라고 쓰인 액자에."

민준은 할 말을 잃었다. 아버지의 도박과 노조 자금 유용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야 할지 고민했다. 도윤은 이미 짐작한 듯했다.

"아버지가 거기서 빚을 졌다는 거지?" 도윤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민준은 동생을 끌어안았다. 동생의 어깨가 자신보다 훨씬 작게 느껴졌다. "미안해, 도윤아."

"왜 형이 미안해해? 그건 아버지 문제잖아." 도윤의 목소리에는 쓸쓸함이 묻어났다. "다들 알고 있었어. 엄마도, 서연 누나도... 그냥 형한테 말 안 한 것뿐이야. 형이 너무 큰 짐을 지고 있으니까."

아래층에서 루나의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들! 어디 있어?"

"내려가자." 민준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피로했지만, 결단력이 담겨 있었다. "오늘 밤엔... 가족회의를 해야겠어."









2.


"서연아, 이거 좀 봐!" 루나의 손에는 반쯤 녹은 화장품이 들려 있었다. 그녀의 침대 위에는 스타 방송 영상을 틀어놓은 태블릿이 놓여 있었다. '태백 소녀 메이크업 튜토리얼'이라는 제목이 선명했다.

서연은 한숨을 쉬며 루나의 방으로 들어왔다. 열여덟 살 서연의 짧은 머리는 실용적이었고, 손톱과 피부에는 커피 공장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녀의 날카로운 눈빛은 루나의 손에 들린 화장품을 살펴보았다.

"누가 이런 걸 가르쳐줬어?" 서연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묻어 있었다. "어디서 났어?"

"스타 방송에서 봤어. 태백 소녀 메이크업 튜토리얼." 루나가 태블릿을 가리켰다. 화면 속에서 화려하게 꾸민 소녀가 웃고 있었다. "학교 친구가 빌려줬어. 내일 오디션인데, 어떡하지?"

서연은 침대에 앉아 루나의 얼굴을 지우기 시작했다. 화장품은 어린 소녀의 얼굴에 어울리지 않았다. 루나의 맑은 피부를 가리는 것이 안타까웠다.

"열두 살 애가 무슨 화장이야. 피부 상하기만 할 거야." 서연의 목소리는 엄격했지만, 그 안에는 염려가 담겨 있었다. 매일 공장에서 화학물질을 다루며 자신의 피부가 상하는 것을 느끼기에, 동생만큼은 그런 고생을 하지 않길 바랐다.

"언니는 왜 중년 아저씨 같은 소리만 해? 응? 남자애처럼 머리도 짧고." 루나가 불만스럽게 말했다. "여자는 예뻐야 하는 거 아냐? 태백 소녀들처럼."

서연의 손이 멈췄다. 그녀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여자는 꼭 예뻐야 하는 거야? 그게 여자의 가치야?"

루나는 서연의 눈빛에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들고 말했다. "난 예쁘고 싶어." 루나가 태백 소녀의 포스터를 들었다. 다섯 명의 소녀들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루나의 눈에는 선망의 빛이 어렸다. "사람들이 나를 봤으면 좋겠어. 내가 특별하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 언니가 그랬잖아 여자도 하고 싶은 건 다 해야 한다고. "


서연은 루나의 말에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녀도 한때는 그랬다. 인정받고 싶었고, 특별해지고 싶었다. 하지만 리버시티의 현실은 그런 꿈을 허락하지 않았다. 공장에서 일하며 폭포처럼 쏟아지는 화학물질 투입 관로 속에서 합성커피의 품질을 테스트하고, 그 화학물질로 인해 피부가 다 들고일어나는 일을 매일 경험했다. 그러면서도 틈틈이 향초를 만들며 자신만의 창조적인 표현을 찾았다.

"예쁜 것보다 중요한 게 있어." 서연이 부드럽게 말했다. "네가 춤이나 노래를 정말 좋아한다면, 얼굴보다는 실력이야. 아름다움은 시간이 지나면 변하지만, 네 실력과 열정은 오래 남아."


서연은 루나를 자신의 방으로 데려갔다. 작은 방에는 저녁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창가에는 작은 향초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커피 향, 바다향, 숲향... 서연이 공장 일 후 밤마다 만든 작품들이었다. 각각의 향초에는 독특한 디자인과 색상이 입혀져 있었다. 그것은, 서연이 찾는 자신만의 표현 방식이었다.

