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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WK단편선 82> 모피코트의 귀부인

by 김동은WhtDrgon

모피상이 도착했을 때, 나디아는 미용실에서 막 돌아온 참이었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거실의 대리석 바닥을 쓸고 지나갔다. 그녀는 창문을 닫으며 남편 루카가 선물한 캐시미어 숄을 어깨에 둘렀다.


"부인, 언급하신 그 천연 모피 샘플을 가져왔습니다." 모피상은 깊이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그의 손에는 작은 가죽 케이스가 들려 있었다.

"아, 그래요." 나디아는 우아하게 손짓했다. "테이블 위에 펼쳐주세요."

모피상은 정성스럽게 케이스를 열었다. 안에는 다양한 천연 모피들이 놓여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하나씩 꺼내며 설명했다.

"이건 북극여우 모피입니다. 요즘은 천연 모피가 불법이고 희귀해서 가격이 상당합니다. 하지만 부인 같은 분께는 특별히 마련해드렸습니다."


나디아는 미소지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부드러운 모피 위를 스치며 지나갔다. "얼마라고 했죠?"

"이 정도 품질이면 코트 한 벌에 약 1억 크레딧 정도 예상하시면 됩니다."

나디아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대답했다. "좋아요. 세 벌 주문할게요. 하나는 옅은 베이지, 하나는 은회색, 그리고 하나는 클래식한 검정색으로요."

모피상의 눈이 반짝였다. 그는 애써 놀란 기색을 감추며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현명한 선택이십니다, 부인. 세 가지 색상 모두 부인의 기품과 완벽하게 어울릴 겁니다."

어찌나 감사했는지 모피상의 숙인 이마가 그녀의 티테이블에 닿을 뻔했다.

주문서에 서명하며, 나디아는 문득 이상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3억 크레딧. 그녀는 망설임 없이 그 금액을 지불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이런 불편한 감각이 느껴지는 걸까?


모피상이 떠난 후, 나디아는 거실 소파에 앉아 차를 마셨다. 그녀의 움직임은 우아했고, 자세는 완벽했다. 차를 다 마신 후, 그녀는 무심코 찻잔에 남은 천연 각설탕 한 알을 작은 비닐 봉지에 모았다. 그리고 그것을 손가방의 작은 주머니에 넣었다.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의 행동에 깜짝 놀라 멈춰 섰다.

내가 방금 뭘 한 거지?

그녀는 천천히 손가방에서 설탕 봉지를 꺼냈다. 몇개가 더 들어있었다. 모양이 제각각인게 다른 식당의 것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어디서 넣었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선명하게 로고가 박힌 고급 어메니티들이 가방 안쪽에 꼼꼼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저 반짝이는 것은 분명 티스푼 같은데... 믿어지지 않아 확인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런 행동은 그녀에게 너무나 어울리지 않았다. 상류층 사교계의 우아한 여성이, 무슨 이유로 설탕을 챙기고 있단 말인가?

"이상해..." 그녀는 중얼거렸다.


이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최근 들어 그녀는 자신의 행동이 종종 어딘가 어색하고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마치 그녀의 삶이 완벽한 그림인데, 가끔 엉뚱한 붓질이 그 위에 더해진 것 같은 감각.

나디아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집은 도시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에 위치해 있었다. 스태인드글라스 창문을 통해 비치는 햇살이 고가구와 예술품 위에 오롯이 내려앉았다. 그녀의 남편 루카는 -그리 돈은 못 벌지만 어쨌든- 성공한 사업가로, 그들은 부족함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데 왜 이런 불일치가 느껴지는 걸까?

나디아는 일어나 침실로 향했다. 화장대 앞에 앉아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완벽하게 손질된 머리카락, 세련된 메이크업, 고급스러운 의상. 그녀는 확실히 상류층 여성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에 스친 불안감은 무엇일까?

"내가 원래 이랬던가?" 그녀는 거울 속 자신에게 물었다.


다음 날 오후, 나디아는 살롱즈 브로드웨이에 있는 기억재봉사를 찾아갔다. 은빛 날개가 그려진 간판이 붙은 건물은 도시의 번화가에 위치해 있었다. 예약 없이 방문했음에도, 그녀는 즉시 안내되었다.

