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적 단두대의 칼날이 내 목 위에서 빛을 반사하며 빛났다. 이건 정말 내가 죽는 순간일까?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미모국 수호사들의 데이터베이스를 조금 늘려놓은 죄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냥 피해자들의 데이터들 약간. 그들의 가족을 죽인 것도 아니고 수호사들을 조금 야근하게 한 죄로 날 살해하려하다니. 나, 레이, 34세, 지금까지는 꽤 성공적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끝이다.
"마지막으로 할 말 있나?" 간수호사 교도관 에스코바르가 물었다. 그의 얼굴은 놀랍도록 무표정했다. 이런 일을 얼마나 많이 해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없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진심이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생각나지 않았다. 아마 충격 때문일 것이다.
에스코바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집행을 시작한다."
그가 콘솔에 손을 얹는 순간, 나는 그의 입술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아주 작게, 거의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목소리는 내 귓가에 직접 속삭이는 것처럼 들렸다.
"메멘토 모리는 사면권이 아니야. 단지 '너에게 주어진 몇 초'를 길게 늘려줄 뿐이지."
메멘토 모리? 내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그 말이 내 귀에 들어온 순간, 내 몸 안에서 무언가가 깨어났다. 마치 평생 잠자고 있던 본능이 갑자기 활성화된 것 같았다.
에스코바르가 정말 말한 건지, 아니면 내가 미쳐가고 있는 건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의 입술은 분명 움직였지만, 그 목소리는 마치 내 머릿속에서 직접 들리는 것 같았다. 비현실적이었다. 환각일까? 아니면 죽음을 앞둔 공포가 만들어낸 망상일까?
단두대의 칼날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느리게, 아주 느리게. 그리고 나는 그것이 내려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초당 수백 프레임으로 재생되는 영상처럼, 칼날의 움직임이 분명하게 보였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그 순간, 내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시간의 틈새에 태클을 걸었다! 메멘토 모리!
내 내면에서 울려 퍼진 그 황당한 문장과 함께, 모든 것이 멈췄다. 아니, 완전히 멈춘 것은 아니었다. 단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느려졌을 뿐이다. 칼날은 여전히 내려오고 있었지만, .000001밀리미터씩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에스코바르와 다른 교도관들은 석상처럼 서 있었다.
나는 손목에 채워진 구속구가 느슨해진 것을 느꼈다. 아니, 구속구가 느슨해진 것이 아니라 내 손이 미묘하게 변형되어 빠져나올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즉시 행동했다. 구속구에서 빠져나와 단두대에서 뛰어내렸다.
그러나 발을 땅에 디딘 순간, 주변 공간이 물결치듯 흔들렸다. 벽이 휘어지고, 천장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갑자기 모든 것이 빛 속으로 용해되었다.
푸른 하늘, 푸른 잔디, 멀리서 들려오는 새 소리. 나는 시골 길 한가운데 서 있었다. 주변은 고요했고, 평화로웠다. 내가 방금 전까지 있었던 사형장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이게 무슨 일이지...?" 나는 중얼거렸다. 내 목소리는 여전히 내 목소리였지만, 어딘가 낯설게 느껴졌다.
물질계의 나는 길어야 몇 분 뒤면 죽을 것이다. 여기는 다른 차원이다.
또다시 내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것이 내 생각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도로 옆으로 작은 오두막이 보였다. 나무로 지어진 소박한 집이었다.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두막 안으로 들어가자, 그곳에는 기본적인 생활 도구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침대, 테이블, 의자, 작은 부엌. 마치 누군가가 나를 위해 준비해둔 것 같았다.
"이건... 현실인가?"
현실과 구분할 수 없다. 네가 현실이라고 믿는 한.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 평화로운 풍경이 진짜라면, 나는 이제 자유인이다. 신성연합의 추적에서 벗어났고, 사형도 면했다. 내가 그토록 갈망했던 자유가 여기 있었다.
다음 며칠 동안, 나는 오두막 주변을 탐험하고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물고기를 잡고, 열매를 따고, 밭을 일구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곧 익숙해졌다.
이상하게도, 이런 단순한 삶이 내 마음을 정화시키는 것 같았다. 러너로서의 삶에서 느꼈던 끊임없는 긴장감, 불안, 공포가 사라졌다. 매일 아침 해가 뜨는 걸 바라보며, 나는 내 인생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내가 얼마나 많은 잘못을 저질렀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줬는지.
"이건 두 번째 기회인가..." 나는 저녁 노을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나 같은 인간에게 이런 능력을 준 건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
간밤의 꿈에서 본 형형색색의 빛이 떠올랐다. 그 빛 속에서 나는 마치 신의 계시 같은 것을 받은 것 같았다. 내게 주어진 이 특별한 능력, 메멘토 모리. 아마도 이것은 내게 다시 한번 삶을 바로잡을 기회를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감사합니다," 나는 하늘을 향해 속삭였다. "이 기회를 허비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2주쯤 지났을 때, 그 소녀가 나타났다.