"이건 네가 태어났을 때 만든 거야." 서연이 특별히 아름다운 향초 하나를 가리켰다. 푸른빛이 감도는 하얀 향초였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어."

루나는 호기심에 향초를 맡았다. 달콤하면서도 신선한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이게 뭐야?"

"네가 이름을 지어줄래? 네가 꿈을 찾아가는 과정을 이 향초에 담을게." 서연의 눈빛은 부드러웠다. 여느 때의 냉소적인 표정은 없었다.

"어떻게?" 루나가 궁금해했다.

서연은 미소 지었다. 그녀의 향초가 드디어 난초대사국 바이어의 눈에 띄었다. 작은 물량이지만, 계약이 성사될 가능성이 있었다. 그녀는 그 사실을 루나에게 말하지 않았다. 아직은 확실하지 않았고, 가족들에게 희망을 주었다가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내일 오디션... 정말 가고 싶어?" 서연이 물었다.

루나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서연은 루나의 눈빛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창조하고 표현하고 싶은 열망, 인정받고 싶은 갈증. 그것은 서연 자신이 향초를 만들며 느끼는 감정과 다르지 않았다.

"그럼... 내가 도와줄게. 하지만 화장 말고, 네 실력으로 승부하자. 실력이 있어야 진짜 빛날 수 있어." 서연은 루나의 어깨를 잡았다. "내가 네 특별한 향초를 만들어줄게. 오디션장에서 네 향기를 기억하게 될 거야."


그때 민준과 도윤이 들어왔다. 민준의 표정은 무거웠다. "다들 모여. 가족회의야."

거실에 모인 가족들. 선화의 기침 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민준이 아버지의 진실을 풀어놓았다. 도박 빚, 노조 자금 유용, 그리고 그들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선화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루나는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어머니가 그녀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뺨에는 눈물 자국이 남아 있었다. "네 아버지가... 도박 빚 때문에 떠났다는 거, 난 알고 있었어. 그 사람이 떠나기 전에 고백했거든."

"왜 말씀 안 하셨어요?" 민준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배신감이 묻어 있었다.

"너희를 지키고 싶었어. 너희가 아버지에 대해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았어." 선화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하지만 이제는... 너희가 다 컸구나. 더 이상 너희를 보호하려고 진실을 숨길 필요가 없어."

선화는 민준의 이마에 키스했다. "그리고 네가 아버지와 같아질까 봐 두려웠어. 네가 모든 책임을 떠안고 있는 것이 보였어. 그게 너무 무서웠어."

민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는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저는 절대 아버지처럼 되지 않을 거예요. 약속해요."

"얼마나 되는데, 빚이?" 서연이 실용적인 질문을 던졌다.

민준이 숫자를 말했을 때, 모두가 침묵했다. 그것은 그들이 상상할 수 있는 금액보다 훨씬 컸다. 그 돈을 대체 누가 뭘 믿고 빌려줬다는 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엄마, 울지 마." 루나가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내가 오디션에 합격하면, 돈 많이 벌 수 있어. 태백 소녀처럼."

아무도 웃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루나의 발언을 가볍게 여겨서가 아니었다. 모두가 그녀의 열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녀의 순수한 마음이 이 무거운 상황 속에서도 빛을 발했다.

"내 향초... 난초대사국 바이어가 관심을 보였어." 서연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직 확실한 건 아니지만, 계약이 성사되면 많지는 않아도 도움이 될 거야."

"나도 공방에서 중요한 작업을 맡았어. 청린석 가공이야." 도윤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자신감과 슬픔이 섞여 있었다. "이번 기회를 잘 살리면... 내 이름으로 작품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몰라."


가족회의 후, 루나가 서연의 문을 두드렸다. 서연은 향초를 만들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루나의 향초, 그녀의 꿈을 담은 향초를 완성하고 싶었다.

"언니, 나 오디션 안 갈래." 루나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눈에는 결연함이 서려 있었다.

"왜? 그렇게 가고 싶어 했잖아." 서연이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가족이 더 중요해. 엄마가 아프고, 아빠 빚도 있는데... 내가 지금 내 꿈만 좇는 건 이기적이야." 루나의 목소리가 떨렸다. 서연은 동생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지 느낄 수 있었다.