"나디아 부인, 오랜만입니다." 특급 재봉사 실베스터가 그녀를 맞이했다.

나디아는 잠시 혼란스러웠다. "오랜만이라고요? 제가 여기 전에 온 적이 있나요?"

실베스터는 미소지었다. "물론이죠. 여러 번 방문하셨습니다." 그는 태블릿을 확인했다. "마지막 방문은 3개월 전이었네요."

"그런가요?" 나디아는 기억나지 않았다. "죄송합니다만, 전 기억이 잘..."

"걱정 마세요. 그건 아주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실베스터는 부드럽게 말했다. "기억 수정 후에는 이전 방문에 대한 기억이 흐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더 심화된 수정을 할수록요."


나디아는 의자에 앉았다. "제가 어떤 수정을 했었죠?"

실베스터는 파일을 열었다. "당신은 상류층 생활 패턴과 매너를 강화하는 프로그램을 선택하셨습니다. 자신감, 우아함, 사교성을 높이고, 특정... 습관들을 줄이는 조정이었죠."

"어떤 습관들이요?"

실베스터는 잠시 망설였다. "주로 절약 관련 습관들이었습니다. 음식 남기기를 극도로 꺼리거나, 작은 물건들을 모으는 경향 같은 것들이요."

나디아는 자신도 모르게 손가방을 꽉 쥐었다. 그 안에는 어제 모은 설탕 봉지가 여전히 있었다.

"그런데 왜 제가 여전히 그런 습관을 보이는 걸까요?" 그녀가 물었다.

"완벽한 기억 수정은 없습니다, 부인." 실베스터가 설명했다. "특히 깊이 뿌리내린 습관은 완전히 제거하기 어렵죠. 그리고..."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요?"

"그리고 때로는 원래의 기억이 표면으로 올라오기도 합니다. 특히 스트레스 상황에서요. 당신 같은 경우, 이게 첫 번째가 아니에요."

나디아는 혼란스러웠다. "제 원래 기억이라니요?"


실베스터는 그녀를 진지하게 바라보았다. "나디아 부인, 처음 오셨을 때 당신은... 음, 지금과는 매우 달랐습니다. 루카 씨가 당신을 처음 데려왔을 때, 당신은 정말..." 그는 적절한 표현을 찾는 듯했다. "어찌나 궁핍해 보이던지요."

나디아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제가요? 궁핍했다고요?"

"네. 하지만 걱정 마세요. 그건 모두 과거의 일입니다." 실베스터는 미소지었다. "오늘은 어떤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나디아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확실하지 않았다. 그녀는 단지 이 불편한 감각, 자신의 삶이 어딘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저는... 더 상류층스러운 기억을 원해요." 그녀는 마침내 말했다. "이 이상한 습관들을 완전히 없애주세요."

실베스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우리는 더 심화된 프로그램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전보다 부작용이 클 수 있다는 점을 알려드려야겠습니다."

"어떤 부작용이요?"

"주로 방향감각 상실과 일시적인 혼란이죠. 당신의 기억이 재구성되는 동안 현실감이 약간 흐려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정상적인 과정이에요. 곧 안정될 겁니다."


나디아는 잠시 생각했다. 이것이 옳은 결정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 불편한 감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왜 이런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하는지 알고 싶었다. 무엇보다 루카가 자신을 데려왔다는 말이 이해되지 않았고, 나디아는 일단 이 혼란으로부터 도망치기로 작정했다.

"알겠어요, 진행하죠." 그녀는 마침내 결정했다.

실베스터는 미소지었다. "훌륭한 선택입니다, 부인. 이제 편안히 누우세요. 모든 것이 끝나면, 당신은 더 나은 자신이 될 겁니다."


나디아가 의자에 누우며, 실베스터는 헤드셋을 그녀의 머리에 씌웠다. 장치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나디아의 눈이 무거워졌다. 의식이 흐려지기 전, 그녀는 실베스터의 마지막 말을 희미하게 들었다.