빨간 케이프. 그것은 마치 안개 속에서 불현듯 나타난 신호탄 같았다.
소녀는 물을 한 잔 달라고 했다. 물이라고. 웃기지도 않는다. 내 삶에서 그 순간을 생각하면, 조각나고 뒤틀린 기억의 편린들만 남아있다.
그녀의 눈이 너무 도발적이었어.
그녀의 목소리, 웃음소리, 그리고 그 빨간 케이프. 모두 의도적이었다. 분명 그랬다. 소녀는 구원을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나를 시험하러 온 것이다.
네가 먼저 날 유혹했잖아.
어떻게 열세 살배기 꼬마가 이런 술수를 부릴 수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는 명백히 내게 올 목적이 있었다. 빨간 케이프 아래 감춰진 것은 순수한 악의였다. 내가 쌓아올린 평화를 파괴하기 위한 의도적인 침입자.
내가 잘못한 게 뭐야? 네가 먼저 들어오겠다고 했잖아. 내 공간, 내 안에.
나는 그녀의 몸으로 들어갈 물 한 잔을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의 손가락이 내 손을 스쳤을 때, 전기 충격 같은 것이 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다음 기억은 산산조각 났다.
빨간 천 조각. 비명. 손바닥에 느껴지는 뜨거운 체온. 가위. 그녀가 내게 던진 말들. 그리고 갑자기 침묵.
결국 네 잘못이야. 여기 와서 날 방해하지 않았더라면. 이 평화로운 곳에 네가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내 손은 흙으로 뒤덮여 있었다. 오두막 뒤편의 땅은 갓 파헤쳐진 흔적이 있었다. 내 옷과 손에는 말라붙은 어두운 얼룩들. 빨간 케이프의 찢어진 조각이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그 타락한 여자아이가 유혹했어!
소녀의 시체를 묻은 후, 나는 오두막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나는 인생에서 많은 나쁜 일을 저질렀지만, 살인마는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알던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이틀 후, 외부에서 소리가 들렸다. 나무를 찍는 도끼 소리, 분노에 찬 외침, 횃불의 타닥거림. 어떻게 그들이 나를 찾아낸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오두막 주변에 무장한 농부들이 모여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고, 손에는 낫과 도끼, 횃불을 들고 있었다. 마치 빨간 망토 소녀 이야기 속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나와라, 괴물아! 우리 아이를 어떻게 했냐!"
이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었다. 그들은 내가 소녀를 죽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그들에게 얻어맞으며 묶여 어딘가에 끌려가고, 커다란 나무 그루터기만한 도마 위에 마치 생선처럼 나동그라졌다.
그때, 내 안에서 다시 그 목소리가 들렸다.
여유있게 또 시간의 틈새로 도망쳐.
그래, 메멘토 모리. 내가 그것을 활성화할 수 있다면, 다시 도망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침대에 앉아 눈을 감았다. 집중했다. 그리고...
시간의 틈새에 태클을 걸었다! 메멘토 모리!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것은 능력이었다. 내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능력. 메멘토 모리. 죽음의 순간에 시간을 조작해 다른 차원으로 도망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나는 이제 그것을 자의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것이 멈췄다. 고함, 흥분, 분노, 새들의 노래, 바람 소리. 모든 것이 완전한 정적 속에 빠졌다.
어, 이거 개꿀인데! 왜 내가 이런 사용법을 몰랐지?
나는 일어나 조각상처럼 멈춰 있는 그들 사이를 지나 숲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한번, 모든 것이 빛 속으로 용해되었다.
도시의 불빛, 자동차의 경적 소리, 사람들의 웅성거림. 나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시골이 아닌 대도시였다.
하지만 뭔가 달랐다. 내 안에서 무언가가 변했다. 마치 내 영혼의 일부가 소진된 것 같았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나는 더 강한 자극을 갈망하고 있었다.
두 번째 점프부터 에고가 고갈되기 시작했다.
도시에서의 첫날, 나는 호텔을 예약하고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내 마음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갈망했다. 더 강한 자극, 더 극단적인 경험, 더 깊은 감각.
나는 클럽을 찾아 뛰어나갔다. 음악, 술, 사람들. 하지만 그것도 충분하지 않았다. 나는 더 원했다. 나는 길거리에서 칼을 샀다. 왜 그랬는지 모른다. 단지 내 손에 그 차가운 금속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그것을 사용했다.
처음에는 한 사람이었다. 길거리에서 마주친 취객. 그는 내게 시비를 걸었고, 나는... 반응했다. 칼이 그의 가슴을 뚫고 들어갔을 때, 나는 이상한 해방감을 느꼈다.
그리고 멈출 수 없었다.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 도시는 공포에 휩싸였다. 연쇄 살인마가 나타났다는 뉴스가 퍼졌다.