"아냐, 루나야. 네 꿈을 포기하면 안 돼. 넌 목소리가 정말 예뻐." 서연이 동생의 손을 잡았다. "네가 도전하는 모습을 보니까, 나도 용기가 났어. 우리 각자의 방식으로 꿈을 찾아가자."


그날 밤, 도윤은 광물공방에서 가져온 청린석 조각으로 '루나를 위한 광물 액세서리'를 만들고 있었다. 청린석으로 만든 별 모양 브로치였다. 청린석은 보석이 아닌 장식돌에 가까운 광물이었지만. 도윤에게 광물은 단순한 돌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야기를 담은 존재였다. 각 광물 입자가 수백만 년의 시간을 품고 있다고 생각하면, 자신의 고민은 너무나 작게 느껴졌다.


민준이 방에 들어왔다. 그의 눈은 피로로 충혈되어 있었다. "멋진데, 그거."

도윤이 고개를 들었다. "루나가 오디션 나가고 싶대. 그래도 뭐라도 꾸미고 나가야지. 루나를 무대에서 빛나게 해 줄 거야."

민준은 동생의 작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도윤의 손끝에서 태어난 브로치는 투박한 가족의 사랑을 담고 있었다.

"내일 나 다시 2번 구역에 들어가기로 했어." 민준이 문득 말했다. "청린석이 많이 나오거든. 빨리 돈을 모아야 해."

도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형, 다리 상태로 그러면 안 돼. 오늘도 절뚝거리던데."

"괜찮아. 중장비 다루는 건 자신 있으니까." 민준의 목소리는 단호했지만, 그의 눈빛은 불안했다. 그는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를 느끼면서도, 동시에 자신도 아버지처럼 되지 않을까 두려웠다. 가족을 버리지는 않을까. 그 순간, 민준의 마음속에는 두 가지 감정이 충돌하고 있었다.

"형, 약속해 줘." 도윤이 갑자기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우리를 떠나지 않겠다고. 아버지처럼."

민준은 동생을 꼭 안았다. 도윤의 어깨가 가늘게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약속할게. 난 언제나 너희와 함께할 거야. 어떤 일이 있어도."

말을 마친 민준의 눈에 결의가 어렸다. 그는 아버지와는 다르게 살겠다고 다짐했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아침이 밝았다. 광물제의 주간의 시작. 리버시티의 지루한 축제였다. 그래도 어쨌든 거리는 장식으로 꾸며졌고, 사람들의 얼굴에는 활기가 넘쳤다. 하지만 김 씨 가족에게는 여유가 없었다. 각자 자신의 길로 나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민준은 광산으로, 서연은 바이어와의 미팅을 준비했고, 도윤은 루나의 브로치에 마지막 손질을 했다.


"와, 이거 나 주는 거야?" 루나가 감탄했다. 짧게 자른 머리가 그녀의 얼굴선을 더 뚜렷하게 보이게 했다. 청린석 브로치는 빛을 받아 신비롭게 반짝였다.

"무대에서 빛나게 해 줄 거야." 도윤이 미소 지었다. 브로치를 루나의 상의에 달아주며, 그는 누구보다 진지한 눈빛이었다. "이건 그냥 장식이 아니야. 우리 가족의 응원 부적이야."

"오빠가 세상에서 제일 멋진 공예가야." 루나의 말은 도윤에게 큰 힘이 되었다. 그는 루나의 순수한 칭찬 속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서연아." 어머니가 부엌에서 불렀다.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약했지만, 평소보다 생기가 있었다. "이것 좀 루나에게 줘."

어머니는 작은 손수건을 건넸다. 그것은 곱게 접힌 비단 손수건으로, 아주 옛날,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고급스러운 감각의 난초대사국의 전속 무용단 자수가 수 놓여 있었다. 세월의 빛바램은 있지만 정성스럽게 보관된 듯했다.

"이게 뭐예요?" 서연이 물었다.

"이건 내가 젊었을 때 정말 중요한 자리에서만 사용하던 거야." 선화의 목소리는 회상에 잠겨 있었다. 선화는 옛날 어떤 시절을 그리워하는듯 했다. 그 꿈 때문인지 루나의 연습을 지켜보길 좋아했고, 루나가 무언가 감상을 물어오면 그제서야 기쁘게 무언가를 설명해주려했다.