"기억을 바꾸는 건 쉽습니다. 하지만 그 기억이 '진짜'가 될지는, 당신이 충분히 믿어줄 수 있는지에 달려있어요."


나디아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자신의 집 침실에 누워있었다. 창문 너머로 석양이 비치고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 머리가 약간 아팠지만, 그녀는 놀라울 정도로 상쾌하게 느껴졌다.

침대 옆 탁자에 물 한 잔이 놓여있었다. 그녀는 물을 마시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제자리에 있었다. 고급스러운 침구, 우아한 가구들, 벽에 걸린 명화들.

그녀는 일어나 화장대 앞에 섰다. 거울 속의 그녀는 여전히 우아하고 세련되었다. 하지만 이제 그녀의 눈에서 이전의 불안감은 사라진 것 같았다.


침실 문이 열리고 루카가 들어왔다. 그는 나디아를 보자 미소지었다.

"당신, 기분이 어때?" 그가 물었다.

"아주 좋아요," 나디아가 대답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새로운 자신감이 담겨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좋아요."

루카는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그 센터는 어땠어?"

"괜찮았어요. 실베스터가 아주 친절했죠."

"그래? 난 한번도 만난 적 없는데."

나디아는 잠시 혼란스러웠다. "당신이 저를 거기에 처음 데려갔잖아요."

루카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아니, 내가 아니야. 당신이 혼자 찾아갔다고 했잖아."

"그래요?" 나디아는 기억을 더듬었지만,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기억이 좀 흐릿해요."

루카는 그녀에게 다가와 부드럽게 어깨를 안았다. "괜찮아. 실베스터가 말했잖아. 일시적인 혼란은 정상이라고."

나디아는 남편의 말에 안도했다. 그녀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그녀는 저녁 식사를 위해 옷을 갈아입었다.


그날 밤, 그들은 도시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서 식사했다. 나디아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느껴졌다. 음식, 분위기, 그리고 그녀 자신. 더 이상 이상한 습관이나 불편한 감각은 없었다. 그녀는 상류층 여성으로서 완벽하게 행동했다.

디저트를 먹은 후, 루카는 자리를 잠시 비웠다. 웨이터가 찻잔을 가져왔을 때, 나디아는 차를 마시고 설탕이 남은 것을 보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것을 모으려는 충동이 들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우아하게 냅킨으로 입가를 닦고 웨이터에게 미소지었다.

루카가 돌아왔을 때, 그는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오늘 당신은 정말 아름다워."

"고마워요," 나디아가 대답했다. "난 지금 정말 행복해요."

그 순간, 그녀는 진심으로 그렇게 느꼈다. 모든 것이 올바른 자리에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다음 몇 주 동안, 나디아는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다. 기억 수정 이후, 그녀는 종종 시간과 장소에 대한 감각을 잃곤 했다. 그녀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을 기억했고, 분명히 경험했어야 할 일들은 기억나지 않았다.

어느 날 아침, 그녀는 옷장을 열었을 때 놀랐다. 세 벌의 새로운 모피코트가 걸려 있었다. 옅은 베이지, 은회색, 검정색. 그녀가 주문한 코트였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들이 도착했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했다.

"루카, 이 코트들이 언제 도착했죠?" 그녀가 물었다.

"지난주 화요일이야. 당신이 받았잖아."

"제가요?" 나디아는 기억나지 않았다. "확실해요?"

루카의 표정이 약간 긴장되었다. "물론이지. 당신이 코트를 입고 거울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어. 기억 안 나?"

나디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기억이 나지 않아요."

"실베스터가 말했잖아. 일시적 기억 상실은 정상이라고. 걱정하지 마."

그러나 나디아는 점점 더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녀는 세 코트를 번갈아 입으며 사교 모임에 참석했다. 모든 사람들이 그녀의 우아함과 품위에 감탄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이상한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한 달 후, 나디아는 다시 기억재봉사를 찾아갔다. 실베스터는 그녀를 또다시 반갑게 맞이했다.

"나디아 부인, 오랜만입니다. 지난번 수정은 어떠셨나요?"