나흘째 되는 날, 경찰이 내 호텔 방을 찾아왔다. 어떻게 그들이 나를 찾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전기의자에서 다시 메멘토 모리를 사용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무언가 다르게 느껴졌다. 더 많은 에너지, 더 많은 집중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성공했을 때도, 이전만큼 완벽하게 시간이 멈추지 않았다. 경찰들은 여전히 매우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에고가 고갈되고 있다.
세 번째 차원에서,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을 통제할 수 없었다. 이곳은 중세 시대와 비슷한 세계였다. 성, 기사, 농부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그런 것들에 관심이 없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자극, 그리고 더 강한 자극뿐이었다.
나는 마을에 불을 질렀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것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기사들이 나를 쫓았지만, 내가 가진 현대적 지식은 아무 쓸모가 없었다. 그들은 생각보다 똑똑했다. 결국 그들은 나를 붙잡았고, 화형대에 묶었다.
다시 메멘토 모리를 활성화하려 했지만, 이번에는 무언가 잘못되었다. 내 안의 기운이 완전히 고갈된 것 같았다. 나는 필사적으로 발버둥쳤지만, 불길이 내 발부터 몸 전체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온몸이 타들어가는 동안에도 정신은 맑았다. 고통은 너무나 선명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시간이 끝나고 드디어 숨이 끊어지는 순간...
세상이 빛과 함께 깨졌다.
갑자기 나는 도시의 전기 의자에 앉아 있었다. 벨트가 내 손목과 발목을 단단히 조이고 있었다. 누군가가 내 머리에 금속 장치를 씌웠다. 스위치가 올라가는 소리가 들렸다.
"레이 사이먼의 사형 집행을 명한다."
전기가 내 몸을 관통하는 순간,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전신을 휩쓸었다. 내 근육은 경련을 일으켰고, 이가 부딪히며 혀를 물어뜯었다. 피의 맛이 입안에 가득했다.
그 고통 속에서도, 나는 메멘토 모리를 무의식적으로 활성화했다.
하지만 이제 내 안에는 거의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세상이 다시 한번 깨졌다.
그 자연의 세계로 돌아왔다. 두 명의 장정이 내 팔을 붙잡고 있었고, 눈 앞에는 참수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빨간 망토 소녀의 살인자, 너의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를 시간이다."
도끼가 올라갔다. 메멘토 모리를 발동시키려 했지만, 내 안에는 이제 거의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마지막 남은, 아주 작은 조각을 필사적으로 움켜쥐었다.
도끼가 내려오는 순간, 세상이 굴렀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원래의 사형장으로 돌아왔다. 전자적 참수대, 교도관 에스코바르, 얼굴을 가린 두건. 그리고 몸을 감은 두툼한 전통 밧줄의 압박감.
에스코바르의 눈에서 이상한 빛이 번쩍였다. 그는 알고 있었다. 내가 경험한 모든 것을, 내가 겪은 모든 차원을, 그는 알고 있었다. "돌아왔군," 그의 입술이 움직였다. 하지만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칼날이 내 목에 닿기 시작했다. 고통이 밀려왔다. 너무나 현실적이고, 너무나 선명한 고통이었다.
그리고 내 안에서 다시 한번 메멘토 모리가 활성화되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게 느껴졌다. 이것은 내 의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본능적인 반응, 죽음을 앞둔 생물의 마지막 몸부림 같았다.
드디어 시간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멈추지 않았다. 새로운 차원도 없었다. 단지 끝없이 느려질 뿐이었다. 칼날은 여전히 내려오고 있었지만, 너무 느려서 거의 멈춘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고통은 그대로였다. 칼날이 내 피부를 자르기 시작했고, 그 감각은 온전히 느껴졌다. 그리고 그 고통은 계속되었다. 칼날이 점점 더 깊이 들어오면서, 고통은 증폭되었다. 하지만 죽음은 오지 않았다.
고통에 의식을 잃어가며 무의식 속에서 메멘토 모리가 몇 번이고 계속 계속 계속 발동됐다. 그것을 멈출 수 있는 이성은 남아있지 않았다.
시간은 더욱 느려졌다. 고통은 더욱 선명해졌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이것이 진정한 지옥이다. 죽음에서 도망치려 했지만, 결국 나는 영원한 죽음의 순간에 갇혔다.
끝없는 고통 속에서, 나는 에스코바르가 처음 했던 것 같은 말을 기억했다.
"메멘토 모리는 사면권이 아니야. 단지 '너에게 주어진 몇 초'를 길게 늘려줄 뿐이지."
그는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는 내가 이런 결말을 맞이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어쩌면 그 자신도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거나, 혹은 나처럼 이 능력의 저주에 갇힌 사람을 이전에 본 적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능력을 준 신의 뜻이 있을 것이다. 알 것 같았다. 그럴리 없다. 신이 있다면 날 이런 운명이 되도록 버려뒀을리 없다. 악마같은 놈.... 그래. 도망치자! 메멘토 모리!
죽음을 피하려는 욕망은 결국 더 큰 고통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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