서연은 손수건을 루나에게 전했다. 서연의 눈은 글썽였지만 루나는 손수건을 왜 줬을까 어리둥절했다.


광산에서는, 민준이 판석이 쏟아졌던 그 2번 구역 깊숙이 파고들고 있었다. 이곳의 채굴량이 남달라서 구역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의 중장비는 쉴 새 없이 움직였고, 이마에는 땀이 흘렀다. 어제 약속했던 자신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난 언제나 너희와 함께할 거야.'

또 굉음과 함께 땅이 흔들렸다. 지질을 잘 아는 민준은 뭔가 올게 왔다는 느낌이었다.

"무너진다! 대피해!" 누군가의 외침이 들렸다.

민준은 급히 중장비에서 내리려 했지만,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주변이 어두워지고, 바위가 쏟아져 내렸다.

운 좋게 넘어갈까? 마지막 순간일까? 그는 또 가족을 생각했다.


서연은 난초대사국 바이어와의 미팅을 마치고 나왔다. 서연의 향초는 난초대사국 최고급 부티크에서 소량 한정으로 판매될 예정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계약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그녀의 작은 불꽃이 드디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서연의 가슴이 불길한 예감으로 조여들었다.

"서연 씨? 광산에서 사고가 있었습니다. 민준 씨가 다쳤어요."

서연은 즉시 도윤에게 연락했다. 도윤은, 루나와 함께, 오디션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루나의 이름이 불리기 직전이었다. "도윤아, 민준 오빠가... 광산에서 사고가 났대. 지금 병원으로 가고 있어."


도윤의 표정이 굳었다. 그는 다시 미소를 고쳐 지으며 루나를 바라보았다. 루나의 얼굴은 긴장으로 하얗게 변해 있었다.

"언니는 못 온대? 좀 무서워..." 루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 내가 있잖아." 도윤이 루나의 손을 꼭 잡았다. 그의 눈빛은 단단했다. "넌 할 수 있어. 엄마의 손수건이 있잖아. 그리고 내 브로치도."


도윤이 오후 늦게 도착한 병원에서 의사는 "몇 개월간은 광산 작업은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민준이 일을 못 한다는 것은 가족의 주 수입원이 사라진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무사해서 다행이었다. 서연과 도윤은 병실 밖에서 걱정스러운 눈빛을 교환했다.


"루나가 다음 단계로 진출했대. '특별한 재능이 있다'라고 했대. 내일 다시 오디션을 봐야 한대." 도윤이 말했다.

서연의 눈에 안도의 빛이 어렸다. 적어도 한 가지 좋은 소식이었다. "루나에게 민준 오빠 일은 말했어?"

"아니, 오디션 절차 끝날 때까지 기다리려고." 도윤이 말했다.

"아..." 서연이 병원 복도에 선 루나를 발견했다.

그녀의 눈은 눈물로 붉어져 있었지만, 얼굴에는 결연한 표정이 서려 있었다.

잠시의 어색한 3명의 놀라움은 그새 민준이 병실에서 짐 싸고 나오면서 끝났다.


집으로 돌아온 민준과 사고 소식에 모여든 가족들은 다시 둥글게 모였다.

"오빠가 다쳤다는 소식 듣고, 난 다음 오디션에 안 가려고 했어." 루나가 민준의 손을 잡았다. "가족이 더 중요하니까."

"루나야, 넌 네 꿈을 포기하면 안 돼." 민준이 약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지만, 눈빛은 여전히 강했다. "누구라도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우리 모두의 희망이야."

"꿈만이 아냐. 우리 집은 빚이 많잖아. 내가 도와주고 싶었어. 오빠 혼자 그렇게 고생하지 마. 자꾸 무리하다가 다치니까 민폐잖아."

민준이 루나를 꼭 안아줬다. 루나는 민준의 가족사랑법이 아저씨같이 촌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가만히 있었다.

'펑-펑- 펑'

광물제의 마지막 날이라 창문은 불꽃놀이로 밝게 빛났다. 서연, 도윤, 루나, 그리고 선화는 이 상황의 불꽃놀이가 아이러니하게도 드라마틱하게도 느끼며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우리도 저기 불꽃들처럼 빛나게 될까?" 루나가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호기심과 희망이 담겨 있었다.