"처음에는 좋았어요," 나디아가 대답했다. "하지만 이제는... 혼란스러워요. 제 기억에 구멍이 생긴 것 같아요. 전혀 기억나지 않는 일들이 있어요."

실베스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정상입니다. 특히 당신처럼 여러 번 수정을 받은 경우에는요."

"여러 번이요?" 나디아는 놀랐다. "제가 얼마나 많은 수정을 받았죠?"

실베스터는 파일을 확인했다. "지난 2년간 총 8번이네요."

"8번이라고요?" 나디아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그렇게 많이요?"

실베스터는 잠시 망설였다. "부인, 제가 직설적으로 말해도 될까요?"

"물론이죠."


"당신은 매번 돌아와 같은 문제를 호소합니다. '기억이 맞지 않는다', '뭔가 어색하다', '진짜 내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매번 조정을 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원래 성향은... 매우 강합니다."

"제 원래 성향이요?"

실베스터는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당신이 처음 왔을 때, 당신은 극도로 구두쇠였습니다. 큰 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 푼도 쓰지 않고 살았죠. 루카 씨는 당신이 조금이라도 귀족적으로 행동하길 원했어요."

나디아는 충격을 받았다. "그게... 사실인가요?"

실베스터는 작심한듯 태블릿을 그녀에게 건넸다. 화면에는 한 여성의 사진이 있었다. 그녀는 분명 나디아였지만,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초라한 옷차림, 헝클어진 머리,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의 눈에는 불신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이게... 저인가요?" 나디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네, 처음 방문했을 때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왜... 왜 루카는 저에게 이런 일을 한 거죠?"

실베스터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당신을 사랑했어요. 하지만 당신의 극단적인 절약 습관을 견딜 수 없었죠. 당신은 큰 유산을 가진 외동딸이었지만, 그 돈을 쓰기는커녕 항상 더 모으려고만 했어요. 루카 씨는 당신에게 조금이라도 삶의 즐거움을 알게 해주고 싶었던 겁니다."

나디아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의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몰려왔다. 그녀가 알고 있던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면? 그녀의 우아함, 세련됨, 심지어 그녀의 취향까지?


"제가... 무엇을 해야 하죠?" 그녀가 마침내 물었다.

실베스터는 서랍에서 작은 카드를 꺼냈다. 그것은 나디아와 루카가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둘 다 소박한 옷을 입고 있었고, 배경은 작은 아파트로 보였다. 그들은 행복해 보였다. 진짜 행복.

"이건 당신의 백업 카드입니다," 실베스터가 설명했다. "이 카드는 기억재봉시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싸기 때문에 부인같은 부자가 아니면 만들 수 없는 것이에요. 덕분에 원한다면, 우리는 당신을 원래 상태로 복구할 수 있어요. 모든 기억 수정을 제거하고, 당신을 원래의 나디아로 돌려놓는 거죠."

나디아는 카드를 응시했다. 사진 속 여성은 분명 그녀였지만, 지금의 그녀와는 너무나 달랐다.

"그리고... 제 원래 성격도 돌아오는 건가요? 구두쇠 습관도요?"

"네,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갑니다."


실베스터가 카드를 뒤집었다. 뒷면에는 작은 쿠폰이 붙어 있었다.

"여기 이 쿠폰이 있네요. 루카 씨가 미리 비용을 지불해두었습니다. 복구 비용은 무료입니다."

나디아는 믿을 수 없었다. "루카가요? 하지만 그는 제가 이런 상태이길 원했잖아요."

"그는 당신이 행복하길 원했어요," 실베스터가 부드럽게 말했다. "하지만 진짜 당신이 아니라면, 그건 진짜 행복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죠." 실베스터가 카드를 내밀었다.


나디아는 카드를 받아들었다. 그녀는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해야 했다. 지금의 삶으로 계속 살 것인가, 아니면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갈 것인가?

"얼마나 시간이 필요하신가요?" 실베스터가 물었다.

"잠시만요," 나디아가 대답했다. 그녀는 카드를 응시했다. 사진 속 여성의 눈에는 순수한 기쁨이 있었다. 비록 초라해 보였지만, 그 미소는 진실되었다.