"물론이지. 우리는 이미 빛나고 있어." 도윤이 미소 지었다. "루나의 춤, 서연 누나의 향초, 민준 형의 용기, 엄마의 사랑... 우리 모두는 각자의 방식으로 빛나고 있어."

그들은 손을 맞잡았다. 아버지의 빚, 민준의 부상, 불확실한 미래... 어려움은 여전했지만, 그들에겐 서로가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우리의 불꽃은 작을지 몰라도, 함께라면 가장 어두운 밤도 밝힐 수 있어." 서연이 말했다. 그녀의 눈에는 단단한 결의가 서려 있었다.

"어머니가 항상 말씀하셨죠. '한 집안의 복은 모두가 함께 지켜나가는 것'이라고. 우리도 그렇게 할 거예요."

하늘에서 터지는 불꽃들이 그들의 얼굴을 다양한 색으로 물들였다. 그 순간, 그들은 자신들만의 작은 불꽃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그 불꽃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오직 그들만의 빛이었다.










3.


광물제가 끝나고 일주일이 지났다. 민준은 병원 재활치료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광산으로 돌아가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진정한 길을 찾고 싶었다. 이번 사고를 통해, 그는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기회를 얻었다.


병원 로비에서 서진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노광부의 얼굴은 여전히 고단했지만, 그의 눈에는 따뜻함이 있었다.

"네 아버지 소식이 있어. 난초대사국 국경 근처에서 목격됐대." 서진이 조용히 말했다.

민준은 말을 잇지 못했다. 아버지는 여전히 위험한 일에 몸담고 있었다. 그가 떠난 이유가 도박 빚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민준은 아버지에 대한 복잡한 감정에 시달렸다. 분노, 실망, 그리고 그리움이 뒤섞인 감정.

"네 아버지는 복잡한 사람이야. 하지만 그가 너희 가족을 생각하지 않는 건 아니야. 그의 방식이 잘못됐을 뿐." 서진의 목소리는 진지했다. "그는 늘 너희를 위한다고 말했어. 그 빚도 너희를 위해 더 나은 삶을 주려고 시작한 것이었지."

"그래도 그는 우리를 떠났어요." 민준의 목소리는 쓸쓸했다. 그의 눈에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이 교차했다.

"맞아. 하지만 네가 그를 미워하지 않았으면 해. 미움은 네 마음만 괴롭게 할 뿐이야." 서진이 민준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 아버지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 그게 중요해."

민준은 서진의 모든 위로가 애정 어린 빚독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망은 들지 않았다. 구구절절 말은 안 하지만 서진은 도박을 하지 않으니, 아버지가 뭔가 없는 살림에 돈을 짜내야 할 어떤 변명을 지어냈을 것이고, 서진은 돈이 없으니 빚을 내야 했을 것이다. 결국 서진이 이렇게까지 에둘러 돈이 필요한 이유는 민준의 아버지가 만든 것이었고, 돈을 주려면 돈이 필요했다.


민준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는 오랫동안 아버지를 원망했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의 길을 가고 싶었다. 아버지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빛을 찾고 싶었다.

집에 도착해 서연의 방에 들어가자, 그녀는 향초를 만들고 있었다. 방 안에는 달콤한 향기가 가득했다. 서연의 얼굴은 집중으로 빛나고 있었다.


"내일까지 열 개를 더 만들어야 해. 바이어가 추가 주문을 했어." 서연이 민준을 보며 웃었다. 그녀의 미소는 자랑스러움으로 가득했다. "어때, 향이 좋지?"

민준에겐 향보다 가격이 더 감격적이었다. 서연의 향초는 결코 싼 가격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린다는 것에 서연이 대견했다. 우리가 돈 주고 살 수 없는 향초를 만드는 여동생.


민준은 특별히 아름다운 향초 하나를 가리켰다. 그것은 다른 향초들과 달리, 푸른빛과 금빛이 섞인 독특한 디자인이었다. "이건 뭐야?"

"'작은 불꽃들'이라고 이름 붙인 거야. 우리 가족을 위한 향초야." 서연의 눈에 자부심이 어렸다. "광물 분진과 커피 향, 그리고 우리 각자의 꿈이 담겨 있어."

민준은 향초를 맡았다. 그것은 따뜻하고 편안했지만, 동시에 강인한 무언가가 있었다. 마치 그들의 가족처럼. 그는 서연의 재능에 감탄했다. 그녀는 단순한 향기 이상의 것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마치 이야기를 담은 작품 같았다. 민준은 돈으로 서연의 향초를 해석한 자신을 반성했다.


"난... 어쩌면 리버시티를 떠날지도 몰라." 민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서울이나 다른 큰 도시로 가서 공부를 더 하고 싶어. 공학이나 건축 같은 거."

"그거 정말 좋은 생각이야, 오빠." 서연이 진심으로 말했다. 그녀의 눈에는 기쁨이 어렸다. "오빠는 항상 건물과 구조물에 관심이 많았잖아. 어릴 때부터 블록 쌓는 걸 좋아했고."

"하지만 가족을 두고 떠나는 건... 아버지처럼 되는 건 아닐까?" 민준의 목소리에는 불안이 묻어났다. 그것은 그의 오랜 두려움이었다.

"전혀 달라. 아버지는 도망쳤지만, 오빠는 꿈을 찾아가는 거야. 그리고 오빠는 우리를 버리지 않을 거잖아." 서연이 민준의 손을 잡았다. "우리는 언제나 가족이야. 오빠가 어디에 있든, 우리는 연결되어 있어."

마침 도윤이 돌아왔다. 그의 얼굴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형! 누나! 좋은 소식이 있어!"

"내가 새 공방을 찾았어! 난초대사국 대사관 근처에 있는 작은 공방인데, 내 이름으로 작품을 만들 수 있대!"

"어떻게 찾았어?" 서연이 놀라서 물었다.

"사실... 루나가 도와줬어. 그 애가 오디션 갔다가 난초대사국 사람들을 만났는데, 내 브로치를 보고 관심을 보인 사람이 있었대. 대사관 문화 담당자였어." 도윤의 눈은 자랑스러움으로 빛났다. "내 작품이 난초대사국 스타일과 잘 어울린대."

이때 루나가 들어왔다. 그녀의 짧은 머리는 한층 더 자랐고, 얼굴은 연습으로 상기되어 있었다.


"오빠! 내가 새로운 안무를 완성했어!"

루나는 방 중앙으로 나와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녀의 움직임은 자연스럽고 우아했다. 더 이상 태백 소녀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녀의 춤에는 난초대사국 전통 무용의 요소와 현대적인 움직임이 조화롭게 섞여 있었다. 모두 어머니의 영향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건강했을 때 식구들 몰래 (하지만 모두 아는) 어떤 춤을 홀로 추어보곤 했다. 루나의 동작 어딘가에 그런 우아한 터치와 꺽임이 담겨 있었다.


"고마워, 루나."

민준이 감동했다. 루나는 더 이상 그가 생각했던 '철없는 동생'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재능을 활용해 가족을 돕고 있었다.

"춤은 내가 추는데 뭐가 고마워? 고마우면 좋지 뭐. 우리는 가족이잖아. 서로 도와야지." 루나가 환하게 웃었다. 그녀의 눈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오디션 심사위원이 내 춤이 독특하대. '너만의 색깔이 있다'라고."


식사 후, 그들은 함께 옥상으로 올라갔다. 리버시티의 밤하늘은 맑았고,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멀리서는 커피 공장의 연기가 하늘로 피어올랐다. 그들은 나란히 앉아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옥상에서 별을 바라보며, 민준이 말했다.

"난 서울로 유학을 가려고 해. 광산 사무실에서 예전에 현장교류 프로그램 합격해 놓은 게 있는데 미루고 있었거든. 건축을 공부하고 싶어. 내 다리가 완전히 나으면."


"그거 정말 좋은 생각이야." 서연이 말했다. "네가 원하는 걸 해야지. 우리는 항상 너를 응원할 거야."

"난 오빠가 지은 집에서 살래!" 루나가 기뻐했다. "오빠가 세상에서 제일 멋진 건물을 지을 거야!"

"하지만... 내가 떠나면, 가족들은 어떡하지?" 민준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불안이 묻어 있었다.

"우리 괜찮을 거야." 서연이 확신했다. "우리 모두 각자의 길을 가고 있어. 형도 자신의 길을 가야지."

"그럼 우리는 그 건물 옥상에 모여 별을 볼 수 있겠네." 서연이 웃었다. "민준 오빠가 지은 건물의 옥상에서."