나디아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완벽하게 손질된 손톱, 부드러운 피부. 이것이 진짜 그녀였을까? 아니면 그저 루카가 원했던 모습일 뿐일까?

그녀는 다시 카드를 보았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그녀는 이 카드의 여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초라하고, 구두쇠같고, 삶의 즐거움을 모르는 여자.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의 혼란스러운 상태로 살고 싶지도 않았다.


"다른 선택지는 없나요?" 그녀가 물었다.

실베스터는 잠시 생각했다. "지금을 지속하는 방법도 있겠죠. 당신 같은 VIP 고객을 잃는다는 것은 저도 솔직히 아프거든요. 하지만 기억재봉사들은 당신을 속이는 사람들은 아니에요. 루카 씨도 당신 돈으로 사치하며 살지만 여전히 당신을 아끼고 있으니까요."

나디아는 깊이 생각했다. 그리고 긴 침묵 끝에 마침내 대답했다.

"지금으로서는 결정을 보류할게요,"

그녀가 말했다. "더 생각해볼 시간이 필요해요."


그날 밤, 나디아는 세 모피코트를 침대 위에 펼쳐놓았다. 한 벌에 1억 크레딧. 총 3억 크레딧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그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지불했다. 이제 그녀는 왜 그랬는지 알았다. 그것은 그녀가 아니라 조작된 기억 속의 그녀였다.

루카가 집에 돌아왔을 때, 나디아는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백업 카드가 놓여 있었다.

"오, 그것을 찾았구나." 루카의 표정이 긴장되었다. 몸도 그대로 굳어버린 것 같았다. 손이 허공에서 멈춘채 시선은 나디아에게서 멀어졌다.

"실베스터에게서 받았어요," 나디아가 대답했다.

"모든 것을 알아요."


루카는 천천히 그녀 옆에 앉았다. "화났니?"

"어떻게 그럴 수 있었어요?" 나디아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밑에는 분노가 감춰져 있었다.

"난 단지 당신이 조금이라도 삶을 즐기길 바랐어," 루카가 말했다. "돈이 그렇게 많으면서도 한 푼도 쓰지 않았잖아. 서민구에 틀어박혀서 심지어 폐렴에 걸렸을 때도 병원에 가길 거부했어."

"폐렴이요?"

"그래, 재작년 겨울. 난방비가 아깝다며 히터도 켜지 않고 지냈지. 결국 폐렴에 걸려 쓰러졌어. 내가 강제로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면..." 루카의 목소리가 떨렸다. "제발 내가 돈 때문에 당신을 해친 게 아니라는 걸 믿어줘. 당신이 폐렴으로 죽기라도 했다면..."

나디아는 그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머릿속으로 의문이 떠올랐다. 그녀가 죽었다면 루카가 그녀의 유산을 받았을까?


"그런데 왜 복구 비용을 미리 지불해놓았어요?" 그가 유일한 상속자가 맞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가 물었다.

루카는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없거나, 당신이 지금처럼 모든 걸 알게 되거나, 그때 우리에게 돈이 없을 수도 있으니까. 그 백업 정말 비쌌거든. 저 모피코트보다 더. 세벌 다 보다말야."

나디아는 백업 카드를 집어들었다. 그 안에는 그녀의 원래 모습, 원래 기억, 원래 성격. 진짜 그녀가 담겨 있었다. 구두쇠이자 부유한 상속녀. 삶의 즐거움을 모르는 여자.


"지금으로서는 결정을 내리지 않을 거예요," 나디아가 마침내 말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요. 전 재산의 반을 자선단체에 기부할 거예요. 이건 당신과 나에 대한 벌이에요."

루카는 충격을 받은 듯했지만, 반대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모피코트," 나디아가 추가했다. "세 벌 다 기부할 거예요."

"방금 전에 산 거잖아?" 루카가 물었다.

나디아는 코웃음을 쳤다. "디자인이 너무 촌스러워요. 이건 돈 쓸 줄 모르는 졸부들이나 이런 걸 입고 다닐 거예요."


그녀는 창밖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내가 원하는 삶을 가졌다면, 내가 누구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거겠지... 하지만 난 어느 쪽도 아닌 것 같아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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