"다들 약속해." 루나가 별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녀의 얼굴은 달빛을 받아 빛났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 항상 서로를 응원하기로."


모두가 함께 손을 들어 올렸다. 그 순간, 별들이 더 밝게 빛나는 것 같았다. 각자 다른 꿈을 품고 있지만, 그들은 모두 하나의 가족이었다. 그것은 그들이 가진 가장 강한 유대였다.


3개월 후, 민준은 서울행 기차표를 샀다. 그의 다리는 완전히 나았고, 건축학과 입학 허가를 받았다. 출발 전날 밤, 가족들은 작은 파티를 열었다. 서연은 특별한 향초를 선물했다.


"이건 '작은 불꽃들'이야. 외롭거나 힘들 때 피우면, 네가 다시 집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거야."

민준은 향초를 받아 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선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가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집이 있다는 약속이었다.


다음 날 아침, 이별의 시간이 다가왔다. 기차역은 사람들로 붐볐다. 일상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김 씨 가족은 조용히 서 있었다. 민준은 한 명씩 가족들을 안았다.

"도윤아, 너의 재능을 믿어. 넌 분명 최고의 공예가가 될 거야. 네 작품에 담긴 진심이 사람들에게 닿을 거야."

"서연아, 네 향초가 전국적으로 유명해질 거야. 난초대사국을 넘어, 더 넓은 세상에서도. 난 네 첫 번째 국제 팬이 될게."

"루나야, 내가 없는 동안 가족을 잘 지켜줘. 넌 우리의 작은 별이야. 네 춤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거야."

마지막으로, 그는 어머니를 안았다. 선화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지만, 그녀의 미소는 강했다.


"내 아들, 네가 자랑스러워." 선화가 아들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녀의 손은 여전히 거칠었지만, 그 따뜻함은 변함없었다. "네 꿈을 향해 달려가렴. 그리고 잊지 마. 우리는 항상 너의 편이야."

민준은 기차에 올랐다. 창가에 서서 손을 흔들었다. 가족들도 플랫폼에서 손을 흔들었다. 기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자, 민준은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그것은 슬픔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이기도 했다.

그는 서연의 향초를 꺼내 향기를 맡았다. 그 향기에는 광물 분진과 커피 향, 그리고 그 너머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가족의 사랑, 그것이었다. 민준은 창밖으로 멀어지는 리버시티를 바라보았다. 그곳은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자, 그의 가족이 있는 곳이었다. 그는 언젠가 더 나은 모습으로 돌아올 것을 마음에 새겼다.

리버시티로 돌아오는 길에, 가족들은 조용했다. 그들의 마음은 아직 기차역에 남아 있었다.


"오빠 잘할 수 있을까?" 루나가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걱정보다는 호기심이 담겨 있었다.

"물론이지." 서연이 확신했다. "민준 오빠는 강해. 그리고 이제는 자신의 길을 찾았으니, 더 행복해질 거야."

"우리도 각자 열심히 해야지." 도윤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결의가 담겨 있었다. "민준 형이 돌아왔을 때, 우리도 더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자."

"그래." 선화가 아이들의 어깨를 감쌌다. 그녀의 눈빛은 따뜻했다. "우리 모두 각자의 불꽃을 밝히자."

저녁이 되자, 민준의 문자가 왔다. "서울에 잘 도착했대. 내일부터 기숙사 생활을 시작한대."

그들은 함께 옥상으로 올라갔다. 리버시티의 밤하늘은 흐렸지만, 간간이 별들이 보였다. 그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원을 만들었다. 민준의 자리는 비었지만, 그의 영혼은 그들과 함께였다.


"우리의 불꽃은 작을지 몰라도, 함께라면 가장 어두운 밤도 밝힐 수 있어." 서연이 민준의 말을 인용했다.

서연의 향초, 도윤의 공예품, 루나의 춤, 선화의 무용, 그리고 민준의 건축 꿈...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에 빛을 더하고 있었다. 작은 불꽃들이 모여 큰 불을 이루듯, 그들의 사랑과 희망은 더 넓은 세상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별들이 더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마치 그들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음을, 새로운 장이 시작되고 있음을 알리는 것처럼. 리버시티의 밤은 깊어갔지만, 김 씨 가족의 불꽃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빛나며, 서로를 비추고 있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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